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73화 (871/1,009)

***

〈몬스터들이 진군을 개시했습니다!〉

노르드를 업고 성벽에 올라온 티르시는 어째서 호병대가 자신을 찾아다녔는지 알 수 있었다.

〈몰려오는군요.〉

아즈위시아는 미끄럼틀을 닮은 골짜기의 정상에 세워진 성새도시다. 그렇기에 협곡의 갈림길에서 올라오는 몬스터들은 급류를 역행하는 연어 떼를 방불케 했다.

좌우의 협곡에 퇴로가 막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쇄도하는 몬스터의 대군.

〈……땅이 울려.〉

프랑의 속삭임이 발구름 소리에 감춰졌다.

쿵, 쿵, 쿵, 쿵……!!

인간보다 훨씬 체중이 나가는 바위 거북들이나 무장까지 완료한 생쥐 인간들의 진군은 가히 골짜기 전체를 떨게 만들었다.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가와는 별개로, 성벽 위에 모인 그녀들마저 장절한 소름을 돋게 만드는 경천동지의 진군이었다.

겉으로라도 냉정을 유지하는 병사들의 의연함이 놀라울 만큼 말이다.

〈저것들, 어떤 몬스터야?〉

〈근방 협곡에 서식하는 록 터틀과, 그들을 사육하는 랩 플랜터에요. 특히 랩 플린터는 고블린과 오우거처럼 마법도 다루죠. 그것도 선천적으로요.〉

〈그리고 하피 떼.〉

티르시가 다나의 질문에 대답하자 네페르티티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꺄하하하하하!!〉

하늘을 나는 하피는 진군의 위압감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으나, 협곡에 시체를 뜯어 먹는 까마귀처럼 앉아 있거나 홰를 치며 돌아다니면서 불온함을 조성했다.

악의적으로 일그러진 노파의 얼굴을 가진 새들. 축 늘어진 가슴을 뻔뻔하게 내밀고 다니는 모습엔 남녀를 불문하고 불쾌함이 앞섰다.

라리루라는 천만다행이라는 것처럼 말했다.

〈저런 하피라면 걱정은 없겠네요.〉

〈걱정? 뜬금없이 무슨 걱정?〉

〈가족이 늘어날 걱정이요♡!〉

〈아, 그건 확실히 존나 심각한 문제지.〉

정색한 다나는 농담─같기도 한 진담─을 받아치면서 긴장감을 풀었다.

이제 와서 아내가 조금 더 늘어난다고 새삼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지는 않는 그녀들이었지만, 그게 몬스터라고 하면 얘기가 좀 다르지 않은가.

〈날아다니는 몬스터, 귀찮아.〉

〈문제없습니다. 고저차가 높으니 하피 년들도 올라오다가 지치기 일쑤거든요.〉

제 1 호병대장이 이번만은 교본을 덮고 말했다.

골짜기의 오르막과 고저차는 하늘을 나는 생물에게도 마찬가지도 적용된다.

협곡으로 좌우가 막힌 아즈위시아다. 우회해서 상공을 노리려면 정면 입구로 가는 거리보다 4배 이상은 이동해야 할 것이었다.

〈날갯짓도 결국 행군의 일종입니다. 수가 많긴 하지만 지형을 극복하고 올라오다 체력이 떨어진 하피는 난적이 아니죠.〉

〈하지만 숫자가 숫자니라. 하늘과 땅, 양면에서 전선을 펼치면 버거울 텐데?〉

〈예. 그러므로 이렇게 합니다.〉

호병대장은 철저하게 정기보수를 하며 관리했던 수정구를 발동했다.

─쿠르르릉!!

천둥 같은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협곡에 장치한 매직 아이템이 폭발했다.

골짜기를 막 올라오려던 몬스터들을 매장하려는 것처럼 흙구름이 쏟아졌다. 산사태의 전조였다. 딱 하나밖에 없는 외길을 틀어막는 비장의 한 수다.

호국대장은 예산 집행이 아깝지 않은 성과물에 나름 자부심을 갖고 설명했다.

〈모조리 매장할 수는 없더라도 진형과 지형을 어지럽힐 수는 있죠. 이걸로──〉

몬스터의 진군 속도를 늦추고 사기와 체력을 더 고갈시키고, 반격합시다.

호병대장이 그렇게 설명하려던 순간이었다.

〈취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가장 커다란 바위 거북에 타 있던 생쥐 인간, 랩 플린터가 높이 도약했다.

랩 플린터의 보스로 보이는 놈은 이상하리만치 거대해진 체형에 등이 둥글게 굽어서는 들고 있던 물결치는 대검을 지면에 꽂아 넣었다.

땅의 마나가 지면을 뚫고 협곡을 기어올라갔다.

─우르르르르!!

폭발에 무너지려던 협곡이 누가 붙잡은 것처럼 진동을 멈췄다.

〈캬아아악!!〉

그뿐만이 아니었다. 앉아 있던 협곡이 무너지자 성질을 부리며 날아오른 하피 한 마리가 제자리를 호버링하며 날개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화아아아아악!!!

괴물의 날갯짓이 폭풍을 낳았다.

쏟아지던 흙, 돌 조각 중 가벼운 것들이 바람에 떠밀리며 속도를 붙였다. 촘촘하고 작은 화살처럼 변한 산사태의 파편이 골짜기의 외길을 관통하며 성벽 위로 쇄도했다.

〈장벽을 펼쳐라!!〉

다급한 지시에 마법 장벽이 올라왔다.

파성추나 수성전에 유리한 에너지 감쇄형 결계! 물질이 아닌 역장(力場)인 터라 장벽은 부서지지 않았지만, 대신 장벽을 뚫은 바람이 황사처럼 들이닥쳤다.

─휙. 베로니카가 지팡이를 후둘렀다.

〈먼지를 마시는 건 골방에 들어박혀 있을 때로 족하다.〉

순식간에 뿔을 빛낸 베로니카가 룬 마법의 장벽으로 주위를 뒤덮었다.

난기류를 낳으면서 꼼꼼하게 성벽을 헤집어대던 바람도 그녀의 실드를 뚫지는 못했다.

〈콜록, 콜록!!〉

〈악! 눈, 눈!〉

하지만 그녀와 떨어진 성벽에선 모래, 흙 자갈 등이 몰아치며 병사들을 괴롭혔다. 안구를 지키는 방호구는 없었기에 투구마저 벗어던지며 기침하는 병사가 속출했다.

아무리 베로니카라도 실드를 더 넓게 펼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탓이었다.

추악한 하피 여왕이 베로니카를 보며 불쾌한 듯 송곳니를 드러냈다. 베로니카는 머리에 쓴 베일을 만지작대면서 건성으로 눈을 찌푸렸다.

〈수통의 물로 헹궈!! 무겁다고 비워 놓은 새끼 있으면 걷어차서 떨어트린다!!〉

〈예, 예!!〉

〈발리스타랑 무장 상태도 점검해! 모래나 이상한 마법이 걸려 있진 않는지──〉

운 좋게 눈을 지켰던 참모는 얼굴을 닦아내면서 지시를 내리다가, 팔 토시에 묻어나온 좁쌀 만한 씨앗을 발견하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대장님, 큰일입니다!! 조금 전의 바람에 맨드레이크의 씨앗이 섞여 있었습니다!!〉

〈멘드레이크?! 어느 틈에!!〉

무언가를 섞는 과정은 보이지 않았는데? 당황을 금치 못 하는 그에게 프랑이 말했다.

〈산사태에 처음부터 섞여 있었어요.〉

〈……처음부터? 설마 랩 플랜터들이 밤에 몰래 섞어뒀단 말입니까?〉

야행성이라 밤눈이 밝은 몬스터는 랩 플랜터가 유일하다.

하지만 새와 쥐라는 외모만 봐도 상상이 가듯, 두 몬스터 종족은 그야말로 견원지간이었다. 서로 협력하고 있는 것조차 불가사의한데 하물며 작전 내용까지 공유하다니?

‘……작전?’

자신이 떠올린 생각에 호병대장은 더 놀랐다.

작전? 작전이라니? 랩 플랜터도 하피도 지능은 높지 않은 몬스터였다. 협곡의 폭발물을 눈치채진 못했다고 쳐도, 이만한 계획성은 몬스터가 구상할 수준의 전략이 아니었다.

〈……맨드레이크부터 털어내!! 꽃이 피어나면 전투에 지장이 간다!!〉

하피는 매료 마법을 사용하므로 정신을 지키는 매직 아이템 정도는 보급됐지만, 고작해야 보급품 정도의 성능일 뿐이었다.

맨드레이크는 비명으로 사람을 미쳐 죽게 하는 식물형 몬스터!

이 잠깐 사이에 자란 뿌리가 사람을 죽일 정돈 아니겠지만, 먹잇감들이 뿌리를 뽑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인지 꽃에도 환각 작용이 있었다.

병사들이 허겁지겁 몸에 붙은 씨앗을 떼어내려 했을 때였다.

─딱!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나더니 움트던 씨앗이 딱 멈췄다.

굵은 씨앗들은 민들레처럼 바람을 타면서 솔솔 떠오르다가, 몬스터들에게 날아가 꽂혔다. 혈액을 비료 삼아서 피어난 꽃들이 바위 거북들의 비명을 유발했다.

〈쓰벌, 꼭 자다 깨면 좋은 일이라곤 없어요.〉

요정왕의 완드로 씨앗을 조종한 노르드가 혀를 차자, 티르시가 살짝 웃었다.

〈노르드. 일어나셨군요. 정황은 어땠나요?〉

〈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놈들을 찾았습니다. 저 안쪽의 숲에 있는 늪지대에요. 세계수의 뿌리가 톡 튀어나와 있던데, 거기에 신족들이 있습니다.〉

〈예? 시, 신족들이라니요?〉

〈인간을 못 죽여서 안달 난 악신들 말입니다.〉

〈……풍문에 들었던 얘기 말씀이로군요.〉

호병대장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는 접근하는 몬스터들을 보며 말했다.

〈록 터틀은 수직 협곡을 타고 돌아다니며 절벽 틈틈이 자란 약초를 먹는 몬스터입니다. 성벽에도 달라붙으면 기어올라오고도 남을 테죠.〉

〈그럼 어떻게 하시렵니까?〉

〈대대장님의 지령은 받아 뒀습니다.〉

그는 허리춤에 맨 검을 붙잡았다.

〈회전이죠. 나가서 맞붙는 수밖에요.〉

〈……아무리 그래도 성벽을 끼고 수성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수성 중에 록 터틀이 10마리만 벽에 붙어도 무게를 못 버틸 겁니다. 성벽이 무너져서 병사들 절반을 잃고 시가전을 벌일 순 없는 노릇입니다.〉

대답하면서도 호병대장은 인상을 쓰고 말았다.

보통은 록 터틀이 성벽에 다가오는 일은 없다. 저들은 몬스터이긴 해도 초식이며, 산란기가 아닐 때는 사람을 습격하는 경우가 더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랩 플랜터들의 마법으로 산란기 때처럼 사나워지고, 발도 빨라진 상태!

아즈위시아의 성벽은 록 터틀이 달라붙는 것을 상정하지 않은 설계였다.

과거에도 랩 플랜터들이 타고 공격을 가해왔던 적이 없는 건 아닌데, 그때는 접근 전에 전멸시켜 버렸기에 문제가 없었다.

〈……다만, 예전처럼 접근 전에 전멸시키자니 저만한 숫자가 상대여선 어렵습니다.〉

하물며 지상에만 신경을 쓰자니 하피도 있다.

애초에 저런 몬스터 혼성 대군의 존재를 알았다 해도, 모든 몬스터들에게 대비할 수 있는 성벽은 기술적으로 쌓아 올리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성벽이 무너지면 하피들의 시내 침입을 막을 방법이 없어요. 병대의 반이 밖에서 맞서고, 성벽 위에서도 원호하는 게 맞겠죠.〉

대대장에게 받은 서류를 반추하며 생각하던 티르시도 그의 말을 긍정했다.

─힐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노르드에게 눈길을 주었다.

허락만 떨어진다면── 아니, 그녀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성벽 위에서부터 3~4만 마리의 몬스터 대군을 쓸어버리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전사라면 아무리 그래도 체력이 먼저 떨어질 듯 하지만, 그녀들은 마법사다.

특히 티르시는 얼음만 존재하면 마법을 무한히 쓸 수 있지 않은가.

적군이 산개한 상태라면 모를까, 외길에 고립된 이들이라면 직전의 우두머리 몬스터들이 보여줬던 마법 능력을 감안해도 토벌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내려가죠.〉

하지만 노르드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록 터틀이랑, 잠결에도 느꼈던 마법을 사용한 우두머리들만 족치고 돌아옵시다. 수성을 방해할 요소만 치우면 지형 차이로 압승도 가능하겠죠.〉

〈그렇다고 하네요. 준비해 주시겠어요?〉

〈예!! 대대장님께도 보고드리겠습니다!!〉

호병대장이 시킨 부하가 리프트를 타고 성벽을 내려가자 티르시가 물었다.

“그래서, 진짜 이유는요?”

“전투에 특화한 신족들은 마스터 클래스에 준할 겁니다. 권능은 없겠지만요.”

노르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에피타이저부터 배를 채우면 안 되잖아요?”

적군을 물리쳐봤자, 후방의 본대를 해치우지 못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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