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37화 (935/1,009)

***

내가 이 화상 면상 길드장님에게 친절하게 굴려 한 이유는 하나였다.

‘네페르티티가 모험가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잖아.’

그녀의 모험가 직업은 복수를 위한 수단이면서, 어릴 적 그녀를 길러줬던 하토르 교단에게 은혜를 갚는 수단이다.

‘세크메트 길드는 하토르 교단이 만든 하부기관이니까.’

암암리에 다 아는 사실이다.

아무튼 이런 사정 탓에 그녀와 시시콜콜한 잡담 등을 나누면서도 이쪽 얘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야 대부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로 이어지니.

그러니까 네페르티티에게 멋대로 ‘그쪽 대표랑 다퉜으니 일 관두십쇼’ 라고 말하기도 좀 그랬다.

남편인 내가 아무리 잘났다지만 그렇다고 우리 아내님들의 취미까지 묵살하는 건 쌉에바 아니냐?

대기업 임원도 아파트 부녀회장 아줌마나 아내 친구들과 대판 싸우고서 일이 다 끝난 뒤에 이제 집에나 있으라 그러면 정나미 떨어지는 거 순식간이다.

아직 섹스의 달인이 되지 못한─아마 앞으로도 가망은 옅은─ 네페르티티는 현재 침대에 못 박혀 요양 중.

내가 만디사에게 친절하게 군 건 그래서였다.

《어떤 사정인지부터 좀 들읍시다.》

《……저 여자가 있는 동안엔 말하지 않겠다.》

신도들을 물리고 대화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내 제안에 조건을 거는 만디사였다. 나도 괜히 언성 높일 여지를 남기긴 싫었기에 그렇게 했다.

─그렇다고 그대를 혼자 둘 수도 없느니라.

베로니카는 그렇게 말하며 남았다.

혼자 아낙수나문 모자를 지키게 생긴 티르시는 괜찮은 거냐고 묻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정 그러면 내가 대화를 빨리 끝마치면 그만이었다.

《쫓아내 주세요! 당장!》

《네, 네. 그렇게 할게요.》

아이를 안고 만디사를 표독스럽게 노려보는 아낙수나문을 빠르게 강퇴.

조목조목 살펴봐도 연기일 수가 없는 분노였다. 어미 된 마음으로 원수를 노려보는 시선에도 만디사는 말없이 자기가 부순 천장만 보고 있었다.

《이제 얘기를 나눌 마음이 드셨습니까?》

《……아니. 평소였다면 바로 그림자에 잠겨서 도망쳤을 거다.》

아니 이보셔요. 튀어봤자 나한테 잡힌다니까?

《그러나, 지금만은 아니다. 나도 네게 물어야 할 일들이 있다.》

《잘 됐군요. 하나씩 질문하고 대답합시다. 급한 건 서로 마찬가지니 제가 먼저 묻겠습니다. 무슨 이유로 저들을 죽이려고 하신 겁니까?》

뭐라고 반론하기 전에 질문부터 꺼냈다. 이 화상 면상 길드장의 질문이 몇 개인지 모르니 우선 한 번의 기회를 선점한 것이었다.

탈탈 털리고 얌전해진 그녀가 말했다.

《저들의 신분, 이름, 존재까지 전부 가짜니까.》

《가짜인 게 왜 죽이려 들 이유가 됩니까?》

《대답이 빠른 걸 보면 너도 알고는 있었나. 내 차례다. 어떻게 내 그림자를 조종했지? 내 무술은 다크 엘프 암살단에서 유래된 기술이다.》

암살단 수장도 나한테 잡히면 죽어 이년아. 난 바로 대답했다.

《제가 마스터 클래스라서요. 다시 묻죠. 저들이 가짜인 게 뭐가 문젭니까?》

《마스터……? 그렇군. 소문으로 듣던 그 울프헤딘이라는 귀족인가.》

아니 띨빡아. 진짜 날 못 알아봤던 거였냐고.

자랑은 아닌데, 이 나라에서 나는 꽤 유명했다. 아니, 미안. 구라다. 사실 자랑 맞다. 나는 뒤지게 유명했다. 업적은 물론 듀나미스 공방 때문에라도 말이다.

‘그런데 모험가 길드장 씩이나 돼서 나를 몰라?’

아예 세상의 정세에 무지했던 건 아니다. 내가 한 말에 납득한 걸 보면 소문 정도는 귀에 담아둔 듯 했으니까.

그런데 처맞기 전까지는 반항했다? 다시 말해서 그 정도로 만디사의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다른 데 신경을 할애할 여유가 없었던 거겠지. 오직 아낙수나문을 죽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가짜라는 것만으로 죽일 이유가 된다. 지나치게 비정상적인 신분, 존재. 그건 저놈이 나우넷의 이매망량이라는 발뺌 못할 증거니까.》

《나우…… 뭐요? 그건 또 뭡니까?》

《마스터 클래스라는 것만으로는 나의 그림자를 조종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너는 야트라우 강의 신들에게 축복을 받았나? 아니면 그들의 혈통을?》

정면에서 씹는군. 하지만 뻔하다. 도발이었다.

《어느 쪽도 아닙니다. 대화가 지지부진하군요. 피차 조금 더 협력적으로 돼 봅시다. 제가 보기에 나우넷 뭐시기랑 당신의 그림자는 같은 맥락에서 나온 질문인 듯 싶군요.》

그녀는 내가 나우 어쩌고 하는 얘기를 알아듣지 못하고 되묻자, 그 즉시 질문 종류를 바꿨잖은가?

일부러 날 궁금하게 만들어서 질문 사용을 유도했던 것이다. 그렇게 자기 질문권을 안 쓰고 궁금하던 걸 하나 간접적으로 대답받은 모양이었다.

말투가 딱딱한 데 비해서 화술이 대단한 인간이었다.

《정리해보죠. 당신은 다크 엘프 암살단이라는 곳에서 그림자 조종술을 배웠으며, 그 나우넷이란 단어와 ‘보통 사람은 내 그림자를 다루지 못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같은 맥락이겠죠.》

상대를 조금 얕봤다. 나는 엘리트 대갈통을 채찍질했다.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가네요. 당신이 얌전해진 건 그림자를 사용하는 기술을 간파당하거나, 자기 그림자에게 제압당한 뒤부터였죠.》

《……질문이나 계속해라. 나는 아직 묻고 싶은 게 남았다.》

《질문하기 위한 정리입니다. 고로 당신이 잃을 게 많은 신분임에도 아낙수나문을 노렸던 이유는 나우넷의 이매망량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됩니다.》

나는 그녀가 놓친 사복검을 위로 던졌다 받았다.

《내 그림자는 남들이 다루지 못한다. 다루려면 최소한 나르메르-나일의 신들의 혈통이 필요하다. 당신은 그렇게 여기고 있고, 그래서 저한테 저런 질문을 한 겁니다.》

《……………….》

《싸울 때는 그렇게 절대로 습격을 포기 안 할 것 같더니, 지금은 태도를 싹 바꾼 것도 마찬가지. 제가 당신의 그림자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게 아낙수나문의 살해보다 중요했던 겁니다.》

만디사는 무표정하게 말수를 줄였다. 거 보라고. 속내를 들킨 사람의 전형적인 리액션이지 않은가?

“베로니카. 나우넷이라는 게 뭔지 알아?”

나는 이 대화를 못 알아듣고 있을 베로니카에게 질문했다.

언젠가 로키한테 여력이 생기면 아내님들한테도 파파고 권능을 나눠달라고 부탁해 보든가 해야지.

“나우넷…… 누멘(Numen). 로마니아에도 있는 개념이군. ‘모든 것이 다 순종하는 신’으로 불리는 신적 존재다. 그러나 신은 아니다. 자아가 없으니.”

“역시 베로니카야. 또 있어?”

“누멘 멘티스(Numen Mentis). 신대의 로마니아 인들은 이 개념을 마음의 작용이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그러나 7대신 이후에는 사장된 개념이니라.”

말을 고르는 듯 생각을 좀 하던 그녀가 말했다.

“다른 신화체계까지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이 누멘의 원본이 되는 신적 존재는 나르메르-나일의 태초 존재겠지. 혼돈의 바다, 야트라우 강의 원류.”

“너무 그렇게 스카이림 설정북에 적혀 있을 것 같이 말하지 말아줄래.”

이세계인 특) 지식 자랑 좋아함.

전혀 못 알아먹겠다는 항의에 베로니카는 조금 토라졌다.

“알겠느니라. 내가 아는 건 로마니아의 개념뿐이기도 하고. 이 ‘누멘’은 영혼, 신성을 뜻하는 고대 로마니아 어다. 그들은 모든 것에 영혼과 마음이 깃든다고 믿었다지.”

“영혼과 마음이라.”

“따라서 개괄적인 신앙, 미신을 걷어내고 보면 나우넷이란 영혼과 마음을 의미한다. 이것보다 더 길게 설명하면 그대가 싫어하는 TMI…? 라는 게 되겠지. 애초에 추측에 불과하고,”

그럼 여기까지만 듣자.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영혼. 마음. 그것을 관장하는 존재.

“……아하.”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떠오르는 게 있었다. 영혼보다 뇌가 더 친숙한 지구인이기에 더.

“베로니카.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깃들까?”

“영혼과 육신 모두. 어느 쪽이든 변질되면 마음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느니라. 육신이 벌레, 괴물이 되거나 정신이 무너지면, 그 자는 사람의 마음을 잃는다.”

좋은 의견이다. 변이 마법으로 본질을 유린당한 사람들의 전례도 많고.

단지 나는 그녀의 의견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렇다면 영혼의 본질은 뭘까? 그건 기억이야. 생물의 뇌는 본능과 이성으로 결정되지. 이성이란 건 경험에서부터 나오고, 경험은 기억에서 나와.”

나는 대학원생이었기에 교수를 증오한다.

하지만 내가 대략 5년가량의 과거를 잃는다면? 기억상실증이 된 나는 지금처럼 교수를 증오할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고통을 겪지 않고도 원망하고 증오해? 내가 뭐 인터넷 혐오 문화에 물든 정신착란 범죄자냐고.

이 몸의 본능에 혐오감이 남아 있다면 모를까, 기억이 없어지면 사람의 성격도 바뀌는 것이었다.

베로니카 역시 5년 정도 기억을 잃어버리면 내 발기 자지를 보고 꺄아아악 하며 사랑스런 비명을 질러대겠지. 지금처럼 헤으응 쥬인님 거리며 입에 쏘옥 집어넣진 못할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인격은 기억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신, 영혼, 마음의 형태는 기억이 결정짓는다. 아마 내 말에 ‘아 지랄 노’ 하며 뻐큐를 날려대는 전문가들도 이 말이 100% 틀렸다고는 말 못 할 것.

“……나의 그대여?”

“의혹이 풀렸어.”

그 새끼다.

도적단 소굴에서 만난 아이클레이 새끼. 도적단 새끼들과 흑마법사 청년의 기억을 쪽 빨아먹고서 음식물 쓰레기를 대충 버려놓고 갔던 진흙.

사람의 기억을 빨아먹는 존재!

‘그놈이 나우넷이야.’

그렇지만 딱 하나, 해소 안 된 의문이 남았다.

그 의문을 해소할 기회는 운 좋게 마침 우리의 지척에 있었다.

《나우넷의 이매망량. 그렇게 부르셨죠.》

《……………….》

《아낙수나문. 정확히는 그 아들인 이모텝 말입니다만, 그 이름은 사실 제가 아내님들 몰래 만든 가짜 신분입니다. 이렇게요.》

─휘리릭! 룬 마법을 발동한다.

나는 잼민 모드 강북호로 변했다. 피부 색까지 바꿔놓자 만디사의 눈이 흔들렸다. 설마 나랑 저 가짜 마담에게 이런 전말이 숨겨져 있는지는 몰랐겠지.

《나우넷이라는 놈은 기억을 빨아먹는 존재죠.》

잼민이 강북호는 테이블에 흙발로 올라갔다. 이 무례함이 곧 촉법의 권능이로다.

《하지만 그저 빨아먹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 ‘다음’ 능력이 있어요.》

떠오르는 건 이 감옥에 갇혀 있던 흑마법사다.

나는 다시 어른으로 체형을 되돌리며 말했다.

《잠깐 따라오시죠. 신경 쓰이는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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