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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넷이란 생명을 낳는 태초의 혼돈이다.》
만디사는 허름하고 손님도 없는 여관의 식당에 앉아서 말했다.
《태양신조차 탄생은 나우넷에서 유래했다고 할 만큼 오래된 존재지. 폭풍, 화산, 파도 같은 자연현상보다 낡고, 하지만 자아는 없는 혼돈 덩어리다.》
《인격체가 아니라는 건 알았습니다. 그래서?》
《소멸했다고 알려진 존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거겠지. 아비주-소르그의 실효 영토는 꽤 넓다. 어딘가의 누군가가 나우넷의 조각을 주웠든, 부활시켰든 한 것일 터.》
《흐음.》
떠오르는 건 도적단 소굴이다.
도적단 놈들이 스스로 소환했을 가능성은 옅다. 흑마법사와 거래했던 것이거나, 혹은 나우넷이란 존재의 조각이 담긴 유물 같은 걸 잘못 건드렸나.
도적단 놈들이 기억을 잃어버린 지금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흡수한 기억으로 인간의 복제본을 만든 건 왜일까요?》
《그게 꼭 알아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인가?》
마치 귀찮은 질문을 해대는 과학 마니아 꼬마를 상대하는 듯한 리액션이다.
이유가 뭐든 사회망에 혼란을 일으키는 존재다. 해치우든 제압하든 빠른 조치가 필요한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긴 싫은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킬킬대며 끈덕지게 말했다.
《행동원리를 알면 예상도 가능하니까요.》
일반인은 범죄자의 사고방식을 이해 못 한다는 신조를 지닌 나다.
하지만 프로파일링과 이해는 별개의 문제였다. 왜 저러고 있는지를 알면 우리도 행동하기에 앞서 방침을 세우기 편하지 않겠는가.
《원본의 파편에 불과한 나우넷이 이유도 없이 인간 따위를 습격하고 있을 리가 없다. 누군가의 조작을 받았거나, 힘을 회복하려는 본능의 일환이겠지.》
《복제인간을 낳는 것도요?》
《태반의 생명은 물에서 태어난다. 이상하다고 볼 일은 아니야. 정 궁금하다면 실제로 놈을 찾아내고 나서 확인하는 게 빠르겠지.》
《단순무식하지만 나쁜 방법은 아니군요.》
탁상공론으로 왈가왈부하기에는 우리가 아는 게 너무 모자라기도 했고.
─톡톡. 그때 베로니카가 내 팔뚝을 건드렸다.
자기도 알아듣게 설명해달라는 거겠지. 간단히 줄여서 설명해줬다.
“……복제된 인간은 어떤 존재더냐?”
베로니카가 그런 질문을 하길래 통역을 해줬다. 나도 조금 신경 쓰였고.
《……기억에서 유래한 피조물이다. 구조는 원본과 같다.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며, 뼈와 살을 갖춘 피조물. 아마 인간의 자식도 낳을 수 있겠지.》
《하지만 아낙수나문은 실존한 인간이 아닌데? 라고 아내가 묻네요.》
《기억은 애매하고 모호한 것이다. 이 여관에서 본 여자를 잊었나? 돌려보낸 병사의 말에 따르면 저 여자는 원래 저렇게 방탕한 계집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눈치깠다.
《실제로 존재했는가랑은 무관하게, 기억 속의 이미지만으로 태어났다?》
《아낙수나문이라는 여자를 수상하게 여겼던 건 나만이 아니다. 마할의 영주도 이미 연맹을 통해 조사하고 있었지. 수많은 인간이 아낙수나문이라는 여자의 기억을 가진 상태였다는 거다.》
《개중 누군가가 기억을 흡수당한 모양이군요.》
나는 내가 영주에게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그때는 그저 나나 영주가 나우넷이라는 놈에게 기억을 빨린 적이 있을까 해서 건넨 질문이었다. 빼앗긴 기억을 잊으면 뺏겼다는 자각조차 없었을 것이니까.
하지만 이제 보니 굳이 영주가 아니어도 기억을 뺏길 사람은 많았던 모양.
─으적, 으적.
맛대가리 없는 저렴한 여관의 빵으로 적당하게 배를 채우는 만디사.
《저 계집도 이와 흡사하다. 흑마법사가 나우넷에게 빼앗긴 기억에서 ‘소꿉친구’는 자길 배신하고 남자와 뒹굴던 음탕한 여자로 남겨져 있었을 터.》
《그래서 기억 속의 이미지대로 음란한 여자인 채로 복제됐다고요?》
《이름을 못 남긴 사망자는 생자의 기억 속에서밖에 살 수 없으니.》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만디사의 얘기가 사실이라면 복제인간은 저 소꿉친구처럼 기억 속의 이미지만으로 만들어지는 것.
‘연맹원들은 아낙수나문이 실존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찾아다녔겠지.’
그들이 파견한 조사원들은 몽타주 등을 포함해 아낙수나문과 그 아들 이모텝이 어떻게 생겼는지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티르시와의 관계도 알았을 거고.’
그런데 귀족 연맹원이나 그 부하가 나우넷에게 저들의 인상착의나 행적에 대한 기억을 빼앗겼던 거라면?
‘실존한 적도 없는 부모자식의 복제품도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지.’
그럼 아낙수나문이 실존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저들의 기억에서 모순이나 오류는 적겠지.
기억을 빼앗긴 조사원이 생각했던 ‘가장 합당한 가능성’이 그대로 저 두 사람의 기억이 됐을 테니 말이다.
흑마법사의 소꿉친구랑 달리 배경 기억도 최근 일이니 시계열의 모순도 적을 것이다.
‘그 복제인간이 실존 인물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
복제인간의 원천은 사람에게서 뺏은 기억이니까.
막말로 나도 이 아비주-소르그의 모든 시민들이 허언증에 걸려서 ‘아, 전대 영주님은 존나 여장을 좋아하는 씹게이셨지’ 라고 말해주면 그런 영주도 있었는갑다~ 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았고, 혹은 존재한 적도 없는 인간이어도 내 기억 속엔 ‘아비주-소그르의 여장 게이 영주’라는 인간군상이 남겨지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간이라.’
철학적인 얘기군. 이건 진짜 SF인데.
《나로부터 할 수 있는 얘기는 여기까지다.》
─텅! 맥주를 원샷하고 내려놓는 만디사.
이 나라는 깨끗한 물보다 맥주가 싸다. 술을 못 마시는 놈들은 이 나라에서 모험가 짓은 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이제 알았겠지? 저건 인간이 아니다. 인간을 흉내낸 괴물의 새끼일 뿐.》
《저거? 아낙수나문 얘기입니까?》
《죽이는 걸 방해하지 말라는 얘기다. 해치우고 유물을 사용해서 나우넷의 위치를 알아낼 테니.》
《어디 있는지 알아내면 어쩌시게요?》
《……해치운다. 그러려고 온 거니까.》
만디사가 그렇게 말하자 베로니카가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내가 고개를 젓자 그녀는 입술을 닫았고, 내가 대신 말했다.
《아마 소용없을 겁니다.》
《뭐가.》
《제가 당신의 그림자를 간파한 권능…… 으음, 마스터 클래스의 초능력으로 알아봤는데, 저 아낙수나문과 그 아들도 육체나 영혼만은 그냥 평범한 인간이거든요.》
《……그 정도는 안다. 이미 말했을 터. 육체는 인간 그 자체라고. 어차피 내가 가진 유물은 시체에서 부모의 위치를 알아내는 물건이다. 어떤 존재인지는 상관없어.》
그건 또 무슨 유물이래냐. 아, 몬스터를 사냥할 때 소굴이나 부모 몬스터를 찾는 유물인가. 그게 인간한테도 적용된다니 뒤숭숭하긴 하군.
《피 한 방울, 살 한 덩이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인간과 같다면, 어떻게 태어났는가와는 무관하게 그들을 인간으로 봐 줘야 하는가?》
그녀는 감정을 추스르는 것처럼 눈을 반개했다.
《거짓으로부터 태어난 가짜 인간의 존엄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그거야말로 나우넷을 족치고 생각해 볼 문제 아닙니까.》
《……꼭 너희도 나우넷을 추격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응. 그렇게 할 거야.》
질문한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이쪽에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우리에게 걸어온 사람은 평소처럼 잘 울려퍼지는 옥음을 냈다.
《그렇지? 노르드.》
《정답입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네페르티티.》
《사랑의 힘. 러브 파워.》
내게 손가락 V를 보여주며 살짝 미소.
우리 사차원 아가씨가 표정이 점점 늘기 시작한 것에 기뻐하는 나랑 별개로, 만디사는 해가 서쪽에서부터 뜬 걸 본 것처럼 넋이 나갔다.
《……정말 네페르티티냐, 너?》
《가짜 같아?》
《……진짜 너는 임모르탈리스 토벌 때 죽었고, 여기 있는 너는 가짜라고 말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을 듯 싶기는 하다. 많이 변했군.》
《사람은 변해. 기억이 변하는 것처럼.》
네페르티티의 뒤에서 티르시도 얼굴을 비췄다. 손을 흔들며 물었다.
“아낙수나문은요?”
“지금은 진정하셨어요. 그건 그렇고, 사정이 꽤 복잡해 보이는걸요.”
“별로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늘 있는 일이고요.”
찾고, 싸워서, 이기면 그만인 일이다.
나는 손을 털고 일어났다.
“로키를 부릅시다.”
신대의 존재라면, 마찬가지로 신대의 틀딱들이 더 잘 알 것이니.
***
“야트라우 강으로 갔겠지.”
쉬다가 불려와서 좋은 날 다 갔다는 표정이었던 틀딱 여신은 설명을 듣자마자 얼굴이 진지해졌다.
“힘을 회복하려 한다면 그럴 거야. 나우넷이라.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호호 웃던 게 엊그제 같은데, 늘그막에 와서 정말 별 경험을 다 하네.”
“야, 야트라우 강이요?! 너무 범위가 넓어요!”
프랑이 기함하며 말했다. 나름 자기도 기감으로 나우넷을 찾는 걸 도우려는 마음이었던 모양인지, 수백 km는 될 강을 전부 뒤져야 하나 싶어 띵한 모양이었다.
“뭘 그리 놀라니? 기억을 빼앗아대고 있다면서. 하지만 너희랑 만났을 때는 건드리지 않았고. 그 점과 옛날 이쪽 대륙의 새대가리 신들한테 들었던 얘기를 종합해보면……”
로키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다가 말했다.
“사악한 존재의 기억만 노리고 있는 모양인데. 그럼 여기서 제일 가까운 야트라우 강변을 토대로 흑마법사들의 소굴 같은 데를 찾으면 되지.”
“만디사한테 듣기로는 실종사건이 있었다고 함.”
“이 동네 사람들이 ‘저어는 흑마법사에용! 인간 마시써!’ 하고 다니진 않을 거 아냐. 니들이 찾은 놈들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며칠 기절했겠지.”
“나타나질 않으니까 실종 처리가 됐다는 것?”
“기절한 장소나 시간 나름으론 죽었을지도.”
그렇군. 납득하는 나와 눈을 찌푸리는 다나.
“인성파탄자만 노린다? 무슨 놈의 습성이 그래. 생전에는 착한 신이었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묻는 다나. 로키는 마차 안에서 발을 까딱였다.
“사마귀나 거미의 행동을 보고 선악을 따지니? 글쎄…… 인간 기준의 악행을 분간하고 꺼리지는 않았다니까, 사악하다고 말해도 틀리진 않을걸.”
“그냥 몬스터라고 보고 해치워도 됨? 나름 유서 깊은 신적 존재라매.”
“해치워버려, 해치워버려.”
─홱홱. 무책임하게 손을 젓는 로키.
“사악한 존재만 노린다는 건 인간들이 영향을 준 거겠지. 인간에게 영향을 받을 정도로 몰락하고, 또 조그만 파편이라면 이미 신적 존재도 뭣도 아냐. 네 말처럼 몬스터일 뿐.”
“쿨하네.”
하긴, 신들끼리도 서로 전쟁하곤 했다는데 진짜 신도 아닌 나우넷에게 굳이 위선적인 동정을 베풀 이유도 없다.
지금의 나우넷은 거의 좀비 같은 거기도 하고.
라리루라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자초지종은 이해가 갔는데요, 사악한 존재들의 기억만 흡수하게 시킨 건 왜일까요~? 그 감옥에 갇힌 기억상실 아저씨가 개과천선해서?”
“그럴 리 있겠느냐. 선량한 사람들까지 노리면 금방 눈에 띄니까겠지. 필시 흑마법사들부터 습격해서 보다 사악한 지식을 흡수하려 한 것일 터다.”
팔짱을 끼며 의도치 않게 가슴을 과시하는 듯한 포즈로 베로니카가 말했다.
머리 위에 전구가 켜진 듯한 라리루라.
“아하! 흑마법사가 죽는 건 아무도 나쁘게 보지 않을 테고, 들킬 일도 적겠네요! 그렇게 지식부터 흡수해서 강해질 생각이었던 걸까요?”
“그래. 지하감옥에 갇혀 있다던 그 흑마법사가 도둑놈들을 써서 나우넷의 파편, 또는 그 파편이 봉인된 유물 등을 찾아냈던 게 아니겠느냐.”
“골렘 연골이나 훔치던 놈들이 잘도 해냈네.”
심지어 내 연골은 있지도 않았다. 이미 처분한 것일 텐데, 십중팔구 그 감옥의 흑마법사 새끼가 빼돌렸을 것이다. 흑마법사는 골렘을 쓰니까.
이러니까 흑마법사 던전을 털면 보물이 나오는 거구나. 피해자는 웁니다.
이제 와서 캐물으려 가자니 이 씹새끼가 기억을 잃었네? 흑흑 내 돈 시발.
“좋은 일이잖느냐. 분수도 모르는 멍청이들이니 망정이지, 정말 사악한 흑마법사가 완전히 통제에 성공했다면 보통 참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어? 그럼 지금은 통제에 실패한 거야?”
“그렇고말고. 프랑 너도 들었잖느냐. 흑마법사, 그리고 도적단은 기억을 잃었다. 방향성을 주는 건 성공했지만 신적 존재의 파편을 지배할 실력자는 아니었다는 거지.”
“하. 유물을 잘못 건드려서 대참사라니, 진부한 옛날 얘기도 아니고.”
“이세계 알리바바와 도둑은 모두 뒤졌다. 유감을 표하도록 하지.”
내가 낄낄대자 다나도 픽 웃었다.
“어쨌든 냅두지 못할 이유가 있긴 하네. 굵직한 놈들은 전부 니 손에 대가리가 깨졌다지만, 혹시 진짜 실력 있는 흑마법사가 남아서 그 나우넷이란 걸 통제하면 좆 되잖아.”
“그러게나 말이야.”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범죄도구라니. 범죄자들의 손에 들어가서 좋을 게 하등 없었다. 이 나라에다 흑마법사들이 또 똥을 싸질러놓게 생겼으니 냅둘 수도 없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면 나한테도 안 좋으니까.’
이 나라에 터 잡은 골렘 사업도 그렇고, 미래예지의 적중률도 그랬다.
덜커덩, 덜컹─!
그리하여, 우리는 달리는 마차의 방향을 틀었다.
행선지는 야트라우 강 하류.
목표는 클론을 낳는 에이션트 슬라임.
‘후딱 해치우고 로키의 수술도 끝내자.’
그러면 이제 남은 일은 없고, 귀가하기만 하면 그만.
돌아가는 길에는 워프 장치가 없으므로 선박을 구해야겠지만, 그게 좋다.
‘7P 난교가 멀지 않은레후!’
나는 아내들 몰래 전의를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