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47화 (946/1,009)

아내님들과의 섹스를 마치고 짧은 잠에 든 나를 깨운 건, 대포를 연발하는 듯한 사나운 폭음이었다.

쿵! 콰광─!

쥬지를 덜렁거리며 알몸뚱이로 날아다니는 내가 하늘에서 그 해상전(海上戰)을 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브류나크를 불렀다.

“빼액──!”

바로 나타난 브류나크가 내 팔에 앉았다.

“네가 나온다는 건 꿈속이겠군.”

눈을 만지자 권능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눈을 본 브류나크가 고개를 기웃대며 까악거렸다.

“삐에야 쀼뺘?”

“예지몽이냐고? 비슷한데 좀 달라.”

대충 옷을 만들어서 걸치며 그 녀석의 머리통을 쓰다듬어줬다. 검지로 긁는 정도였지만 기분 좋은 듯 우는 브류나크.

“아즈테카 때처럼 거의 같은 시간대의 어딘가인 듯 한데.”

고작 1초 뒤의 일이라도 미래는 미래잖은가.

시간과 공간은 표리일체다. 시공간을 뛰어넘은 오딘의 눈이 지금 이 세계의 어느 바다에서 실제 발생 중인 해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흔해 빠진 해적은 아닌 듯 하지만.”

내가 그렇게 중얼거린 건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선단 때문이었다.

쾅! 콰과광─!

마법을 발사하는 선단으로부터 중소형 배 여러 척이 급하게 도망쳤다.

도망치는 쪽은 무역선일까? 무장이 빈약했다.

하지만 무장이 충실한 전선(戰船)이어도 결과는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벌써 배를 2척이나 가라앉힌 선단은 무려 11척으로 구성된 유령선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낯익은 생김새의 배들은 돛이 부러지고 용골이 붙은 배 밑에 구멍이 났는데도 잘만 움직였다. 그 유령선들에서 발사된 마법이 마지막 무역선을 가라앉혔다.

꼬르르르…!

가라앉은 배의 선원들에게는 불운이 겹쳤다. 그 난파선이 소용돌이에 말려 들어간 것이었다. 아마 생존할 가망은 지극히 낮을 것이었다.

─풍덩!

배가 가라앉자, 유령선에서 해골이며 좀비들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쀼?”

“뭔가를 인양(引揚)하려는 모양인데.”

유령선이 무역선을 습격해서 물자를 노린다?

이상한 이야기긴 했다. 나는 시점을 낮추고 그 유령선단에서 가장 큰 배를 찾았다. 딱 봐도 제독 정도 되는 놈이 탈 듯한 배였다.

배의 갑판에 암회색 가스덩어리 같은 고스트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손가락에 반지를 잔뜩 낀 고스트는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면서 지휘를 마쳤다. 그렇게 잠깐의 예지몽이 끝나며 의식이 현실로 부양했다.

“흐음.”

예지에 나온다는 건 조만간 마주칠 가능성이 꽤 높다는 뜻인데.

“상황을 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겠군.”

나는 중얼거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

기상한 나는 정찰용 발퀴리에들을 띄웠지만 몇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딱히 보고가 없었다.

그렇다고 저 뭔지도 모를 놈들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도 웃긴 얘기다. 우리는 밥을 먹고 제각각 느긋한 크루즈 여행을 즐겼다.

나는 파라솔을 세운 썬텐 의자에 누워서 혼잣말 하듯 말했다.

“그럼 차원이동 연구에는 진척이 있었겠군요?”

─네. 차원 마법 연구의 최선두였던 히타이트의 수도를 발굴했으니까요. 뛰어난 연구진들이 손상 없이 많은 자료를 복구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화 상대는 아셰라드 학회장이었다.

발굴한 유물과 바이콘들의 은근한 협력으로 딱 완성된 원격 통화 아이템이다. 아직 보급 가능한 수준에는 여러모로 못 미쳤지만 이럴 땐 편하다.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만, 우선은 혈액을 토대로 다른 차원에 있는 가족…… 혈육의 좌표를 찾는 탐색기술부터 확립할 겁니다.

“죄송해하실 것 없습니다. 동기는 중요하죠.”

아셰라드는 차원의 틈에 빠져서 실종된 자식을 찾고자 차원이동 연구를 하는 사람이다. 의욕적이 될 수밖에 없는 동기에 초를 칠 마음은 없다.

‘게다가 나한테도 고마운 연구방침이고.’

차원 건너편의 혈육을 찾는다!

나도 부모님에게 편지를 보낼 생각이니 정말로 고마울 뿐이다.

저 기술이 확립되면 내가 나우넷의 진흙으로 본 차원 좌표도 합쳐서 정확하게 지구 차원의 우리집 부모님들 근처에 편지를 뿅 날려보낼 수 있겠지.

─감사합니다. 단지…… 현 단계에서도 몇 가지 문제점이 산견돼서……

“말씀하십쇼.”

─우선 마나량입니다. 출력 문제가 아닙니다. 이 차원이동 기술 자체가 공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니, 마나가 충만한 지역에서밖에 실행하기 힘들 듯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저희는 아즈테카의 서부 해안을 기점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끄응.”

나는 그만 신음을 흘렸다.

“저 밀림은 장기 체류가 불가능한데요.”

─숙지하고 있습니다.

“골치 아픈 얘기군요.”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이나 평범한 공간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본다는 소리였다. 위험을 감수해서 저 우신들의 옛 영토에 가야 할 만큼.

“저희 조금만 더 생각해 보죠. 그 플랜대로 진행했을 시의 성공률은요?”

─차원문을 열고 물질을 안전하게 원하는 좌표에 전송할 가능성은 6할 미만으로 보입니다. 물질이 취약하거나 무거울수록 더 낮아지겠죠.

“……현실적이지 않군요. 수치부터 듣죠.”

─알겠습니다. 우선 차원벽 변곡률은 0.419%를 기초치로 잡고……

나는 그녀가 말한 수치를 썬텐 의자 옆 탁자의 종이에 옮겨적었다.

“대강 이해했습니다. 우선 성공률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추가 연구를 부탁드립니다. 몇 개월쯤 더 걸릴지도 모르지만 차분하게 진행해 주시길.”

연락을 마친 나는 썬텐 의자에 몸을 뉘였다.

─첨벙, 첨벙!

골 아픈 생각을 멈추고 갑판에 만든 수영장이나 감상하는 나.

“언니. 헤엄치는 법은 제대로 배우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자, 제 손 놓고요. 하나 둘~ 하나 둘~. 다리로 물을 차 보세요. 언니 힘도 세시잖아요♡?”

“……라리루라. 드워프는 물에 안 떠.”

“억설이네요☆ 지방은 물에 뜬답니다?”

권능과 마법을 동원해서 만든 수영장에서 우리 아내님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창창한 햇볕을 쬐며 느긋한 바캉스 같은 한때였다.

“자, 손 한 번 놔 볼게요~? 몸에 힘 빼고~.”

“꼬르르르르륵…!”

“힘주시고, 물 밖으로 고개 내미시고~.”

“꼬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와오☆”

거의 델몬트 병처럼 묵직하게 수영장에 침몰한 프랑이었다.

프랑이 수영을 못 했던가? 하긴 목욕탕 정도가 아니면 헤엄치는 건 못 봤었지. 바다에 갔을 때도 우리 프랑은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었고.

나는 나름 흐뭇한 광경을 감상하며 실실 웃었다.

“근데 햇볕에 탈 텐데, 선크림 안 발라도 되나?”

“그깟 자외선에 데미지 받을 우리 피부가 아님.”

개털머리가 물기에 더 웨이브진 다나가 머리를 말리며 다가왔다. 물에 젖은 비키니는 왜 이렇게 야한 건지 모르겠네.

“우리가 피부를 태우려면 베로니카가 룬 마법의 태양광 레이저로 지지는 정도는 해야 할 걸. 당장 나만 해도 직사광선을 맞았는데 따갑지도 않고.”

“하긴 누나는 횃불로 때려도 후끈하고 말겠네.”

납득하는 나였다. 일반인들을 기준으로 잡기엔 아내님들이 좀 강하지.

“마누라를 때린다는 발상이 물 흐르듯 나오죠? 너 이 가부장제 마니아쉑. 경비대에 신고했습니다.”

“오. 포상금 나오냐? 고기 사 먹자, 고기.”

“10골드를 받았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험금 전액 즉시 지불.”

“아니 시발 내가 뒤졌는데요?”

무친년. 몇 대 말로 때렸다고 바로 무덤 파주는 것 봐. 진시황도 부랄이 쪼그라들어서 저 광년은 수은으로 라면을 끓여줘도 멀쩡하겠네 할 거야.

“뭐, 됐다. 베로니카?”

“응……? 불렀느냐……?”

여름철에 에어컨 바람을 쬐는 개처럼 개헤엄을 치며 얼굴이 풀려 있던 베로니카가 첨벙대며 가까이로 왔다. 수영장 벽에 기대고 엎드린 그녀에게 질문했다.

“네 권능으로 차원이동 기술 연구는 못 해?”

“어렵겠지. 공격마법 쓰듯 한 번에 시전하기엔 규모가 너무 크다. 그렇다고 장기적으로 발동하고 연구하자니 내가 권능의 소모를 못 따라가고.”

“흐응. 근데 지금 상태에서도 꽤 도와주고 있지 않아?”

다나가 그렇게 묻자 베로니카는 미소지었다.

“그래. 권능을 발동해도 미래의 기술을 이해한 건 아니니까 필기해 두는 것도 여의치 않다만, 그 상태에서 몇 번인가 시행착오 데이터를 보내줬다.”

“벌써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 이유가 있네.”

“흐흥. 당연하다. 내가 체득한 주인님의 힘이니.”

으스대는 게 귀여워서 나는 트로피컬 쥬스를 쭉 빨았다. 열대식물 열매를 발퀴리에들이 악력으로 짜서 만든 생과일 쥬스였다.

“서두를 건 없겠지. 마나가 충만한 공간이란 게 쉽게 발견되진 않겠다만.”

“그보다 마나가 충만하단 건 어떤 공간이냐?”

“땅의 지력하고 똑같아. 농사처럼 마법을 써서 자연 상태의 마나가 소모되거나 하지 않은 곳들. 이건 인위적으로 채워넣을 방법도 마땅치 않고.”

“구분은 어떻게 하느냐? 나는 지맥을 찾는 원시적인 방법밖에 모른다.”

“영감이 민감하면 더 편한 방법이 있지.”

나는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전집중 파문의 호흡이다.

“습-하-습-하.”

바이츠니아의 아무개 양반들을 줘패고 습득했던 마나 연공법이었다.

폐를 통해서 들어오는 마나는 극미량이다. 단, 내 감각은 그 마이크로 분량의 마나를 정확하게 그램 단위로 잴 수 있었다. 습득력은 하등 구리지만.

“아, 저도 그거 할 수 있어요~!”

서핑보드를 안고 헤엄치는 프랑을 냅두고 손을 흔드는 라리루라.

맞다. 저 후배님은 나랑 섹스할 때마다 마나를 찔끔찔끔 빨아가는 핑크 서큐버스(보지 3급)니까. 한 7~8년 정도 계속 섹스하면 마나통 존나 커질 듯.

다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글쿠만. 그걸로 흡수한 마나의 분량으로 자연 상태의 마나량을 잴 수 있다? 보통 사람은 뒤지게 차이 나는 곳이 아니면 분간 못 하겠는데.”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음.”

적당히 이 방법과 〈공간이동〉을 반복해서 몇 곳 돌아볼 생각이다.

─쪼옥, 쪼옥! 식물로 만든 빨대를 빨고 있는데 쥬스가 바닥나고 말았다. 내가 입을 떼자 뒤에서 다가온 티르시가 뺨에 서늘한 컵을 갖다댔다.

“자요. 시원하죠?”

“우효옷~ 티르시 마망, 믿고 있었다고~.”

“아주 시발 좀만 잘 해주면 다 느금마지?”

“불효옷~ 하여튼 다나 마망은 잔소리 주머니만 빵빵하다고~.”

“느그 마망 2호은 인내심 주머니도 빵빵하단다. 안 그랬으면 이미 니 등에 칼자국 몇 개 늘었어.”

“등짝의 상처는…… 응애의 수치(數値)다…….”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맞은 횟수가 많을수록 애기라는 뜻이다.

‘응애, 나 아기 척척석사. 학위논문 쓰기 싫어.’

빨리 써서 내든가 해야 금장을 딸 텐데. 학계에 2계급 특진이 없어서 그렇지, 아틀란티스랑 엮어서 자필로 몇 개 써내기만 하면 석사 탈출도 금방일 건데 말이다.

어머니의 여래신장이 괜히 그리워지는 하루였다.

“데프프프…… 뎃?”

그런데 적당히 아내님들의 호법을 받으며 잠깐 소주천을 마치자, 놀랍게도 내 폐에 어둠과 음의 마나가 조금 깃들어 있는 게 아닌가?

“……바다에 시체라도 있나?”

나는 오딘의 눈으로 그 희박한 마나를 쫓았다.

마나가 느껴진 곳은 네페르티티가 낚시를 하는 곳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네페르티티가 낚싯대를 휙 당겼다.

“……월척.”

첨벙─!

바닷물이 튀면서 기절한 남자가 낚시찌에 걸려 매달렸다.

“……사람? 아니면 해양생물?”

오늘 처음 낚시를 해 본다는 네페르티티는 쿨한 얼굴인 채로 고개를 모로 꼬았다.

“해양생물…… 인간의 모습…… 변신…… 별의 자손?”

“아니, 그냥 조난자겠지. 바보야?”

다나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둠과 음의 마나는 그의 몸에 걸린 저주였다. 본인이 다루는 게 아니고, 남이 저주를 걸어둬서 마나가 감지되는 것이었다.

‘저주를 달고 다니는 표류자라.’

그 무역선의 탑승객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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