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88화 (886/1,009)

***

─털털털.

나는 신앙의 실타래가 차 있던 양동이를 거꾸로 뒤집어서 털었다.

그 많던 마나 덩어리를 다 쓴 것이었다. 그것도 순전히 우리 아내님들의 강화를 위해서 말이다. 거 영약이라고 치면 전쟁에 이긴 보수로는 적절한가.

“흐윽, 흐윽, 히…♡”

“…………후아♡”

그런 내 뒤엔 마라톤 경주를 한 것처럼 침대에 쓰러진 프랑과 네페르티티가 있었다.

‘화경의 여고수들을 낭중지추의 육봉으로 제압했으니, 이게 현경이고 생사경이로다.’

다나, 라리루라를 성장시킨 나는 그녀들에게도 이 영약을 나눠줬던 것이다. 주로 내 쥬지와 손에 새긴 룬 마법의 힘으로 말이다.

그녀들에게는 내 자지야말로 보약인 것이다.

“섹스의 세계는 넓고도 깊군…….”

나는 손바닥에서 ᛃ(Jēra)의 룬을 지웠다.

마나를 빨아들이고, 다시 불어넣는 룬이었지만 전투에선 속도나 저항력 문제로 사용이 어렵다. 단, 나한테 간도 쓸개도 내주는 아내님들한테는 무척 쓰기 쉽더라.

이 마법은 【아이큐 쪽쪽 기간트】라고 부르자. 아내님들 전용 섹스 매직이다.

‘다나랑 라리루라는 이제 거의 미스릴 클래스가 됐어.’

전사가 아니므로 깨달음을 통해서 진일보한 건 아니다. 마나만 늘었을 뿐.

하지만 헤니르 새끼만 아니면 신좌를 가진 그녀들이 강함이 부족할 일은 거의 없다.

마나량이 충분하다면 신좌의 힘을 끌어낼 체력 등의 밑바탕도 탄탄해지고.

나는 프랑과 네페르티티의 꼴릿한 모습에 다시 섹스가 마려워지는 걸 강철 같은 인내심으로 참으면서, 그녀들에게 환단 같은 걸 건넸다.

“다들, 이것부터 먹고 쉬어.”

“……킁킁.”

네페르티티는 냄새를 맡았다. 환단이긴 했지만 풀 내음은 제법 향긋하다.

“……약초로 만든 비스킷?”

“제가 수제 쿠키를 굽는 취미가 있었다면 높은 확률로 정답이었겠네요.”

“후으, 흐…… 쿠키보다는 전투식량 같다. 이게 뭐야, 노르?”

나는 질문하는 프랑에게 짤막하게 설명했다.

“체력을 붙여주는 보약.”

“보약?”

정확히는 마나통에 특화한 프로틴이다.

근섬유처럼 찢어졌다가 회복되는 영혼을 빨리, 그리고 촘촘하게 회복시키고 그 내력을 한층 끌어올려주는 데 특화한 약초였다.

“꽤 괜찮은 비약이야. 용기는 있었지만 재능은 없던 병사가 죽어가다가 그 환단의 재료라는 풀을 먹고 미스릴 클래스가 됐다는 일화도 있다더라.”

고대까지 제조법이 이어졌던 비약이라고 하던가.

저 늪지대는 슬라임이 초월종 몬스터로 자라날 만큼의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하피들이 만드라고라를 막 날리기도 했고, 이런 영약의 재료가 있을 법한 곳이잖은가.

“먹기만 해도 미스릴 클래스라니…… 그 정도면 보약 수준이 아니잖아!”

프랑은 눈이 동그래졌다. 당연하지만 엄청 놀란 눈치였다.

“이런 무지막지한 영약은 또 어디서 났어? 돌아올 때까진 없었잖아?”

“샀지.”

네페르티티가 표정변화 없이 딸꾹질을 했다.

‘기연이 다 뭐냐. 내겐 돈이 있다.’

나는 쇼핑 리스트를 넘기며 어젯밤의 일을 떠올렸다.

─이건 영주가 보관하고 있던 물건입니다. 그의 소유가 아니라서 사용은 엄두도 못 내던 것인데, 원로원의 인가를 받고 마법이 걸린 보물창고에서 꺼낼 수 있었지요.

아즈위시아의 호병대 대대장은 나를 불러내서는 그렇게 말했었다.

─총 여덟 알이 있더군요. 그럴 자격만 있다면 전부 내 드리고 싶습니다만…… 숙청 무렵 황제의 소유물로 넘어간 후 은폐된 보물이기에 현시점엔 원로원의 소유입니다.

상자에 담긴 한 알을 건네받으며 들은 말이다.

존재 자체가 잊혀졌던 탓에 황실 쪽 놈들 입에 낼름 들어가지 않은 듯 하다던가.

지금은 국가의 수뇌인 원로원에게 돌아갔고, 그 탓에 아즈위시아의 임시 영주인 그가 자의대로 쓸 수 있는 건 한 알 정도였다는 모양이다.

─나머지는 원로원이 돈으로 바꿀 거라더군요. 전비와 배상금 문제도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저한테도 몇 개 파시죠.

─……예? 아니, 그, 이게 한 알에 30골드라…

─쓰벌, 존나 비싸네. 쿨거래로 네고 안 되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본국에 연락을!

오늘에야 가격 책정과 계약서 작성이 끝나고 내 손에 떨어졌다.

자그마치 200억어치 쇼핑이었다.

‘근데 별로 안 비싼 것 같단 말이지.’

아틀란티스랑 사업체들에서 오가는 돈은 기본이 3자리라서 그렇다. 지자체 예산을 굴리면서 눈만 높아진 공무원이나 벼락출세한 졸부나 이럴려나.

‘역시 요즘 경제감각이 이상해진 게 맞다니까.’

영약 몇 알이 200억? 군함보다 싸네!

그밖에도 쇼핑 리스트의 물건들도 방금 각지에 도착했다는 소식이다. 내 밑사람들이 메달 안에다 차곡차곡 쌓아줄 테니까 이따가 꺼내다 쓰면 된다.

“30억 짜리 영약을 사례로 건네준 아즈위시아 사람들도 어지간하지만.”

아무튼 그래서 필요한 숫자만큼 사 왔다.

개당 30억짜리 한약이라니. 그렇지만 비싼 값은 하는 듯 하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포모나교의 교황이 10초만에 분석해 주었습니다.

‘프랑이랑 네페르티티한테 가격은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달인급 전사의 수익은 대략 초일류 스포츠 선수 정도다.

몸값은 차이가 나지만 대충 그 정도였다. 단지, 그녀들은 스스로의 가치에 자각이 없다. 30억 치 사랑은 부담스러울 게 당연하다.

먹고 소화한 뒤에 가격을 알고 기절초풍을 해도 토하진 못할 것이니 말이다.

“먹고 쉬어. 나는 잠깐 셰이드 하고 있을게.”

“아, 응! 잘 먹을게!”

“응. 감사 인사는 행동으로 보이는 게 예의.”

그녀들의 키스를 뺨에 받고 밖으로 나왔다.

티르시는 이미 줬다. 다음은 베로니카 차례였다. 나는 로키한테로 한 번 돌아갔다.

“일이 줄어간다! 오딘 언니! 일이 조금씩 줄고 있어!! 헤, 으히헤헤! 으히히히헤헤!”

“로키. 양동이 하나 더 가져간다.”

노예…… 가 아니라 누에한테서 마나 실타래를 또 받아서 이동.

남의 집 여신님 말고, 우리 여신님이 기다리는 방으로 발을 내디뎠다.

“베로니카, 나 왔어.”

“왔느냐. 생각보다 늦었구나.”

“미안. 오래 기다렸어?”

“별 것 아니다. 10분 정도니라.”

읽던 책을 덮는 베로니카. 그녀는 저택의 남는 방 하나를 무슨 마녀의 생체 연구실처럼 바꿔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제일 눈에 띄는 건 마법진이다. 오딘의 눈으로 분석한 내가 말했다.

“저기 앉으면 되지?”

“그렇느니라. 주인님과 내 권능의 조합이잖느냐. 틀릴 리가 없지.”

풍만한 가슴을 펴면서 뽐내는 그녀.

베로니카의 미래 지식 치트는 휘발성이다. 권능 OFF 후에는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내 눈은 아니지.’

베로니카가 떠올린 마법을 내가 오딘의 눈으로 분석하고, 그녀에게 다시 전달해서 다시 해석한다. 이 요령으로 우리는 모든 마법 연구를 수천 배나 가속할 수 있었다.

연구비, 연구시간 스킵하고 태어난 이 마법진은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아, 베로니카. 여기 영약. 네 몫이야.”

“흠?”

영약을 받은 그녀는 고개를 모로 꼬다가 물컵의 물과 함께 입에 털어넣었다.

“뭔지는 안 물어봐?”

“나의 그대가 준 것이다. 짖궂은 장난이라도 안 받는다는 결론은 없느니라.”

“영약이야. 너도 요즘 무리가 많았으니까.”

나도 마법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아즈위시아의 환단을 냉큼 삼켰다.

대충 납득한 베로니카는 가족이 공용하는 메달 인벤토리를 뒤졌다.

“부탁한 재료는 구해왔구나. 빠르기도 하지.”

“사람 사회는 돈이 있으면 많은 일이 해결되지. 과연 좆간. 더럽다, 더러워.”

“그대도 인간이잖느냐. 자, 힘내서 다녀오거라.”

돈을 펑펑 써서 사 온 물건들을 늘어놓는 그녀. 막판 던전 드랍템 같은 것들이 녹고, 빻아지면서 마법진의 문양에 자리잡았다.

─웅웅웅웅!!

브류나크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내면세계로.

꿈에 진입한 내 눈에 번개의 감옥에 갇힌 불꽃 덩어리가 들어왔다.

“삐에에엑!!”

뜨거워서 못 살겠다는 듯 앵겨붙는 브류나크의 마음도 십분 이해가 간다.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내 아랫배와 쥬지에 핫한 인챈트를 걸어놓은 수르트의 마나는 이렇게 내게 흡수되지 않고 내면세계에 봉인한 영혼의 파편과 결합했던 것이다.

“삐엑. 뺘앗!”

“그래, 그래. 이러면 네가 놀 때도 방해겠네.”

고롱거리는 브류나크의 부리를 쓰다듬어준 나는 샥샥 비빈 손을 좌우로 벌렸다.

눈도 영혼도 없는 불꽃 덩어리에게 말을 건다.

“내 옛날 교수가 그러더라고. 세상의 모든 약은 사실 적절하게 활용한 독이라고.”

예르나 말고, 그보다 더 이전. 수의대생 시절의 교수가 한 말이었다.

사람용 비아그라는 작은 동물이 먹으면 죽는다. 카페인이랑 알코올만 먹어도 요단강이 어른거리는 녀석들이니까 당연하다.

다시 말하자면, 생물의 몸이 감당 못하는 약은 다 독극물이다.

“옛 지배자의 영혼에서 추출한 마나. 이게 독이 아니면 그게 더 이상하지.”

토나슈일루카틀의 심장은 영혼이 아니라 육체의 일부니까 예외다.

우리가 해치운 우신들은 사람의 거죽을 쓴 별의 자손들처럼 옛 지배자가 아즈테카의 몬스터에 빙의한 놈들이었으니 말이다.

그에 비하면 수르트는 어떤가?

순수한 영혼의 조각을 그대로 뽑아냈으니, 내가 마스터 클래스의 초월자가 아니었다면 신혼 여행 중에 여친의 쌩얼을 처음 본 모쏠 혼전순결남처럼 정신에 치명타가 박혔겠지.

영혼은 소멸했지만 수르트의 마나는 내 통제를 거부한다.

중금속처럼 체내에 쌓여서, 흡수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위이잉─!

베로니카가 현실에 깐 마법진이 떠올랐다.

“잡아먹혔으면 얌전히 소화돼라. 번거롭게 굴지 말고.”

나는 벌린 팔을 내세우며 마법을 발동했다.

두쾅─!!!

눈부신 폭염이 터져나왔다.

***

헤니르는 거처에서 의자에 몸을 뉘였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생구신의 권능으로 창조한 피조물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 미숙한 햇병아리들이다.

결전을 앞둔 지금은 졸병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혹한 사고방식이었지만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피해를 우려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역설할 거라면 애초에 전쟁 자체를 시작하지 않는 게 맞다.

자신의 뜻으로 시작한 이상, 아무리 꼴사나워도 끝을 봐야 하는 것이다.

그날, 목만 남았던 그가 인간들의 시대에 모든 미련을 버렸던 날부터 쭉.

“……후후.”

그렇게 결단하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자조적인 기색이 섞인 호승심이었다.

“재전이라. 계책을 연달아 실패한 책사는 목을 베이는 게 상도일진대.”

인류 사회의 혼란을 일으키는 계획은 실패하는 게 전제였으니까 괜찮다고 치자.

하지만, 노르드가 수르트를 쓰러트릴 거라고는 헤니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가능성은 생각했지만 가히 무시해도 될 수준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직접 노르드의 주먹에 맞아보고 내린 결론이다. 노르드가 그때보다 3배를 넘게 강해져도 수르트를 이길 수는 없다. 살아남는 것도 곤란할 것이었다.

그럴 터인데, 그는 이겨냈다.

전멸과는 거리가 멀었고, 큰 희생을 거친 것도 아니며, 하다 못해 부상조차 없다.

“예상을 이만큼 크게 벗어나는 상대는…… 오랜만이군.”

헤니르의 권능은 무궁무진한 발상과 영감을 선물하지만 그 발상의 현실성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계획의 실천 가능성과 실행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지혜에 달렸다.

그래서 그는 많고 많은 영감을 선별하고서, 첫 포석을 두고 곧바로 수르트라는 으뜸패를 던졌다. 예지가 발동하더라도 승리의 포석이 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첫 단추인 수르트를 그대로 빼앗겨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하잘 것 없는 변수나 수작은 오히려 내 목적의 단서가 되겠군.’

─멈칫.

예언자의 눈을 가리고서 그의 목을 쳐낼 방법을 구상하던 헤니르가 미소를 지웠다.

그의 조촐한 옥좌 뒤에 하얀 그림자가 일렁였다.

“내가 기다리는 건 네가 아니다, 망국의 왕자.”

하얀 그림자는 흔들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거기 담긴 뜻은 간결했다.

다른 방문자를 기다리는 건 그도 마찬가지라는 대답이었다.

옥좌의 등받이 뒤로 불꽃을 쏘아보던 헤니르는 어느 순간 차갑게 미소지었다.

“오딘의 신좌를 손에 넣고 수백 년. 인간에게는 긴 시간이었겠지.”

─……………….

“누구를 기다리는지는 같아도, 무얼 바라는지는 다른가 보군.”

헤니르는 하얀 불꽃에 다가서서 수도를 세웠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를 알고도 너 스스로 여기 나타나지 않는다 함인즉, 저 사내가…… 노르드가 내게 승리할 것을 확신하다는 뜻이렸다?”

─늪의 바닥까지 가라앉아선 아직도 예언자에게 답을 구하는군.

시구르드는 일렁이는 분신에 목소리를 담았다.

─그토록 자기확신이 부족한가? 운명의 망자놈.

“눈을 감으면 오직 어둠과 자신만이 보이는 법. 그러니 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그 ‘눈’을 감을 수 있겠나. 어둠을 두려워해선 미래를 꿈꾸지도 못할 터.”

─썩둑!!

휘두른 수도가 하얀 불꽃을 베고 사선상의 모든 물체를 위아래로 갈랐다.

술식으로 만든 그림자가 일도양단되어 소멸했다.

콰르르르르…!!

섬의 한켠이 손에 닿지도 않고 예리하게 잘려나가서는 바다로 무너져내렸다. 단애절벽을 베어낸 헤니르는 비춰드는 햇살을 보며 중얼거렸다.

“보아라. 우리는 이윽고, 하늘의 모든 별을 지워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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