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작복작!
─왁자지껄!
서점의 상태는 내 예상대로였다.
축제 셋째 날 개최된 서점은 엄청나게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듯, 손님의 행렬이 3블록에 달하도록 늘어섰을 지경이더라.
객관적으로 봐도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 맞았다.
축제 중인데 다른 놀거리를 포기하고 책을 사러 모였다는 뜻이니 말이다.
〈로마니아의 구세주, 여신 로키님의 전승이다!!〉
〈뭐?! 만언신 로키=로두르 님의 신화라고?!〉
〈여보. 나 1시간이나 줄 섰다? ……아들놈 거? 설마 줄을 또 서라고?!〉
〈만언신님의 혈통을 받은 바이콘 님들이 직접 편찬한 책입니까! 이 책 하나로도 역사서나 다름없어요! 느슨해진 게르마니아 역사학계에 긴장감을 주고도 남을 겁니다!〉
단지, 그 뭐냐.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제품의 이름이 살짝 예상과는 달랐을 뿐.
〈역사소설 【신대의 계보, 바이콘의 계도자】! 지금 구매하시면 주인공 나우디즈님의 1/7 인형도 함께 구매 가능합니다!!〉
〈네─! 황제의 폭거에도 말소되지 않고 이어진 진실된 역사! 한 번 보고 가세요! 오늘을 놓치면 또 언제 기회가 있을지 모릅니다!〉
〈10권, 아니 20권 주세요!! 제가 기필코 저희 대학과 도서관에도 기증할게요!!〉
〈몇 권을 구매하셔도 인형은 1인 당 1개에요.〉
〈……그, 그럼 10권만 주세요.〉
바이콘들이 호객할 것도 없이 장장 수십 미터의 행렬은 줄어들지를 않았다. 바이콘들이 거의 은행의 현금 세는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면 다나와 직원들, 픽트 인 사제들이 밤을 새가며 만든 작품은 어디 있는가?
〈……………….〉
이 세상 모든 것에 배신당한 얼굴로 앉아 있는 세르잔느 하이로메인 교수.
그리고 그녀 옆에서 마른 세수를 하고 있는, 저 옛날 누켈라비를 해치우며 만났던 얼스터 군락의 여족장의 뒤편.
그 그늘진 장소에서 악성재고처럼 쌓여 있었다.
판매량도, 그 뭐냐, 물어볼 것도 없을 듯 했고.
“……이거 꿈이지? 내가 깜빡 졸았나?”
다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뺨을 꼬집었다.
안타깝게도, 전부 현실이었다.
〈베르베이아 박사님!!!!〉
그러자 서점의 가판대에서 튀어나온 어떤 청년 하나가 따흐흑 하고 울며 결승골을 넣은 축구 선수처럼 슬라이딩 무릎 꿇기를 시전했다.
근데 뉘시지. 로키의 반지를 낀 날 못 알아보는 걸 내 지인은 아닌데.
다나는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침착하게 사탕을 꺼내서 물려다가 떨어트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이렇게나 안 팔리는 건 이상하잖아? 분명 충분히 팔릴 상품이라면서!〉
굴러가는 사탕을 주울 생각도 없이 다나는 무릎 꿇은 남자를 흔들어댔다.
〈예! 틀림없이 팔릴 상품이었습니다! 저, 글렌 헤르마이온! 출판업에 바친 20년 인생을 토대로 틀림없이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남자는 하소연하듯이 머리를 박으며 대답했다.
쓰벌, 누군가 했더니 셀레나의 오빠였나. 다나는 심호흡을 반복하다가 빼액댔다.
〈그럼 왜! 뭐가 문제인데! 어떤 개새끼가 수작이라도 부렸어?!〉
듣고 있는 장모님도 로마니아 말은 모르지만 돌아가는 꼴까지 모를 순 없었는지 이마에 손을 얹고 현기증이 온 것처럼 휘청대셨다.
붕붕붕─!! 글렌은 헤드뱅잉을 해대며 부정했다.
〈아닙니다! 그저…… 그저, 시장과 고객님들의 지갑 사정을 염두해야 했습니다!〉
〈지갑 사정?〉
셀레나 오래비의 말은 대략 이러했다.
─전쟁 직후엔 시민들이 소비에 보수적이 된다.
─원로원은 이를 타파하며 자본을 유통시키고자 축제를 개최했다.
─그러나 그 탓에 이 축제 중에는 돈을 쓸 곳이 많아졌다.
─반면 책은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상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 자체의 판매량이 높아지기 어렵다.
빠르게 시장의 흐름을 읊은 그가 고개를 떨궜다.
〈게다가 하필이면 오늘, 그 유명한 플랑궁클라 서커스단과 나르메르-나일의 유명한 예술 영지에서 찾아온 연극단의 공연까지 있어서 그만……!!〉
비틀….
다나는 졸업논문을 뺏긴 전직 키타이 노예처럼 휘청거렸다.
〈그, 그럼? 그럼 나중에라도 팔리긴 하겠지?〉
〈그게…… 축제 특수를 놓치면 판매량은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밖에는……〉
〈……역시 꿈이겠지? 응. 이런 게 현실일 리가 없지.〉
마무리 일격에 맞은 다나는 기어코 다리가 풀려 주저앉으려고 했다. 내가 얼른 받쳐안지 않았으면 100% 앞으로 쓰러졌을 것이다.
〈하. 푸흐흐. 푸흐흐흐흐…….〉
말기암 환자 같은 퀭한 눈이 날 발견하고 마른 웃음을 지었다.
〈시발, 내 남편 쉑 얼굴 좀 보게. 꿈에서 봐도 맘에 쏙 들게 생겼네……〉
〈누나. 정신 차려. 이건 현실이야.〉
〈………후후. 후후후후! 아─핫핫핫핫핫핫!!!!〉
그때 바이콘들 사이에서 귀청이 따가운 웃음이 들려왔다. 다나의 마른 웃음을 잼민이 손에 들린 고추잠자리처럼 작살내버리는 가가대소로군.
〈판매는 절호조!! 인기는 최고조!! 이게 사업의 참맛 아니겠어요?!!!!〉
〈후후후. 잘 말해주었느니라, 셀레나!!〉
─촤악! 우리 앞에 걸어나오며 쥘부채를 펼치는 2명의 미녀.
“이런? 어쩐 일이더냐? 생각보다 악재가 겹쳤던 모양이구나, 다나.”
“큭……!! 베로니카!!”
당연하지만 셀레나와 베로니카였다.
나는 베로니카의 등장에 활짝 미소지었다.
그에 맞춰서 으스대던 베로니카도 굳었다. 그래. 아직 염치는 남았다 이거지.
“때마침 잘 왔어, 우리 여신님. 그래서 저 듣도 보도 못한 나우디즈라는 놈은 누구고, 1/7 인형이라는 건 또 무슨 얘기인지 설명해보련?”
“……이, 익명의 아무개에 불과하다. 소설 내용 자체는 전부 진실이기는 하지만, 실존하는 주인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느니라.”
나는 말없이 1/7 나우디즈 피규어를 가리켰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깔. 창을 든 근육남.
나를 닮지는 않았지만 연상하기에는 충분했다. 아주 누가 보면 얼마 있을 의원 선거에 출마하려 홍보 때리는 중인 줄 알겠어.
엘리자베트가 보면 매국노라면서 정령왕이라도 소환할 것 같은데.
대놓고 이름만 다른 강 모씨의 피규어에 베로니카는 바로 풀이 죽었다.
“그, 그. 미안하다. 밤샘의 기세로 그만…… 주인님이 안 된다고 한다면 지금 당장 전량 회수하고 파기처분하마…….”
“……후. 됐다. 나쁠 건 없지. 홍보도 되고.”
나야 이미 유명인이고.
로마니아 지방영주 선거에 출마할 생각은 절대 없는데, 그래도 곧 길드로 승격할 듀나미스 공방을 고려하면 오히려 잘 된 일이긴 했다.
‘그렇다기보단 이러는 편이 확실하게 나아.’
역사소설이 얼마나 이미지를 조지기 쉬운데.
키아라만 해도 전기소설 같은 게 나왔다더랬지.
차라리 어떻게 컨트롤 가능한 내 신봉자들한테 맡기는 게 편할 것이었다.
나관중 피해자 연맹만 봐도 그렇잖은가. 나중에 아서왕처럼 꼬츄 떼이고 오리엔탈리즘 J-고등학생한테 헤으응 하는 창작물이 나오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마음대로 해. 대신, 너무 칭찬 일색으로 쓰지는 말고.”
“그, 그 점은 걱정 없다! 칭찬이 조금 많긴 하나 인기는 보다시피 이렇다!”
허락을 내려주자 기운을 차린 베로니카는 신이 나서는 다나한테도 외쳤다.
“보았느냐, 다나야? 아무래도 내기는 내 승리인 듯 하구나. 적장, 물리쳤도다!!”
쥘부채를 잔망스럽게 휘두르며 웃는 우리 펠라 핸들 여신님.
처음 듣는 소식이 연속에 또 눈을 찌푸려졌다.
“내기라니? 너희 무슨 내기 했어?”
─움찔. 다나가 내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베로니카가 쥘부채를 손바닥에 탁 치며 대답했다.
“별 건 아니다, 나의 그대여. 목표, 상품, 제작 환경까지 일치하다 보니 아무래도 서로 호승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 않으냐?”
“경쟁심이 붙어서 판매량 내기를 하셨다?”
“그렇느니라. 제안은 다나가 먼저 꺼냈지. 무얼, 걱정할 것은 없다. 따로 뭔가를 걸고 하는 승부도 아니니까. 굳이 따지자면 자존심 문제로군.”
듣자하니 이 너드 여신 콤비가 수마에 쫒기면서 하드한 스케쥴을 소화하다가 내기가 발생했던 듯 하다.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이렇게 망가진다.
“현재 판매고는 대충 봐도 우리의 압승이지.”
“큭, 으으으, 으으으으으……!!!”
부들부들…! 다나는 빨개져선 아무 말 못 하고 온몸을 떨어댔다.
눈치는 보였지만 별 수 있나. 자기가 이길 거라 믿고 먼저 내기를 건 건데.
그래서 베로니카도 마음껏 승리의 여운을 즐길 수 있었던 듯 하다.
“후후후. 분하게 여길 것 없다. 판매량의 차이가 곧 역사의 가치를 증명하지는 않느니라. 그대들의 의신(醫神)이 로키님을 치료해주신다고 하였으니, 내 이름으로 약조하마. 이번 판매 대금은 얼스터 인 부흥에 투자하겠노라고.”
쥘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우아한 비틱질 한 번.
이게 그 NTR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만.
‘그나저나 왜 얘는 귀족 영애가 돼 버렸지.’
일단 백작 부인이기도 하고, 어울리기는 한데.
셀레나랑 며칠 어울리더니 악영향이라도 받았나.
‘지금 말투도 낡은 책의 영향인 듯 하고, 이상한 건 아닌가?’
그러고 보면 베로니카는 바이콘 신족 기준으론 아직 성인(300살)이 아니던가.
망아지 모드였을 때의 체격도 다음 예지자였던 엘카보다 쪼금 큰 정도.
‘엘카의 외모 연령을 토대로 바이콘-사람 나이 변환으로 계산하면……’
……혹시 베로니카 쟤, 실질연령은 중2 정도인가?
“………………어?”
아니, 그 씨발 뭐시냐, 내 계산 착오라고 치자.
실제로는 100살은 가뿐히 넘었을 테고, 그녀는 당당히 성적자기결정권을 겸비한 성인이다. 시발 솔직히 저 가슴이랑 골반이 어떻게 14살.
고개를 맹렬하게 흔든 내가 생각을 전환하고자 셀레나를 보자, 그녀도 그녀대로 자기 친오빠를 상대로 깔깔대고 있었다.
〈오빠. 있지, 지금 어떤 기분? 응? 어떤 기분?〉
〈씨발! 이건 사기야! 순 타이밍 빨이잖아!〉
〈그 타이밍 빨을 살리는 게 상인의 능력이야.〉
주먹만 안 오가지 찐남매다운 분위기였다. 그런 대화에 다나의 귀도 쫑긋 섰다.
“……맞아! 야, 베로니카! 이 판매고는 거의 다 노르 덕분이잖아! 얘가 홍보 쎄게 때린 여파에 잘 탑승했을 뿐이면서!”
“정당한 평가로구나. 허나 그걸 고려해도 역시 우리 바이콘들의 신화가 글로서의 엔터테인먼트성 면에서는 조금 더 낫다는 증거가 아니겠──”
〈역사소설 【신대의 계보, 바이콘의 계도자】! 꼭 한 번 보러 오세요─!〉
바니걸과 노출 많은 메이드 옷을 입고 팜플렛을 돌리는 바이콘들.
베로니카가 꿈속 TV에서 본 마케팅 방법인가. 여신답게 미색은 줄충하다.
〈큼, 어흠……. 한 번 보러 가 볼까?〉
〈그, 그럴래? 어차피 우리 같은 옆구리만 시린 놈들은 갈 데도 없는데.〉
그 팜플렛을 받고 홀리듯 빨려들어가는 인원이 전혀 없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 못할 것이었다.
줄을 서는 동안 눈요기까지 돼 주는 바이콘들.
이 솜씨, 셀레나의 짓이 틀림없다.
“……그, 홍보는 중요하잖느냐?”
쥘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베로니카. 얼굴이 워낙 작아서 뿔만 튀어나오네.
“……엄마. 엄마도 한꺼풀 벗을래?”
“그럴까……?”
벗지마 알몸족 미치광이들아.
야만족 이미지를 타파하려고 그러는 건데 알몸 전통을 과시해서 어쩌려고.
그야 지켜나갈 가치가 있는 대꼴 문화긴 한데. 숲속을 거니는 알몸 미녀랑 몸에 문양을 그려넣는 섹시한 문화에는 로망이 있다. 엘프 빼고.
“……시발, 뒤졌어. 내가 포기할 것 같아?”
내가 다독거리자 에너지를 회복한 다나가 나만 들릴 정도로 속닥거렸다.
눈에서 불똥이 다 튀네. 다나(은)는 의지가 가득해졌다!
“의기는 좋은데. 누나, 일단 잠부터 안 자면 또 미친 생각이 나올 걸.”
“시꺼. 조금 잠이 부족한 정도가 딱 좋아. 창작 같은 건 원래 제정신으로 할 짓이 못 돼. 그러니 내가 아는 베스트 또라이의 협력이 필요한 거고.”
올해의 또라이를 찾으면서 왜 날 쳐다보시지.
“엄마! 여기서 잠깐 있어 봐! 가서 하이로메인 교수님 위로나 해 드리고!”
“어? 다나, 어딜 가려고 그래?!”
“일 좀 보고 오게! 몇 시간 안 걸릴 거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에도 우리 아내님 손에 에스코트 당했다.
다른 때라면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행복을 만끽하기 어려운 상황인 게 흠이다.
예지가 발동하지 않은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