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55화 (954/1,009)

***

남해의 고도(孤島), 아이키븐(Ikibn) 섬.

그게 우리가 ‘시체섬’이라고 호칭하던 섬의 정식 명칭이었다.

“카네쉬에 기록이 있었습니다. 보급기지를 겸해 마나 발생 장치로 자연 마나를 풍부하게 기르는 곳. 그게 이 아이키븐 섬의 정체였죠.”

학회장이자 발굴팀장의 권한으로 〈공간이동〉 유물 하나를 확보한 아셰라드는 섬을 찾아온 내게 말해주며 눈에 띄게 거대한 장치를 가리켰다.

“시제품 1호에요. 아이키븐 섬에 있던 유물에서 멀쩡한 부품을 획득하고, 카네쉬의 기록 유산과 베로니카 백작 부인의 협력으로 완성했습니다.”

“버려진 해안기지를 활용했군요.”

“지반이 약했기에 마법으로 기반부터 다져가고 있어요.”

“요금은?”

“제 사비에서 수습 가능합니다. 아직까지는요.”

이세계 고고학은 개발 테크가 완료된 우주공학 같은 것.

인류의 역사를 말소한 게 외계인이나 다름없는 별의 자손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재밌는 비유지만, 어쨌든 그 고고학회의 대빵이 가난할 리는 없다.

“다른 차원, 이계의 연구가 금전적인 이득은 안 될 테니까요.”

나는 아셰라드 외에 연구진이 없다는 걸 천리안까지 동원해서 확인했다. 그 사실은 눈치 못 챘겠지만 아셰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대로, 이제부턴 극비리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백작님 일가와 몇몇 바이콘 분들을 빼면 차원이동장치의 존재를 아는 분은 한 손에 꼽죠.”

“학회장님이 빠져나온 건 괜찮습니까?”

“욕을 좀 많이 들어먹는 게 전부입니다.”

학회의 주류가 히타이트에 쏠린 지금, 그 히타이트를 도맡고 있는 아셰라드가 유물 발굴보다 차원 마법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입지적으로 얼마나 부담스런 일인가는 명백하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어요. 그렇죠? 델타사.”

“예.”

아셰라드가 중계해 줬던 성공가도를 때려치우고 연구에 합류한 델타사가 긍정했다. 나는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질문! 저희는 입회자로 부르신 건가요?”

손을 들며 묻는 라리루라.

오늘은 그녀와 나, 베로니카 3인조로 방문했다. 다른 아내님들까지 데려오지는 않았다. 유사시에 자력으로 차원의 이상현상을 빠져나갈 수가 있는 멤버 구성이다.

티르시도 가능하지만 지금은 방콕 중이다.

게다가 1명쯤은 다른 데 있어야 여차할 때 안전하다. 문을 열고 닫기 편하려면 문고리는 안팎에 달아야 하지 않던가.

“입회자로서 참석 의사를 여쭤본 것도 맞지만, 따로 상담할 게 있습니다. 요청하고 싶은 문제도 좀 있고요.”

아셰라드는 긍정 반, 부정 반으로 대답했다.

“저 차원탐색/연결 장치, 가칭 〈우주 등대〉의 최중요 골자는 콰르트고니아 대륙의 고목입니다. 마나 저항력이 높은 생목을 가공했죠.”

“장치의 뼈대가 살아있다는 것이냐?”

“예. 단지, 동력원을 점화하면 자괴(自壞)해버릴 겁니다.”

첨언한 델타사는 ‘그럼 미완성이잖아 씨발’이란 내 표정을 봤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고작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10년은 늙은 듯 보였다.

학회에서 내린 처벌 때문만은 아닐 거고, 그새 그만큼 자책을 할 시간이 많았던 걸지도 몰랐다. 뭐, 그래도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잖나.

운이 나빴을 뿐인 잡법을 탓하기에는 내 마음도 꽤 넓어진 모양이었다.

“장치가 혼자 폭주하고 고장나버린다는 거죠~? 그런데도 굳이 부르신 거니까, 혹시 저희가 해결해드릴 수 있는 문제인가요~?”

개인적인 흥미와 남편을 위하는 마음에서 지구 귀환에 관심을 가진 라리루라가 말했다. 이론으로 아는 게 아니라서 실험에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게 흠이지만.

“그래요. 마법사 길드에서 장치의 데이터를 공유해주면 해석과 연구에 협력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단물만 빼먹으려는 속셈이겠지만 저희 역시 얻는 게 있죠.”

“연구와 개발 속도의 가속화.”

“그리고 성공률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조바심이 나 보이는 아셰라드는, 그런 마음을 스스로 통제하며 오히려 평소보다 더 느릿하게 말했다.

“10년일까요? 아니면 20년? 30년은 못 채울지 모릅니다. 네. 제가 앞으로 살 날 말입니다. 과연 제가 늙고 병들어서 연구를 진행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이 장치가 완성될까요?”

“완성되도록 해야겠죠.”

“……우후후, 네. 그러니까 마법사 길드와 협력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상담이란 이것이고, 요청하고 싶다는 문제도 이 상담의 연장선입니다.”

조금 웃은 그녀가 연구 데이터를 보여줬다.

“3달 만에 실험이 가능한 단계까지 온 건 전부 여러분 덕분입니다.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죠. 학자 주제에 한심하지만, 한 번만 더 기적을 빌고 싶습니다.”

“아하. 장치가 안정화될 때까지 뼈대를 회복시켜달라는 거군요.”

“……제가 편지에 적었던가요?”

“대충 보면 압니다.”

나는 데이터를 쏜살같이 확인하고 메달 속에서 요정왕의 완드를 꺼냈다.

대놓고 꺼내지는 않고 옷 속에다 잘 짱박아뒀다.

“아틀란티스에서 제가 식물을 기르고 조종하는 걸 보여드렸죠. 특수한 목재라도 살아있는 동안엔 제가 회복시킬 수 있을 겁니다. 바로 해 보죠.”

“어, 음…… 아, 네! 감사합니다!”

얘기가 훌쩍훌쩍 넘어가자 놀란 아셰라드는 곧 냉정해져서 지시를 내렸다.

우리가 10분 넘게 지켜보고 있자, 장치에 금방 마나가 깃들었다.

차원이동장치의 베타 테스트다.

‘사실 실패했으면 하는 바람도 어느 정도 있긴 해.’

나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속내를 외면했다.

‘뿌리는 같아도 전혀 다르게 발전한 두 세계가 갑자기 연결되는 거니까. 얼마나 길고 큰 혼란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지.’

한국 아파트 이웃끼리 공간이 이어져도 미국이 놀라고 중국이 질투하고 일본이 화를 낼 것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연결된다?

‘그렇게 되면 남은 평생은 그 문제를 수습하기 바쁘겠네.’

그저 집에 가고 싶을 뿐이던 예전하고는 다르다.

그때보다 성공하고 가정이 생겨서? 아니다. 그 문제는 이미 명계에서 생환한 뒤에 아내님들이랑 얘기하지 않았나. 대전제가 바뀐 건 그 뒤였다.

지구에 숨은 ‘심해의 군주’.

세상을 지키는 차원막. 그걸 통과할 수 없는 나.

그리고 아셰라드의 아들이 지구에 있다는 사실.

새롭게 알아낸 사실들을 연결하면 솔직히 이제 귀환을 갈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기보단, 해선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지구와 이세계가 연결되면 세상은 혼란해진다. 사람이 좀 지나다녀도 차원막은 유지되겠지만, 그 무절제한 방치 속에서 언제 파괴될지 몰라.’

인류 사회가 혼란해지면 내 예지는 봉인된다.

차원막이 무너지는 즉시, 사티스와 다른 신들은 ‘심해의 군주’를 해치우고자 라그나로크의 속편을 재개할 것이고 말이다.

‘즉── 지구와 차원을 직접 연결하는 건 해선 안 될 일이다.’

최소한 아무 대책도 없이 바로 들이받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편지를 보내거나 사람 1~2명을 건져오는 거면 아직 괜찮아.’

단, 절대로 이 기술이 상용화되거나 외부에 유출돼선 안 된다.

아셰라드의 아들이 지구에 있는 게 아니었다면, 심해의 군주가 지구에 있는 게 아니었다면 그다지 문제는 없었을 것이었다.

둘 다 지구에 있어서 문제지, 씨발.

‘하지 말라고 해도 자식을 잃은 부모가 그만둘 리가 없어.’

불효자식인 나조차 부모님을 보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강한데, 자식을 잃은 부모가 말 좀 한다고 아들의 생환을 포기할까?

사정을 다 밝히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을 알린다고 포기해줄까? 정말로?

모른다.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아셰라드를 신용하지만 그 정도로 믿지는 못했다.

온 세상과 내 가족의 미래를 그녀의 독단에 맡길 정도로는 말이다.

‘내가 하지 말라고 막아도 언제 어디서 남몰래 비슷한 일을 할지 몰라.’

그녀는 똑똑한 사람이다. 내가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도─날 속여서라도─ 실험을 계속하고 싶다면 다 이해한 척 수긍하고 뒤에서 일을 벌일 것이다.

만약 입장이 반대여서 우리 아내님들이 차원의 틈 어딘가에 10년 넘게 버려져 있다면 나도 분명 그렇게 하고 싶을 테니까.

이세계와 지구, 어느쪽 역사에도 비슷한 사례는 있다. 낌새를 느낀 순간에 싹을 배제하지 못하고 정 때문에 방치했다가 참변이 일어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배제’란 토사구팽이다. 일이 커지기 전에 아셰라드를 해치는 걸 의미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을 찾는다면 그것 외에는 없다.

“……푸흐흐.”

하지만 나는 코웃음을 쳤다.

‘토사구팽? 지랄 말라 그래라.’

일이 커질 것 같다고, 말해도 설득되지 않으면 좆될 거라고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인다? 개소리지.

그러면 별의 자손들도 ‘개새끼야 그럼 우리한텐 왜 그렇게 지랄을 떨었냐’면서 즈그들 문어 대가리년의 꿈에 나와서 억울하다고 읍소할 것이다.

‘답이 없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지.’

실험을 성공시키면 세상이 좆창날 확률이 높다.

100% 확실한 방법을 동원하려면 손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피를 묻혀야 한다.

1번과 2번. 예스 or 노.

나는 둘 다 사절이다.

‘내가 보는 곳에서 문제를 통제하는 게 낫다.’

아셰라드의 아들이 살아있는지 확인하고, 운이 따라줘서 아직 살아있다면 연락을 취해서 돌아올 건지 묻고 데려올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는 김에 나도 우리 부모님들께 편지만 보내두고 끝내는 정도가 현명할 것이었다.

내 선에서 끝마치려고 일부러 연구진 수를 줄인 거였으니까.

─파지지직!!

내가 혼자 눈을 반개하고 있을 때였다. 드디어 차원이동장치가 기동한 듯, 태양 아래에서도 눈에 띌 만큼 눈부신 스파크가 터져나왔다.

“백작님! 지금입니다!”

“네.”

팔을 내밀고, 품속에서 완드를 발동시켰다.

쿠구구구구구구…!! 땅이 흔들리는 듯한 진동!

그러나 장치는 파괴되지 않고 유지되며 안정화 과정을 거쳤다. 진동도 조금씩 잦아들자 우리 눈에 보이는 건 무지개 색깔의 게이트가 전부였다.

“……성공인가?”

아셰라드가 기도하는 것처럼 혼잣말을 했다.

마치 1분이 1시간 같은 몇 분의 침묵!

─푸드덕!

그 침묵을 뚫고 게이트에서 날아온 건 1마리의 비둘기였다.

비둘기는 시끄럽게 홰를 치다가 피곤한 것처럼 땅에 내려앉았다. 델타사가 번개처럼 뛰어나가서 그 새를 붙잡았다. 그는 망연자실하게 말했다.

“……비둘기입니다, 학회장님. 아주 평범한.”

“……실패로군요.”

눈에 띄게 낙담한 아셰라드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백작님. 장치는 실패입니다. 다른 차원은커녕 다른 대륙이랑 연결된 게 고작이에요. 좌표부터 완전히 틀어진 듯 합니다.”

“아직 첫 시도일 뿐인데요.”

“좌표가 틀렸다면 설계에 깔린 이론부터가 전부 틀렸다는 뜻이 됩니다. 추가실험을 속행할 의미가 없습니다. 설계 차원에서 재검토하겠습니다.”

“그러시다면야. 장치는 어쩌실 겁니까?”

“당분간 여기 방치해둬도 되겠습니까? 조금…… 피곤하군요.”

“알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이만 쉬십쇼.”

나는 턱을 당겨서 그녀의 퇴장을 허락했다. 델타사가 그녀를 부축했다.

“학회장님.”

“가죠. 오늘은 좀 술이 마시고 싶네요.”

그녀와 델타사는 유물을 써서 아이키븐 섬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대여.”

그들이 떠나고 나서 베로니카가 말했다. 그녀는 그새 도망치려던 비둘기를 잡아서 마법으로 재운 뒤였다.

“그래. 백문이 불여일견이겠지.”

나는 고개를 젓고, 비둘기에게 나우넷의 진흙을 끼얹었다.

진흙이 비둘기가 보고, 겪은 과거를 되살린다.

빠앙─! 빵빵─!

휘우우우우우웅─!

뿔과 눈동자를 빛내는 베로니카가 추출한 기억 영상.

그 홀로그램 같은 화면에서는 자동차와 비행기 몇 대가 날아다니는 중이었다. 영어로 된 표지판이 쓸데없이 그립고 인상 깊다.

누가 봐도 항공이었다.

내 예전 추리가 맞다면 대충 영국이나 유럽 쪽 어딘가겠지. 나는 그만 못 참고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학회장님. 엘리트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

첫 시도에 대성공이라니, 너무 유능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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