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09화 (907/1,009)

오드리 헤스왈드는 복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기, 긴장되서 죽겠다……!’

배를 붙잡게 되는 원인은 다른 게 아니다. 연애활동의 부담감 때문이다.

미모가 꽤 반반한 오드리 아닌가. 연애 경험이 없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결국 서민의 연애는 풋풋하고 시시한 것.

스릴 중독 기질과 크리에이터 기질을 겸비하며 태어난 오드리는 괴도와 매직 아이템 제작에 비해 따분한 연애를 깊이 파고들어본 적이 없었다.

─꾸르르륵.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긴장감에 배가 아파졌다.

데이트도 벌써 2~3시간이 넘게 지났는데 망할 복통은 가라앉기는 커녕 계속 심각해질 뿐. 점심 식사로 먹은 게 살짝 상했던 걸지도 모른다.

‘이대로 가다간 망한다!’

적당히 밀당을 유지할 집중력조차 복근에 전부 투자해버렸다. 이러다간 매력을 과시하자는 원래 목적도 달성 불가능.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급한 볼 일이 생겨서! 죄송해요!〉

〈오드리 양? 잠깐, 어딜 가는 거요!〉

─후다닥!!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버리기 전에 그녀는 얼른 오프툼의 앞에서 사라졌다.

‘하아.’

그런 언니를 한 블록 떨어진 장소에서 관찰하던 캐서린은 또 한숨을 쉬었다.

오늘만 몇 번째 한숨인지. 세는 것도 잊었지만 돌아갈 수만도 없었다.

‘……못나긴 해도, 하나 뿐인 언니의 연애인걸.’

아니지. 오히려 못난 언니니까 더 걱정된다.

오프툼의 생각과 고민은 알 만 했다. 그렇기에 이 연애전선이 어떻게 흐르고, 또 어떻게 끝이 날 것인지 지켜볼 의무가 캐서린에게는 있었다.

직장 동료끼리는 연애하지 않는 게 낫다는 말도 있잖은가?

‘계기가 어쨌든 연심은 진짜인 모양이고, 제발 잘 마무리됐으면 좋겠──’

갑자기 드리운 그림자에 캐서린은 흠칫했다.

〈이런 데 계셨군. 혹시 뭐라도 떨어트리셨소?〉

〈네? 므, 뭐, 네?〉

오프툼이었다. 가판대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캐서린을 사냥감을 찾아내는 사냥꾼처럼 발견하고 다가온 것이었다. 캐서린은 입을 헤 벌렸다.

오프툼이 그녀와 언니를 착각해버린 것이었다.

‘……망했다! 오늘, 언니랑 같은 옷을 입었었어!’

괴도 시절, 2인 1역의 정보상을 연기하던 때의 버릇대로 저지른 실수였다.

실제로 헤스왈드 자매의 진짜 얼굴을 본 횟수가 한 손에 꼽으니까 그럴 만 했다. 달인의 감각마저 속여넘기는 현역 시절의 잔재에 기뻐해야 할까?

아니, 뒷감당을 생각하면 오히려 불행일 것이다.

〈앗, 그게, 꺄앗?!〉

설상가상으로 숨어 있던 자세가 안 좋았다. 확 물러난 그녀는 힐이 삐끗하며 가판대 옆에 직원이 뿌려둔 물을 밟고 미끄러졌다.

─쿠당탕!

캐서린은 벌러덩 하고 한심하게 쓰러졌다. 욱씬 하는 통증이 발목에 달렸다.

〈아야야……〉

발목을 잡은 캐서린은 눈물이 핑 돌았다.

눈가에 머금은 물방울은 아픔 때문일까. 아니면 자괴감 때문일까.

저 위풍당당하던 쌍둥이 괴도 스테이시는 어디로 갔는가.

어디긴. 요즘 살이 통통하게 올라온 뱃살 감옥에 갇혔지.

운동을 멀리 한 사무직의 비애였다.

〈아, 이런! 괜찮나? 내 미안하군.〉

잠깐의 장난기가 그녀의 발목을 삐게 하고 말자 오프툼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니르바나의 날쌔던 몸놀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실수였기 때문이다.

〈아뇨, 괜찮아요.〉

캐서린은 발목을 붙잡고 말을 골랐다.

정보상의 신분은 들키기 싫다. 축축한 엉덩이가 불쾌했지만 일단 손해가 없도록 오해를 잘 풀어야 했다. 그리고 돌아가면 운동도 다시 시작해야겠고.

〈아니, 이대로는 내가 괜찮지 않군. 자, 실례 좀 하겠네.〉

〈네? 무슨, 힉?!〉

─홱!

캐서린은 갑자기 몸이 붕 뜨자 화들짝 놀랐다. 오프툼이 그녀를 안아든 것이다.

무슨 옛날 이야기의 공주님처럼 안긴 캐서린은 자신의 체중과 흠뻑 젖은 엉덩이에 대한 수치심에 입을 벙긋댔다. 뭔가 말해햐 했는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공연 예약에 늦을 순 없지. 내 고용주님이 꽤 씀씀이가 좋으셔서 포션은 많소. 차분하게 연극을 즐기면서 치료하면 될 것 아니겠소?〉

〈고, 공연? 포션?〉

〈꽉 잡으시오. 조금 날 생각이니.〉

윙크를 날린 오프툼은 놀라운 각력으로 벽들을 박차며 건물 위로 뛰어올랐다.

─화악!!

현역 시절에도 느끼지 못했던 가속도. 순식간에 뒤바뀌는 시야. 뺨에 닿는 바람.

눈 깜짝할 사이에 캐서린은 높은 하늘에서 수도 전체를 굽어볼 수 있었다.

〈……아!〉

캐서린은 감탄성을 터트렸다. 축제를 맞이해서 치장한 로마니아의 자랑, 라벤나폴리스는 활기찬 한창 때의 소녀 같은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근사하다.〉

〈내 말이 그거요.〉

오프툼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부끄러움이 되살아났다. 젖은 엉덩이가 사내의 옷을 적실까 걱정되고 옆구리의 군살이 자꾸 괜히 신경 쓰인다. 강하게 조여든 가슴이 갑갑하다.

캐서린은 부유감 끝에 찾아오는 낙하의 감각에 사내의 목을 무심코 껴안았다.

가슴의 고동은 수치심과 놀람 때문일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그들은 다음 데이트 장소로 달려나갔다.

〈……선배?〉

〈네이, 마님.〉

그리고 멀리서 그들을 구경하던 라리루라는 두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갑자기 흥미진진해졌네요! 저, 이런 전개라면 마음에 들지도 몰라요!〉

〈응. 왜 니가 로키의 신좌에 적합한지 알겠다.〉

〈칭찬해 주셔도 제 키스밖에 안 나와요! 빨리 쫓아가죠♡!〉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데이트 상대한테 버려진 오드리는 어쩌고?〉

〈발퀴리에한테 맡기면 되죠! 빨리, 빨리♡!〉

재촉하면서 자기도 업어달라는 듯 팔을 벌리는 그녀.

노르드는 살짝 웃고서 라리루라를 들춰업었다.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그도, 꽤 관심이 동하고 있었다.

***

로마니아는 공연 문화가 발달했다.

문화가 꽃피는 게 척박할 때인지, 풍요로운 때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프툼이 보기에 공연만큼은 나르메르-나일보다 로마니아가 더 나았다.

〈아아, 원수는 갚았으니 여한은 없도다! 그러나 이 손에 남은 것 역시 없구나!〉

〈제가 함께 하겠어요, 나의 경이시여. 당신께서 살아갈 앞날에, 영원토록.〉

정작 그 공연의 내용은 고향 나르메르-나일의 것이었지만 말이다.

짧고 굵은 복수극이 끝나자 오프툼은 쓴웃음을 지으며 펜을 들었다.

‘일단 두 나라의 관계는 아직 양호한 듯 싶군.’

─사각사각. 노트에다 수집한 정보를 기록하며 오프툼은 납득했다.

로마니아와 나르메르-나일은 인연이 깊다. 동맹국이면서 악연으로도 이어졌다. 그 흑마법사 집단 임모르탈리스 같은 케이스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도 최소한 공연을 보는 시민들의 표정에서 불쾌한 느낌은 없었다.

‘그거면 됐지. 더 이상 나르메르-나일과 로마니아에는 전란이 없었으면 하니.’

팔려나가는 나르메르-나일의 상품도 꽤 호조인 모양이었고 말이다.

〈그거 아십니까? 나르메르-나일의 수도 이우누와 신전도시 이네브에는 태양신 아툼을 섬기는 교단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교단의 여신도들은 무려! 평소에도 옷을 입지 않는다는 겁니다!〉

단지 장사치들의 특징은 어디 안 가는지, 틀린 정보를 읊고는 있지만 말이다.

〈……기껏 호쾌하고 좋은 연극이었는데, 기분 다 잡치게.〉

연극에 박수까지 치며 만족하고 나온 캐서린도 기념품을 사러 왔다가 인상을 썼다. 오프툼이 픽 웃자 캐서린은 들릴락 말락하게 꽁알거렸다.

〈수도는 이우누에서 이전한지 오래고, 태양신 케프리-라-아툼은 보통 ‘라’라고 부른다고. 저런 잘못된 정보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오프툼은 그렇게 불평하는 캐서린이 신경 쓰인 나머지 목을 긁적였다.

자기가 본 적 있는 연극이라고 해 놓고는, 정작 복수가 성사되는 장면에서 신이 나서는 엉덩이를 들싹거리는 모습이라니?

‘이거 참.’

냉정하게 활을 쏘던 모습과 잘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면서,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저절로 행동 하나하나에 의문과 관심이 가고 마는 건 그래서다.

〈……오프툼 씨. 장신구 좀 봐도 될까요?〉

〈음? 아, 그러시게.〉

조르마라는 상인의 호객 행위에 작게 중얼대던 캐서린은 가판대를 둘러봤다.

브리타니아에서 굵직한 행상에 연달아 성공하고 본국에 가게를 차렸다는 남자는 신들린 입담으로 기념품을 팔아제끼는 중이었다.

반쯤 사기이긴 해도 가게 자체는 알찬 게 조금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간단한 기념품과 장신구들 중에는 그녀의 꽤 마음에 드는 것도 꽤 많았고.

‘생각해 보면, 장신구 같은 건 또 사 보네.’

가만히 발을 멈춘 그녀는 추억에 잠겼다.

철이 들고 나서는 정보상 ‘오드리 헤스왈드’로서 언니로 분장하며 살았다.

그녀가 꺼낸 제안이었고 괴도 짓을 계속하면서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의 고용주를 만난 것도 그 정보상 일 덕분이었다. 후회는 없다.

‘그래도 내 마음에 드는 장신구를 사 봤던 적은 없었지.’

다른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다. 캐러신이 언니를 흉내내는 것과 정보를 모으는 일 외에는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이었다.

〈상인 군의 입담이 제법이군. 저 구리 장식이 태양신 교단의 여신도들에게 선호되는 것도 거의 사실이고.〉

오프툼은 캐서린이 보는 장신구를 집어들었다.

〈이게 마음에 드시나? 조금 전에 저지른 실수를 용서해주십사 하는 마음에서 하나 정도 선물해드리고자 하는데, 어떻소?〉

〈제 돈으로 살게요. 신세를 지긴 싫어서.〉

〈으음. 그래선 내 마음이 무거운데?〉

받아주지 않겠냐는 듯 묻는 오프툼. 그의 호의에 당황하면서도 캐서린은 억지로 냉정하게 대답했다.

〈못 써요. 돈 귀한 줄 아셔야죠.〉

〈그리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잖소? 내가 저축을 잘 못하는 편이긴 한데.〉

〈그러니까 제가 살게요. 적어도 제 앞에서는 돈 낭비 못 하실 걸요?〉

오프툼은 눈을 껌뻑거렸다.

뭔가 잘못 말했던가 하는 생각에 캐서린은 멈칫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옛날에 똑같은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을 뿐일세. 그때와 비교해도 나는 나아진 곳이 없군. 아니, 오히려 퇴화했을지도 모르겠어.〉

아내를 떠올린 오프툼은 머리를 긁적였다.

〈잘 모르겠군. 행복해질 자격이란 게 뭔지.〉

캐서린의 눈동자가 우수에 젖은 표정에 흔들린 순간이었다. 극장에서 나온 남녀가 길을 두리번거리더니 찾던 사람을 발견한 것처럼 캐서린와 눈이 마주쳤다.

〈야호! 오프툼 아저씨, 우연이네!〉

〈오, 록스랑 록시 아닌가. 역시 자네들이었나? 우애가 돈독해 보여서 좋은걸.〉

극장 안에서 기척은 느꼈지만 굳이 말을 걸지는 않았던 오프툼은 표정을 바꾸고 미소지었다. 그런 그를 동생 록시가 음흉한 웃음을 짓고 톡톡 건드려댔다.

〈에이, 그러는 아저씨야말로 능력 있다? 이런 미인을 다 데리고 다니고. 나는 이렇게 좋은 날에 오빠밖에 에스코트해줄 사람이 없는데 말야.〉

〈하하하하. 우연히 우리 둘 다 축제에 용건이 있었을 뿐일세. 실상을 알고 보면 남매끼리 돌아다니는 것과 별 차이 없지.〉

〈뭐~ 야. 역시 그런 거야?〉

오프툼이 능청스럽게 얼버무리자 록시는 머리 뒤로 깍지를 꼈다.

〈으흠, 뭐. 그럴 만 하지? 아저씨는 아직 가족들을 먼저 떠나보낸 상처가 안 나았을 거 아냐. 그런데 연애나 새 살림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시기상조 아냐?〉

웃음을 띤 오프툼은 따로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가족을 잃은 게 그것과 무슨 상관이죠?〉

하지만 캐서린은 소름돋게 차가운 목소리로 그 매서운 눈매를 록시에게 겨냥했다.

〈불행에 꺾이지 않고 당당히 극복해낸 오프툼 씨의 삶은 숭고한 것이에요. 어째서 그런 그가 비열한 자들의 악의와 불행 때문에 남은 인생의 행복까지 포기해야 하나요?〉

〈……어? 어?〉

〈당신한테는 실망했어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꺼져주셨으면 하네요.〉

〈……뭐어어어어어?! 저기 있지, 오드리 당신!! 얘기가 좀 다르…… 우브븝?!〉

눈이 뒤집힌 록시가 으르렁대려고 했을 때였다. 오빠 록스는 날을 세우려는 동생의 입을 틀어막고 살며시 눈치를 살폈다.

‘동생한테 타이밍을 봐서 질문해 달라고 부탁해 놓고 저런 반응이라?’

그럼 이 아가씨는 오드리가 아니겠지.

‘쌍둥이 동생이 있댔나. 사정이 복잡한가 보군.’

선과 줄을 갈아타며 눈치 하나로 살아남은 용병단의 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이 실례했습니다. 이 일의 사죄는 다음에 꼭 하겠습니다.〉

〈잠깐, 오빠! 나는 저 배은망덕한 여자한테 한 마디 해야…… 아악!!〉

남매가 소란을 일으키며 끌려갔다. 그렇게 다시 2명으로 돌아온 캐서린은 자신이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입을 꾹 닫았다.

〈……죄송해요. 오지랖이었죠.〉

〈하하. 아니, 그렇지만도 않소.〉

오프툼은 장신구를 던졌다가 받았다.

〈우리 마누라와 딸내미는 내겐 과분하게 참한 이들이었지. 내가 복수를 다 마쳤으니 행복해져도 된다고 말해줄 거요.〉

〈……그러면.〉

〈내 고민은 다른 데 있지. 내 마음을 찢어놓은 작별의 상처를 다른 사람도 겪게 만들기는 실소. 이러나저러나 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니까.〉

캐서린은 순간적으로 확 올라온 말을 밀어넣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죽지 않는다면요?〉

〈그 누구도 죽음과 무연할 순 없소. 죽음마저 농락하던 흑마법사들도 그러했지.〉

〈……그럼, 그 작별의 아픔이란 걸 겪어도 될 만큼 나쁜 사람이면요?〉

〈허?〉

다가선 캐서린은 오프툼의 얼굴을 붙잡았다.

〈당신이 죽지 않도록 지켜주고── 정말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잃더라도, 그런 아픔을 받아도 될 만큼 몹쓸 짓을 해 왔던 여자라면요?〉

〈……누구 얘기요?〉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의 얘기죠. 당신의 곁에 있다면 무척 운명적일 누군가요.〉

그녀는 고민했다. 떠올린 생각을 실천할지 말지.

의미없는 고민이었다.

‘……이건 전부 언니를 위해서야.’

저 바보 언니는 언제까지고 진도를 못 뺄 것이 분명하니까.

캐서린의 일은 줄곧 언니를 돕는 것이었으니까.

결코 그녀의 과감한 결단의 대가를 언니가 대신 책임져 줄 거라는 얄팍한 계산도, 언니의 이름을 방패로 잠깐의 충동에 몸을 맡기는 것도 아니다.

─쪽.

첫 키스는 낯선 과일의 맛이었다.

조금 전까지 언니와 오붓하게 함께 먹던, 다른 여자의 맛이다.

〈……제가 선물을 받지 않으면 마음이 무거워지신댔죠?〉

입술을 뗀 캐서린은 달콤하면서 어딘지 쓰디쓴 맛에 동요하며 물러났다.

〈좀 더 좀 더 무겁게 느껴주세요. 그 부담감을 갚아주실 때를 기대할게요?〉

살랑…. 값을 치른 장신구를 흔들어 보이며 캐서린은 미소지었다.

오프툼의 손에는 어느새 캐서린이 보고 있었던 것과 같은 장신구가 들려 있었다.

벙쪄 있던 오프툼은 등을 돌리는 그녀를 보고 정신을 되찾았다.

〈오드리 양! 기다리게!〉

〈……죄송해요. 꼴사납게 배탈이 났나 보네요. 먼저 들어가 볼게요!〉

캐서린은 벙찐 오프툼을 내버려두고 도망치듯이 자리를 떴다.

쫓아갈 수도 있었지만, 발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오프툼은 몇 걸음 가다가 멈춰섰다. 그리고 손에 들린 장신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구리. 동(銅). 귀금속이지만 지나치게 귀하게는 여겨지지 않는 금속. 적당한 취급이기에 되려 더 사람들과 가깝고 친숙한 불그스름한 원소.

금, 은에 이어서 3번째를 상징하는 금속이다.

〈……………….〉

오프툼은 조금 생각하고서, 장신구를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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