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75화 (974/1,009)

네페르티티는 복수를 마쳤고, 싸움은 끝났다.

미래의 베로니카가 남긴 예언─그녀에겐 본인이 겪은 과거의 경험과 추론이지만─도 전부 현실에 가지고 돌아오는 데 성공했고 말이다.

하루건너 하루로 개판에 휘말리거나 나 스스로 개판을 열었던 나지만, 이만큼 정신적으로 고단한 하루는 없었다고 느낄 정도로 피곤하지만, 끝내는 다 잘 풀린 것이었다.

단, 한 가지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게 있다.

“손을 들고 투항해라, 울프헤딘 백작!”

“뎃?”

여기 왕궁이었지, 시발.

“저항할 생각 말고 무기를 놓고 바닥에 엎드려! 옆에 있는 여자도!”

시구르드와 정원을 개판내며 싸웠던 흔적은 그 새끼를 족쳐놔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 존나 수고가 많이 들었을 법한 정원을 좆창내버리고 왕궁에서 빤쓰런을 감행하지 못한 대가로, 우리는 이 브리타니아의 명예로운 기사님들이 쫙 깔리는 꼴을 보게 되었다.

“어…… 아니, 잠시만요. 오해의 소지가 있었단 건 이해합니다만──”

“해명은 수감 상태에서도 할 수 있다, 백작! 네 입장과 무력을 스스로 감안해라! 네가 중범죄자일 가능성이 0%가 아닌 이상, 우리는 너를 나포하는 과정에 힘을 뺄 수 없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떳떳하다면 수사, 취조에 협력해라!”

“허미 씹.”

조리 있게 말하니까 뭐라고 못하겠네.

확실히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면 저들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솔직히 기사들이 좋게 좋게 나가려다가 내가 ‘응~ 죽이고 튈게~’ 했다간 좆되는 거잖나.

인간이 파워레인져에 나오는 괴물을 체포하는데 무죄 추정의 원칙을 준수한다고? 이게 영화였으면 나무위키에 ‘스토리 평가/혹평’으로 박제됐어요.

“알겠습니다. 크흠…… 아니, 알겠소. 가능한 한 협조적으로 굴리다.”

나는 근-엄하게 말하면서 푸쳐핸섭을 시전했다.

“나를 구속하는 건 상관없으니 아내는 정중하게 대해주시오. 만일 수사 과정에 부당한 대우나 사심 섞인 행동이 발견된다면 후일 개인적으로 만나게 될 거요.”

“당신답지 않게 말투가 왜 그렇습니까? 백작.”

순간적으로 심장이 철렁한 건 봐 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목소리를 들었을 때의 기억이 플래시백 돼서 오랜만에 PTSD가 추가된 기분이니까.

“폐하?”

“벌써 존칭이 입에 뱄군요. 이렇게 충성스러운 신하를 의심했다간 왕가의 명예가 실추되겠죠.”

이 시대의 엘리자베트는 그렇게 말하며 기사들 상대로 손짓을 했다.

“기사단. 대장을 포함한 대표 셋만 남고 주변을 수색하세요. 백작이 무고하다면 그가 왕궁에서까지 싸워만 했던 강적의 동료가 더 있을지 모릅니다.”

“하오나, 폐하.”

“왕명입니다.”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기사 몇 명만 남고 포위망은 흩어졌다. 그녀는 내게 눈짓했다. 무슨 일인지 설명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기 전에 공간이 쩍 열렸다.

“선배애애──!!!!!”

이제 막 물러나려던 기사들이 다시 검을 뽑으며 돌아설 정도로 쩌렁쩌렁한 고함이었다. 그 요란한 외침을 내지른 장본인이 날다람쥐처럼 내 몸통에 달라붙었다.

“와 시발, 육탄돌격 봐라. 나 존나 팅커벨인 줄 알았잖아.”

“팅커벨이 뭔지는 몰라도 저한테 빗대셨다는 건 그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물이겠죠?! 어쨌거나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으아아앙──!”

아웃사이더의 망령이 여기에도 있었군. 어쩌면 로마니아가 터가 안 좋은 땅일지도 모른다. 외계 문어들이 수백 년 간 통치한 나라가 어련하겠어.

“노르! 너 이 새끼 왜 자꾸 연락을 안 받고 지랄──”

라리루라만큼 무식하지는 않았던 다나는 그녀의 권능으로 정원에 난입했다가, 결사적인 표정으로 포위하는 기사들을 보고 입을 닫았다.

어떤 어린 기사가 파워레인져 괴물도 한 번에 5~6마리씩 나오지는 않는데 시발 하는 낯짝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더라.

“……야, 야, 라리루라. 주변도 좀 보지?”

“?”

뭐가요? 하는 눈치였던 라리루라도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하고 나한테서 떨어졌다. 여름철 매미처럼 붙어 있던 팔다리가 떨어져서 내 등 뒤에 숨었다.

연어도 아니고 귀소본능이 있나. 얘가 왜 자꾸 내 등을 전용석 취급하지.

“……후우. 백작의 가족입니다. 물러서세요.”

매우 피곤해 보이는 엘리자베트가 손짓하고, 그 후에 간신히 자초지종을 이야기할 시간이 되었다.

“이 3명은 신뢰할 수 있는 기사입니다. 사정을 듣죠, 백작.”

“옙.”

아내들을 포함해서 간략하게 사정을 전했다. 더 자세한 부분은 귀가해서 아내들이랑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해야 할 듯한 내용이니까.

“흑마법사 사냥꾼으로 유명한 저희 네페르티티 양이 오랜 시간 쫓던 악독한 흑마법사가 왕궁에서 음모를 꾸미길래 해치웠슴다!”

보라. 이 노련한 설명을!

유부남은 변명과 설득의 스킬이 절로 는다던가. 역시 인터넷에 적혀 있는 말은 다 진짜라는 링컨 대통령의 말에 틀린 거 하나 없다.

여왕님의 표정이 썩어들어가길래 내가 조금 더 내러티브를 붙이자, 그녀는 한숨을 푹푹 쉬어가며 눈을 마사지했다.

“하아…… 프리실라. 왕성 침입에 대한 건 일단 전부 불문에 부칠게요. 잠시 그를 데리고 계세요. 왕성 내부의 침입자를 잡았다고 밀어붙이겠어요.”

왕성에 몰래 침입한 귀족을 보냈다, 혹은 다른 귀족들 몰래 왕성에 사람을 불렀다.

어느 거든 정치적인 약점이 될 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트는 눈 감고 넘어가 주려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의 내용보다, 어느 한 부분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내가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자, 라리루라는 왜 그걸 나한테? 하는 눈치로 고개를 모로 꼬면서도 일단은 대답했다.

“앗, 네, 넵! 죄송합니다, 에르ㅈ…… 에베베벱.”

무심코 대답했다가 말을 잘못했다는 걸 깨닫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 라리루라. 그럴 수밖에. 여왕 상대로 애칭을 부를 만큼 그녀들이 친근한 관계는 아니었으니까.

──지금, 이 시간대에는 말이다.

“에르제가 아니고 엘리자베트…… 도 아니고, 어……?”

분명히 그랬을 텐데도, 라리루라는 뭔가 어색한 듯 고개를 모로 꼬았다.

“저…… 여왕 폐하? 실례지만, 제가 폐하께 제 본명을 말씀드렸던가요?”

“본명이요? 당신 이름이 달리 또 뭐가 있──”

그렇게 대답하던 엘리자베트가 순간 얼이 빠진 듯이 눈을 깜빡였다.

“……라리루라. 라리루라였죠? 아니, 여왕으로서 충성스러운 신하의 가족 명세 정도는 알고 있죠. 그건 당신의 예명이잖아요? 본명은 프리실라고요.”

그렇게 현실적인 이유를 찾았으면서도, 그녀는 당혹스러운 듯 자신의 입가를 손으로 감쌌다.

“알고는 있지만…… 저는 어째서 갑자기 당신을 본명으로……?”

위화감이 해소되지 않는 것처럼 눈을 찌푸리는 엘리자베트.

하지만 그녀의 의식은 그 꿈결처럼 희미한 위화감을 금세 잊어버리고 말았다.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길다트?”

“안색이 나쁘군. 안 좋은 시기에 무리한 탓인가.”

사악─. 그녀의 뺨을 쓰다듬은 길다트는 시종을 부르고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엘리자베트는 꼭 잠에서 덜 깬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밤이 늦었다. 먼저 자라. 뒷일은 맡기고.”

“……싫어.”

“뭐?”

엘리자베트는 한 나라의 여왕답지 않게 남편의 손을 조심조심 잡았다.

내가 아는 그녀라면 상녀자처럼 팍 낚아챌 만도 한데, 꼭 부서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는 듯한 동작이었다. 어째서 이러는 건지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것처럼.

엘리자베트는 길다트의 손을 주무르며 말했다.

“……같이 자자. 오늘 정도는.”

“어제도 그랬다만. 하루 정도는 참아라.”

“싫어. 내일도 그러리란 법은 없잖아. 같이 자.”

“……어리광이 늘었군.”

길다트는 자기가 어쩌겠냐는 듯이 여왕 폐하를 번쩍 들었다.

“뒷일은 맡기지.”

“존명, 삼가 받들었습니다.”

길다트에게 안겨서 꼼지락대던 그녀는 내 뒤에 있는 프랑을 발견하고, 잠깐 남편의 어깨를 쳤다. 길다트가 발을 멈추자 그녀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프란체스카 부인. 그리고 노르드.”

“네? 저, 저요? 고, 고마우시다니 뭐가……?”

“……후훗. 그냥요? 왠지, 이것만은 꼭 말해둬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웃던 엘리자베트는 남편에게 안겨서 내 쪽에 손 인사를 하며 사라졌다.

나는 그녀에게 귀족적인 예의범절 스킬로 머릴 숙이고 중얼거렸다.

“운명의 흐름이라는 것도, 그렇게 막 나쁘지만은 않네.”

“네에……?”

라리루라도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즐거운 듯 했다.

“다행히 체포당할 걱정은 없나 보군요. 이대로 귀가하면 되겠어요.”

안심한 것처럼 한숨을 쉬는 티르시는 그러고서 나를 소나무 삼아서 다시 둥지를 튼 라리루라에게 뚱한 눈빛을 발사했다.

“그래서, 언제까지 그러고 계실 건가요?”

“으음, 모르겠어요☆! 오늘따라 유독 선배랑 24시간 밀착 밀집 밀접하고 싶은 기분이에요!”

얼굴을 부비부비 비벼대는 라리루라. 그런 우리 후배님을 꽁해진 얼굴의 네페르티티가 잡아당겼다.

“……양보해. 오늘, 나한테 엄청 중요한 날.”

“네에~ 그런 특별대우 없습니다~. 아무한테도 양보해주기 싫어요~♡”

“내 의사는 아무도 물어볼 생각을 안 하는군.”

“선배는 저희가 좋다고만 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거절 안 하실 거면서☆”

“나도 거절할 때 정도는 있는디요.”

“아핫♡ 거짓말. 그런 날이 오면 그날이 세상이 멸망하는 날이겠네요!”

눈치 빠른 녀석 같으니. 내가 웃자 프랑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프랑으로서는 무척 드문 일이라 가족들은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걱정하느라 지쳐서 그런지 악몽이라도 꾼 듯한 기분이야.”

왜 그러는지 물어보는 듯한 시선에 대답해주는 프랑. 그녀는 그렇게 하고는 총총총 걸어와선 내 팔에 팔짱을 꼈다.

“나도 낄래.”

“꺄아아앗! 프랑 언니가 배신했어요! 아니, 그런 것보다 생각해 보니까 이럴 때가 아니에요! 지금 아셰라드 학회장님이 납치당했다고 연락이 와서!”

정신을 차린 듯 내려오는 라리루라.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 옷자락은 잡고 있는 게, 어지간히도 나한테서 떨어지기 싫은 모양이었다.

사실 깜빡할 만도 했다. 나랑 연락도 안 되는데 네페르티티 혼자 차원벽 안에 쳐들어가고, 어떻게 자기들도 도착해보니 기사단이 초토화된 정원에서 포위망을 꾸린 상태였으니.

“상처! 상처 같은 건 없나요?! 상대는 그 성격 나쁜 듯한 음습한 암약 학살마였잖아요?! 무기에 독이라도 발라뒀으면 어떡해요!”

“지 몸에 독 인챈을 걸어놓으면 궁니르도 눈이 뒤집히지 않을까.”

“됐고, 둘 다 손 내밀어. 몸 상태 좀 보게.”

냉정해진 머리로 상처를 치료하려는 그녀들. 난 손을 내밀면서도 일단은 수첩을 펼쳐서 페이지를 한쪽 찾아내고 말했다.

“난 괜찮으니까 학회장님부터 구출해 줘. 어디 계신지는 알았는데, 내가 직접 가기에는 체력적으로나 남은 마나로나 영 힘들겠어서.”

“흐음. 위치만 알아낸다면 어려울 것 없겠다만, 어떻게 알았느냐? 예지인가?”

“아니, 누가 알려줬어.”

“……알려줘? 누가?”

누가 방금 막 알아낸 납치 사건을 해결할 단서 같은 걸 알고 있대?

딱 그런 느낌으로 나를 보는 베로니카.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막기 힘들었기에, 나는 존나 이상하게 보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실실 웃어댔다.

“누구긴. 내 충직한 무녀님이지.”

“……불륜? 불륜이더냐?! 나 말고도 또 무녀를 들여선 찌걱찌걱 뷰룻뷰룻 하고 권능을 슬롯 인해 준 거구나?! 좋아, 울겠다! 나는 울겠다, 주인님!”

“아 씌펄, 그런 거 아니니까 진정해 중2병년아.”

그 조용하던 미래 세상이 벌써 옛날 일이 된 듯 시끌벅적하군.

일단 집에 가서 씻고 한숨 자고 싶네, 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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