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50화 (949/1,009)

“그 카드의 출처를 아십니까?”

내 기분을 살피는 듯 하던 델타사가 질문했다.

아무리 영웅담 같은 걸 보고 내 인품에 대해서 신뢰를 가졌다곤 해도, 상황이 상황이다. 내가 좀 싸이코패스 기질이 있으면 토사구팽하고 아셰라드한테는 대충 야부리를 털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용기를 낸 것이었다. 형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시군.

“아뇨, 그냥 개인적인 얘기입니다. 이 장물은 돌려드리겠습니다. 가지고 계시다가 학회장님께 보고하든가 하십쇼.”

“여부가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그니까 왜 나한테 사과를 하냐고. 나는 묶어둔 스펙터들을 데려왔다.

“회수한 카드는 연구의 재료로 쓰이든, 불문에 부치고 당신의 소유권을 인정해주든 하겠죠. 혹시 매물로 나오면 저나 학회장님이 구매할 테고요.”

델타사는 얼굴이 좀 풀렸다. 유일한 단서가 될 거라고 믿고 품에서 떨어트려 놓지도 않은 카드를 마냥 잃어버리지는 않을 듯 해서 안심한 모양.

”많이 지치셨습니다. 들어가서 쉬고 계십쇼.”

“괘, 괜찮습니다. 아직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학회장님의 지인이신데, 몸이 상하면 제가 더 곤란합니다.”

“그…… 네, 가, 감사합니다.”

귀족이 존댓말까지 꼬박꼬박 써주면서 말하는데 자기가 어쩌겠는가.

게다가 더는 도움이 될 만한 일도 없다. 빠르게 그 사실을 눈치챈 델타사는 발퀴리에들을 따라서 선실로 내려갔고, 나는 스펙터들을 눕혔다.

“스펙터, 심문해?”

“아뇨. 영혼이 지나치게 열화해서 대화 자체가 성립이 안 될 겁니다.”

인간 마스터 클래스였던 7대신도 죽음을 피하진 못했다.

고대 초~중기가 신을 잃고 혼란의 시대였다는 걸 감안해도, 인간의 수명은 200을 넘기 힘들다. 특수한 권능이 없으면 평범하게 천수를 누려봤자 그 정도겠지.

우화등선 불로불사 메타가 없다는 게 슬프지만 그게 현실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이 영혼들도 똑같아.’

내가 울프헤딘의 힘을 써도 지성 자체가 없으니 대화가 통하겠는가.

나는 그들의 하울링을 파파고로 해석했다.

─도굴꾼을 용서치 마라……

─쫓아라…… 죄인을 벌하라……

스펙터들의 말은 지리멸렬했다. 비슷한 경험이 하나 떠올랐다.

“유니콘 흑마법사 새끼한테 사로잡힌 영혼들이 딱 이랬는데.”

“아비두스.”

“넹. 그때 놈이 쓰던 영혼은 흙에 갇힌 시체의 영혼이었는데, 인격이 거의 열화해서 병자처럼 몇 마디 말을 반복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시체마다 죽은 날짜의 차이도 있었을 것이고.

이 새끼들이랑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난 델타사가 쓰고 남은 나우넷의 진흙을 퍼올려서 그 스펙터들의 대가리에 대충 부었다.

“2번째부터는 쉽군.”

베로니카는 말하지 않아도 마법을 발동했다.

떠오른 과거의 기억은 그들이 살아있던 시절의 영상이었다. 과연 신적 존재라고 해야 할까. 수백 년 전의, 본인도 잊은 기억인데도 화질은 좋았다.

─제독님! 출항 준비 완료했습니다!

스펙터랑 닮은 듯한 남자가 외쳤다. 그가 보고 있는 남자는 피부가 하얀 마법사였다. 로브를 휙 걸친 제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어떤 놈들이지?

─예! 영맥탐사기와 지력 재생장치를 빼돌려간 간첩들입니다!

─훌륭한 개자식들이로군. 선원들한테 전해라!! 파라오의 해군과 아즈테카에 친교를 맺으러 가기 전의 마지막 항해다!! 육지에서 마누라 엉덩이를 오래 주무르고 싶으면 빨리 끝내라고!!

─제독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빈둥거릴 텐데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유부남은 다 똑같군. 실은 나도 그래.

낄낄대던 제독은 커틀러스를 뽑아 들었다.

─우리 히타이트의 마도구를 훔쳐간 놈들이다!! 쥐새끼 한 마리 놓치지 말고 돌려받아 와!! 극광 함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승전을 거둬라!!

군기 잡힌 선원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충 봐도 규율이 제대로 잡힌 군대였다. 아마 뺑끼 치기 바쁜 예비군들을 보며 혀를 차는 꼰대 별들이 보면 물개박수를 치다 마이클 잭슨 콘서트처럼 떼거지로 기절하지 않을까?

팔짱을 낀 다나는 반신반의하며 말했다.

“이 유령들이 고대문명 시절의 해군이었다고?”

“무슨 물건을 되찾겠다느니 어쩌니 했네요!”

“되찾는다. 간첩. 빼돌려……? 장도 환수군이네.”

“장도 환수군?”

“그러니까…… 다른 나라의 간첩이나 매국노가 빼돌린 물건을 환수하는 해군이야. 황금시대에는 해로로 군사기밀 같은 걸 빼돌리는 일이 횡행했다 그러더라고.”

머리카락을 만지며 암기한 기억을 떠올린 우리 눈나의 설명이었다.

나도 알긴 알지만 지금은 양보하기로 했다. 말 많은 놈이 둘이나 떠들어대면 이해하기 더 힘들어지기만 할 거고.

“기술력이 곧 국력을 의미하던 시대잖아. 국가 기밀을 빼돌리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강구하고, 또 그걸 막으려고 여러 사단을 쳤다는 기록이 있어.”

“음? 물건을 훔쳐서 배에 탄다는 말이냐? 그걸 또 배로 쫓아가고?”

“좀 의아하지? 그니까 간첩들도 의표를 찔려서 해로를 쓴 거겠지. 뱃사람을 심어두거나 포섭해서 일단 바다에만 나오면, 그 뒤로는 항해하는 동안 검문당할 일은 없을 거 아냐.”

“아, 하긴. 육로랑 달라서 바다에는 꼭 거쳐가야 하는 관문도 없구.”

프랑이 저항하는 스펙터를 골렘으로 제압하면서 손뼉을 쳤다.

“그게 전문 병과까지 편성될 정도였나요? 저는 귀족 시절에 역사를 조금 배웠지만, 완전 생소한 개념의 수군인데요……”

“몇 년 정도만 존속했던 관제(官制)였다더라고. 연표를 따져보면…… 맞네. 아스틀란 대륙으로 첫 대항해를 나갔던 무렵 아니냐? 남편놈아.”

“어. 맞음. 세계사에는 등재 안 됐으니 티르시가 모를 법도 해요.”

교양 지식으로는 굵직한 사건은 알아도 거기서 활동한 군대의 이름이나 역할까지는 안 배우니까. 그게 남의 나라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조금 더 사색을 거친 우리는 이들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아즈테카에서 히타이트의 문명을 발견했었지? 우리 암무나 호랑 호환되는 해도도 남아있었고.”

“맥락은 통하는군. 간첩들이 바다로 빼돌리기는 텄다고 보고 시들시들해지니까, 장도 환수군도 더 이상 놀려둘 수 없게 됐겠지.”

시대의 흐름에 따른 TO의 변화는 불가피한 일.

하지만 히타이트는 문명국가였고, 저 군인들의 군기를 보면 그냥 감축해서 해고하기엔 아까웠다. 지구랑 다르게 사람이 군용장비 수준으로 귀중한 세상이니까.

“다른 직책으로 발령 나길 기다리다가 아즈테카 대항해에 참여했겠네요. 히타이트에서 본 흔적은 이 사람들의 동료가 남긴 거였겠죠.”

티르시는 추리를 정리하듯 입술을 만졌다.

“당장 배치 가능한 해군── 맡은 임무가 없던 장도 환수군을 나르메르-나일의 항해 제안을 받고 파견한 게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다음엔……”

“해안선에 상륙하고, 전멸.”

서쪽의 밀림 지대에 착륙해서 괴멸했거나, 우신 ‘개지 않는 새벽’의 영역을 침범했다가 하이드로펌프에 맞고 뽀글뽀글 가라앉았겠지.

굳이 따지자면 가능성이 큰 건 전자였다.

“유령선이 돼서 떠다닌다는 건 살아남아서 복귀하려 했지만, 항해 중에 죽고 말았던 모양이구나. 혹여나 우신을 맞닥뜨렸다면 아즈테카의 인근해에 가라앉았을 터.”

“혹시 모르긴 해. 보스 스펙터는 마스터 클래스 정도는 되는 것 같……”

나는 꿈속에서 본 스펙터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씨발. 그래도 안 되겠네. 자신의 영토에 앉아서 권능 풀버프를 받은 우신을 상대로 맞짱을 뜨는 건 아무리 마스터 클래스여도 미친 짓이지.”

해양 몬스터들에게 배가 부서졌든, 독에 중독된 채로 돌아오다가 바다 위에서 치료 못 하고 죽은 게 아닐까? 뭐, 확실한 내막까지 알 필요는 없나.

맥락은 대충 감 잡았다. 남은 건 우리의 대처다.

“……꽁무니 빠져라 도망치기, 어려워?”

“모르는데스. 보스급 스펙터의 원념으로 강화된 암무나 호가 8척 남았다고 생각하면, 으음. 준내 힘들겠네요. 저희가 배를 잘 다루는 것도 아니고.”

귀찮은데 그냥 해치울까?

‘아니, 이건 조금 오만한 발상인데.’

자신이 있긴 하지만 무대뽀로 들이박는 건 조금 다른 얘기다. 어느새 내가 나한테 좆발린 병신들 같은 사고방식에 물들고 있지 않은가?

‘굳이 득 볼 일도 없는 싸움은 피하는 게 낫긴 해.’

아니면 우리가 먼저 역공하는 게 나을 것이다.

─끼릭끼릭. 베로니카는 내 맘을 눈치챈 것처럼 진흙을 조작했다.

“뭐하게?”

“진흙이 메마르기 전에 최근 기억을 알아보마. 스펙터들은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을 잃었겠지만, 나우넷의 진흙이라면── 흐음?”

호기심에 눈을 빛낸 베로니카가 턱을 괬다.

“나의 그대여. 이것 좀 보거라.”

“어디 어디. 뭐길래…… 뎃?”

스펙터들의 기억이 비춘 건 어떤 섬이었다.

유령선들이 정박된 하얀 모래사장의 섬! 배들과 섬의 분위기가 존나 안 어울리는 게,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나오는 데비 존스의 지옥처럼 화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단지, 정말 근사한 해변이라고 보기에는 뼈들이 굴러다닌다는 게 문제다.

‘죽은 해군들인가. 스펙터가 못 된 녀석들이군.’

그래도 나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뭐여 시벌, 유령선 주제에 산통 다 깨네.”

이 유령 새끼들, 섬에 정박해서 유물들을 어느 동굴에 감춰두는 게 아닌가? 존나 해적들이나 할 법한 짓거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시부랄, 유령선이 돼 갖고 섬에 정박하고 보급하고 그러기야?’

유령선이라면 주구장창 바다를 떠다니는 호러물 단골소재 아닌가.

근데 뭔 사람처럼 보급도 하고, 휴식도 취하고 지랄이지.

남자의 로망을 하나 잃은 기분이었지만, 가만히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이 새끼들, 장물을 모아두고 있는 건가?”

“……생전의 망집이로구나. 죽어서도 살아있을 적의 임무를 잊지 못하고, 바다를 떠돌면서 히타이트의 유물을 찾아서 안치해두는 모양이지.”

가엾다는 듯 고개를 젓는 베로니카.

그들은 섬에서 쉬는 게 아니라, 거의 폐품처럼 망가진 유물들을 애지중지 보관해놓고 다시 배에 올라탔다.

히타이트는 황제와 별의 자손들에게 역사를 말소당했다. 유물도 거의 발굴되지 않았기에, 당연히도 저들이 모은 건 대부분 바다 밑에서 건진 쓰레기들이었다.

팔짱을 낀 다나가 말했다.

“이거 델타사를 탓할 것도 없겠는데.”

“그러게. 해저에 가라앉은 히타이트의 유물들을 찾아낼 방법이 있을 테고, 그런 레이더가 있으면 우리 배도 조만간 목표가 됐겠지.”

우리 인벤토리에 히타이트의 유물만 몇 개던가.

그리고 그것들이 걸리지 않아봤자 암무나 호는 브리타니아가 생기기도 전에 휴스로이트의 영주가 히타이트에게서 빌려온 선박이었다.

느긋하게 자동항해를 하며 놀고 있던 우리들은 머지않아 저 유령선단과 마주치게 됐을 것이다.

“베로니카, 잠시만요. 일시정지 좀 해 주세요.”

그때 갑자기 눈을 찌푸린 티르시가 홀로그램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해안선을 보세요. 섬이 통째로 감춰져 있네요.”

“듣고 보니 그렇구나. 공간을 통째로 은폐했어. 작은 섬이라서 가능했을까. 우리 일족의 성지들과 비슷한데, 이건 쓸모가 있을 듯 하구나.”

“무슨 쓸모?”

내가 묻자 베로니카는 머리를 꺾으며 말했다.

“숨겨진 섬이다.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히타이트 해군들을 위한 은폐 정박기지일 터. 그것도 지난 수백년 간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오?”

“앗, 차원이동을 시도하기 좋은 곳이라는 거야? 마나가 충만해서?”

“장기간 자연 상태의 마나가 보존되어 있다면.”

베로니카가 긍정하자 프랑의 얼굴이 밝아졌다.

─휘익! 라리루라가 아크로바틱하게 일어서서는 소리쳤다.

“네, 네네! 제가 들어가서 살짜쿵 보고 볼게요! 진흙 목욕이네요!”

“ㅁ, 뭐라? 라리루라, 굳이 그럴 건──!”

“렛츠 다이빙♡!”

풍덩─! 나우넷의 진흙을 권능으로 확대하고서 다이빙하는 라리루라.

“라리루라?!”

경악한 프랑이 진흙과 나를 번갈아 가며 들여다봤다. 라리루라가 길을 걷다가 갑자기 맨홀 구멍에 빠져버린 듯한 리액션이군.

“노르! 라, 라리루라는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기억 속의 환경에서 마나 연공법을 사용해 볼 생각인가 본데.”

마나량이 충만하다면 티가 확 날 테니까. 나는 우리 집 핑크 머리의 생각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그만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차분함이 없어서야…… 생각이 났다고 다짜고짜 무모하게 행동하면 어쩌자는 건지. 저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맘고생 하는 건 우린데.”

“……노르드, 그런 말 할 자격 있어?”

“존나게 동의함. 니나 잘하렴 쌍놈아.”

“중상모략인 레후.”

“푸하─!”

라리루라는 대화가 1분을 넘기기도 전에 밖으로 나왔다.

“네에, 확인했어요♡! 저 유령섬…… 시체섬? 은 마나가 엄청나게 충만해요! 눈대중이기는 하지만 아즈테카나 카네쉬보다 더요!”

“흥미롭네요. 그리고 슬픈 얘기기도 하고요.”

묵념하는 티르시. 네페르티티가 그런 그녀에게 신기한 것처럼 눈짓했다.

“왜 슬퍼?”

“저 스펙터들은 흑마법사가 아니에요. 리치처럼 사후에도 수백 년을 살 정교한 기술이 있겠어요? 천수는 우연과 행운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어요.”

그렇다. 미련과 한이 짙게 남았다고 수백 년간 죽고도 이승을 쏘다니는 포스의 영이 될 수 있다? 트루-리치 에퀴녹스 애비도 빡쳐서 부활할 것.

”제독이 생전에도 강력한 마법사였기에 우연히 원념만으로도 영혼이 잔류한 듯 하지만, 보통이면 저렇게 바다를 헤매다가 영면에 들었을 테죠.”

“응……. 그게 자연적인 유령의 수명. 불멸하는 존재는 없어.”

“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들이 오고 가던 섬은 천부적으로 마나가 무척이나 충만한 곳이었어요.”

…깜빡, 깜빡. 네페르티티의 눈이 동그래졌다.

“……섬에서 활동 가능한 마나를 얻었어?”

“결과론이죠. 저들에게 그럴 만한 자아는 없을 테니. 그저 생전의 명예와 책임을 잊지 못했던 게 행운으로…… 아뇨. 불행으로 작용한 거예요.”

영혼에 대해 박학한 네페르티티는 말을 더 듣지 않아도 눈치챘다.

“……유물을 안치하러 갈 때마다, 이승에 남을 힘을 얻어.”

그녀는 조금 전까지와는 눈빛이 좀 달라져서는 진흙이 고갈되며 사라지는 섬의 영상을 살펴봤다.

“그래도, 저래서는 쭉 악순환. 평생 안식을 얻을 수도 없고, 고통과 원념 속에서의 무의미한 수백 년을 반복할 뿐.”

과거를 잊었다면 망망대해를 헤매다 힘을 잃고 소멸했을 것이었다.

기억이 없으면 유물을 환수하고 섬에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니까.

하지만 저들은 생전의 미련만으로 이승에 남은 유령!

잊지 못한 미련과 한은 그들을 움직이게 하고, 자아를 잃은 바다의 지박령으로 떠돌게 만든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성은 희미해지고 부정적인 원념만 남겠지. 대자연을 상대로 영혼을 갈아가는 생지옥의 순환이다. 존나 시부랄 시시포스의 형벌 같다.

“……노르드.”

네페르티티가 말을 걸었다. 나는 듣지도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히타이트의 유물은 앞으로도 해로로 운반되곤 할 텐데, 그때마다 자기가 죽었다는 것도 까먹은 유령들이 초를 치러 오게 둘 수는 없죠.”

“……응. 쉬게 해주고 싶어. 조금 위선적일까?”

“아뇨. 행동하는 위선은 선이라고도 하잖아요? 남을 가엾게 여기는 측은지심을 나쁘다고 비난할 만큼 인간성이 맛이 간 또라이는 아니라서.”

손해를 보는 싸움은 아니다. 섬을 확보하면 저 신용카드가 날아온 우리 고향 푸른별에 처음으로 컨택트를 취할 환경이 마련되니까.

‘게다가 대부분 폐품이지만, 힐끗 보니까 쓸만한 유물도 있고.’

말 그대로 보물섬이다. 놓칠 이유가 없다.

“착한 일을 하고 보상도 받는다면 일석이조죠. 합시다.”

부모님들께 보낼 편지 내용을 생각해 둬야겠다.

니미. 말해놓고 보니까 쬐까 사망 복선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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