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81화 (879/1,009)

“……뭐라?!”

공포를 떨치고 노르드에게 맞서려던 플롬베르크는 술식을 무너트릴 만큼 동요했다.

수르드 소환과 레바테인의 파편의 존재는 다른 동포들도 내막을 모르던 기밀이다. 오직 플롬베르크만이 헤니르에게 지시받은 내용이었던 것이다.

“네놈이 어떻게 신군의 계획을?!”

“상황판단이다!!”

국어책을 읽는 것처럼 어색하게 말하는 대사에 어울리지 않게 공격은 매서웠다.

마법을 베고, 도주를 막으며 빛살처럼 찌른다.

─푸욱!

해치운 신족들의 마나를 흡수하면서, 노르드의 창은 쉽사리 플롬베르크의 배를 꿰뚫었다.

“카허윽……?!”

“포기해라. 여기에 빛은 없다.”

─빙글. 창날이 내장을 헤집었다.

이대로는 죽는다.

플롬베르크의 모든 감각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인간의 모습을 한 죽음을 바라보며 잘게 떨렸다. 솜털마저 곧추서는 걸 느끼며 그는 외쳤다.

“케품르니르!!!!”

─푸화아악!!

늪지의 터주를 불러내면서, 목숨을 도외시하고 기도문을 외웠다.

울려퍼지는 찬송가는 3번.

하늘을 별이 뒤덮고, 세계수까지 닿지 않아야 할 별빛이 나뭇가지에 드리운다.

“……후후. 하하!! 하하하하!! 어리석고 교만한 놈!! 방심했구나!!

내장을 쏟아내던 플롬베르크는 창백한 안색으로 미소지었다.

“이미 소환을 저지하기엔 늦었다!! 수르트는 이 땅에 강림하리라!”

포말하우트 항성을 올려다보던 노르드는 미친 듯 웃는 그에게 뚱하니 대답했다.

“그래. 얼른 불러내 줘서 고맙다. 다음 번엔 더 빨리 부탁하마.”

“……뭐라고?”

─서걱.

눈으로도 쫓지 못하는 달인의 절기가 그의 목을 그었다. 광증에 빠지기도 전에 빛을 잃은 목에서 마나가 흘러나오며 새 주인에게 빨려들어갔다.

“후……. 정말 개좆같은 늪지야. 새들은 뒤져가고, 꽃들은 피 흘리고……”

늪지의 정경을 둘러본 노르드는 픽 웃었다.

“이런 날에는, 나처럼 화끈한 사람은 지옥에서 화끈한 밤을 불태워줘야 하지.”

─두쿵!!

영혼의 파편이 맥박치며, 별이 떨어진다.

노르드는 전투 자세를 갖췄다.

“──와바랏!!”

룬이 발동했다. 차원의 틈새로 회피한 노르드는 추가로 마나를 쥐어짜서 방어했다.

─훅!!! 불꽃이 차원벽을 헤집고 들어왔다.

예상은 했지만, 세계를 불태운다는 초월존재의 권능이 이렇게 쉽게 피해질 리가 없었다. 작열을 뒤집어쓴 노르드는 비명을 질렀다.

“갸아아악!! 화끈해진레후──!!!!!!”

결코 2번은 견디지 못할 열파가 육신과 영혼을 관통한다.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촉감에 노르드는 이빨이 깨져라 이를 악물었다.

도전에 앞서서 통각은 마법으로 봉인했다. 흑마법의 간단한 응용이었다.

하지만 그 통각 봉인보다 훨씬 고난이도의 마나 코팅과 실드 등은 간단히 날아가고, 남은 열기는 아픔을 잊은 피부를 자글거리며 졸였다.

‘강북호, 씹새야! 정신 놓지 마! 패턴을 파악해!’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었기에 감각만이라도 일깨워서 불꽃의 범위를 살폈다.

‘불꽃의 높이가 생각보다 낮아.’

항성이 꽂히자마자 파도처럼 불꽃의 해일이 일어나지만, 높이 자체는 같은 초월자인 노르드에게는 절대로 높다고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적당한 순간에 하늘로 날아오르면 첫 공격은 피할 수 있다!’

물론, 그것도 다음 이후의 회차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타이밍을 숙지하는 거다.’

후두둑…. 탄 피부에서 진물이 흐르는 걸 느낀 노르드는 눈을 떴다.

지나친 빛과 열기로 시신경은 사멸했다.

그래도 이 시점에선 다나의 가호가 남아 있다. 회복은 거기에 맡기면 된다. 어차피 리셋하면 다 나을 부상.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

불꽃이 대지에 선다.

고아한 풍채는 흡혈귀와 같고, 소우주가 깃든 그 육체는 붉게 타올랐다.

항성의 눈동자를 가진 옛 지배자는 이미 자아도 없는 듯, 영혼의 파편만 남아서 충동에 떠밀리는 것처럼 손을 헛손질했다. 무기를 찾는 손길이었다.

─쿠오오오오오!!!

하지만 이곳에 그의 무기는 없고, 대신 날아든 벼락불이 눈동자에 꽂혔다.

진정한 신들, 그것도 무투파의 무신들도 부상을 면치 못할 사나운 뇌정.

【──────.】

하지만 침묵하는 거인은 꿈쩍도 하지 않고 항성 같은 눈만을 희미하게 꿈틀했다.

“……역시 불꽃 타입에는 면역인가? 무슨 씨발 놈의 불덩이가 번개도 안 통하냐.”

투창 자세를 유지한 채로 노르드는 중얼거렸다.

겉모습은 번개지만 〈정화의 번갯불〉은 속성을 무시하고 불태우는 권능이다.

그렇다면 열량으로 공격한다는 점이 문제일까. 많은 생각과 예측을 머릿속 노트에 메모하며 노르드는 브류나크를 쥐었다.

파스스… 뚝!

“아, 니미.”

그렇게 강화했던 게 무색하게도 창은 재가 되어 바스라지고 말았다.

브류나크의 본체는 멀쩡하지만 단말 겸 무기인 창은 열기에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목적성도 없이 뿌려댄 불꽃에 한 대 맞았다고 이 꼴인가.’

혀를 찬 노르드는 룬으로 오러 창을 뽑아냈다.

싫어도 실감하고 만다.

저 우주적 공포의 화신이 정말로 강대한, 초월자 중의 초월자라는 것을 말이다. 인간이 저 존재와 마주치면 살아날 방법을 생각하기보단 죽은 뒤의 일을 고민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귀공도, 알도록 하라.”

하지만 노르드는 창을 쥐고, 마법을 피워냈다.

“오딘의 칼날, 노르드를. 패배를 모르는 싸움을.”

내버려둬도 죽음을 앞둔 몸. 앞뒤를 재지 않고 무수한 마법을 쏘아냈다.

주 무기를 잃은 수르트는 불꽃의 대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다친 몸으로는 그 가벼운 응수에도 살아남을 길이 막혔다.

─퉁!!

그러나, 신에게도 죽음은 있다.

마법의 일부가 뿔처럼 자라난 어깨를 뚫어내는 걸 확인한 노르드는 미소지었다.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인가. 벌써 1번은 죽었다 살아난 신이거늘.

근엄한 얼굴로 노르드는 중지를 치켜들었다.

“I'll be back.”

─후욱!!!

태초의 요툰마저 불태우는 불꽃이 그를 덮쳤다.

고작해야 공략 1회차 째.

적의 강함은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았다.

***

보스 몬스터에게 맞아가며 공략법을 습득하기.

빌어먹게 빡센 작업이다. 하지만 똥겜과 개빡센 인생으로 연마된 내 강철 같은 인내심은 그 고난을 충분히 견딜 만 했다.

이 정도는 쉽다 이거에요. 뒤진다고 캐릭이 삭제되는 것도 아닌데.

“수르트. 거래를 하러 왔다!”

─부웅!!

노릇노릇….

미안. 살짝 허세다.

그래도 개막 폭발 패턴은 피하기 간단했다. 저 폭발 자체는 수르트가 노리고 날린 게 아니니까. 기지개 부산물 같은 거라서 피해도 수르트는 신경 안 쓰는 모양이다.

다시 말하자면, 역시 그냥 날고 있으면 앵간치 회피 가능하다.

나는 【시재회귀】를 연발하며 패턴을 공략했다. 그리고 그렇게 공략한 내용을 현실에서 노트에다 필기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공략 5회차.

수르트가 내려오는 도중에 선빵을 쳤다가 개막 폭발 패턴에 저격당했다.

유도 패턴이 있다는 걸 배웠다. 마그마 에그로 변해버린 내 불알에 묵념.

──공략 8회차.

“네놈의 공격 패턴! 강약약 강강강약 강중약!”

공격 패턴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게 됐다.

수르트가 보여준 패턴에 한해서, 라는 쬐까 궁색맞은 단서(但書)가 따라붙긴 하지만.

적의 동작을 예지하는 내가 8번이나 뒤져야 이 정도였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저 괴물 새끼를 죽여놓은 건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공략 10회차.

“와! 수르트 겁나 쎕니다!”

못 보던 패턴이 나왔다. 만류귀종이 별 거인가. 찌르기 베기 패턴은 1~2번만에 암기했다. 문제는 불꽃 검이 호화구의 술처럼 샷건이 돼서 날아왔단 거다.

새 패턴은 매번 시간을 멈추고 관찰했는데, 이 회차는 한 박자 늦고 말았다.

83개까지는 쳐냈는데, 그 2배는 되는 불덩이에 맞고 숲 째로 참숯이 되었다.

──공략 19회차.

패턴 몇 개를 추가로 발견했다.

딱 발견한 만큼 더 뒤졌다. 호와와.

그래도 9개 중 8개는 버틸 만 했다. 요령이 생긴 것이다.

완전히 다른 공격 방식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권능의 분석도 진행 중.

죽어나간 강북호의 노릇노릇한 시체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을 아즈테카 식인 어린이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다섯 소쿠리 쯤 남을 만큼 뒤졌지만, 뭐 준수한 성과 아닐까.

──공략 20회차.

프랑이 늪지로 달려왔다.

바로 리셋했다.

──공략 21회차.

로키에게만 심념으로 사정을 대충 전하고 다른 아내들을 저번 회차들보다 멀찍이 물러나게 했다. 베로니카의 버프가 꽤 괜찮다. 매번 받자.

생각해 보면 안녕하살법 패턴, 그러니까 시작의 폭발은 어디서든 보일 것 아닌가.

적당히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간 그녀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올 가능성이 크다. 10분 이상을 버틴 게 저번 회차가 처음이라서 몰랐다.

근데 시발 진짜 10분밖에 안 지났어? 매번 최소 3시간 씩은 싸웠던 것 같은데?

──공략 33회차.

“모두 죽어본 패턴이군.”

희소식이 2개 있다. 권능 분석이 끝났고, 처음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쳤다.

이 기술은 수르트하살법 받아치기라고 부르자.

불행 중 다행이라고, 수르트하살법 받아치기가 패턴 대부분에 통했다. 실수하지만 않으면 역대급 앰뒤 억까 패턴도 받아칠 만 했다.

──공략 35회차.

수르트하살법 받아치기에도 단점이 있었다.

오토 모드로 붕쯔붕쯔만 하던 새끼가 정면에서 패링을 시전하면 물음표를 존나 띄우더니 빡겜을 하기 시작한다. 제발 1페이즈만이라도 좀 깨 보자, 씹새야.

좋다 이거야. 니만 빡겜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

“어이, 수씨!! 빡겜 간다!!”

【──────!!】

──공략 40회차

──공략 50회차.

──공략 60회차.

──공략 70회차. 80회차. 90회차. 100회차.

──공략 101회차.

【──────!!!!!!!!!!】

임시 레바테인이 지면을 휩쓸었다.

열기를 이용해서 피운 바람을 밟고 오른쪽으로 뛰었다. 왼팔 패턴 8번이 파리를 쫓듯 펼쳐졌다. 예상한 후보의 하나였다. 나는 마나를 쥐어짰다.

휘우우우우우웅─!!!!

바람을 불태우고 가르면서 쇄도하는 나뭇가지를 피하며 백 덤블링.

창을 올려치고, 수르트의 상체가 비었을 때 브류나크가 얼음 마법을 겨드랑이에 꽂았다. 데미지는 그만한 것도 아니었지만 팔이 둔중해졌다.

이젠 정석 공략법이 다 된 과정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나도 이젠 슬슬 즐기는 자 모드가 다 됐군.”

새 패턴이 나오지 않은지도 30회차가 넘었다.

그러면 왜 아직 솔플을 뛰고 있냐고? 당연히 【시재회귀】 가 진짜 회귀는 아니니까지. 혹시나 실전에서 실수하면 노릇노릇 떼몰살 아닌가.

‘하지만 그것도 이쯤 되면 충분해.’

권능의 불꽃을 살린 거친 검술을 피하고 시간을 어림짐작하는 나.

전투가 4시간을 넘으면 성벽에서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다나, 라리루라, 티르시가 못 참고 여기에 난입한다. 83회차 때의 교훈이다.

아내님들을 보호하는 연습대 대신으로 세워놓은 발퀴리에들에게 불꽃이 쏟아졌다.

─터덩!!!!

이것도 이제 완전히 손에 익었다. 나는 공격을 받아치고 숨을 골랐다.

이제는 로키보다 친숙한 불꽃 거인이 타오르는 나뭇가지를 어깨 뒤로 당겼다. 저 새끼의 제일 가는 억까 패턴의 준비 자세다. 하도 맞아서 더는 역겹지도 않다.

나는 수르트하살법 받아치기의 자세를 취했다.

임시 레바테인이 잔상을 그리며 날아들고, 창과 나뭇가지가 부딪혔다.

“진짜 너를 만나러 가마.”

지옥 같은 열기가 격돌지점을 중심으로 거칠게 터져나오고──

또 하나의 ‘만약’이, 끝난다.

***

“──노르드, 혹시 어디 다쳤어?”

정신을 차리고 보자, 나는 숲의 초입에서 양반 다리를 하고 좌선한 상태였다.

‘맞다 참. 매번 집중하는 게 귀찮아서 셰이드의 꿈에 들어갔었지.’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는 날 네페르티티가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 로키가 그런 그녀의 팔을 잡고 뒤로 질질 끌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아, 글쎄! 예언자들은 다 저렇게 가끔씩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짓을 저지른다니까! 자기 몸뚱이를 나무에 창으로 꽂아넣은 것도 아닌데, 좀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 봐!”

“아니야. 노르드, 일어났어.”

“엥? 진짜?”

“어. 지금 막 일어났어.”

무릎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네페르티티에게도 미소를 지어주었다.

“딱히 피곤한 건 아니니까 걱정 마시고요.”

설마 내가 보스전 101트를 연전으로 벌일 만큼 쌩판 미친 놈으로 보이는가?

당연히 짬짬이 쉬었지. 신족 삼인조는 성실해서 우리가 먼저 쳐들어가지 않으면 존버를 탄다. 저 후방에서 죽는 몬스터들이 늘길 바라는 심보라고 본인들에게 들었다.

덕분에 【시재회귀】를 발동하고 쉬면서 패턴을 복습, 예습한 회차도 많았다.

“푸우우우우우……”

숨을 토해낸 나는 버릇처럼 얼음을 꺼내서 목을 문질렀다.

역시 한 판 뛰고 나면 이게 최고지.

나는 준비운동을 하며 내 이상한 모습을 지켜본 현실의 가족들에게 말했다.

“공대원 분들, 잠깐 패턴 숙지 좀 하고 가죠.”

수르트 레이드 스피드런. 너만 오면 고.

10분 안에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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