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83화 (881/1,009)

촤자자자자자자자자작─!!!!

급속접근한 노르드가 거인의 몸을 난자했다.

이 우주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수많은 존재들이 수르트의 불꽃을 2번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옛 지배자 격의 존재도 몇십 체나 자기 힘을 믿다가 타 죽었다.

하지만 누구도 2번 이상을 버틸 수 없었기에, 공략당했던 적 역시 없었다.

100여 번에 달하는 실전에서 살아남아서 그의 모든 힘과 기술을 알아낸 적수도.

알아낸 기술을 파훼하고, 초월적인 힘을 상대로 그 파훼법을 실천했던 적수도 없었다.

─펑!!!

지속된 공격에 약해진 팔뚝은 반사된 충격을 못 견디고 날아갔고, 쏟아지는 공격은 자신의 권능에 큰 타격을 받은 수르트의 육체를 깎아냈다.

물론 육체에 급소가 없는 불꽃 거인한테는 그런 상처도 치명상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전투는 속행할 수 없지?’

노르드의 눈동자가 흉흉한 광채를 뿜었다.

새 팔이 자라나서 여물기까지 걸리는 시간만큼.

수르트의 2번째 죽음은 가까이로 다가온다.

“노르!”

“끝을 내죠!”

─파파팟!! 프랑과 라리루라가 수르트의 주위를 누볐다.

방어를 철저하게 한 그녀들은 휘청거리는 불꽃 거인의 다리를 노렸다. 넘어트릴 생각으로 공격을 가하자 약체화된 육신은 무릎을 꿇었다.

노르드는 정면에서 돌진했다.

그리고 수르트는, 주저앉아서 포효했다.

【──────!!】

푸화아아아아아아아──!!

소리 없는 아우성은 공기의 진동을 낳지 않고, 떨리며 퍼져나가는 불꽃의 파도를 만들었다. 그의 불꽃은 팔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음파처럼 방사형으로 터져나가는 불꽃이 프랑과 라리루라를 범위에 넣었다. 라리루라의 차원벽은 그녀들을 지키기에는 아주 조금 모자라다.

노르드가 그녀들을 지키며 물러나는 동안, 팔을 회복시키려는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흐으으읍!!”

“으으으으읏!!!”

하지만 그 누구도 멈추지 않고, 수르트의 불이 두 여인들에게 닿았다.

까앙─!!!

회심의 불꽃이 성스러운 빛에 튕겨나오는 것을 수르트는 무감정하게 관찰했다.

성물로 강화한 훌드폴크의 견장.

일주일에 1번, 어떤 공격이든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효과였다.

일회용에 지속 시간도 짧지만, 쉴새없이 치사성 불꽃을 뿜는 거인을 상대로는 효과적이다.

돌진하는 노르드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한 꺼풀 벗겨졌다.

“사막 나라 사람이라도, 더위는 싫어.”

드러난 머리카락은 물색이었다.

“그리고 화재에는 특히, 싫은 추억 뿐.”

불타오른 고향의 파노라마가 척추반사적 분노와 힘을 낳는다.

─으적!!!

힘껏 쥔 채찍에 성물의 집중력 보조를 담으며 네페르티티는 거인의 턱을 올려쳤다. 다리와 턱을 공격당한 수르트의 머리가 실에 당겨진 듯이 뒤로 홱 젖혀졌다.

그렇게 뒤로 돌아간 머리로 수르트는 발견했다.

“그 좆 같은 패턴에도 2번은 뒤졌어.”

불꽃의 파형을 성물 장갑의 효과로 끌어당기는 노르드는 창과 〈정화의 번갯불〉을 뒤섞었다. 불꽃 창이 무슈흐렐리틀을 해치울 때처럼 회전했다.

수르트 또한 이해했다. 무슈흐렐리틀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계의 신들과 다르게 이계의 옛 지배자들은 쉽게 죽지 않는다.

그렇기에 라그나로크 때 죽은 악신들은 지금도 심해의 군주의 궁전에서 부활을 꿈꾸며 기다린다. 지금의 죽음을 영면이 아닌 잠깐의 백일몽이라고 믿고서.

옛 지배자란 초월자이며 불멸자.

잠들듯 죽고, 깨어나듯 되살아나는 옛 된 악신들.

그런 현실을 부조리라며 절망할 것도 없다.

“처음부터 말했지? 목을 내밀라고.”

불멸하는 악신이 있으면, 그런 그들을 찢어죽일 송곳니를 가진 자도 존재하는 법이니.

붉은 별, 불의 흡혈귀, 살아있는 불꽃은 보았다. 그를 보았다. 그가 해내지 못했던 과업을 완수할 자질을 갖춘 인간을, 예언을 무너트릴 존재를 본 것이었다.

“……뭐야?”

최후의 순간, 노르드는 어째선지 얼굴도 없는 거인이 웃는 듯한 착각을 느꼈고.

지면에 틀어박힌 불꽃이, 되살아난 파멸의 거인에게 영면을 선사했다.

***

존버와 튜토리얼 서버는 승리한다.

빡세디 빡셌던 보스전 100트 끝에 실전을 완벽하게 성공한 나는 개운하게 웃었다.

“시발, 미친 남편 새끼. 이걸 기어이 잡네.”

수르트 퐈이야의 여파로 까맣게 탄 지형이 푹푹 쪄서일까. 다나는 턱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자기 날개로 부채질을 했다. 그거 편리해 보이는군.

“선배! 여기 이거 좀 보세요!”

라리루라는 그새 해치운 수르트의 시체에서─불 덩어리니까 꺼져버리면 시체고 뭐고 없지만─ 한 조각의 장작을 발견하고 말했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은 로키는 그걸 짜내다가도 기겁을 했다.

“라리루라!!!! 너 그거 만지면 타 죽는다!!!!”

“으이엑?!”

수르트의 권능. 그 응집체에 손을 뻗으려 했던 우리 후배님은 순간이동으로 내 등 뒤로 숨었다. 이젠 거의 뭐 지정석이군.

“내가 처리할게.”

─파지직.

엘든 링의 요령으로 들어올려서 룬 마법을 섞고 봉인했다. 리트 중에 혹시 가능할까 싶어서 만든 기술인데, 선딜이 오래 걸려서 안 썼던 것이다.

‘10분 안에 처리해야 했으니까.’

변수를 줄이려면 시간을 단축하는 게 최고지.

수르트하살법 받아치기로 양팔을 날려버리려면 이때다 싶을 때까지는 사용하기를 삼가지 않을 수 없었고 말이다.

왜 마법 이름이 옛된 반지(Elden Ring)이냐고?

옛 지배자를 해치울 스킬이라서 그렇게 붙였다. 타의는 없다.

“박제가 되어버린 거인을 아시오?”

─덜그럭. 나는 봉인한 장작을 집어들었다.

브류나크가 열심히 수르트의 마나를 흡수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나도 좀 도울까.

“……흐읍!!!”

권능 덩어리를 내 내면세계에 봉인한다.

어떻게? 프레이야의 열쇠를 보관했을 때의 테크닉으로. 이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건가. 존나 죽빵 마렵네.

들고 다니기도 뭣한 재앙 덩어리다. 내 가슴에 봉-인. 이거 완전 카드 캡터 체리.

─슈와아아아아악!!!

동질의 권능이 내 영혼에 잠들어서일까?

브류나크가 내게 흡수시켜주는 마나량도 늘었다. 아랫배에 불이 내려앉은 것 같다. 나는 보온 복대 같은 따스함에 부랄 위 10cm를 쓰다듬다가 살짝 질려버렸다.

“10개월 뒤에 출산하거나 하진 않겠지.”

“애 낳고 가슴에 분유가 새면 모유주 만들어서 처먹으렴.”

“누나. 어떤 미친놈이 사람 젖으로 술을 빚음?”

“왜. 그 개또라이가 요즘 들어 침대에 안 와서 화장하고 다닐까 고민하는 년도 있는데.”

“능동적으로 찾아가면 됩니다. 우리 누나 홧팅.”

“좋다. 딱 대라. 속보) 오늘밤 잠 다 잠.”

백이면 백 먼저 드르렁 하는 건 자기면서.

치이이이이익…!

내가 그렇게 피식대고 있자 완전히 곱창난 늪지 일대에 냉기를 뿌리는 티르시가 보였다. 아무래도 고향 땅 근처니까 사후조치를 해 주려는 모양.

“티르시. 도와줄게요.”

“어머, 그래줄래요?”

아무 생각없이 요정왕의 완드를 꺼내는 나.

티르시가 땅을 식히고 프랑이 갈아주면 완드로 원래 환경에 가깝게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뒤에 조져진 생태계 밸런스는 내 관할 아님.

“……아니지 참, 잠깐만.”

그러다가 나는 문득 웃음을 지었다.

드랍템은 회수했고, 헤니르의 수작은 헛짓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진정한 프로는 빠던과 티배깅으로 좋은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법!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바라보자 로키는 불길한 것처럼 물러났다.

〈왜 그래. 너 좋으라고 하는 건데?〉

어차피 너 말고는 먹을 사람도 없거든.

****

〈숲 방향은 어떻게 됐나?! 티르시 님은?!〉

성벽까지 올라온 디르막스 대대장은 부하들에게 윽박을 질렀다.

마법사 길드에서도 나름 이름이 높던 호병대원 한 명이 침을 꿀꺽 삼켰다.

〈불꽃의 발생이 멈췄습니다. 열원도 소실!〉

〈결과를 묻는 걸세! 그 분은, 울프헤딘 백작과 티르시 님은 승리하신 건가?!〉

메테오의 추락과 그 이후의 폭발을 눈치 못 챈 아즈위시아 시민은 아무도 없었다.

숲 전체를 봉화로 삼으며, 검은 연기를 내뿜는 신화의 전투. 필시 이 악랄한 몬스터 범람을 꾸린 흑막, 인류를 위협한다는 사악한 침략자들일 터!

수만 마리의 몬스터들보다 까마득히 위험할 듯 보이는 강적의 출현이다. 그는 손에 땀을 쥐었다.

그는 마스터 클래스의 싸움을 도와주고 어쩌고 할 만한 능력도 없다.

그렇기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의젓하게 장성하여, 인류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뛰어난 마법 솜씨를 얻은 옛 주군의 손녀가 부디 무사하기를.

이 가혹한 성새도시에서 싸우고, 주군을 잃으며 신앙심을 잊었던 대대장은 기도했다. 위국전쟁의 한 중간에 보았던 천상의 여신을 떠올리면서.

파아아아앗….

그 기도에 응하기라도 한 것일까. 하늘이 크게 열리며 여신이 내려왔다.

〈오오! 저 모습은……!〉

〈우리를 가호하셨던 그 여신님이시다!!〉

비유도 뭣도 아닌, 말 그대로 여신의 강림이다. 성벽으로 돌아와서 소탕전에 임하던 병사들은 두 눈에서 눈물을 쏟으며 그녀의 자태에 탄복했다.

거꾸로 뒤집힌 여신은 미소지으며 대지를 한 번 쓸었다.

그것만으로 멀리서 봐도 새까맣던 숲이 차갑게 식고, 새 살이 돋아다는 것처럼 수많은 나무들이 자라났다. 물이 흐르고 자연이 되살아난다.

마치 그녀가 모든 식물을 관장하는 신인 것처럼.

〈……풍요신? 풍요신 포모나 님인 것인가?〉

〈아닙니다. 기록에 남겨진 풍요신님과는 사뭇 다르군요.〉

〈교황님!〉

감격하는 대대장에게 포모나 교의 교황은 웃음 지으며 말했다.

〈저 여신님이 어떤 분인지 아시는 겁니까?〉

〈예. 저도 한때는 신학자(神學者)였으니까요.〉

대대장은 침을 삼켰다. 한 교단의 교황이 자기 신앙마저 잠시 접어둔 것처럼, 전혀 다른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바치는 게 아닌가?

저 여신에게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서 깊이 다가올 수밖에 없는 신성한 모습이었다.

〈장난스러운 요정들과 유니콘, 바이콘의 부모. 언어를 관장하며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말로 이어주는 평화와 자비의 여신……〉

교황은 눈을 감고 자비롭게 말했다.

〈태초의 여신, 로키=로두르 님이십니다.〉

태고에 사라졌던 로키 신의 신앙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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