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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감사합니다!! 다음 방문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에~! 수고하세요~♡!〉
목공품 길드의 지부장에게 듣는 사람이 다 기분 좋게 인사해주는 큰손 손님.
숨겨서 뭣하리. 내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은 라리루라였다.
“아핫♡ 사람들 깜짝 놀라는 거 엄청 웃겼어요!”
“저 많은 가구들이 작은 메달에 빨려들어갔는데 당연하지.”
이런 날에 쇼핑을 먼저 했다간 짐이 늘어난다.
짐이 늘어나면 관광 중에 피로가 늘고, 귀찮게 도난당할 염려도 크다. 어떤 면에서 살펴봐도 쥐뿔만큼의 이점도 없다. 이게 상식 중에 상식이다.
‘단, 일반인들의 상식이지.’
인벤토리가 있는 우리들한테는 무관한 문제다.
“선배~. 그렇게 달라붙으시면 걷기 힘든데요~.”
“내 팔은 자유로운데. 누가 달라붙은 건지 다시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봐라.”
“흐흥~♡”
알 게 뭐냐는 듯 옆구리에 달라붙는 라리루라. 숨이 다 막히겠네.
“앗, 이쪽이 지름길이에요!”
그렇게 앵겨붙던 라리루라가 방향을 틀었다. 좀 한적한 골목길이었다.
“지름길? 아직 시간 남았잖아? 대로로 가자.”
“네에, 안 되요~. 전 선배랑 보내는 시간은 1분 1초가 소중해서요!”
“듣는 남편 부끄럽네. 대로가 좀 붐비긴 하고.”
라리루라가 지리에 빠삭한 건 아니겠지만, 길이 막혀있거나 하면 그냥 건물을 뛰어넘지 뭐. 초월적인 육체 스탯이 이럴 때는 유용하다.
골목을 지나며 라리루라의 목덜미를 주무르다, 문득 떠오르는 게 하나.
“맞다, 프리실라. 한 가지 말하는 걸 깜빡한 게 있는데.”
“사랑한다구요? 알고 있는데요?”
“그것도 그건데, 내가 엊그제 크라운 양반한테 일방적인 선물을 떠맡았거든?”
“로키님한테요?”
나는 눈을 깜빡대는 라리루라한테 로키의 가호, 통칭 【암컷타락 수신기】에 대해서 말해줬다.
솔직히 원래는 더 직관적인 【뷰지의 소리】로 명명하고 싶었는데, 살짝 뇌절이기도 하고 도저히 남들 앞에서 입에 담기 힘든 명칭이라서 포기했다.
그에 비하면 【암컷타락 수신기】는 이 얼마나 알기 쉽고 직관적인가?
음음. 정말이지 품격까지 완비한 스킬명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뭐에요 그게?! 치사해!”
라리루라가 진짜로 삐진 소리에 나는 뺨을 긁적거렸다.
“아니 뭐, ON/OFF 정도는 가능해. 그리고 네가 나한테 말해주고 싶은데 말하기 꺼려지는 속마음 외에는 전해지지 않으니까 그리 신경 안 써도──”
“왜 선배만 받아요?! 저도 로키님의 가호 받고 싶어요!!”
“아, 응. 논쟁점은 거기구나.”
“치사해요! 치-사-해-!”
─붕붕! 라리루라는 떨어질 생각은 않고 애먼 내 팔만 잡아뽑을 듯 휘둘러댔다.
“아무리 생각해도 형평성에 어긋나요!! 어차피 저희는 선배 자지를 상대로 거짓말 못 하는데, 그런 가호는 있으나 마나 아니에요?”
“어……”
“네! 오히려 저한테야말로 그 가호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저도 제가 선배한테 입으로 해드릴 때 선배가 얼마나 기분 좋은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리실라야. 길거리야. 축제 중인 길거리야.”
내가 입을 틀어막자 라리루라는 불현듯 정신을 차린 듯 멈칫했다.
어차피 얼굴을 가렸고 지금은 인파가 없는 방향이라지만, 그래도 좀 그렇지?
“……저더러 카페에서 알몸으로 커피 받아오기 챌린지까지 시켰던 선배가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굉장히 쇼크에요. 지금 프리실라의 마음은 배신감 한가득이에요.”
아니, 멈칫한 이유는 달리 있었나 보다.
업보란 게 이렇게 무섭다.
“씁, 그건 꿈속 얘기고. 그리고 남자가 ‘응기익’ 거리면 좀 쪽팔리잖아.”
“저도 히엑 호엑 호아악 거릴 때 부끄러운데요.”
“그래서 신음 참는다고 뭐라 안 하잖아.”
라리루라가 눈을 반개했다. 삐진 표정이었다.
‘로키한테 가호를 더 달라고 말해볼까?’
라리루라가 같은 가호를 얻어도 내가 들려주기 싫은 생각은 안 들리도록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근데 로키 걔 오늘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
〈앗, 하웁…….〉
그때, 불쑥 우리의 귀를 어지럽히는 신음소리.
나랑 라리루라의 눈이 동시에 돌아갔다.
〈뭐, 뭐야.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쪽 길로는 아무도 안 와. 가게도 없고.〉
골목 구석 깊숙한 곳에서 남녀 커플의 파렴치한 행각이 벌어지고 있는 듯.
연인들의 축제라지만 대낮부터 야외에서? 그거 용감한 연놈들일세.
그렇게 내가 얼척이 없어졌을 때였다.
〔선배……. 들리시나요……. 저는 지금 선배의 마음에 말을 걸고 있습니다…….〕
적응력 봐라. 북금곰인 줄.
〔프리루라는 지금 이 세상의 부조리한 빈익빈 부익부에 화가 났습니다……. 공물을 바쳐서 저의 시름을 달래세요…….〕
공물? 갑자기 무슨 공물?
나는 엘리트 대갈통을 채찍질했다. 데이트라고 퍼질러 놀고 있던 엘리트는 휴일 출근에 빡쳐하며 빠릿빠릿하게 회전하고 정답을 도출해냈다.
‘이거, 야한 생각이 아니면 못 읽잖아?’
그럼 야한 짓을 해달라는 뜻밖에 더 되겠는가.
〔굳이 첨언하자면 찐하고 딥한 마우스 투 마우스를 희망합니다…….〕
요청사항 한 번 확실하군. 의뢰인의 귀감이야.
“응읏…♡ 흐읍….”
라리루라의 허리를 붙잡고 키스했다.
〔앗…… 허리 세게 안는 건 조아……♡〕
들려오는 속마음은 당연하게도 노골적이다.
라리루라가 그때그때 바라는 식으로 허리를 꽉 끌어안거나, 등을 두드리거나 혀를 엉켰다. 어떤 걸 원하고 어떤 걸 꺼리는지 전부 전해지는데 어디가 어려운 일이 있을까.
“……푸헤♡ 후아… 우으.”
그렇게 꽤 긴 시간 혀를 섞다가 살짝 놓아줬다.
약점 공략이 유효했던 듯 언제나 이상의 리액션이었다. 라리루라는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그게, 음, 생각해 보니까 저한테도 그렇게 손해인 건 아닐 것 같네요.”
내가 아무 말 없이 웃자 라리루라는 점점 말이 빨라졌다.
“말했다시피 선배도 저도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하는 건 조금 주저되고는 하잖아요? 저희 둘이 허심탄회하게, 그, 조율할 기회가 생기는 셈이기도 하고……”
“전에 날 조종해서 내 자지로 자위했을 때처럼 로망도 채워볼 수 있고?”
“으으우에?!”
중언부언하던 라리루라는 슬슬 물러나며 입술을 벙긋거렸다.
“네, 네에!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하죠!”
갈 데를 모르고 엉거주춤한 팔로 치마를 열심히 당겨 내리던 라리루라가 외쳤다.
“하루는 고작 24시간, 1440분, 86400초밖에 안 된다구요! 게다가 자정엔 돌아갈 예정이니 거의 절반 이하에요! 얼른 가요, 얼른!”
본격적으로 공격당하면 능숙하게 반격할 능력이 안 되는 걸까. 나를 끌고 나가는 라리루라는 그야말로 패잔병 그 자체였다.
연애경험 0회에 빛나는 애기 치고는 잘 버텼다. 나는 픽 웃었다.
“그런데 계속 달라붙어 있어도 돼?”
“뭐, 뭐가요? 그냥 그렇고 그런 생각만 안 하면 되는 거잖아요? 머릿속에 제 가슴 생각만 가득한 선배라면 모를까, 저는 전혀 문제 없는데요?”
“그럼 됐고.”
나는 별 말 않고 암컷타락 수신기를 껐다.
〔……닿기만 해도 전해지는 거야? 그럼 다같이 식사할 때라든지, 테이블 밑으로 선배 발에 살짝 발끝만 갖다대도 ‘오늘밤 방문을 열어둘게요’ 하고 유혹할 수도 있──〕
─뚝!
라리루라의 생각이 뚝 끊어졌다.
아쉽긴 하지만 키스의 여운을 의식하면서 야한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라리루라의 옆 얼굴만 봐도 꼴림을 참기 힘들다.
지금보다 꼴리면 발기한 채 걸어다니게 될 것.
우리는 팔짱을 넘어서 거의 이인삼각을 하듯이 달라붙어서 대회장으로 향했다.
준비된 자리에 적당히 앉아서, 구경 시작.
〈이럴 순 없어! 이건 순 재료빨이잖나!〉
〈요리사가 좋은 재료를 구해온 걸 반칙이라고 하던가요? 혓바닥이 기시네!〉
클라라가 듀나미스 공방 명의로 참가한 대회는 야금 솜씨를 겨루는 대회였다.
그 자리에서 순서대로 30분이란 짧은 시간만에 장검을 만들고, 준비한 장애물들을 격파하는 걸로 날카로움과 강도를 과시하는 시합이다.
이세계인들이 아니면 불가능한 스피드라고 할 수 있을까. 꽤 쇼맨십이 좋아서 기다리는 시간 없이 구경하기는 좋았다.
라리루라도 폭죽이나 포격처럼 화끈한 걸 좋아하기도 하고.
〈듀나미스 공방 평점…… 9점! 9점! 10점! 8점! 합계 36점!! 우승입니다!!!!〉
〈이, 이건 사기야! 듀나미스 공방은 골렘 전문 공방이라지 않았나!!〉
〈그 골렘에게 주는 무기는 사다가 붙일까봐요? 저는 공방의 본부 공방장! 아르마알스 후작가에서 디마케루스 길드장에게 정식 수료증도 받았어요!〉
어르신이 후원하는 드워프들. 그들에게 제대로 정수를 흡수하고 성장한 클라라다.
3시간 무적의 연전연승을 기록한 그녀의 성과에 박수.
〈어? 사장님?!〉
〈애미.〉
그러던 와중에 클라라가 날 알아봐서 단상까지 올라가기는 했지만, 대충 운동회에서 교장 선생님들이 할 법한 소감을 말해주고 내려왔다.
〈부인, 부인. 검도 괜찮죠? 링링이 9호한테는 날붙이도 달까요?〉
〈제안은 감사하지만, 주포를 늘려주시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요!〉
다음으로는 라리루라의 꼭두각시 상담.
창세의 권능으로 양산하는 것도 가능한 그녀다. 하지만 내부 구조를 하나부터 설계할 공순이 같은 능력은 없지 않은가.
〈클라라 씨가 만들어준 각 모델을 제가 필요할 때마다 늘려서 쓰는 게 낫죠!〉
〈군용무기의 기본은 양산, 품질 균등화니까요! 아, 사장님! 저 이 대회로 군납품 계약을 땄는데 보너스랑 직원 추가 고용은 예정대로 될까요?!〉
〈재무재표는 늘 흑자였으니까, 계획표만 짜서 오드리를 통해 올리세요.〉
잘 됐네, 잘 됐어. 권능과 병행하는 라리루라의 새 전법도 정돈된 듯 하고.
“……데뎃?”
그런데 그렇게 만족하려고 한 차였다. 나는 이 대회장에서 물러나는 인파에서 익숙한 뒷모습을 둘 발견했다. 오프툼/오드리. 오 씨 듀오였다.
“어? 뭐에요, 뭐에요?! 선배? 저 두 사람, 벌써 데이트까지 진도가 나갔어요?!”
“제대로 된 데이트는 아니긴 한데, 대충 맞음.”
“네?! 정말요?! 정말 데이트를 하고 있다구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긍정해주자 라리루라는 청천벽력처럼 경악했다.
‘왜 이렇게 과민반응이래?’
또 오버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다음 순간 들려온 길디 긴 한 마디에 입을 닥쳤다.
“데이트라는 건 최소 반년을 손가락만 빨면서 좋아하는 사람이 친한 언니들이랑 진도를 빼는 과정을 스킨쉽 한 번 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고행을 거친 뒤에나 간신히 가능한 거 아니었어요?!”
“……그, 미안합니다 내가.”
첫 데이트까지 온갖 수모를 겪었던 라리루라는 충격을 금치 못했고, 적나라한 사실의 나열에 내 주둥이는 재봉틀로 관짝에 못 박힌 틀딱처럼 싸물어졌다.
“선배! 선배! 얼른 따라가요! 이러다간 제가 1년 넘게 기다려서 아둥바둥 올린 결혼식을 100일도 안 되서 따라잡힐지도 몰라요!”
남편의 팔을 붙잡고 소돔과 고모라에 알몸으로 던져진 천사처럼 상식이 무너진 듯 매달리는 우리 후배님. 얘 진짜로 우는데 어쩌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그래, 가 보자.”
상식개변이 풀려버린 최면 어플 피해자를 방불케 하는 리액션이었기에, 나는 눈을 질끔 감고서 그 무례하고 무모한 요청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하는 일마다 만사형통이라 잊고 있었는데.
원래 내 인생은 원만하게 풀리는 경우가 없었지,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