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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이계는 관광지의 컨셉 샷을 포토샵으로 기워놓은 듯한 공간이었다.
─턱.
중력이 거꾸로 작용하는 바닥에 착지하고, 나는 머리 위로 펼쳐진 지상의 한 곳에 새파란 공간의 왜곡을 발견했다.
오딘의 눈이 뜨거울 만큼 불타올랐다.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룬 만다라를 잔뜩 뽑아냈다.
티잉─! 무너지려는 공간을 떠받쳤다. 여기까지 왔는데 용무를 끝내기 전에 무너지게 둬서는 안 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깎여가는 마나의 양이 심상치 않다.
‘붕괴까지 몇 분 안 남았다. 시간에 맞을까?’
불타오르는 듯한 열기는 꽤나 통증을 동반했다. 눈이 지끈거리고 시신경을 통해서 두통이 올라올 지경이었지만, 좋은 징조였다.
이렇게 과부하가 걸릴 정도의 정보량이 권능의 분석능력에 잡히고 있다는 뜻이잖은가. 내 마나가 다하기 전에 해석을 마쳐야만 했다.
‘이 미래는 나 자신만의 힘으로 본 게 아니야.’
중계를 맡아서 보여주고 있는 건 내 눈이며, 내 권능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먼 미래를 볼 수 없다.
그런 내가 9년이나 지난 미래를 볼 수 있는 건 시구르드, 정확히는 오딘의 권능이 영향이 컸다.
그렇기에 내가 여기서 보고, 기억하고, 이어받은 것들을 온전히 현실로 가지고 돌아가려면 예지의 자세한 사항을 내 권능으로 이해해야만 했다.
콰아아아아아─!!!!
공간이 무너지는 속도에 한층 속도가 붙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황색 왕’이 부숴놓았던 공간인데다, 내가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꿈에 가까운 미래세계의 성질이 약해지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이성을 똑바로 차리고 눈을 뜨면 싫어도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그래서 내 눈이 분석할수록 이 세계는 무너져내리고 마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서 내가 만다라로 떠받치고 있는 공간에 무게를 더했다.
니미럴 아틀라스 메타. 하늘을 짊어지는 형벌을 받을 만큼 몹쓸 짓을 한 적은 없는데. 입속에서만 시발시발 거리며 이를 악물고 눈을 부라렸다.
90%, 91%, 92%…….
끝이 머지않았다. 나는 마지막 힘으로 기울었던 몸을 일으켰다.
“끄으으으윽……!!”
콰드드드득…!!
무너지는 하늘을 받치고, 강하게 밀쳐냈다.
옛 지배자들과 팔씨름 100연전을 해도 이겨낼 자신이 있는 꼴마초의 팔뚝이다. 하늘은 내가 밀쳐내는 힘에 밀려났고, 나는 그 틈에 몸을 던졌다.
“절대천공영역.”
내가 발휘 가능한 가장 강력한 일격을 꺼냈다. 얼음의 마나와 불의 마나가 소용돌이치고 폭풍의 눈에 〈정화의 벼락불〉이 스파크를 튀겼다.
위력은 이 기술을 처음 사용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탓!
베로니카의 도움 없이도 완성한 폭풍과 벼락의 창을 쥐고 지상을 향해서 점프했다. 중력이 몸을 뒤집는가 싶다가 작용하는 방향이 뒤바뀌었다.
무너진 하늘이 쫓아온다.
고층빌딩에서 유리창을 깨고 떨어지는 것 같다. 설탕 유리는 물론이고 그냥 유리보다 예리할 듯한 공간의 조각들이 엄습했다.
닿으면 베인다. 【엘든 링】으로 패링할 마나도 아깝다.
나는 무너지는 공간의 파편을 밟고 뛰었다. 이 이계에 꿈을 찾아 들어왔을 누군가의 기억이 만든 건물을, 도시를, 초원을 밟고 중심으로 달렸다.
내 체감으로 보기에, 앞으로 남은 분석률은 5%.
중간에 공중제비를 틀어서 각도를 맞추고 창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마법의 강점은 내 한계보다 강력한 공격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마나만 있다면 몸과 마법 실력이 버텨주는 한은 얼마든지 출력이 올라간다.
“흡!”
아껴왔던 마나를 아낌없이 담아서 던졌다.
─캉!!
빛살처럼 날아간 창은 일그러진 공간에 꽂히고, 곧바로 폭발했다. 공간이 찢기는 영향권에서 몸을 빼낸다. 저렇게 절단되는 공간은 나라도 간단히는 못 막는다.
수증기를 분사하고 야수회귀의 마나로 발판까지 만들며, 찢어지는 공간을 피했다.
‘황색 왕’이 부숴놓은 여파도 있어서 파괴는 순식간이었다. 충격파가 터져나가며 푸른 시공간의 회오리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몰아쳤다.
“100%.”
그리고 저 몹쓸 꼴을 보는 것으로 오딘의 눈은 분석을 조금 더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안도하며 한숨을 쉰 나는 그대로 위로 추락했다.
‘역시 돈하고 마나는 아무리 많아도 모자라.’
그렇게 많은 듯한 마나가 바닥나버린 탓이었다.
그럴 수밖에. 여기는 미래 세계의 중심이었으니 조금 전까지 나는 세상을 통째로 떠받친 셈이다. 신화에 강북호 일대기를 한 줄 추가해도 되겠지.
그래도 이래선 애들한테 작별인사는 못 하겠다.
다음에 깨어나면 현실인가. 나는 그대로 쏟아져 내려오는 공간의 붕괴로 떨어져 내려갔다. 저기에 부딪히면 뒤지게 아플까? 아무래도 아프겠지?
─슈르르르르.
하지만 내가 그 고통을 체험할 겨를은 없었다.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핑크색 실이 나를 둘러싸고 옆으로 끌어당겼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포대기에 감싸듯 다정한 실에 이끌리며 나는 차원이 갈라지며 열린 틈을 빠져나갔다.
촤악─! 나를 건져낸 라리루라가 지친 듯 말했다.
“자기 일일 때는 꼭 마무리가 어설프시다니까. 꼭 고치세요, 선배.”
흘린 피로 얼굴의 반에 피칠갑을 한 라리루라는 숨을 몰아쉬었다.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린 나는 멋쩍게 웃었다.
“가끔은 왕자님 역할도 좀 양보할까 해서.”
“하아…… 입만 살아서는……”
나를 떨어트리듯 내려놓은 라리루라는 힘을 다 쓴 것처럼 주저앉았다. 눈을 굴려보다 못 보던 산 하나가 보였다. 자라나다가 운석에 맞은 듯 거의 주저앉아 있다
신들의 싸움답게 스케일 한 번 어마무시하군.
“이겼구나.”
“아핫.”
기운 없이 V자를 만든 라리루라가 내 뒤쪽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눈을 따라가자 그곳에는 멍하니 주저앉아서 땅만 보고 있는 프랑이 있었다.
‘진토’는 프랑이었다.
옛 지배자들을 해치우고, 아마 ‘휘왕’의 추격도 저지해줬을 그녀는 이 섬까지 날아와서 우리에게 마지막 도움을 줬던 것이다.
“……제가 몇 번 불러봤는데, 대답이 없어요. 꼭──”
그녀가 망설이며 뱉지 못한 말을 내가 받았다.
“골렘이나 인형 같다고?”
“……프랑 언니가 돌아가셨다는 건 분명했어요. 그만큼 격전이었기에 시체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당시의 생존자들이 영혼이 사라지는 걸 봤었죠.”
나는 라리루라를 부축하고 프랑에게 다가갔다.
인형처럼 멍하니 주저앉은 그녀는 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반응이 희미했다. 눈은 얼굴에 강한 충격을 받고 무너진 것처럼 감겼고 간신히 원형만 남긴 모양새였다.
팔다리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부러지거나 없어졌다. 조금 전까지는 그 부위에 골렘으로 의수와 의족을 만들어서 움직였던 것이다.
헝클어진 머리와 옷은 검댕이로 범벅이다.
하지만 그런 몰골로도, 아직 그녀는 내가 아는 프랑이었다.
“아, 우……”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갑자기 눈에 초점이 맞아가더니, 내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프랑의 손가락은 날 붙잡을 만큼 남지를 못했다.
“……고마워, 프랑.”
나는 움찔대는 손이나 팔뚝을 조심스럽게 당겨 그녀를 끌어안았다.
“네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
나, 라리루라,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만으로는 한 발짝 모자랐다.
우리의 목적은 프랑이 있었기에 성공했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이마를 맞댔다.
“사랑해. 죽을 만큼.”
“……에헤, 헤.”
인형 같던 표정에 조금 생기가 돌아왔다. 내게 안긴 그녀는 나를 끌어안고 목에다 그나마 멀쩡한 얼굴을 그리운 듯 문질렀다.
“나도야, 노르……”
멍한 표정으로 웃던 프랑은 그렇게 눈을 감고, 다시는 뜨지 않았다.
원래부터 차갑던 몸에는 이제 프랑이었던 살과 뼈만 남았을 뿐, 우리가 그녀라고 인식하는 혼은 어디에도 없었다.
“……선배.”
라리루라가 나를 불렀다. 의문이나 감상 때문은 아니었다.
─뚜둑.
그녀가 가리킨 곳에서 바다가 잘려나갔다. 너무 묵직하고 가볍게 온 세상이 뜯겨졌다. 하늘, 바다, 수평선이 태풍에 분해되는 오두막처럼 무너졌다.
별들이 사멸한 우주에 섬 채로 버려진 듯 하다.
아이키븐 섬과 그 주변의 바다를 뺀 모든 것은 검게 변해버렸다.
“……정말로, 지난 9년은 한순간의 꿈이었던 거네요.”
이제 정말로 실감이 난 걸까. 만감이 교차하는 목소리였다.
이 시대에서는 굉장히 귀중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낸 라리루라가 그걸로 프랑의 얼굴을 닦아줬다. 굳은 피와 흙을 닦고, 다친 상처를 붕대로 묶었다.
세상이 끝나가고 있는데도, 라리루라는 그렇게 프랑을 보살폈다.
어째선지 떠오르는 건, 관에 들어가던 브리타니아의 왕이다.
죽은 이를 장례할 때는, 관을 닫기 전에 생전의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며 떠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법이니까.
라리루라는 그렇게 붕대를 다 묶고, 잠든 듯이 보이는 프랑을 안았다.
“어떻게 돌아가신 언니가 여기 올 수 있었는지, 그건 묻지 않을게요. 선배도 모르실 것 같고, 지금 물어볼 만큼 중요한 얘기도 아니잖아요.”
중요한 건 프랑이 우리를 도우러 와 줬고, 그녀 덕분에 우리의 목적은 달성됐다는 것이었다. 죽은 프랑을 안고 나를 보며 라리루라는 미소지었다.
“해냈네요, 선배.”
헤냈다는 말에 기뻐할 만큼 속이 없지는 않았다.
백일몽 속에서의 죽음을 무겁게 받아들여서만은 아니다.
9년 간의 기억을 보내고, 여기서 자신의 의지로 내게 말을 걸고 있는 라리루라. 그녀는 9년 전의 라리루라와는 다른 인물이다.
라리루라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엘리자베트나 다른 생존자들도 마찬가지다.
꿈을 꾸던 사람이 깨어나면, 그 꿈속에서만 살 수 있는 등장인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대답은 알고 있다. 소멸밖에 없다.
깨지 않는 백일몽이 없듯, 꿈과 함께 꿈속에서 만난 인연은 사라진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그들이 그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였다.
“라리루라, 나는──”
“쉿.”
라리루라는 프랑이 깨면 어쩔 거냐는 듯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더는 아무 말 하지 말아요. 알겠죠?”
장난기마저 느껴지는 미소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입을 닫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세계의 마지막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면, 이방인에 불과한 내가 뭐라고 떠들 자격이 있을까.
촤아아아아─!!
검은 우주를 헤매는 섬 주변에서 바닷물이 전부 공허로 쏟아졌다. 섬을 둘러싼 해안은 절벽이 된 듯이 깊은 지면을 드러냈지만, 거기에 해양생물이라곤 한 마리도 없었다.
꿈이 끝난다. 미래의 종말이 찾아왔다.
이 결말은 아무리 좋게 봐도 절대 해피 엔딩이 아니다.
‘하지만, 배드 엔딩도 아니지.’
애초에 엔딩조차 아니었으니까.
이 세계는 길고, 비참하고, 끔찍하던 종장의 한 장에 불과하다.
나와 그녀들, 그리고 이 세상이 맞이할 결말이 해피 엔딩인지 아닌지는 이제부터 나 자신이 정할 일이었다.
그리고, 해피 엔딩을 위한 열쇠는 얻었다.
내가 미래의 그들과 함께한 시간과 그들의 죽음에는 의미가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에고, 선배도 참. 어깨에 먼지 묻었잖아요.”
그렇게 끝을 기다리던 나는 라리루라가 부르자 아무 생각 없이 돌아봤다.
생뚱맞은 말을 의아하게 느끼기에는 좀 전까지 빠져들었던 상념이 깊었고, 라리루라의 행동력이 나보다 빨랐다.
“……………….”
입술에 부드러운 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후훗. 프랑 언니랑만 알콩달콩하게 헤어진 복수에요.”
입에 손을 가져가는 눈동자가 애교 있게 휘었다.
“과거의 저를 잘 부탁할게요, 선배♡?”
작별에 입 맞추듯 키스한 라리루라는 한 발짝을 뒤로 물러나선, 산뜻한 미소를 지으면서 평소처럼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 모든 풍경이 비바람에 열화되는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열화하며, 사라진다.
그렇게, 어둠과 적막의 커텐이 연극의 대단원을 끝내듯 세상을 덮고──
“──여행은 즐거웠나?”
시구르드가 읊조리는 말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