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64화 (963/1,009)

***

‘땅 밑 세이렌들의 휘왕’.

남부에서 터를 잡고 대륙을 야금야금 먹어대고 있는 개체의 통칭이었다.

대륙을 먹고 있다는 건 비유가 아니라, 사실을 나열한 문장이다. 지도의 모양을 바꿀 정도로 이 땅을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었다.

생존자들의 대화와 베로니카의 예언을 읽어보면 그건 어떠한 능력이라기보단, 그냥 덩치와 식성에서부터 비롯된 행위인 듯 했다.

“흙의 마나가 풍부한 토양을 저작하고, 비축해 이 세상을 벗어날 에너지원으로 삼으려는 심보가 아닐까 싶군.”

남부로 나아가는 길에 어느 생존자가 말했다.

민머리에 비니 같은 털모자를 쓴 엘프였다. 이 며칠 정도의 행군이 그에게는 남은 목숨을 줄이는 행위인지 어젯밤보다 안색이 더 나빴다.

“에너지원?”

정체를 감추고 일행에 섞여 있던 내가 물었다.

엘리자베트의 말로는 아주 가끔, 다른 지역에서 헤매다 온 생존자들이 찾아오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신분을 모르는 나도 일단은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졌다.

가짜 사건 때문에 다들 예민할 줄 알았는데, 좀 의외의 결과였다.

그게 아니면 엘리자베트의 말마따나, 협력적인 강자이기만 하면─그리고 옛 지배자나 별의 자손 같은 이생물체만 아니면─ 출신 따위는 상관없는 것일까.

“대륙을 삼키고 이 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찌익. 나는 고기를 뜯어먹었다.

식량의 맛을 따지는 것조차 사치였던 그들에게 가지고 있던 음식을 풀었던 것이다. 이 식량도 내가 받아들여진 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나는 일부러 고지식한 말투를 사용하며 물었다.

“자네의 추측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어쨌든,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의식을 되찾은 옛 지배자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잖나.”

“모르기 때문이야. 지배가 풀렸으니 이 세상에 남아 있을 필요도 없어졌으니까. 그 자식들로서는 남의 손에 끌려온 차원에서 객사할 바에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을 거다.”

생물조차 아닌 괴물을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럴싸한 추측이었다.

“일리 있는 말이군. 엘프답게 아는 게 많아.”

“왕년에는 마법사 길드의 지부장이었거든.”

민머리 엘프는 내가 전후에 남은 물류창고에서 챙겨왔다고 거짓말한 채소를 깨작거리며 말했다.

─달그락, 달그락. 손가락이 두 개 남은 손으론 수저를 집기도 힘들어 보였지만, 그는 꿋꿋이 그 손으로 식기를 입에 가져갔다.

식사량이 적고 먹는 속도가 느린 건 싸움 중에 위장과 식도가 뜯겨나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먹기 힘든 식사를 이어가고 있자, 다른 생존자가 눈쌀을 찌푸렸다.

“호툴루실. 싸우다 체하거나 배가 아파져도 안 구해준다? ‘휘왕’에게 한 방 먹여줄 생각으로 가는 거잖냐. 꼴사납게 뒤지기 싫으면 평소 먹던 걸로 먹어.”

머리 한쪽이 푹 파이고 흉터가 있는 남자가 웬 단백질 블록 같은 걸 내밀었다. 민머리 엘프는 픽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끼니를 네 수제 야채 스프로 채워넣을 기회인데, 오랜만의 식사를 그 망할 가짜 노르드 놈이 알려준 고기 묵으로 다운그레이드하라고? 그 부탁은 못 들어주겠군, 도르카.”

“나보다 명줄 긴 놈이 연명해야 망할 돌림병의 치료제도 개발할 것 아니냐. 야채는 그때 가서 니 농장에다 실컷 기르셔.”

“흐. 돌빵하고 스프나 팔던 여관 주인이 이제는 세계 제일의 요리사인가. 그래도 빵은 네가 팔던 것보다 이 친구가 가져온 게 낫군.”

“모험가 시절 생각나고 좋지? 꼰대 엘프 놈.”

그들 사이에 웃음이 오갔다. 나는 대화하는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라리루라는 엘리자베트와 함께 지도를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아, 오셨어요?”

라리루라가 나를 발견하고 살포시 웃었다.

“고마워요. 제가 창세의 권능으로 식량을 만들 수도 있지만, 생존자들 전원이 먹을 만큼 공급할 여건이 안 됐거든요. 가끔 특식을 만든 정도였죠.”

“그거라도 어디야. 여신님 다 됐네. 오병이어의 기적도 일으키고.”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에도 영구기관은 없었다. 라리루라가 권능으로 식량을 만들고, 그걸 먹어서 체력을 복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생존자들의 식욕 때문에 최고의 전력이자 집단 전체의 보험이기도 한 그녀에게 체력적인 소모를 강요해선 안 됐다.

그렇기에 마음껏 식사해도 될 기회에 병사들은 적잖이 기뻐했다.

“식량 사정이 호전된 건 천운입니다. 곧 있으면 남부니까요. ‘진토’ 등의 변수만 없다면 저희들은 남부의 ‘휘왕’을 문제없이 쓰러트릴 수 있습니다.”

식량에 입을 대지 않은 엘리자베트가 말했다.

이전에는 라리루라의 부상이나 사망이 곧 집단 전체의 괴멸에 준하는 타격이었지만, 내가 포함된 후로는 그럴 일이 없어졌다.

“프리실라의 권능으로 ‘휘왕’과 그 봉사종족들을 분단하고, 저희가 저지하는 사이 토벌해주십시오. 피하려고 하다가 포위당하는 편이 더 위험합니다.”

‘휘왕’과 그 따까리들의 위험성은 익히 들었다.

나는 자신의 강함을 믿으며 오만하게 구는 대신성실하게 대답했다.

“제가 가진 식량은 행군이 끝날 때까지 유지할 양이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그냥 저희 가족의 비상식량이자 풍족한 식사를 위한 비축이어서.”

“에르제. 내가 워프를 시전하는 빈도를 늘릴까?”

“그런 생각 마세요. 조금이라도 소모한 상태로 바깥 우주의 신에게 필적하는 옛 지배자들과 싸울 생각인가요?”

엘리자베트는 친족을 사형시키는 여왕처럼 냉엄하게 선언했다.

우리는 지금 주기적으로 워프하며 대륙을 횡단 중이었다. 한 번에 건너지 않는 건 옛 지배자들과 싸울 때 조금이라도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명심해 주세요. 목적의 달성은 저희들 전원의 목숨보다 중요합니다.”

“……알고 있어.”

“‘휘왕’을 쓰러트린 뒤에도 쉴 시간은 없습니다. 아이키븐 섬의 왕은 이미 동포 한 개체의 죽음에 예민해져 있을 터. 그에게 시간을 주는 건 연전을 감행하는 것보다 위험할 게 자명합니다.”

조용해지는 라리루라에게 그렇다면 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엘리자베트가 내게도 눈짓했다.

“당신께서는 옛 지배자 2마리와 연전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세이렌’들과의 전투에 마나와 권능을 소모하지 마세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더라도, 당신은 다른 모든 것보다 섬 안까지 도달하는 걸 우선하는 겁니다.”

“벌써 10번은 들었습니다. 귀에 딱지 앉겠어요.”

“딱지까지 앉으셨다니까 이해하셨으리라 믿겠습니다. 다시 움직이죠. 라리루라의 다음 워프 이후 3시간 정도만 남하하면 ‘세이렌’들의 영지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라리루라가 권능을 펼쳐서 우리를 감싸고, 몇 km를 워프.

그리고 다시 라리루라의 체력이 100% 회복되는 위치까지 하강한다. 며칠 동안은 그걸 반복했지만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3시간 뒤, 우리 앞에 비옥한 토지가 펼쳐졌으니 말이다.

이곳이 옛 지배자 ‘땅 밑 세이렌들의 휘왕’과 그 동족들의 영지였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지면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진 같은 진동은 수백 마리의 무소가 달려오는 듯 했다. 하지만 지상에는 그만한 숫자의 무리를 볼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저 새끼들은 지하로부터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으니.

“저희들의 발소리를 멀리서부터 들었던 거겠죠. 전투 준비!!”

엘리자베트는 익숙한 듯 중얼거리고 호령했다.

채앵─! 일행이 무기를 들고 장비를 둘렀다. 그 실용성만 추구한 군장은 그들이 겪은 싸움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이 가게 했다.

【SIisisisisisiiiiiisi──】

지면을 뒤흔들며 나타난 건 괴물이었다.

바다에 크라켄이 있다면 지하에는 저들이 있는 것일까. 오징어의 다리가 구렁이의 안면에 빨판과 입처럼 붙어 있는 이족. 다소 말미잘 같기도 했다.

【Si, Siii.】

쌕쌕거리는 숨소리는 촉수에 난 숨구멍에서부터 나는 것이었다. 따로 지시할 것까지도 없이 모든 생존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룬 방패를 들었다.

“ᛁ(Isaz)!!”

물체에 새겨진 룬이 그들의 음파에 담긴 사념을 정지시켰다.

요란스러운 마나 낭비 같았지만 실상은 반대다. ‘세이렌’들을 상대로 이만큼 효과적인 전술이 없다는 걸 나는 라리루라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SIisisiiiiiiii──!!】

쉰 마리는 되는 거대한 데스웜들이 촉수를 꿈틀거리면서 합주했다.

─닿지 마세요. 저 음파에 홀리면 죽습니다.

엘리자베트의 심념이 귀에 닿았다.

그들 ‘세이렌’이야말로 기습 초기, 인류를 가장 공포에 떨게 만든 악몽이었다. 인간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당사자들이기도 했다.

저들은 지배자이자 신이기도 한 ‘휘왕’로부터 한 가지 권능을 받았다.

〈장송곡〉. 그렇게 불리는 권능이었다.

“끼기기기각?!”

돌아다니던 도마뱀은 사념파에 3초쯤 노출되자 갑자기 이끼 알갱이로 변해버렸다. 육체와 영혼이 뒤섞여서 몇만 토막이 나 버린 것이었다.

‘〈장송곡〉은 분자, 원자 차원에서 물질을 지배하는 권능이다.’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처럼 저들이 뿜는 사념에 노출되면 그들의 노예가 된다. 저게 위협적인 이유는 무생물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육체와 영혼이 재배열되서 브리타니아 인들처럼 산 채로 이끼 알갱이로 쪼개지거나, 뇌가 뇌세포 차원에서 개조당해서 충실한 노예가 된다.

아내와 그녀의 배 속의 아이보다 저들을 위하는 충성심이 우선될 정도로.

정신을 조종하는 사술이라고 생각한 생존자들은 당초에는 정신 방어에 집중하다가, 육신과 영혼을 전부 개조해버리는 〈장송곡〉의 먹잇감이 됐다.

인류 사회가 결집하지 못하고 7할 이상 사멸한 원인이었다.

“룬 각인을 사용한 저지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다들 절대 방심하지 말고 방어에 집중하세요!”

엘리자베트가 자기 몸을 지키며 외쳤다.

〈장송곡〉은 마나에도 작용한다. ‘세이렌’들이 명령을 내리면 룬은 훈련받은 동물처럼 명령대로 행동한다. 자기 주인에게 이빨을 드러낸다.

저들을 섬멸할 준비가 끝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게 생존자들의 역할이었다.

【Sssisiiii──?】

【SIisis, siisi iisi.】

하지만 ‘세이렌’들은 비웃는 것처럼 키득대더니 공기와 빛을 홀렸다.

신기루처럼 일그러진 모습이 그들의 뒤에 믿기 힘들 만큼 거대한 웜의 환영을 소환했다. 저들의 지배자인 ‘휘왕’을 묘사한 것이었다.

“……아. 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얼굴에 흉터가 난 전사가 이성이 소멸한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도르카!!”

“아아아아!! 끄아아아!! ᛁᚨ!! ᛁᚨ!! ᛋᚺᚢᛞᛞᛖ ᛗ:ᛖᛚᛚ!! ᛁᚨ!! ᛁᚨ!! ──끄익.”

와르르….

단말마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남자의 몸은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렸다. 이끼 알갱이가 그의 옛 몸무게만큼 바닥에 쏟아졌다.

여기 모인 이들은 옛 지배자들과 싸우던 이들.

옛 지배자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정신을 오염시킨다. 그 괴물들의 공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에게, 저 환상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

“아? 끄엑?”

방패에 들어가야 하는 마나가 끊어지자, 사념에 노출된 생존자들이 맥없이 즉사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군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지옥에 굴러떨어지자, 엘리자베트의 행동은 빨랐다.

“글래시아!!”

─쩌저적!

얼음 정령들이 솟아나며 생존자들에게 붙었다. 내 머리에도 한 마리가 날아와서 붙자, 마치 머리 속에 얼음을 던져넣은 것처럼 이성이 또렷해졌다.

“정신들 굳건히 차려요! 환상일 뿐입니다!”

“아, 으으, 아아아아……”

묵은 원한과 결심이 무색하게도 오줌을 지리는 이들마저 속출했다.

저들의 정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스스로의 강함으로 옛 지배자를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가 아니라면 누구든 생리적인 공포에서는 벗어날 수 없으니까.

【Sssisiiii──?】

‘세이렌’들은 그 꼴이 우스운 것처럼 키득댔다. 적의 약점을 알고, 찌르며, 비웃는 지능이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그렇게 웃던 그들은 즉시 돌처럼 굳었다.

사르르륵….

마치 아주 얇은 비단 실타래 같은 게 그들에게 엉켰기 때문이다. 눈을─그와 비슷한 신체기관이 있다면─ 부릅뜬 ‘세이렌’들은 산 채로 조각상처럼 변했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이 흐른 후.

─샤락.

맹물에 뜰채를 건진 것처럼, 아주 얇은 차원의 단절이 세이렌들을 전부 회쳐버렸다.

눈에 보이는 놈들만이 아니다. 땅 밑에 숨어서 상황을 엿보던 놈들도 얇고 얇은 실에 순두부라도 된 것처럼 토막나서 즉사한 것이었다.

스멀스멀…

비옥하던 땅이 지표면 밑에서 배어나온 이족의 피로 점철됐다.

“……몇 마리 놓쳤네요.”

‘휘왕’과 이족들을 분단하고자 차원의 틈에 숨어 있던 라리루라가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프리실라. 제가 싸우지 말라고 그렇게나……!”

적들을 한 번에 전멸시킨 위업. 하지만 엘리자베트는 라리루라를 타박했다. 라리루라는 입을 닫고 눈을 피하다가 변명처럼 말했다.

“체력 소모는 거의 없어. 낭비없이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게 연구한 기술인걸. 너도 알면서.”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사상자는 났지만 이길 수 있었어요. 그보다 당신의 힘을 감지한 ‘휘왕’이 도망치거나 다짜고짜 급습해 왔다간──”

…우르르르르르르!!!!

엘리자베트의 말은 지진에 묻혀서 끊어졌다.

고작 2~3분 전에도 일어났던 것에 이어서, 두 번째 지진이다.

이게 진짜 지진이었다면 제 2파가 오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첫 번째가 그랬던 것처럼, 이 진동도 지진은 아니었다.

지진과 같은 점이 있다고 하면, 그건 제 2파가 훨씬 위험하고 강력하다는 점이다.

콰광─!!!!

지면을 부수고 거대한 웜이 나타났다.

세부적인 부분은 ‘세이렌’과 다를 바 없었지만, 표피에 비치는 반사광마저 뒤틀리는 역겨운 황색 피부와 구더기와 같이 꿈틀대는 두족은 성채보다 크다.

“……‘휘왕’!”

고함을 지른 라리루라가 바로 권능을 사용했다.

발동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애초부터 ‘휘왕’을 불러내고자 그의 봉사종족들에게 공격을 가했다는 증거였다. 엘리자베트도 눈치채고 말을 멈췄다.

【SSsssssssssssssss──】

하지만 ‘휘왕’은 멈추지 않았다.

매미 수천 마리가, 동시에 바스락대는 사운드를 튜닝한 듯한 음색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르골처럼 들리기도 했다. 발성하는 존재의 정체를 모르고서 들으면 사람의 귀에도 미성으로 느껴질 것이다.

“……실프!!!!”

엘리자베트가 바람의 정령을 불러냈다. 공기가 차단되며 음파가 순간적으로 막혔지만, 사념파는 매질로 삼은 공기마저 조종했다.

─앗?!

바람의 정령이 지배하던 공기는 정령의 지시를 벗어나고 질풍처럼 실프를 휩쓸었다. 껍데기에서 뽑혀 나온 소라처럼 실프의 눈과 팔다리가 꺾였다.

휘이이이─!!

맹렬한 바람을 타고 초음파처럼 퍼지는 죽음의 울음소리!

“제가 막을게요!”

라리루라는 ‘휘왕’을 데리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려던 힘을 그대로 전용(轉用)해서 차원벽을 세웠다.

티잉─!!

온갖 것들을 매혹해서 조종하는 악신의 노래도 공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사념파가 튕겨나가자 ‘휘왕’은 꿈틀거리며 촉수를 뻗었다.

더는 보고 있을 것도 없다.

나는 공격이 온다고 생각하고 창을 뽑아들었다.

─거래를 하지, 울프헤딘.

그렇지만 차원벽을 뚫고 날아온 무해한 심념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부드러운 말투로 속삭였다.

─우리의 영혼을 데리고 ‘지금’으로, 네가 왔던 시대로 돌아가라. 혼이 깨어난다면 우리의 육신은 우리를 가두는 그녀의 궁전에서 눈을 뜰 것이다.

거대한 악신은 초월자로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며, 내 뇌리에 직접 울려 퍼지도록 제안했다.

─그리하면, 나와 ‘황색 왕’이 ‘심해의 군주’를 죽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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