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촤악!!
나는 브류나크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후방에서는 아직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나, 보스몹들은 다 치워뒀다.
‘성벽으로 돌아가서 요격하면 승리는 문제없어.’
우리 짱 쎈 아내님들을 셋이나 남겨둔데다, 더 이상 밖에서 싸울 필요도 없다. 골짜기는 무너트려놨으니까 후퇴하지 못하게 된 몬스터들의 말로는 뻔했다.
“……포션, 안 마셔?”
“아, 마실게. 고마워. 네페르티티.”
잡몹들을 정리하며 숲의 초입에 들어온 우리는 포션을 마시며 잠깐의 회복 타임을 가졌다. 크게 다친 부분은 없지만 좌우지간 회복은 필요했으니.
키잉─.
그러는 한편, 나는 천리안을 켜서 숲의 동태를 살폈다.
내가 아즈위시아에서 포착했던 신족들은 원래의 위치에 계속 남아 있었으나, 어쩐지 굉장히 초조해 하는 눈치였다. 새끼들, 위엄은 좆도 없네.
강화된 천리안이 놈들의 대화를 주웠다.
【어쩔 거냐, 하스쿰! 인간 놈들의 피를 흘리게 할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만, 몬스터의 혼도 거의 남아나지 않고 있다!】
【……울프헤딘이 영혼을 성불시킨 거다. 설마 우리의 목적을 알고…?】
아니, 딱히 모르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목적이 어그러진 듯이 굴고 있다.
‘목적이랄 게 뭔지는 모르겠다만, 예지에는 나온 게 없는데.’
미래예지를 과신하는 건, 금물이지만 예지에 안 나왔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내 예지가 보여주는 건 아마 ‘내가 예지를 보지 않고 행동한 경우’의 미래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안 그러면 미래를 보고 움직이는 미래가 예지에 나올 텐데, 쫌만 생각해 봐도 그런 예지에는 모순이 벌어진다.
‘미래를 보고서 움직이는 미래를 본 미래의 나의 미래’라니? 듣기만 해도 타임 패러독스를 일으킬 것 같네.
그래도 들려오는 얘기에서 알아낸 것이 있다.
“몬스터들의 영혼을 연료로 쓰려고 했나.”
예상은 했다.
정확한 목적은 몰랐는데, 그래도 월급을 반 년 밀린 외노자가 식칼을 갈고 있으면 ‘시부랄, 오늘 누구 하나 송장 치우겄네’ 하고 감이 오잖아?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우후죽순 나타나는 인터넷명탐정들처럼 잘난 척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야 흑마법사만 해도 영혼을 에너지로 써먹는데 상상 못하는 게 이상하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손수 전장에 나왔다.
‘대마법으로 쓸어버려도, 에인헤리로 만들어도, 결국 영혼이 성불하진 않으니까.’
〈추수동장〉을 장비한 내가 직접 나서면 그런 문제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
판타지 요소를 빼고 보면 적의 보급을 끊으려고 나왔다, 이거다.
‘하지만 영혼이 회수되는 기색은 없었는데?’
아직 마법이나 권능 등을 발동하지 않은 건가.
나는 프랑과 네페르티티에게 말했다.
“어쩔래? 바로 붙어도 이길 순 있어.”
적은 총 세 마리다.
사슴 뿔이 달린 놈, 메기 같은 수염을 기른 놈, 나방 날개를 가진 놈.
죽은 듯 웅덩이가 돼 있는 슬라임도 포함한다면 총 4마리고.
그리고 천리안의 힘으로 놈들을 샅샅이 살펴본 나는 달인의 직감과 권능의 간파력으로 저 부모가 단수인 씹놈들의 강함을 정확하게 판별해냈다.
‘어느 놈도 라한만 못하군.’
오딘의 눈으로 봐도 권능조차 없다.
내가 둘을 감당하고, 다른 한 놈에게 프랑이랑 네페르티티가 붙으면 된다. 후방에 있을 아내들을 1명 더 부르기만 해도 문제없이 끝난다.
“물러나면 도망칠지도 몰라.”
“알았어. 한 명 더 불러내서 바로 가자.”
─파앗!
메달로 적의 목적을 알리고 연락을 날리자마자 베로니카가 마법으로 나타났다.
“기뻐해! 나도 왔어!”
아니, 그 뒤에서 로키도 고개를 내밀었다. 하긴 얘는 성벽에 남아 있어도 할 일은 없을 테고. 숲 방향을 바라보는 베로니카에게 프랑이 물었다.
“베로니카, 하피들은?”
“더는 승패를 좌우할 숫자가 아니다. 티르시와 다나는 소탕전에 바쁘고, 라리루라는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대기 중이니.”
만에 하나의 사태란 헤니르의 등장 등을 말한다.
차원벽이 세워져도 가족의 위치를 바꿔서 합류, 대피 등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라리루라는 서폿 역할로 대기하고 있는 게 제일이었다.
거듭 얘기하는 거지만, 예지에만 의존할 생각은 없는 나였다.
로키는 기지개를 펴고서 말했다.
“얼른 해치워버리고 다른 영지에도 가자고.”
“영혼을 심문해 보고 나서. 아마 별로 아는 건 없을 것 같지만 말이야.”
날 상대로 패배는 곧 정보의 유출을 말한다. 저 새끼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서 헤니르의 명령에만 따르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우라누스 할배의 심복이나 발퀴리에랑 똑같아. 자의식은 더 풍부한 모양이지만 결국 제대로 생을 부여받지 못한 피조물이라면 뻔하지.”
로키의 설명을 한귀로 들으면서 나는 천리안을 껐다.
위치는 파악했으니까 상관없다. 그렇게 우리가 숲으로 첫 발을 내디뎠을 때였다.
─지지직.
안구에 먼지가 들어간 것처럼 노이즈가 꼈다.
─지지직, 지지직!!
─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브라운관 TV가 주파수를 잘못 수신한 것처럼, 흑백의 이미지가 범람한다.
“시바, 뭐야!”
경악하며 숨을 삼켰지만 비정상적이게 부풀었던 이미지는 억척스럽게 시야를 가득 덮었다. 무심코 브류나크를 쥐자 웅웅대는 떨림이 왜 그러냔 듯이 되물었다.
일단 적의 공격 같은 건 아니다.
나는 눈치챘다. 배가 아파올 때 화장실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능적으로 깨닫는 것처럼, 내 권능이 무언가의 이미지를 전해주는 중이라는 걸!
브류나크나 교수 슬레이어와 직결된 것으로 더 강해진 예지력이 가동한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예지로부터 보이는 정보를 무엇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지직, 지지직…….
…푸슥!
하지만 정작 그 이미지는 허망하게 꺼져버렸다.
“뎃?”
노이즈가 가시자 보이는 건 평범한 숲의 경치.
놀라서 고개를 돌려댔다. 좌를 돌아보면 새끈한 허벅지. 우를 돌아보면 브리타니아 제일 찌찌. 뒤를 보면 할머니 한 명과 내 쥬지 전속 무녀님.
“노르? 무슨 일 있어?”
내가 헤드뱅잉을 해대자 프랑이 귀여운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혹시…… 예지를 본 거야?”
“아냐. 나도 처음에는 예지인가 했는데, 실제론 아무 것도 안 보였어.”
“안 보였다고?”
로키도 눈을 찌푸렸다. 오딘은 그런 적이 없단 듯한 리액션이로군.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나머지 난 머리를 긁었다.
“그냥 지지직 거리가다 갑자기 꺼지던데. 혹시 뭔지 몰라? 로키.”
“네 권능을 나한테 물어봐도……. 예지라고 싸잡아서 말하지만 권능은 모든 존재마다 다른 거야. 너랑은 달리 언니는 먼 미래를 보는 게 더 특기인 예언자였고.”
턱을 쓰다듬던 그녀가 말했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애초부터 네 눈은 심해의 군주의 영향과, 너 자신의 권능이야. 네가 우리 언니의 후계자는 맞지만 예지능력의 기원은 전혀 다르다고.”
모른다는 얘기군.
하기야 심해의 군주, 【해신】의 권능을 제물로 바쳐서 체화한 나만의 권능 아닌가. 남의 조언을 듣는 건 좋지만 사람마다 사정은 다른 것이었다.
‘직접 알아낼 수밖에 없다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브류나크와 권능을 직결하고서부터 내 권능은 전보다 강해졌어.’
컴퓨터를 병렬 연결해서 연산력을 높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방금 전의 노이즈는 성장한 권능의 또 다른 발현일까? 나는 숲속에서 풍겨오는 짙은 풀 냄새를 맡으며 눈을 더듬거렸다.
“……시발, 몰라레후!”
모르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쩔 수 없다. 내 신조 중 하나다.
일부러라도 혼란을 잊으려고 노력한 나는 뺨을 두들겼다.
“베로니카. 좌표 받아가.”
“알았다. 이마를 내밀어다오. ……신은 만언(萬言)의 기원이니. 지혜의 근본이자 현인의 위안이요, 모든 영웅의 축복이자 희망이니라.”
내가 그녀와 이마를 맞대자 베로니카는 주문을 외웠다. 심념을 연결해서 천리안으로 찾아낸 늪의 풍경을 확인한 그녀가 룬 만다라를 펼쳐냈다.
〈공간 이동〉이 발현한다.
─츠파파팟!!
빛이 가시기도 전에 창술을 뿜어냈다. 공중에서 쏟아낸 찌르기가 사슴 뿔 새끼의 뒤통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흥!】
하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병신은 아니었는지, 내 방문을 알고서부터 긴장의 끈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는 것처럼 사슴 뿔은 내 창을 붙잡았다.
─챙!!
수정 비늘에 덮인 손으로 칼날 잡기! 공중에서 눈이 마주쳤다.
“새끼,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 치곤 제법이군.”
즈그 애비 뱃속에서 특강이라도 받았나. 놀라운 솜씨였다. 하지만 아직 어설프다.
지잉…!!
브류나크가 공진했다. 내 마나를 퍼트리며 신체 내부를 공격하는 심폐정지술이다.
“흐읍!!”
─팡!!
사슴 뿔은 놀랍게도 손바닥이 날아가는 찰나에 손을 빼냈다. 덕분에 수정 비늘 일부와 손바닥이 폭발하는 데 그쳤지만, 그건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어졌다는 뜻.
‘창을 회수했다가 휘두르면 늦는다.’
나는 전신을 비틀면서 근력만으로 회전 다이빙 킥을 꽂았다.
휘릭─ 으적!!!!
돌려차기가 사슴 뿔 새끼의 관자놀이에 꽂히며 튕겨냈다. 비슷한 타이밍에 프랑에게 쳐맞은 메기 수염도 접고 비슷한 곳에 착지했다.
“왔느냐…… 왔느냐!! 울프헤딘!!”
관자놀이에서 얕게 피를 흘리며 사슴 뿔 새끼는사나운 웃음을 터트렸다.
“기다렸다!!! 신군의 적!! 옹졸한 예언자!! 너의 수급을 베어 신군께 바치리라!!!”
“대가리 떼고 손질해 가렴. 할 수 있으면.”
굳이 도발해서 빈틈을 찾을 가치도 느끼지 못한 나는 단숨에 덤벼들었다. 메기 수염이 커버하려고 달려들었지만 채찍과 골렘 대검이 저지했다.
집중해서 9초 뒤의 미래를 본 나는 외쳤다.
“로키!! 프랑!! 베로니카를 지켜!!”
“방해하지…… 마라!!!!”
─번쩍!
사슴뿔의 손에서 빛이 폭발했다. 그 빛은 우리 일행 전체를 스치고 지나갔다.
“……읏!!”
베로니카의 뿔에서 빛이 꺼졌다.
‘다나와 라리루라의 신좌를 봉인했다는 기술!’
신좌의 계승자에게 그치지 않고, 베로니카까지 효과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얘기로 듣고 경계도 했지만, 설마 이 놈들도 쓸 줄이야!
‘권능이 아니라 마법이었나! 그렇다면……!’
오딘의 눈이 술식을 분석했다.
마법의 정확한 효과는 자신의 소유가 아닌 힘을 봉인하는 것이었다.
〈인신〉에 대한 결정적인 카운터다. 내 무녀가 되서 권능을 얻은 베로니카도 신좌를 품은 다나와 라리루라처럼 권능이 일시적으로 소멸한 듯 했다.
총혜신의 권능으로 만들어낸 술식일까.
‘……아니 시발, 잠깐!’
자기가 갈고 닦아서 얻은 게 아닌 힘을 싸그리 봉인하는 마법!
‘다나의 버프도 사라졌다!’
그녀의 가호는 능력치가 높을수록 효과가 적다. 나한텐 치유 효과를 주고 독을 지우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기에 눈치채는 게 늦어졌다.
나는 【게르튀르】의 절기를 연달아 써서 사슴 뿔을 쫓아내고 몸을 돌렸다.
─파츠츠츠츠츠!!
팔에 몇 개나 되는 오러 창이 피어났다. 회전을 살려서 다른 두 놈에게 던졌다.
“투창이라! 요란스럽군!”
프랑을 노리려던 메기 수염이 물러나고, 마법을 외우던 나방도 우아하게 피해냈다.
네페르티티는 몸을 물리면서 말했다. 그녀의 팔 언저리에 전투 중에 거칠게 튄 돌 파편에 맞은 듯 살짝 붓기가 있었다.
“……노르드.”
“다나의 가호가 없어졌죠?”
“응.”
역시 그랬나. 신좌와 하사받은 권능에 버프까지 날려버리는 좆 같은 마법이다.
“흐, 뭐 됐슴다. 없어도 충분히 이겨요.”
디스펠이라. 꽤 쓸모 있겠군.
─까드득.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쌔벼갈 맛이 나는 마법이지 않은가?
“……주인님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기분이군. 무척이나 불쾌해.”
베로니카는 한동안 시험하는 듯 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지팡이를 들었다.
“부끄러움을 알라, 구시대의 신족이여!”
그런 베로니카가 눈에 거슬렸던 것일까. 상처를 마법으로 치료한 사슴 뿔은 감정의 기복이 격렬한 성격인 듯 격양해서는 고함쳤다.
“이 마법, 【윌리투스】는 신군의 지혜! 신들의 은총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애완견과, 힘과 긍지를 갖춘 사냥견을 분별하는 시금석이다!”
놈의 팔뚝이 수정으로 덮이고 극채색의 빛으로 휘감겼다.
오러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마법을 병용한 근접전인가.
하긴, 인간들의 기술을 쓸 새끼들이 아니다.
“그 혼에 새기고, 기억해라!! 내 이름은 하스쿰!! 다시금 찾아올 신대의 하스쿰 신족으로서 이름을 남길 신군의 자손이다!!”
“엄마는 누군데 씹놈아.”
“뭐?”
늪지가 흔들릴 정도의 기백을 뿜어냈는데도 내 리액선이 영 시큰둥하자 사슴 뿔 새끼는 황망한 듯 되물었다. 나는 귀찮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애미도 없이 태어났는데 무슨 자손이야. 느그 애비 놈이 양배추 밭에서 주워왔다 그러디? 내가 본 건 무슨 늪에서 기어나오는 꼴이었는데.”
늪지대를 살핀 나는 세계수의 뿌리를 발견하고 브류나크를 붕붕 털었다.
“잘 들어라, 0살 배기 우량아 새끼여. 이 세상 어디에도 산타와 느금마는 없다.”
눈앞의 신족들에게 품은 경멸과 동정에 섞여서 희미한 분노가 메아리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대상은 헤니르이며, 원인은 놈에 대한 혐오였다.
내 앞에서 떠들 정도다. 사슴 뿔 새끼는 헤니르 앞에서도 저 포부를 밝혔겠지.
헤니르는 그걸 듣고도 저 놈을 여기로 보냈다는 뜻이 된다.
내 분노의 원인은 거기에 있었다.
“아니, 너희는 애미는 고사하고 애비조차 없는 패륜아다. 어떤 부모도 자식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기를 바라지는 않기 때문이지.”
헤니르 새끼한테는 그게 정상인 걸지도 모른다.
자길 따르는 굴라나뢰크의 패배자 새끼들을 한 데 모아서 보듬어 놓고, 정작 그런 루저 병신들이 목숨을 걸고 자기 부활을 돕겠다는 걸 허용했다.
그놈들이 자기 인생 하나 감당 못하던 녀석들이라는 걸 알았으면서 말이다.
“싸우다가 죽을 걸 뻔히 알고도 방치하는 놈을 부모라고 부르나. 딱할 따름이야.”
나로 비유하면 우리 아내님들이 싸우다 죽도록 놔두는 거랑 뭐가 다른가.
나는 깊은 한숨을 뱉으며 탄식했다.
“다시 만나면 정정해야겠군. 너희 신은 키다리 아저씨 실격이다.”
─팟! 말을 끝마치고 팔을 뻗었다.
─꾸드드드득!!
성물 장갑의 효과가 발동했다.
영혼을 끌어당겼을 때처럼, 수확한 이삭을 회수하는 성물의 힘이었다.
10초만 발동해도 해체쑈 시작이겠지만, 어차피 저 새끼들이라면 발동 전에 몸을 피할 것이었다. 달인의 간합에서 10초는 너무 긴 시간이다.
“……쯧!”
“느으윽!!”
나방 새끼는 대각선 최단 거리로 날아올랐지만 다른 놈들은 효과권에 붙잡혔다.
“좋다…… 기꺼이 가 주마!!”
계속 버티면 육신이 터져나간다는 걸 눈치챈 듯 놈들은 무기를 쥐고 달려들었다.
사방으로 찢어지려는 육신을 내구력으로 붙들고 효과권을 빠져나오는 두 신족.
“지리멸렬한 망언을 후회해며 죽어라!!”
“신군께서 인도하실 세계에 영광 있으라!!”
1초가 10초로, 20초로 늘어나는 찰나지간의 한 간극. 놈들의 이마에 돋은 힘줄마저 눈에 선명한 한순간과 한순간의 틈새에 불쑥 까마귀가 날았다.
검고 하얀 깃털의 환상이 미래를 예지한다.
궤적을 읽고, 변수를 수정하고, 내가 전투 중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는 수치까지 모조리 예측하며 근육의 융기와 시선의 이동까지 읽어낸다.
어디로 발을 딛으면 유유자적하게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있을지.
어디로 팔을 뻗으면 단박에 적의 방어를 뚫을 수 있을지.
“후우우우……”
그 모든 난수를 0과 1의 이진법으로 짜인 프로그래밍과 당연한 계산결과처럼 손 안에서 굴리며, 나는 읽어낸 미래를 현실로 확정지었다.
흩날리는 먼지조차 멈춰버린 시간 속.
모든 흐름이 느려진 세계에서 나만이 평소처럼 움직였다. 내가 움직이는 것보다 먼저 내 환상이 창을 휘둘렀다. 나는 테이프의 반복재생처럼 그에 맞춰서 절기를 펼쳤다.
오러에 물든 브류나크가 부채꼴을 자아냈다.
【게르튀르 푸타르크(Geirtýr ᚠᚢᚦᚨᚱᚴ)】·ᚢ(Ūruz)
─툭.
고기 토막을 쳐내는 소리는 짧고 간결한 것.
두 모가지가 뱅글 돌며 바닥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