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36화 (934/1,009)

***

이모텝의 마망, 아낙수나문은 시내의 한 교단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아침이 밝자마자 그녀를 찾아간 건 그래서였다. 대동한 건 베로니카와 티르시다. 굳이 설명할 것 없이 짭페르티티의 존재에 의구심을 가진 멤버다.

도시를 다스리는 밀프충 영주의 소개장은 효과 직빵이었다.

소개장 덕분에 우리는 바로 그 아낙수나문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그렇게 만난 ‘아낙수나문’은 남자애를 끌어안은 미령의 유부녀였다.

‘네페르티티랑 비슷하지만, 닮지는 않았군.’

무슨 뜻이냐고? 머리색, 피부색 등은 닮았어도 얼굴은 딴판이었단 소리다.

‘체형도 다르고. 하여튼 닮은 점이 거의 없어.’

입술 밑에는 점까지 있다. 매혹적인 유부녀라는 인상은 받을 수 있겠지만, 무뚝뚝한 미녀인 네페르티티랑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닮지 않았다.

우연일 가능성은 너무 낮고, 사칭범이라기엔 좀 허접한 분장이다. 당연히 진짜 아낙수나문을 알고 있을 우리랑 만나줄 리도 없고.

‘그런데도 당당하게 만나러 나왔다는 말이지?’

우연한 동명이인일까. 사칭범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나는 의혹을 들키지 않도록 사람 좋게 웃었다.

《하하. 여기, 제 아내를 못 알아보시겠습니까? 구면이라고 들었는데요.》

《네? ……아! 샤를로비스에서 뵀던!》

알아본 것처럼 손뼉을 치는 아낙수나문이었다. 이거 쬐까 당혹스럽군.

《그간 강녕하셨을까 모르겠네요. 우연히 들릴 일이 생겨서 찾아뵀어요.》

《아뇨, 저야말로! 소식은 들었어요! 결혼 축하드립니다!》

《감사해요. 아드님도 건강하셔서 다행이네요.》

티르시는 넉살 좋게 말하며 아낙수나문과 몇십 분을 대화했다.

주제는 육아부터 신변잡기, 투자처의 진척까지 다양했지만 대화는 청산유수였다. 거의 막히는 일 없이 계속 대화가 이어졌을 정도였으니까.

‘둘이 얼굴이 닮았다는 점에선 나랑 네페르티티보다 엄마아들 같긴 하네.’

나는 그런 그녀를 오딘의 눈으로 관찰했다.

수확은 없었다. 모자(母子) 모두 보통 인간이다. 만약 사칭범이라면 원래부터 머리색, 피부색 등이 아낙수나문과 이모텝을 닮은 인물이었을 것이다.

‘……흐으으음?’

나는 귀납법으로 가능성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생각나는 가능성은 2개인데.’

그다지 현실적이지 못한, 하지만 이세계 판타지 월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가설이 하나. 또 다른 하나는 대가리가 많이 부족한 사칭범일 가능성이다.

단지 아직 확신하기는 이르다.

내가 그 부분을 면밀하게 캐내고자 말을 걸려고 했을 때였다.

《공사다망하신 분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기 그지없답니다. 그렇지만…… 투자금 건이라면 지금은 말씀을 나누기 어렵겠어요.》

《무슨 사정이라도 있으신가요?》

티르시가 질문하긴 했는데, 사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낙수나문은 가상의 인물이다.

그 자본력이나 권력, 신분, 출신은 전부 다 내가 즉석에서 만든 것.

‘구라를 까다 나앉아서 으랏차차 짠돌이네가 돼 버린 것이군?’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면 이 나잇살이 살짝 눈에 띄는 유부녀는 100% 사칭범이다. 당연히 실제로 나만한 권력기반과 자본력을 가졌을 리가 없다.

내가 생각하고 있자 그녀의 말은 이어졌다.

《저는 로마니아 인 혼혈이에요. 본가는 로마니아에 있고요. 그런데, 제게 정기적으로 돈을 부쳐주시는 아버님의 배가 폭풍으로 좌초됐다는 소식이 들려서……》

《좌초라고요? 그거 재난이셨겠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시면 귀국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돌아가는 길은 같으니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오. 그럴 수만도 없어요.》

나는 만남을 계속하고자 선심 쓰듯 제안했지만 아낙수나문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저희는 목숨을 노려지고 있으니까요.》

《……목숨을요? 누구에게 말입니까?》

《그건……》

아낙수나문은 힘든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이모텝이 그런 그녀를 달래려는 것처럼 안았다. 더 물어보려던 나는 그만 눈을 찌푸렸다. 그들의 행동이 눈에 거슬려서는 아니었다.

나는 아직 오딘의 눈을 끄지 않았고, 그렇기에 몇 초 후의 일어날 미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탓!

예지대로 누군가가 신전 천장에 착지를 감행한 소리가 났다.

우지지직!! 콰드드드득─!!

그리고 착지와 동시에 일어나는 굉음!

불청객은 석조 건물의 천장을 알루미늄 포일을 걷어내는 인부처럼 뜯어냈다. 단숨에 이른 아침의 짜증 나게 눈부신 태양이 실내에 들이닥쳤다.

태양을 등진 습격자는 얼굴의 화상이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그녀가 저 호리호리한 팔로 신전의 천장을 뜯어버린 것이었다.

《찾았다. 나우넷의 이매망량.》

《세상에, 만디사!》

대경하며 일어난 아낙수나문은 이모텝을 감싸며 도망치려고 했다. 여인의 검은 그보다 더 빨랐다. 채찍 같은 사복검(蛇腹劍)이 그 앞길을 베었다.

우르르르…!

아들을 안고 도망치려던 아낙수나문은 눈앞에서 무너지는 출입구를 보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제 놓치지 않는다.》

만디사라고 불린 여인은 눈을 부라리며, 아낙수나문을 향해 돌진했다.

─스릉!

브류나크를 창으로 바꿨다. 예지로 본 9초 후의 아낙수나문이 습격자의 칼날에 머리가 터져나갔던 탓이었다. 죽게 놔두기도 여의치 않잖은가?

《떽!!!!! 네 이놈!!!!! 백주대낮에 아녀자를 편육으로 만들려 하다니!!!!!》

─크헝헝! 뱃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자후!

내 일갈에 유리잔이 깨지며 신전이 요동쳤다.

《비켜.》

좆도 개의치 않은 만디사는 나한테 주먹을 냅다 휘둘러댔다. 망설임 없는 안면 직행 코스였다. 내 핸섬한 얼굴이 초딩 입에 넣은 콩 송편처럼 작살날 핀치!

─탁! 나는 그 주먹을 가뿐히 흘리고 낚아챘다.

《와꾸를 노렸지만 살인은 피했군. 발롱도르에 10점 주겠어요.》

《……윽?!》

공격이 막힐 줄 몰랐는지 경직되는 화상 면상.

흔들리는 플레이트는 모험가의 상징이다. 무려 은색.

은일 리는 없으니까 미스릴 클래스다. 달인답게 혼란해 빠진 건 찰나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 아주 짧은 찰나를 몇 초 앞서서 보고 수십 초처럼 쓸 수 있는 남자!

《천! 지! 역! 전! 세!》

팽그르르르르─!!

나는 바다에서 다이버를 만난 상어처럼 그녀의 주먹을 붙잡고 원을 그렸다. 달인이 펼쳐낸 힘의 작용이 그녀의 몸을 회전시키며 엎어쳤다.

─쿠쾅! 벽에 부딪히는 화상 면상 모험가!

《크흡……!》

낙법을 취해서 업어치기의 충격을 죽인 그녀는 사복검으로 아낙수나문을 공격했다. 내가 만만치 않은 적이라는 걸 눈치채고 목표를 우선한 모양.

뻗어 나가는 사복검이 오러로 번뜩였다!

《캐치 유 이프 미 캔.》

─챱! 나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집었다.

화상투성이 얼굴이 눈을 부릅떴다.

《……말도 안 돼!》

《돼!!》

─쾅! 나는 앞차기로 그녀를 걷어찼다.

좀 전에 박은 벽에 또 머리를 박는 화상 면상. 그러나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벽을 박찬다. 새끼… 근성!

내가 힘을 조절했다지만 놀라운 의지력이다. 와! 프리스크!

와꾸가 미디엄 레어가 된 프리스크는 요란스런 지그재그 무빙을 보였다.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날 방해하지 마라!》

《모르면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플레이트를 보면 모험가인 모양인데, 노가다 공장에서 인성이 파탄나버린 40대 노처녀 경리 아줌마인 것?》

《비키라는 말을 무시하고 공격한 건 너다!》

《니가 먼저 쳤잖아 씹년아. 선빵쳤다가 개털리니까 놀라서 혀에 기름칠하죠? 그러게 좆밥이 왜 나대? 잘못해서 않해서!》

《군말 집어치우고 꺼져!》

《시발련이 왜 말이 안 통하지? 당신은 말하는 생선?》

우리 만언신님이 휴스로이트에서 바이콘들한테 응애응애 거리다가 오바스테 당했나? 그 멍청이. 그러게 누가 공짜로 얻어먹는 밥에 불평하래?

그도 아니면 저 화상 면상은 반숙을 좀 심하게 당해서 대뇌피질이 비가역성 단백질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번역 능력이 오류를 일으켰으니 남은 건 바디랭귀지(물리)밖에 없다.

내 합리적인 뉴런이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그렇군. 최종적으로 전원 조지면 될 일이야.》

아낙수나문이고 화상 면상이고 ‘제발 뭐든 물어만 주세요. 저희 비밀기지는 북한에 있어요’ 하며 울며 불 때까지 PT 체조를 시키면 되는 것이었다!

《폭력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

《기어이 방해하겠다는 건가! 그럼 다소의 부상 정도는 각오해라!》

벽을 박차며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던 적이 짧게 주문을 외웠다.

《내가 정한 것은 모두 정위(正位)에 있다(iw wD.n.i nb r st iry)!》

─쿠왁!

우리가 있는 방의 모든 그림자가 치솟았다.

그림자의 손이 손짓하는 밀실에서 화상 면상의 모습이 한순간에 소멸했다!

‘뭐지? 이상한데. 마약을 줄여야겠군.’

다나의 모유를 좀 많이 마셨나. 나는 그림자를 쏘아보며 창대를 역수로 쥐고 휘둘렀다. 휘날리던 그림자가 찢어지며 안에 숨어있던 적에 명중했다.

《아악!!》

짧은 비명. 무기를 놓친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눈가를 잘게 떨었다.

《첫눈에 간파했다고? 내 그림자를?》

─꽈악! 동요하는 그녀의 몸을 그림자가 조였다.

《그림자 흉내술. 성공.》

분석한 마법을 대충 흉내 낸 나는 수인(手印)을 풀었다.

단단하게 묶으려면 마나를 낭비해야 했다. 살짝 비효율적이군. 내가 자주 쓸만한 기술은 아니었다.

《……내 그림자를 조종했어?》

만디사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저항하길 멈췄다. 이모텝을 끌어안고 있던 아낙수나문도 힘이 빠진 것처럼 그 자리에 안도하며 주저앉았다.

개박살이 난 신전은 간신히 조용해졌다.

***

《울프헤딘 백작님! 마담 아낙수나문! 무탈하십니까!》

소란스러워지자 헐레벌떡 찾아온 사제들은 자기네 집이 치질 걸린 독재자의 항문처럼 씹창이 나 버린 꼴을 보고 세상에 마상에 거리며 기도했다.

《맙소사! 세크메트 모험가 길드장!》

아니, 착각이었다. 그들이 놀란 건 다른 이유인 듯 했다.

《……무슨 길드장이요?》

나는 멈칫했다. 때마침 지 혼자 멘탈이 흔들린 듯이 망부석이 된 화상 면상 습격자를 인간 스시 그릇처럼 테이블에 던져놓는 차였는데?

《거, 거기 계신 만디사 님은 세크메트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이십니다! 어떤 연유로 저분이 저희 신전에 묶여 계신단 말입니까?》

《……데에?》

세크메트 길드. 세크메트 길드…… 어디서 들어봤는데.

‘이런 씨팔. 네페르티티 회사잖아!’

게다가 지부장 급이면 저렇게 놀랄 리 없으니, 본부장이라는 뜻!

─부웅!! 나는 질풍처럼 움직였다.

눕혀놓은 만디사를 냉큼 세우고 그림자를 풀고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으시군요! 제가 이래 봬도 진찰을 좀 할 줄 알아서 어디 편찮으신 곳이 있는지 면밀하게 알아보았읍니다! 흐헤헤.》

《……그런가.》

너 병신이니? 딱 그런 느낌으로 보고 계신다.

뭐 시발. 그러게 자기소개부터 하든가. 자꾸 선 넘으면 네페르티티네 회사 상사고 염병이고 그냥 배 째는 수가 있어. 팍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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