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70화 (868/1,009)

***

장병들의 출병에 앞서, 교황의 축복이 이뤄졌다.

〈호국의 이름 아래 그 몸을 바쳐 싸우는 자랑스러운 병사들이여. 그대들은──〉

행진에 앞서서 광장에 모여서 축복을 받는 국군 병사들.

[email protected]로 모험가들과 용병, 그밖의 참전인들이다.

나라를 구원하러 가는 이들을 응원하고자 모인 사람들로 가득한 광장은 미미한 열기에 감싸였다. 공포와 절망을 한 번 극복한 시민들의 오기였다.

몬스터의 범람과 그걸 저지하는 전쟁.

원로원에서 ‘위국전쟁’이라고 명명한 이 재앙을 시련으로 여기고 뛰어넘어 보이겠다는 의지였다. 나랑 어르신의 똥꼬쑈가 이렇게 스노우볼이 되네.

〈이 위국전쟁의 항전에는 성직자들도 함께 할 것입니다.〉

〈물론 저희들 교황도 예외는 아니며──〉

교황들의 축사가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이 도열식 자체가 버프 의식이기는 한데, 당장 도움이 필요한 영지도 적지 않다. 그곳에는 오델리아를 포함한 선발대가 미리 향한 뒤였다.

여기 있는 이들은 아직 몬스터와의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곳으로 파병가는 이들!

티베리우스 남매나 오프툼도 도열해 있었다. 딱 눈이 마주치길래 눈인사만 해 뒀다. 왜냐고? 나는 저 집단에 껴 있지 않거든.

나를 대신해서 단상에 오른 것은 티르시였다.

출신인지 자부심인지 실력인지는 몰라도, 많고 많은 유명인사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게 품위가 넘치며 아름다워 보이는 그녀. 전용 딜도 북호는 자랑스러워용.

〈──때문에 7대신 교단에서는 호국 전사들의 생환과 승리를 바라며, 긍지 높은 성기사, 순교자, 사도들이 남긴 성유물을 대여하기로 하였습니다.〉

로물루스 교단의 교황이 그렇게 말하면서 온갖 성물을 옮기게 시켰다.

〈미네르바 대장군. 그대에게는 이 성뢰신님의 성검, 타르펜나를.〉

검, 창, 활 같은 무기부터 방패, 갑옷까지 여러 개의 성물을 각 병단의 대표에게 나눠주었고, 그 순번은 티르시한테까지 돌아왔다.

〈──티르시 리터 아르마슈나스 경과 그 일행. 그대들에게는 자재신님의 성유물, 안식의 베일과 정의신님의 성유물, 결옥의 철퇴를.〉

얇은 커텐처럼 고아한 베일 두건과 황금망치.

장군과 대귀족이라도 손에 넣긴 힘들 성물들을 대여하며 로물루스교 교황이 말했다.

〈이상, 12개의 유물을 종전 시까지 기증한다.〉

도열식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혼자 성물을 2개나 받은 티르시를 보고 쑥덕거리는 듯 했는데, 티르시는 이게 당연하다는 듯 차분했다.

훗날 그녀의 명성을 높이는 데 오늘의 도열식이 도움이 될까.

유명해진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냐고 하면 또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시내를 돌며 사기를 높이는 시가행진이 개시할 무렵, 나는 인파를 빠져나왔다.

***

“사람들의 시선은 익숙해지질 않네요.”

행진을 마치고 돌아온 티르시가 말했다. 피곤한 듯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그녀였지만─정신적으로 피곤한 모양이다─ 프랑은 환하게 웃었다.

“티르시, 엄청 멋졌어요! 이야기 속 공주님이나 대단한 마법사 같았는걸요!”

“그, 그래요?”

티르시가 멋쩍은 듯 쭈뼛거리자 다나는 숨 죽여 큭큭댔다.

“푸흐흐. 좋으면서 쑥쓰러워 하긴.”

“……후후후. 다나도 언젠가 꼭 비슷한 체험을 하게 해 드릴게요?”

“맘대로 하세요~. 난 발퀴리에를 대타로 보내버리면 그만이니까~. 뿌슝빠슝~ 신분은 준 백작인데 영지도 못 받고 꼬붕도 없는 대마법사가 있다?”

“그래서, 다나는 노르드 없이 연구원들 월급은 주실 수 있구요?”

“얼스터식 가정교육에서 남편의 돈은 곧 마누라님 돈이랬으니까 괜찮음.”

“눈나. 안사람 호박씨는 옆에 없을 때 까는 게 예의 아닐까?”

“호박씨라니? 문무겸비의 엘리트가 남편이라서 햄볶하다는 뜻의 칭찬이거든?”

“크헤헤헤. 그럼 됐고.”

애초에 내가 부인을 늘려대도 뭇매를 맞아 죽지 않는 건 그만큼 힘과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돈?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주도록 하지. 내 재산 전부를 아내님들 지갑에 두고 왔으니까.

즈우우웅─!!

그러고 있는 사이에 장병들이 포탈을 통과했다.

황제의 1인용 탈출 포드다. 말이 1인용이지 저 황금시대의 유물이므로 좌표만 설정하면 어디든지 보낼 수 있다. 파병의 속도를 늘리고자 내가 대여해줬다.

“저런 게 상용화되면 아틀란티스의 가치가 떨어지진 않겠나?”

조금 전까지 나한테 안부 인사를 하던 길다트가 물었다.

내 대신 설명해준 건 엘리자베트였다.

“전혀. 마차 10대에 금괴를 채워 전송시킨다고 쳐도 마나 비용을 간신히 회수할 정도니까. 거의 왕성의 물류창고 10개 분량을 한 번에 운송할 수 있는 아틀란티스랑은 비교가 안 돼.”

맞다. 무역은 가성비의 문제니까.

마나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하냐고? 마나 포션이 있잖아?

“그보다 백작님? 저거 우리한테 기증해 주기로 한 유물 맞지?”

“넹. 영지로 바꿔주신다믄서요?”

“좋은 거래 아냐? 너희는 굳이 필요 없잖아.”

“맞와용.”

어디로든 문이 잔뜩 있는 우리한텐 계륵이니까 영지로 바꿔먹을 생각이다.

전쟁에 끼지 않는 엘리자베트는 벌써 종전 후를 생각하는지 빠르게 속닥거렸다.

“로마니아의 승냥이 의원들이 전쟁이 끝날 쯤에 부숴놓고 오리발을 내밀까 봐 걱정이야. 너한테는 몰라도 우리는 저 유물이 엄청 귀중하단 말야.”

그럴 수밖에. 〈공간 이동〉은 현대에는 실전된 기술이니까.

브리타니아 왕실한테는 뒤지게 귀중한 물건이고 로마니아의 수뇌부한테는 눈엣가시다. 부숴놓고는 싸움에서 소실됐다고 시치미를 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부숴지면 하나 더 만들죠 뭐. 잡것들이 염치도 모르고 부숴놓으면 깽값 두둑히 받아낼 견적이나 짜 두십셔. 개평 좀 나눠주시고요.”

“너 천재지?”

좋다고 얼굴이 펴지는 그녀. 이번엔 내가 물을 차례다.

“다른 나라의 증원은 어렵습니까?”

“그렇지. 별의 자손, 이계의 침략자들이 어디서 또 튀어나올지 누가 알아?”

“별 수 없는 일이죠. 감수하는 수밖에.”

특히나 게르마니아, 니다벨리르는 심장 빨갱이 사상충의 피해가 컸다고 한다.

“보급은 되도록 지원하겠지만, 어느 나라도 국방력을 유출할 생각은 없어 보여.”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상관은 없는 일이지 않은가.

헤니르의 계획을 저지하는 데는 과잉전력이고, 우리가 실패하면 냅둬도 울며불며 인류의 존망을 걸고 싸워야 할 것이니까. 당연히 실패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무운을 빌게. 죽지만 말고.”

“네게 신들의 가호와 행운의 보살핌이 있기를.”

왕족 부부는 우리 무운을 빌어주며 떠났다. 그 다음 나타난 건 소년 교황이다.

〈백작님. 포모나교의 전투 사제들과 성기사들, 준비 완료했습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도 아즈위시아로 함께 가 줄 것이었다.

하지만 좀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덜덜덜. 수레에 담겨서 실려오는 물건들.

내 눈짓에 발퀴리에가 천을 걷자, 꼼꼼하게 포장된 상자들이 있었다.

가족의 등쌀에 떠밀려서 평생 모아왔던 덕질의 성과를 당근마켓에 내놓은 씹덕처럼 말로는 표현 못할 슬픔과 정성이 느껴지는 포장이었다.

〈교황 예하들로부터 보내온 성의입니다.〉

〈감사할 따름이군요.〉

뭐? 왜? 설마 성물 2개 받고 퉁칠까 봐?

아까 받은 베일이랑 망치는 특히 귀한 물건이니 가능한 전쟁이 끝나고 나서 꼭 돌려달라는 뜻으로 사람들 보는 곳에서 준 물건들이다.

그에 비해 이것들은?

내가 써먹다가 낼름 가져가도 씨발씨발 거리며 넘어갈 수밖에 없는 깽값이지.

〈하지만 적지 않게 중고품이죠. 뭐든지 신품이 제일입니다.〉

어린애처럼 뻗대며 말하는 포모나교 교황.

약간 유니콘 같은 발언인데, 성직자라는 걸 생각해보면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

─파앗!!

유물을 타고 아즈위시아 근방에 도착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아즈위시아 사람들은 이 황제의 임페리얼 빤스런 워프 장치의 존재를 아직 모르기에 시내에 뿅 하고 튀어날 순 없다.

그래서 좀 이동하게 되더라도 우리 100여명의 위국 지원군은 협곡 위에 내렸다.

여기서 잠깐 아즈위시아의 지리를 설명하자면, 살수대첩 사극을 찍기 딱 좋을 듯한 좁다란 협곡 출구에 성벽이 높은 도시가 알박고 있는 모습이다.

은행잎처럼 부채꼴로 펼쳐지는 협곡의 갈래길은 단순명료하다.

그 협곡 중에 제일 높은 곳이 몬스터들의 둥지. 그리고 저기를 통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은 거의 얼씬도 하지 않는 미개척지가 나온댄다.

그렇기에 우리는 도착한 직후에 입을 싸물었다.

“……익숙한 광경이네요.”

“티르시 너도? 우연이네. 나도 그런데.”

아즈위시아의 성벽 전방을 벌써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괴물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럴싸한 진형까지 갖춘 몬스터 군사였다.

“트롤 군대를 만났을 때가 떠오르네.”

프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맞다. 딱 그때랑 비슷했다.

우리가 있는 협곡은 교묘하게 아즈위시아를 둘러쌌기에 몬스터들은 성을 포위하진 못했다. 비유를 하자면 저 성 자체가 톨게이트 같은 느낌이다.

성을 지나가려면 힘으로 뚫든가, 검문을 받으며 통과해야 하는 천연의 성벽이다.

그래서였다.

“그때랑 다른 것도 있는데?”

헛웃음을 지은 다나가 얼굴을 찌푸리며 도시의 외곽─몬스터가 없는 안전지대─에 손가락을 가리켰던 것은 말이다.

─다그닥, 다그닥!!

최소 귀족이 타고 있을 듯한 값비싼 마차가 그 평원을 좆빠지게 달리고 있었다.

〈……신이시여, 맙소사.〉

교황은 두손을 모아 로키 쪽에 대고 기도했다.

기도를 받은 로키는 뚱하니 말했다.

“적군이 몰려드는데 성의 주인이 도망쳤네.”

“그런갑네.”

역시 인간은 뒤지게 재밌어.

한치 앞을 예상할 수가 없어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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