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38화 (93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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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저희 병사들이 잡은 흑마법사 말입니까?》

경비대에 찾아가서 영주의 편지를 보여준 나는 귀족의 신분으로 질문했다.

사실 편지 내용과는 무관한 질문이었지만, 흑마법사 사냥꾼 울프헤딘이 물어봐도 이상하지 않은 질문이잖은가. 경비대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 멍청한 놈, 하수도에서 퍼질러 자고 있던 거 아십니까? 약이라도 했는지, 감방에 처넣어도 몇 날 며칠을 내리 잤답니다.》

《흑마법사들이 다 그렇죠. 뭐. 욕망을 주체 못 합니다.》

어쩌면 오딘도 흑마법사였던 것 아닐까? 지식욕으로 보면 맞는 거 같은데.

만약 자지가 큰 흑마법사가 있다면 그놈은 아녀자들을 능멸하며 문어발을 걸치는 씹새일 것이다. 으으. 생각만 해도 불쾌하군.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지?

《그래서 어떤 게 궁금하셨습니까?》

《인적사항입니다. 그놈이 떼를 쓰며 만나게 해 달라고 비는 여자친구라는 사람도요. 가능하면 옛날부터 어떤 관계였는지 알고 싶군요.》

《아아. 그거라면 마침 오늘 출근한 녀석 중에 그놈과 같은 고향 출신인 녀석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 몇 년 알고 지낸 정도라곤 했습니다만.》

《경비대원 중에? 마음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위로하듯 건넨 주머니에 얼굴이 찢어지려는 듯 웃는 경비대장.

《바로 데려오지요.》

그는 3분만에 규율이 잡힌 병사를 데려왔다.

《충! 성! 경비대원 얀카!! 노르드 폰 울프헤딘 백작님을 뵙습니다!!》

《예이, 충성.》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새끼는 씹 폐급이다.

어떻게 아냐고? 관상이다. 딱 보니까 총기수입, 아니지. 무기수입도 안 했고 신발 끈도 건성으로 묶었다. 하지만 행동에는 기합이 빡 들어가 있다.

귀족 앞이어서? 설마. 3분만에 이렇게 준비할 수 있으면 폐급이 아니지. 유도리 있게 군기를 조절 가능한 능력자가 어떻게 폐급이야.

‘알 만하군. 흑마법사랑 같은 고향인 걸 들켜서 그렇겠지.’

그렇기에 적당한 용돈과 위로, 그리고 도와줄 수 있다는 말 몇 마디로 그를 구워삶기는 쉬웠다. 딱 5분 후에 그는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댔다.

《아니 글쎄, 제가 아는 그놈은 고향에 있을 땐 순 찐따였다니까요?》

《그렇군요. 8년 사이에 흑마법사가 됐다고?》

《예! 제가 보기에 그건 아마 여친이 바람나서일 겁니다.》

《호.》

바람이 났다고? NTR은 인정이지. 흑마법사가 될 만 하다.

‘하지만 감옥에선 그렇게 애틋하게 불러댔는데?’

내 미소는 차갑게 깊어졌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때 상경하려고 정신없었던 차여서 잘 몰랐는데, 아마 소꿉친구였다는 여친이 도시에서 내려온 양아치 놈한테 꿰였죠.》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자주 있는 얘기네요.》

《네. 그 찐따가 집에 빚이 좀 있어서, 그쪽으로 얽혀서 여친을 협박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근데 거, 제가 상경한 뒤에 양아치놈이 뒷골목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죽였군. 흑마법을 쓰진 않았겠지. 그랬다면 찐따였다는 놈이 수사망을 벗어났을 리가 없다. 여긴 흑마법사 추적의 프로가 즐비한 나라니까.

어쨌든 간에 여기까지라면 그럭저럭 들어줄 만한 복수극이다.

여기까지라면 말이다.

《잘 알았습니다. 그 고향이라는 곳은 어디죠?》

《여기서부터 일주일 이상 떨어진 서부입니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헤헤. 그렇죠. 사막에서 몬스터를 만났을 때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이길 수 있겠지만요.》

《더 정진해서 제 귀에 당신의 이름이 들려오면 좋겠군요. 그런데, 지금 그 얘기에 나온 흑마법사 새끼의 여친이 이 도시에 있다는 건 아십니까?》

《예? 아뇨, 그…… 만나보기 좀 그래서……》

《……흑마법사와의 연관을 의심받으니까요?》

─끄덕끄덕. 수긍하는 경비대원.

그렇겠지. 흑마법사가 애타게 찾아헤매는 여친 아닌가. 그녀와 만났다는 소문이 퍼지면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빌미가 잡힐 가능성도 있었다.

이 나라는 빨갱이 타령하던 탑골공원 할배들의 애비, 할애비들 시대를 닮았다. 흑마법사는 빨갱이 그 자체인 것이다.

하찮은 이유만으로도 사람이 감옥에 갇히기 딱 좋다는 얘기였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겠군요. 함께 가 봅시다. 당신에게 드리운 의혹의 시선을 걷어낼 기회에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갑자기 체포돼서 해고당할지 모릅니다?》

《아, 옙! 가, 감사합니다! 함께 가겠습니다!》

《바로 준비해 주십시오. 경비대장님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죠.》

휴가 개념은 있는지, 그는 자기 휴가를 하루쯤 까는 것으로 퇴근을 인정받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치만 일이 다 끝나면 포상 휴가를 받을지도 모르니까 니가 이해하렴.

《그, 그런데 좀 이상하군요.》

《뭐가 말입니까? 아, 여기 계신 분은 세크메트 길드장이십니다.》

《……예?! 그 세크메트 길드라고요?! 아, 아니, 실례했습니다. 그게 아니옵고, 그게, 왜 그 녀석의 전 여친이 이 아비주-소르그까지 왔을까요?》

옷을 갈아입고 우리를 안내하던 경비대원은 좀 불길한 듯 말했다.

《솔직히 제가 여기까지 온 건 반쯤 우연이기도 했습니다. 상경한 거라면 더 가까운 대도시도 많을 텐데, 굳이 고향에서 먼 이곳까지 왔다는 건……》

《정말로 흑마법사를 도우러 온 동료가 아닐까 싶다고요?》

《예!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그건 그렇다. 동선이 수상하다. 이 교통 좆박고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이 먼 곳까지 와서 섹스 삼매경이라는 건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기엔 좀 어색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냥 그럴듯하다고만 말하고 더는 언급하지 않았따.

만디사 역시 눈치챈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경비대원을 달래며, 그 흑마법사의 전 여친이라는 사람이 있는 여관으로 찾아갔다.

《아앙, 앙! 아아앙─!》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들리는 신음 소리. 나는 혀를 찼다.

《가서 데리고 와 주시겠습니까?》

《예, 옙!》

공포는 있겠지만, 경비대원은 신분사회에 거역하지는 못했다.

《백작님의 행차시다! 당장 튀어나와라!》

《귀, 귀족?! 이런 시발!》

잠시 소란이 있다가 엉거주춤하게 바지를 입다 만 남자가 튀어나왔다. 상당한 추남이었다. 쿵─! 우리를 보며 냅다 대가리를 박는 남자.

《백작님을 뵙습니다!》

《굳이 제 신경 쓰실 것 없고, 그냥 가시던 길 가셔도 됩니……》

나는 말하다 말고 멈췄다. 이 씨팔럼의 새끼가 베로니카의 허벅지를 힐끔거렸기 때문이었다. 내 입꼬리가 꿈틀댔다. 그래. 남자라면 그럴 수 있긴 해.

《근데 개새끼가 최소한 눈치는 있게 굴어야지? 뒤질려고 환장했냐?》

《예? 끄악──!!!!》

─콰앙!! 개자식을 좀 세게 걷어차서 기절시켰다.

죽이지는 않았다. 이 얼마나 자비로운가? 같은 남자끼리 본능을 이해해주는 마음이 없었다면 난 오늘 손에 더러운 피를 묻히게 됐을 것이다.

굳이 영지민을 즉결처형해서 영주랑 또 만나긴 귀찮기도 했고.

《깽값이다. 부러진 다리는 하토르 교단에 가서 고치든가 해라.》

대충 푼돈을 던져주고 남자가 나온 방에 들어간 순간, 역겨운 냄새가 피어올랐다. 베로니카는 눈을 찌푸리고 손을 휘저었다. 마법이 공기를 정화했다.

《어머……? 목소리로 짐작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미남자시네요?》

침대에 야릇하게 누워있던 여자가 말했다. 꽤나 순진무구하게 생긴 동그란 얼굴이 음욕에 가득차 있는 게 언밸런스한 음란함을 이뤘다.

《혹시나 손님이신가요? 긴 밤 3쿠퍼, 짧은 밤 1쿠퍼지만…… 백작님께서는 미남이시니 무료로 해 드릴 수도 있어요.》

가랑이 사이에서 하얀 액체를 흘리며 그녀는 내 고간을 살폈다.

크기 탓에 허벅지에 올라가 있는 내 야수 쥬지를 바로 간파하는 안목.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프로 창녀 그 자체였다.

《세, 세상에……》

그렇지만 경비대원은 베로니카가 오만상을 쓰는 동안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주저앉아 있다. 흑마법사의 전 여친은 불쾌한 듯 말했다.

《뭔가요? 설마 순결하지 않은 여자를 혐오하는 분? 이러니까 한심한 남자는…… 저처럼 가진 게 없는 여자가 다리를 벌려서라도 먹고 사는 게 뭐 어때서요?》

《너, 너, 너!! 날 기억 못 하는 거야?!》

《뜬금없이 무슨…… 아니, 잠깐. 당신…… 설마 얀카에요? 어쩌다가 그렇게 늙었죠? 상경했다더니 도시에서 몹쓸 경험이라도 겪은 거에요?》

마치 자기 지인이 한 30대 노땅이 돼서 찾아온 것처럼 말하는 여자.

《왜 늙었냐니! 8년이나 지났으니까! 그, 그러는 너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하지만 그에 대한 경비대원의 대답은 간단했다.

《왜 늙지 않았지? 10대일 무렵 그대로잖아!!》

《……네?》

노화를 극복한 흑마법사라도 본 것처럼, 공포에 잠식된 그는 허둥지둥 우리 뒤로 숨었다. 그런가. 이 새끼가 보기엔 진짜 흑마법사의 동료로 여겨질 것이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만디사를 돌아보았다.

《어떻습니까?》

《겉으로 본다고 간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알아낸 사실을 기반으로 하면?》

《……뻔하지.》

만디사는 눈을 반개했다.

《아낙수나문과 똑같다. 저 여자도 나우넷의 이매망량이야.》

그러시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처먹은 기억을 바탕으로 재현한 클론이라. 참 흥미롭네요.》

이 세상의 SF 요소는 고대유물만이 아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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