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74화 (872/1,009)

인간이 검 한 자루로 용을 잡는다면 초월자라고 불릴 만 하다.

그만한 경지에 오른 인간들이 갖추는 힘이 권능이고 말이다.

하지만 용은 그들만큼 그만큼 단련하지 않아도 인간을 밟아죽이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마스터 클래스로 분류되는 위험도의 몬스터들이 그랬다.

노르드는 몇 마리인가의 우두머리 몬스터를, 그 너머의 신족들을 보는 것처럼 말했다.

“초사이어인 바겐 세일도 아니고 인플레이션이 지나쳐서 빡칩니다만, 생각해 보면 신이란 것들이 실력은 이름값을 못 하는 셈이니까 오히려 운이 좋은걸지도 모르죠.”

어쨌든 수성전으로 들어간다면 거의 모든 적을 그들이 감당하는 구도가 된다.

물론 그건 격투기 챔피언과 중학생의 싸움이다. 숫자 차이를 극복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 뒤에 자기보다 딱 한 체급 낮은 챔피언들과 연전하라면 누구나 난색을 표할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그였지만, 애초에 노르드와 그녀들이 모든 몬스터들을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될 의무도 없지 않은가.

“다행히 병사들이 목숨을 잃을 일은 적을 거고 말입니다. 그렇지? 다 박사님.”

그가 부르자 성물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다나는 부루퉁하니 입을 내밀었다.

“뭐야. 결국 나 혼자 뼈 빠지게 일하란 거네?”

“이 누나가 뭐래. 백작 부인 씩이나 돼 놓고서 아직 사치 부리는 법도 못 배웠어?”

다나의 등을 두드린 노르드는 전투를 준비하는 병사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어깨며 가슴에 달고 있는 신도의 증표도 말이다.

“진짜 부자들은 말이야. 남의 돈으로 재테크를 하는 거라고.”

돈이 돈을 낳듯이 마나는 마나를 낳는다.

세계 부자 랭킹을 보면 꼭 은행이나 대출로 해 먹은 양반들이 나오지 않는가? 생각을 마친 그는 번잡하게 움직이는 호병대장에게 다가갔다.

〈호병대장님. 이 도시에도 국기 같은 건 있죠? 하나만 내 주십쇼.〉

〈국기 말입니까? 그거라면 저쪽의 성벽에 걸린 걸 얼마든지 사용하십시오.〉

그가 눈을 돌리자 성벽에 꽂힌 신성제국의 옛날 국기가 바람에 펄럭거렸다.

“음……. 국호가 바뀔 테니 국기도 조만간 바뀔 텐데…… 알 게 뭐람.”

노르드는 적당한 크기의 파란 깃을 끌러내서는 브류나크에 묶고는 어깨에 걸쳤다. 그러자 마치 개전을 앞둔 기수처럼 보였다.

“많이도 몰려오네. 아틀란티스 때보다 많겠어.”

그는 엄지를 핥고서 몬스터가 즐비한 골짜기의 외길 대로를 쏘아 보았다.

“그래도 앞으론 어디 가서 틀딱들한테 전쟁 해 봤냐는 소리는 안 들어도 되겠다.”

적은 죽여도 문제가 없는 괴물이고, 전력 차는 질 이유가 없는 수준이었다. 말하자면 지레 겁을 먹을 필요가 없는 전쟁인 셈이다.

이후 있을 신족들과의 싸움을 포함해도 말이다.

프랑과 네페르티티가 노르드의 옆에 자연스럽게 섰다. 전쟁에 직접 몸을 던질 멤버였다. 노르드는 라리루라에게 눈짓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란 뜻에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윽고 병대가 집결했을 때.

─홱!!

그들은 창대에 매단 깃발을 펄럭이며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

가장 무서운 악몽은 깨지 않는 악몽이다.

아즈위시아의 호병, 마티어스는 그렇게 믿었다. 가위에 눌려본 적도 많은 그였지만 역시 최고로 싫은 악몽은 돌림병으로 생사를 오갈 때 꿨던 깨지 않는 꿈이라고 말이다.

─쿵쿵쿵쿵쿵쿵!!

그랬던 그는 지금 생각을 바꿨다. 가장 무섭던 꿈도 현실에 들이닥친 악몽보다는 못했다. 진군해오는 수만 마리의 몬스터는 그야말로 질 나쁜 꿈 같았다.

아즈위시아의 상비병은 천 명이 채 안 된다.

그마저도 영지 하나에 있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다. 성새도시와 국경이라는 특이성에서 여러 영지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았다면 유지되지 못할 대군인 것이다.

이번에는 은퇴한 병사들에 장정, 용병까지 긁어모아서 갓 2천 명을 채웠다.

〈지형 차이를 살리면 우리 군의 5배도 더 잡을 수 있어.〉

오랜 동료가 옆에서 쑥덕거렸다. 잡담은 군기를 해치는 행동이었지만, 별 수 있는가? 저런 공포를 앞두고 방언이 터지지 않았으니 그는 충분히 용감한 병사였다.

마티어스는 다음으로 고작 셋이서 진형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눈이 휘둥그래지는 미녀 둘과 넓은 어깨를 가진 남자였다. 원로원이 파견했다는 귀족 나리였지만 그 독특한 풍채에 기인한 소문은 벌써부터 병영에 돌고 있었다.

노르드 폰 울프헤딘. 자기 실력만으로 귀족으로 등극했다는 전사였다.

풍문에 들려오는 업적은 부풀려진 것이 아닐까 하며 호사가들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 정도라고 하지만, 마티어스는 바라건대 그 모든 소문이 다 진실이길 바랐다.

‘그래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커질 테니까.’

그래도 저 당당한 뒷모습을 보면 조금 안심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평민이든 부러워 할 성공신화를 쌓았다는 남자다. 미친 게 아니고서는 가진 걸 잃을 전쟁에 몸을 두는 일은 없지 않겠는가?

─쿵쿵쿵쿵쿵!!

진군이 면면부절 이어지며, 몬스터의 첫 선봉이 예상지점을 넘었을 때였다.

교황이 성표가 붙은 주교 지팡이를 치켜들면서 외쳤다.

〈거룩하신 천상의 신들이시여!! 사람의 과업을 지켜보소서!!〉

그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라도 한 것일까.

계절과 기온에 맞지 않는 금색 오로라가 하늘 가득히 펼쳐지며 커텐처럼 일대를 감싸안았다. 원근감이 아득해지는 천상에서 가녀린 손이 뻗었다.

웅성거리며 놀란 건 양군 모두 같았다. 축복을 받는 마티어스부터가 놀라움에 붙든 방패를 놓칠 뻔 했으니 말 다 했다.

새까만 머리칼의 여신이 말없이 흐릿한 손으로 지상의 아이들을 보듬었다.

─화악!!

손길이 휩쓸자 운동 직후의 개운한 피로처럼 몸이 노곤해졌나 싶다가, 바로 다음 순간에 놀라운 활력이 마티어스에게 깃들었다.

순간의 피로가 거짓말처럼, 동화 한 닢을 금화 값의 보석으로 바꾼 듯한 가호!

2천 명이나 되는 병사들 전부에게 축복이 내린 것이었다. 초인적인 신성력을 갖춘 교황이더라도 절대로 불가능할 기적에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깨달았다.

그들이 집결한 이곳, 이 순간은 훗날 전설이나 신화로 남을 것이라고.

〈여신들께서 우리를 굽어보신다!!〉

─펄럭!! 아즈위시아의 깃발을 치켜든 노르드가 외쳤다.

골짜기를 뒤흔들 듯한 엄청난 성량에 병사들은 누구나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눈으로 쫓았다. 그 조형미와 실용성을 겸비한 창에서 휘날리는 고향의 깃발도.

〈두려워 말라!! 진형 전개!!〉

없던 신앙심이 저절로 생겨나는 걸 느끼며 마티어스는 창을 치켜들었다.

〈〈진형 전개!!!!!!〉〉

성벽의 마도구에서 뿜어진 마나가 그들이 세운 방패에 깃들었다.

여신의 가호가 조금의 체력과 함께 공포심마저 가져간 듯, 더 이상 병사들의 얼굴에서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에게 가호를 내린 다나는 손을 내렸다.

“종종 생각하는데, 노르 놈은 오딘이 아니라 댁 후계자 같아.”

“나도 명색이 거짓말의 신이잖아?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자신의 옛 모습을 참고해서 여신의 환상을 펼쳐냈던 로키가 낄낄댔다.

다나는 빛나는 성물 목걸이를 쥐었다. 지평신의 성물 〈백화〉는 신성력의 축복과 가호의 대상을 조절하는 힘을 가진 물건이었다.

아직 미숙한 그녀가 2천명이나 되는 병사들에게 딱 필요한 만큼만 마나를 회수하고, 축복을 줄 수 있었던 건 이 성물 덕분이었다.

“유물의 다른 사용법을 써 볼까 기대했더니만, 이건 뭐 거의 애들 보는 역할이네.”

다나는 투덜대면서도 병사들을 눈으로 쫓았다. 전황을 지켜보며 위험한 이들에게는 그녀 자신의 마나로 더 강한 가호를 내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럴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긴 했지만 말이다.

─꽈광!!!! 선봉과 방패병이 격돌했다.

〈끄으으윽!!〉

〈버틸 만 하다!! 밀어붙여!!〉

〈창병!! 빨리 틈새로 찔러!!〉

여신의 가호와 방패에 깃든 마법의 보조가 빛을 발했다. 방패 하나에 네 명씩 붙은 병사들은 3톤 이상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록 터틀들의 돌진에도 밀려나지 않았다.

“취취이이이이익!!”

랩 플랜터 군대의 중위가 화살을 발사했다. 록 터틀의 체구로 높낮이 차이를 극복한 화살은 부족 나름의 독극물과 마법이 깃든 살인병기였다.

〈맞받아쳐라!! 화살을 못 쏘게 해!!〉

성벽 위에서 굵은 발리스타를 연발했지만 숫자 차이는 역력했다. 그나마 선박에나 부착하는 마법 발사대가 유효했지만, 랩 플랜터들에게도 마법사 정도는 있었다.

─쐐애액!!

〈이 씨팔!〉

발사대의 마나 저장장치를 교체하던 분대장 한 명이 파공성을 듣고 머리를 급히 숙였다. 투구에 하피의 깃털이 틀어박히자 오금이 절로 저렸다.

〈참모!! 저 날개 달린 할망구들부터 처리하면 안 됩니까?!〉

깔깔대는 하피들은 진형을 넘어서 그들 머리로 날아들고 있었다.

거리가 있기에 아직은 여왕 개체로 보이는 년이 아니면 공격을 가해오지 못했지만, 더 접근했다간 성벽도 위험해진다. 성벽 너머의 시내 역시도.

지상으로 내려간 호병대장 대신 성벽의 지휘를 맡은 참모의 대답은 간결했다.

〈쏴!!〉

〈들었냐!! 쏘라신다!!〉

─콰광!! 마법 발사장치가 더욱 각도를 틀면서 하늘을 수놓았다.

빗나가도 상관없었다. 아무튼 지금 골짜기 후방 지대는 순번을 기다리는 망할 괴물들로 가득하니, 하피 아니면 랩 플랜터들에게 맞지 않겠는가.

성벽 앞에서 지휘하던 호병대장이 외쳤다.

〈성벽에서 하피들을 처리할 때까지 버텨라!!〉

아즈위시아의 정면은 외길이다.

한 번에 붙을 수 있는 양군의 숫자는 많아봤자 1천에서 2천! 총력에서 10배 가깝게 차이가 나도 잠깐 동안 버티는 건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그건 잠깐의 교착일 뿐이었다.

적군 숫자를 줄일 방법이 없으면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늘리는 게 다였다.

호병대장은 이 지연전을 승리로 바꿔줄 한 수를 기다리며 절절하게 중얼거렸다.

〈……티르시 아가씨,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취췩!! 췩!!”

그의 바람을 이상하게 곡해하기라도 한 것처럼 랩 플랜터의 족장이 지시를 내렸다. 골짜기의 흙, 바위가 뭉치면서 곡사포처럼 호병대로 쏟아졌다.

〈으아아아, 씨발!! 방패!! 방패!!〉

호병대들은 대장부터 말단까지 너나 할 것 없이방패에 머리를 쳐박았다. 그 우박이 닿기 직전에 라리루라가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물벼락 조심하세요~.〉

찌이익─!!

그때, 인간들의 방패를 밟고 기어올라가던 어느 랩 플랜터 선봉병은 발견했다.

저 높은 하늘에 지퍼처럼 공간이 열리며 폭포를 토하는 광경을.

쿠화아아아악─!!

가까운 강과 연결한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위치 에너지를 그대로 운동 에너지로 바꿨다. 그 수량은 가히 대욕탕 서너 개를 채우고도 남을 양이었다.

〈취이이이익?!〉

폭발물이 설치돼 있던 골짜기 후방에서 싸울 때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랩 플랜터들은 쏟아지는 물에 기겁했다. 물줄기에 직격해서 즉사하는 몬스터들도 있었다.

〈해 볼까요.〉

완드를 든 티르시는 권능을 조금 끌어냈다.

〈강림〉 상태에 들어가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인공신좌의 힘을 끌어내는 게 가능했다. 티르시의 얼음 마법이 후방 지대의 강물을 얼렸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각─!!!!

그 다음부터는 거의 일방적인 섬멸이었다.

얼음을 마나로 전환하는 아르마슈나스의 권능, 〈탄빙옥궤〉의 진면목!

최소한의 마나로 거의 무한정하게 발동하는 대마법이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각!!!!

얼음은 아귀처럼 날뛰며 후방 지대의 몬스터를 찢어발겼다. 거리가 거리이므로 과연 마나 소모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녀 혼자 1만 마리는 죽이고도 남을 것이다.

〈으음~. 성문 앞의 몬스터는 공격 안 하세요?〉

〈정면부터 해치우면 저희 군대가 적군과 교전하려고 성벽에서 떨어져야 하니까요.〉

〈앗! 알았다♡! 이렇게 하면 후방의 적군들이 무서워서 도망칠 수도 있겠네요!〉

〈네. 저 몬스터들은 그럴 것 같지 않지만요.〉

라리루라와 티르시의 무덤덤한 대화에 성벽에서 싸우던 병사들은 식겁했다.

마치 따사로운 봄날의 카페에서 특이한 취미를 가진 여인들이 병법을 토론하는 듯한 대화였지만, 저 까마득히 뒤에서 벌어지는 얼음 지옥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어쩐지 성직자들 외에는 지원군이 없더니……’

‘지원군이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우리가 보고도 못 알아봤던 거였나.’

티르시 혼자서 성벽을 지키는 아즈위시아 군을 전부 해치울 수 있는 건 아닐까?

아무 근거 없이도 정답에 도달해버린 병사들도 정말로 진실을 깨달았다면 티르시를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안색을 본 티르시도 뒤늦게 눈치챘다.

〈봤냐, 괴물 새끼들아!! 우리 마법사님 뒤지게 쎈 거 보이냐고!!〉

〈팍 씨!! 빙수 되고 싶냐!! 얼른 안 꺼져?!〉

목숨이 걸린 절체절명의 상황이기에, 티르시의 상식을 넘은 힘을 본 병사들도 저들처럼 고양감과 사기를 높이는 데 그쳤다.

하지만 만약 병사들이 이 전쟁에서 위기를 직접 실감하지 못했다면?

제 3자처럼 성벽에 편안하게 앉아서, 티르시나 다나의 발퀴리에들이 수만 대군을 유유자적 궤멸시키는 모습을 눈으로 봤다면?

당연히 그녀들을 두려워하고 말 것이었다.

‘승리’와 ‘처형’은 보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전혀 다르다. 싸움에 이겨도 티르시는 고향 땅에 승리를 가져온 영웅으로는 여겨지지 못했겠지.

대학살의 대명사이자 공포스러운 대마법사로서 기억된다면 몰라도 말이다.

〈……하여튼, 속 깊은 사람.〉

병사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작은 미소를 지으며─몬스터들을 회쳐 죽이면서 실실 웃는 미친 여자로 보이기는 싫었다─, 티르시는 남편과 가족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썩둑!! 허망하게 날아가는 몬스터들의 수급.

창날이 빛을 뿜어내면 목숨 3~4개가 사라졌다. 가호를 받은 노르드와 프랑, 네페르티티는 전장을 거침없이 주파하며 나아갔다.

〈백작님!! 너무 앞서나가시면 위험합……!!〉

호위도 없이 돌출된 그들에게 경고하려던 젊은 분대장은 금방 입을 다물었다.

“취에에에에에에엑──?!”

─촤자자자자자자자자자작!!!!

형형색색의 빛이 난무하며 오러가 모든 것들을 썰어젖혔다.

창이 번뜩이고, 사람 몸통보다 굵은 골렘 팔과 대검이 오러를 뿜으며, 꽃처럼 수려하게 핀 채찍 궤적이 몬스터들의 진형을 굴삭기처럼 뚫었다.

세 사람이 지나치기만 해도 짐마차가 2~3대는 지나가고도 남을 공간이 생겨났다.

─우수수수수!!

몬스터였던 것들의 피와 살과 무기의 파편이 온 사방을 수놓다가 쏟아졌다.

헤 하고 입을 벌렸던 젊은 분대장의 입에 피가 튀었다.

〈그엑, 니미!! 퉤! 퉤!!〉

역겨운 맛에 기겁하던 그가 침을 마구 뱉었을 때, 노르드는 이미 분대장이 제지하려던 위치보다 한참 앞까지 뚫고 나간 뒤였다.

〈……………….〉

그 잠깐 사이 백 마리는 죽어나간 듯한 참상에, 한 번 쓴 피맛을 봤던 분대장은 기어이 다시 입을 벌려버리고 말았다.

─쿠과과광!!

저 뒤로부터는 신전 기둥 같은 얼음 송곳이 여신들이 물장구를 치는 것처럼 마구 솟아나며, 집채 만한 록 터틀의 파편을 하늘로 날려댔다.

결국 그는 그만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시발…… 우린 뭐하러 내려왔대?〉

역시 군인 같은 거 하지 말걸 그랬다.

서러움이 복받친 분대장은 훌쩍 코를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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