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53화 (952/1,009)

***

우리는 제독이 남긴 마나로 결계와 보안을 뚫고 들어갔다.

“심각하군.”

유물을 쌓아놓은 동굴은 거의 폐기 처리장이나 다름없었다.

개발도상국의 쓰레기 산 같다. 이래서는 재활용 가능한 물건을 찾는 것도 한세월이겠군. 나는 그 쓰레기 산의 정상에서 유물들을 뒤적거렸다.

“노르! 안 다치게 조심해라──!”

다나가 한참 밑에서 외쳤다. 발퀴리에들이랑 이 망할 동굴을 들쑤시고 다니던 나는 쓰레기산 밑에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걱정해줘서 고마운데, 느그 남편이 녹슨 유물 조각 정도에 베이지는 않거든──! 슬슬 서방님한테도 관심 좀 가져보는 게 어떠냐──!”

“다치면 치료하기 귀찮아서 그렇다, 십새야──!”

“알았어──! 앞으로는 다치면 그냥 티르시한테 갈게──!”

“……………….”

“……야! 농담이니까 충격받은 얼굴 하지 말고!”

천리안까지 쓰자 유물은 2시간 정도 만에 손에 들어왔다.

엄청 빠른 속도이긴 했는데, 솔직히 1시간 정도 지났을 때부터 현타가 쎄게 찾아온 건 비밀이다.

“쓰벌, 사서 고생했네. 여기, 누나. 이건가 봐.”

“잠만. 분명 남은 시약이 메달 속 어딘가에……”

─뒤적뒤적. 인공 미스릴 메달에서 병을 몇 개 꺼내는 다나.

고고학계에서 자주 쓰는 연도측정 기술을 써서 우리는 그 유물이 아즈테카 대항해에 참여한 히타이트 해군과 동일한 시대라는 걸 알아냈다.

참고로 이건 자주 쓰진 않는다. 존나 비싼데다 금속에만 반응하거든.

시약을 치우면서 다나가 말했다.

“시대 배경이 같다면 출처도 같겠지.”

“아즈테카에 두고 가야 했던 유물 중 하나겠군. 스펙터들은 이 유물을 탐지하고 델타사가 탄 배를 공격한 거였어.”

“델타사는 파견을 나가는 길이었다며? 왜 그게 배 안에 있는데?”

이해가 안 간 듯한 다나에게 나는 설명했다.

“처음 건져냈을 때 한 말 기억나? 델테사한테는 일행이 있댔잖아.”

“……그 녀석들 거라고? 아니지, 네 말이 맞다 쳐도 이건 아즈테카 쪽의 히타이트 유물인데? 그 유적은 아직 발굴 작업도 미처 다 못 끝냈잖아.”

“응. 발굴에 참여했던 학자들이 다른 학자들을 모집해서 다시 아즈테카의 유적에 발굴을 나가는 길이었겠지. 당연히 이 유물은 아직 소유권 분배도 안 된 물건일 테고.”

던전이나 유적에서 얻은 건 획득한 사람 거라는 불문율도 고고학계의 발굴에서는 예외다. 그렇지 않으면 연구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다나는 내가 하려는 얘기를 눈치챈 듯 했다.

“……학계에 가져가는 길이었다면 델타사가 그 점을 몰랐을 리가 없지. 그러니까 저 인간의 동료라는 놈들은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고 유물을 옮긴 거네.”

“그래. 횡령이지.”

델타사의 경우랑 똑같았다.

나는 유물을 뒤적거렸다. 발을 빠르게 해 주고 상처를 치료해주는 매직 아이템이었다. 얼스터의 군락에서 라리루라가 받은 유물이랑 비슷하네. 이 시대의 트랜드였나.

크기는 밀반입이 가능할 만큼 작다.

“아즈테카의 유적을 발굴해서 얻은 유물을 자기 소유로 횡령한 거겠지. 들고 다닌 건 꽤 쓸모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겠고.”

획득한 경로 정도는 조작하면 그만이다.

시간과 예산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경매장 같은 데서 샀다거나, 선물 받았다고 해도 억지로 뺏어가서 연원을 캐내기는 어려울 것이니까.

“우리처럼 획득한 유물을 싸움이나 일상생활에 써먹을 생각이었나.”

“나한테 물어봤자 모르는레후.”

죽은 놈들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영혼에게 캐묻자니 위치도 모르는 바다 밑이다. 온 바다를 뒤지는 수고를 들여가며 저런 쓸데없는 얘길 물을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아마 우리의 추리가 정답일 것이었다.

누차 말하는 건데, 이세계의 고고학자들은 몸을 지키려면 어느 정도 싸울 줄 알아야 한다. 강력한 유물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싶었겠지.

“……쯧. 너, 그거 델타사한테는 말하지 마라.”

내 손에서 유물을 가져간 다나는 그걸 쳐다보다 혀를 찼다.

“뎃? 우째서?”

“뻔하잖아. 이제부터 유물을 횡령한 곳에 고고학자를 데려가는데, 그 사람 앞에서 유물을 대놓고 들고 다닌 거 아냐. 병신도 아닌데 꼴에 식자라는 놈이 왜 그랬겠냐?”

“범죄자는 기본적으로 자기가 걸릴 거란 생각을 안 함.”

“그런 거 말고. 이성적으로 봐서.”

“……델타사가 횡령한 사실을 알았으니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들켜봤자 도토리 키재기인 범죄자 처지. 약점을 쥐고 있다고 여겼다면 뻔뻔해질 법도 했다.

“눈치 빠른 새끼. 맞아, 그거밖에 더 있겠냐.”

경멸을 섞어서 탄식한 다나는 한숨을 쉬었다.

“신용카드의 재질을 조사했댔지. 지가 했을 것 같지는 않으니, 저 인간의 인맥에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친한 놈은 델타사가 ‘출처 모를 유물을 감정받은 기록’을 발견했을 법해.”

“유물을 들켜봤자, 너도 횡령했던 주제에 누굴 욕하냐고 따지고 들면 땡이란 생각이었나.”

“그보다는…… ‘저렇게 순해 빠진 놈도 뒤에서 유물을 빼돌리고 다니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냐’ 하는 마음이었던 거라고 보는데.”

“흐음.”

나보다 고고학자 짬밥이 많은 다나의 의견이다.

증거가 없는 뇌피셜이지만 설득력은 높다. 아니, 저 유물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증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학회장님이 일을 맡길 정도야. 델타사 저놈도 멍청이는 아니겠지. 다른 사람 일도 아니고 지가 죽을 뻔한 일인데, 이 정도 가능성은 떠올리고도 남을 거다.”

다크서클이 퀭한 우리 누나는 동굴 밖으로 나와서는 손으로 눈에 비친 햇볕을 가렸다. 한숨짓는 그녀의 모습은 뉴스에 나온 비극을 보는 듯 했다.

“그래도, 그 유물을 보여주지만 않으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끝나.”

거짓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지만,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게 있다. 의식하지 않고, 실감할 것도 없이 살아야 더 정신이 건강해질 때고 있고.

모순적인 것은 아니다. 자기 때문에 친구와 죄 없는 일행들이 죽었다는 사실 같은 건 모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알아봤자 장물 환수군의 제독처럼 속죄할 법도 없이 고통받을 뿐이고.

“유족들에게 속죄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굳이 증거를 들이민다고 속죄 안 할 새끼가 유족들한테 욕을 먹으러 다니겠어?”

“뭐, 그렇긴 해.”

델타사가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도 아니잖은가. 속죄해야 할 도의는 없다.

타닥, 타닥…!

모래사장에서는 불길이 타올랐다. 암무나 호를 옮기고 모래사장을 뒤져서 백골들을 모은 네페르티티가 장례를 치르고 있는 것이었다.

저 백골들이 스펙터 선원들의 시체일 테니까.

“눈치는 챈 모양이니까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그 보스 스펙터랑 달리 델타사는 아직 살아있어. 앞날은 자기 의지에 달렸지…… 근데 너는 표정이 왜 그따구냐?”

“아니, 울 누나는 좋은 교수가 되겠구나 싶어서.”

“하여간 그놈의 교수 타령은.”

나는 진심이었는데 다나는 깔깔대며 웃다가 툭 내뱉었다.

“뒷맛이 나쁜 결말이지만 나름 교훈이긴 하네.”

“뭔 교훈?”

“죽어서도 책무를 다한 장물 환수군이나, 친한 형을 구하려던 델타사나, 본인은 좋은 뜻으로 한 일이잖아. 단지 선의에 꼭 좋은 결말이 동반되는 건 아니란 거겠지.”

때론 좋은 뜻으로 한 일이 불행으로 돌아온다.

세상살이의 좆같은 이치였다.

‘나보다 뛰어난 예언자였던 오딘도 우연과 불행으로 파멸했고.’

명심하자. 미래를 볼 수 있는 나한테도 예기치 못한 불행은 찾아올 테니.

“……응? 둘 다 벌써 돌아왔느냐?”

장례식에서 묵념하던 베로니카가 물었다.

장례식의 불꽃이 흔들리며 그런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해는 저물어서 양뿔의 절반이 어둠에 가려졌다. 시체를 태우는 불이 흔들리는 동작에 맞춰서 뺨에 불꽃의 그림자가 혓바닥처럼 넘실거렸다.

─……그 미련한 계집에게 전해다오.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려선 아니 되느니라고.

어째서였을까. 나는 그 찰나 나 자신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찾던 건 찾았거든. 남은 유물은 이따 한꺼번에 회수할 거야.”

“음, 알겠다! 그쯤이야 내게 맡기거라. 권능으로 유물을 모조리 빨아들여서 〈아공간〉에 저장하는 마법을 만들어보마!”

“넹, 맘대로 하세용.”

나는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장례를 지켜봤다.

─바스스. 네페르티티가 무희처럼 풀잎을 들고 춤을 추었다.

프랑이 깎은 조각상과 유령선에서 가져온 유품. 그것들을 봉헌하고 장례와 진혼 의식을 치러주는 것이었다. 네페르티티의 입술이 벌어졌다.

“──♬”

성악처럼 말을 쓰지 않는 노래였다. 부드러워서 곡조의 느낌은 콧노래처럼 들렸다. 달밤이 깊어진 모래사장에서 춤추는 그녀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어어? 네, 네페르티티가 언니가 노래를?”

“후후. 그렇게 신기해할 일이에요? 장례 의식은 어떤 교단에도 1~2개 정도는 있는 법이잖아요.”

“그, 그렇긴 한데요……! 뭐에요, 엄청 잘 부르시잖아요? 전천후 만능 엔터테이너 라리루라를 위협하는 예상 밖의 가희(歌姬)의 등장이에요!”

놀란 라리루라는 목소리를 낮춰서 찡얼댔지만, 나는 그럭저럭 납득했다.

‘네페르티티는 원래부터 발성이 독특했으니까.’

조곤조곤 말해도 귀에 저절로 들어오는 목소리. 말수가 적고, 성량도 작은 그녀가 대화에 끼어들 때마다 씬 스틸러가 돼 버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 ♩♪──…….”

춤을 추며 세이렌 같은 미성으로 장례를 마치자 불꽃이 딱 꺼졌다.

마나의 작용이랑은 또 달랐다. 아마 장작 양을 치밀하게 조절한 거겠지만, 내 감각에도 걸릴 일 없는 마술 같은 솜씨는 신비함을 더해주었다.

재에 고인을 본뜬 조각상을 묻는 네페르티티가 정말로 달밤에 내려온 요정이나 정령으로 보였을 만큼이나 말이다.

“……노래한 건 오랜만. 졸려.”

물론, 입을 열자마자 산통이 죄다 깨져버렸지만 말이다.

─짝짝짝짝!! 라리루라는 본인도 예능인이어서 그런지 격한 리액션을 하려다가, 아무래도 장례식이니만큼 눈치가 보였는지 적당히 자제했다.

“대단했어요, 네페르티티 언니! 그치만 이렇게나 노래를 잘 하시면 무대에 올라올 기회가 있을 때 한두 곡 정도 불러주셨으면 좋았을걸!”

“잊고 있었어. 남의 장례식은 보지 않고 떠나곤 했으니까.”

나는 눈치챘다. 그랬지.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유니콘 흑마법사 사건 때도 가장 먼저 떠나버렸던 네페르티티가 아닌가.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는 걸 꺼린 걸지도 몰랐다.

“노래한 건 거의 10년만. 고향이 불타고 하토르 교단에 갓 의탁했을 때 이후 처음이야. 조금 그립지만, 응.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어.”

“……아브, 엡, 에브벱. 그, 그러, 그러셨구나아.”

탈룰라 어택에 라리루라가 입을 벙긋대자, 우리 사차원 아가씨는 맞선에서 씹덕 인증을 박아버린 30대 모쏠남처럼 정신을 차리고 화제를 바꿨다.

“그게, 나는 진혼곡밖에 몰라. 즐거운 자리에서 불러도 되는 노래, 나중에 알려줘.”

“네, 네엡! 라리루라한테 맡겨만 주세요! 원석을 보석으로 가공하는 드워프 장인처럼, 네페르티티 언니를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노래꾼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탈룰라 구조선에 허겁지겁 탑승하는 라리루라의 추태에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네페르티티도 쿡쿡대다가 내게 말했다.

“배워서 들려줄게. 노르드한테도.”

“더 많은 사람한테 들려주죠. 저희랑 죽은 사람들만 독점하기엔 네페르티티의 목소리가 좀 많이 아깝거든요.”

“……노래는 좋아. 하지만 주목은 싫어. 유명세, 피곤하기만 할 뿐.”

“존나게 공감합니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 건 정말 피곤하니까요.”

나랑 티르시가 회답하자, 내가 유명인이 돼버린 이유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베로니카는 조용히 술을 음복하며 내 눈을 피했다.

달이 저물어간다. 영혼들이 떠난 유령선을 섬에 남긴 채.

우리는 풍류를 해치지 않을 만큼만 술을 맛본 뒤, 다음날 섬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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