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79화 (877/1,009)

‘……후우, 시발.’

나는 내 권능을 한참 씹어대다가 간신히 냉정을 되찾았다.

내 권능을 욕해봤자 결국 누워서 침 뱉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단 어쩌다 뜬금없이 저딴 괴물딱지가 튀어나왔는지만큼은 확실히 알겠다.’

용의자부터가 존나 적고 동기와 실행범이 눈에 확 띄니 모를 수가 없었다.

신족은 운명을 비틀 수 없는 반면, 인간은 가능하니까.

‘원인은…… 나다.’

이 미래는 내가 초래했다.

그렇게 되도록 사이비 키다리 아저씨가 머리를 굴렸다.

헤니르는 내가 운명을 비튼 걸 역이용한 것이다.

그 새끼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신이므로, 지 혼자서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헤니르가 신족을 무진장 늘려대서 세상을 곱창내는 미래’를 봐 버린 이상, 그 미래를 어떻게든 바꿔야만 한다.

헤니르는 그걸 기다렸다.

내 손으로 미래가 바뀌었을 때── 원래 계획이 실패하게 되는 순간을 말이다.

‘생각해보면 예지 내용이 신족을 만드는 장면인 것부터가 좀 이상했으니까.’

인류멸망이 목표인 새끼인데 왜 우신 때처럼 온 세상이 활활 타오르는 미래가 아니었겠나. 그건 그 씹놈이 다 진실 반 구라 반으로 간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존의 계획을 바꾸지 않는 한, 내가 본 ‘기존의 예지’도 바뀌지 않는다.

헤니르의 원래 목적은 신족 양성과 인류 멸망이 맞기 깨문이다.

나무를 숨긴다면 숲 속에. 놈은 예지를 막고자 일부러 뻔한 미래를 보여준 것이다.

내가 그 뻔한 미래를 바꾸지 않으면?

좆도 문제될 것 없다. 그때는 열심히 늘린 신족들을 데리고 전쟁을 벌이면 장땡.

하지만 그놈은 그 순간이 반드시 찾아올 거라고 믿었다.

내가 자기 계획에 초를 칠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때를 기다리며, 내가 그 미래를 미리 읽지 못하도록 최고로 빠듯한 순간에 수르트 재림 계획을 실현시킨 것이었다.

어떻게 굴러가든 일단 실패할 일은 없는 꽃패다.

그게 가능한 권능과 지능이 놈에겐 있었다.

깨달음의 신, 총혜신의 권능. 그 권능을 다루는 엘리트한 대갈통이 말이다.

‘내 행동까지 계산한 회심의 역전 홈 런.’

나는 눈을 반개했다.

‘즉, 예상했던 대로다.’

그때. 헤니르가 신족을 양산하는 미래를 봤을 때.

잠에서 깨어나서 펜을 끼적였을 무렵, 나는 이 정도까지는 염두해 뒀었다.

‘내가 헤니르였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설마 수르트 재림 같은 걸 꾸밀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또다른 수가 있을 건 예상했다.

정말로 치밀한 계획은 실패를 감안해서 제 2의 부속 계획도 준비해두는 법이거든.

‘문제는 그게 아니야.’

헤니르의 계획의 단서를 찾아낼 시간이 없었던 터라, 예지를 본 뒤에도 나는 본의 아니게 권능에 의존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생각이 닿는 한 온갖 준비를 해 뒀지만, 미래는 모르는 법.

그래서 행동방침을 세워줄 예지를 기다렸다.

딱히 굴욕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했잖은가? 이건 나랑 헤니르의 권능과 두뇌의 싸움이다.

저 씨팔럼은 권능을 쓰다 못해서 남의 권능까지 이용하려 드는데, 나만 쫀심 세우면서 권능을 안 쓴다고? 지랄도 유분수지.

그래서 나는 뒷공작을 벌이며 로마니아를 돕고, 교황들을 포섭하며 첫 번째 예지를 깨부쉈다. 좀 전에 세계수의 뿌리를 불태워서 운명을 바꾸는 데 성공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나방 새끼가 깝죽대기 전에 이 미래가 보였어야 맞는데.’

우신을 쓰러트린 직후, 그놈의 마나를 흡수할 뻔 했을 때.

‘마나 계승’이라는 갑작스러운 변수로 내가 개좆되는 미래를 보고서, 그 예지를 교수 슬레이어가 타파했을 때에는 분명히 그랬다.

실현까지 0.1초도 남지 않은 미래라도, 이 눈은 확실히 예지하고 보여줬었다.

헤니르의 권능이 이 계획을 구성한 것처럼, 내 권능은 이 미래를 예지하는 게 맞다.

이치를 따져보면 그렇게 됐어야 한다는 거다.

몬스터 범람 카드를 로마니아 떡상 카드로 막았으니 두뇌 싸움에서는 호각이었단 말이지. 선빵을 맞은 건 내가 지키는 쪽이니 피치 못할 문제고.

그런데 권능 랭킹에서도 늘 부동의 1티어였다는 적폐, 예지의 권능이 아이디어 뱅크가 되는 권능 따위에 밀리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생각해라. 지금까지와 다른 게 뭐지?’

예지가 발동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지? 왜 평소처럼 미래가 보이지 않았지?’

헤니르가 어떻게 해서 내 예지를 막았다? 지랄. 그게 됐으면 우린 옛적에 당했겠지.

운명은 이미 내가 비틀었다. 수르트가 재림한 게 그 증거다.

핵폭발처럼 살벌한 불꽃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체력이 버텨주는 데까지 시간 정지는 유지된다. 생각할 시간은 아주 많았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의 사색이란 무한하면서도 찰나였다. 모순 같지만 모순은 아니다. 미래, 현재, 과거가 이어져 있는 것처럼 영원과 찰나는 같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색의 어드매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발동하지 않은 게 아니라면?’

내 권능은 우신 토벌전 때랑 달라진 게 없다.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발기불능/발동불능이 될 만한 계기는 좆도 없었다.

이전보다 더 강해진 예지의 권능.

내가 지혜를 발휘해서 손에 넣은 성물들의 힘.

위화감을 풀 열쇠는 거기에 있었다.

‘답이 보였다.’

신중하디 신중한 사색을 끝마치며 나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브류나크는 멈춰 있었다.

단지, 그밖에 다른 한 마리.

─오로롱.

내 권능의 화신, 교수 슬레이어는 하얀 날개를 가다듬으며 구륵대는 중이었다.

멈춰버린 세계에서, 오직 요놈과 나만이 살아서 움직인다.

마치 우리가 이 모든 세상을 통제하는 주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하.’

확신을 얻은 나는 미소를 지었다.

웃음을 참기 어려울 만큼 짜릿한 쾌감이었다.

‘진짜 끝내주는데, 내 권능.’

─구르륵!!

소유자가 존재를 인식함에 따라, 하얀 까마귀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쨍그랑─!! 깃털을 흩날리며 까마귀는 천공의 한 곳을 관통했다. 멈춘 세계가 방사형으로 찢어지며 멈췄던 사지혈맥의 흐름이 맥박친다.

그리고, 시간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쿠화아아아아아악──!!!!!!

수르드의 불꽃이 쇄도한다. 아스가르드를 태워 없앴다는 힘. 옛 지배자들의 신, 태초의 요툰들에 버금가는 파멸의 권능이 우리를 덮쳤다.

섶나무 숲 일대가 통째로 소멸하기까지 몇 초도 남지 않은 그 찰나지간.

─탓!!

나는 덮쳐오는 불꽃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눈을 부릅 뜬 프랑이 찢어져라 나를 불렀지만, 양심의 가책은 굳세게 떨쳐냈다.

팔을 힘껏 내밀고, 불꽃 속으로 뛰어든다.

─훅!! 시뻘건 불꽃이 나를 삼켰다.

그 순간, 내 육신은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공기도 불태우는 불꽃이기 때문일까. 수르트의 불꽃에 뛰어드는 소리는 아주 작았다. 통증 역시 지극히 한순간이었다.

내 몸과 장비가 흰 재가 되고, 그 흰 재가 다시 타올라서 사라진다.

그렇게 나는 울부짖는 프랑이 나를 따라서 불꽃으로 뛰어들기도 전에 완전하게 소멸했다. 이렇게 되길 바라서 뛰어든 거였으니 잘 된 일이었다.

‘역시.’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불지옥 속에서 나는 미소지었다. 내 육신은 소멸했지만 영혼과 권능은 꿈쩍도 않았다. 모든 게 예상대로였던 것이다.

단, 한 가지 예상 밖이었던 게 있기는 했다.

내가 아내들을 보며 ‘돌아가려는’ 찰나.

색을 잃어가는 프랑의 눈동자가,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

눈을 떴다.

…움찔!! 각성과 동시에 내 전신이 크게 떨렸다.

한순간 사라졌다가 돌아온 오감이 마치 자다가 한겨울의 계곡물에 던져진 것처럼 찌릿하다. 나는 생전 못 느껴본 감각에 그만 비명을 내질렀다.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섶나무 숲에 크게 울려퍼지는 비명!

쪽팔리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발끝부터 머리털 한 올까지 존나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이란 정말이지 말로 형언하기 힘든 느낌이었으니.

“허억… 허억… 허억…!! 데갸아아악…!!”

애-미. 이렇게 좆 같은 거였으면 미리 말을 해 주던가. 미리 알고 긴장타고 있었으면 비명 지를 일도 없었잖아.

나는 남 탓을 할 수도 없는 자신의 권능에 투덜거리며 식은땀을 닦았다.

으슬으슬해지는 피부의 감촉과 소름 돋은 닭살 피부를 문지르면서 환경 체크.

눈에 보이는 건 섶나무 숲과 골짜기였다.

‘베로니카랑 로키는 있고…… 진입 직전인가?’

베로니카가 〈공간이동〉으로 날 사슴 뿔 위로 워프 시켜주기 조금 전 쯤 될까.

이것도 예상대로였다.

‘돌입 직전에 예지가 발동하는 기척이 있었지.’

분명 지금까지보다 몇 배는 지지직 거리는 노이즈를 낳았는데, 정작 보이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대체 뭔가 싶어 하지 않았던가.

‘예지는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니야.’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발동하고 있었던 것 뿐.

나는 한결 마음을 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돌아왔군.”

정확히는 ‘보고 왔다’고 하는 게 맞을까.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도 나는 베로니카가 미래 지식을 가져오는 걸 ‘회귀’에 빗댄 바 있다.

그리고 셰이드의 주술 등으로 죽은 이의 과거를 재현하는 시뮬레이션도, 과거에 개입하지 못하는 것만 빼면 시간여행이나 다를 게 없고 말이다.

맞다. 비유고 뭐고 그게 진실의 전부였다.

“신비한 권능 메모라이즈, ON.”

나는 조금 전까지 미래를 보고 있던 것이었다.

현실과 전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치밀하고 생생한 예지를 말이다.

‘그렇다면.’

눈을 감고, 집중한다.

이미 포착한 미래는 다시 관측하기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지상에 내려꽂히는 불꽃의 환시를 보고, 의식과 권능을 집중시켰다.

─지지지직.

─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오토 발동이 아니어서 그런지, 나름 체력이 소모되는 했다.

‘그래봤자 결국 셰이드의 주술과 비슷한 대갈통 속 시뮬레이션.’

권능은 초월자가 강렬한 존재감으로 이 창세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세계의 법칙을 왜곡하고, 자기 본질대로 덧씌우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서, 바깥 세상에 영향을 끼치 않으면 소모하는 체력도 아주 희박하다.

하물며 소모된 체력은 보충할 수도 있다.

지지지지지지직…… 뚝!!

그렇게 미래예지를 발동하고,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금 ‘미래’에 와 있었다.

주위는 전혀 바뀐 게 없지만, 확고한 영감으로 예지의 발동을 실감하는 내가 있다.

“……흐흐. 회귀물 안 부럽군.”

또렷한 촉감을 느끼듯 주먹을 쥐었다. 전능감에 흡사한 만족감이 치솟았다.

내가 뒤지거나 그럴 마음이 들면, 나는 다시금 과거로 돌아간다.

과거로── 돌입 직전의 ‘현재’로 말이다.

“주인님. 아까부터 상태가 영 이상해 보인다만……”

얘가 뇌를 다쳤나? 하는 표정으로 보지 마라.

지금껏 온갖 기행을 저지르며 살았던 나다. 그런데도 베로니카가 저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진짜 지지리도 미친 놈처럼 보인다는 뜻이겠지.

“흐흐. 궁금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음흉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궁금하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1티어 옛 지배자의 부활이라는 지나친 위협.

내 지난 노력들(현질)로 진일보한 권능.

이런 복잡한 조건 하에서만 발동하는 야매 회귀능력이지만── 아주 좋다.

‘수르트의 파편. 옛 지배자의 반신이라.’

아예 소환 자체를 막을 수도 있겠지만, 그딴 건 쌉게이의 방식이다.

뒤지라고 배치한 보스 몹이라도 어떻게든 잡고 가는 것.

그게 바로 옳게 된 꼴마초 아니겠나.

…쥬륵.

절대 드랍템 생각에 군침이 흘러서는 아니다.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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