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87화 (986/1,009)

***

자고로 입원환자는 병석에서 골골대는 것보다는 ‘이 새끼 뭔데 존나 건강함?’ 싶을 만큼 활발하게 회복하고 있는 게 더 보기 좋은 법이다.

그래. 그렇긴 한데, 무슨 일이든 정도란 게 있지 않을까?

“존나 명불허전 로키님이셔. 속 편하게 누워서 포도나 쯉쯉 빨고 계셨는데 내가 연락도 없이 막 찾아와서 어쩌냐, 이 망할 껌딱지 할망구야.”

─껌딱지? 누굴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걸? 여기 평평한 거라곤 알맹이 빼먹은 포도 껍질이랑 침대 정도밖에 없는데, 혹시 너 물건이랑 대화하니?

“오딘보다 작은 년.”

─언니가 키에 비해서 큰 거야!! 언니가 키에 비해서 큰 거라고!!

로키의 본체는 작았다. 세로로 작고 가로로 작고 폭도 작았다.

자기 본체가 섹시하다느니 떠들건 건 구라였군. 꼬맹이라고 해도 좋을 크라운 크라운이랑 육체의 파장이 잘 맞았던 시점에서 야부리라는 걸 알아야 했나.

그야 크라운 크라운보다는 크지만, 절대 라리루라랑 비교할 급은 아니다.

“슬레이프니르보다 작은 년. 바이콘들보다 작은 년. 요정들 유전자의 근원지 같은 년. 네가 구슬린 말 쥬지 신족에게 하루에 3번씩 절하렴. 그놈 DNA 덕분에 니가 풍만해서 후손들도 큰 것처럼 보이잖아?”

─이제 막 회복기에 들어간 환자인데 문병 와서 삶의 의지를 꺾네.

“노인네가 죽어야지 하는 소리는 8할 정도 흘려들어도 된다더라.”

─살아야지. 아득바득 까드득빠드득 살아서 니 재산 축내면서 떵떵대야지.

“오늘도 로키 교는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으요. 껌딱지 같은 로키님 가슴에 마나가 쑴풍쑴풍 흘러 들어가는 게 느껴지시나요? 이게 다 님 일감임.”

─세금징수원 같은 놈. 내가 바지사장이라는 걸 까고 울프헤딘 교로 업종 전환 신청 넣을 거야.

“마케팅을 찌찌 대따 큰 여신으로 했는데 니가 로키라는 말을 퍽도 믿겠다.”

“……그 마나의 근원지가 인간들이었나? 어쩐지 회복이 빠르다 싶더니.”

“씹? 디안아, 우리 노인네 국민연금 닌자했니?”

“흥. 치료에 사용한 걸세. 절대 사리사욕에 쓰지 않았노라고 내 명예에 맹세하겠네. 오해하기 쉬운 말투를 써서 정말 미안허이. 내 이리 사죄하지.”

로키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빵 터졌다.

─으히히히히힉! 쟤, 쟤는 또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대?! 으헤헤헤헥!

우리 여신님 웃음 소리 한 번 뒤지게 천박하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디안의 손에서 논문을 낚아채서는 바닥에다 물감을 묻힌 나뭇가지로 마법진을 그렸다.

“니 몸으로 임상실험 치료빵 내기를 했거든. 아, 바로 할 건데 괜찮지?”

─어? 어어? 그…… 뭔진 모르겠지만 안전한 거 맞지? 안전한 거면 괜찮아.

나는 의외의 대답에 마법진을 베끼다 말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뭔데 그렇게 순순함? 나는 또 난리치면서 살려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여기 입원할 때처럼.”

─오딘 언니한테 이거 먹어봐 소릴 10만 년쯤 듣던 나란다. 그리고 치료받는 게 싫었던 건 미친 의사 놈한테 치료를 맡겨가면서 곧 죽으려는 늙은이를 되살려서 일 시키려는 사티스한테 기겁했던 거고.

맞네. 자기 몸을 실험하는 미치광이를 평생 쫓아다닌 순애보였지, 얘.

미친 의사라는 사실적시에 디안이 팔짱을 끼며 불쾌한 듯 인상을 썼다.

“환자 주제에 의사에게 못 하는 말이 없군. 네 치료제에 독충이나 병균을 탈 수도 있다, 로키.”

“디안아?”

“하지만 절대로 하지 않을 걸세. 의술은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지, 고통과 절망을 주는 기술이 아니기 때문일세.”

중간중간에 1~2대씩 채찍질을 해줘야 하나. 난 성격이 유아독존 그 자체인 미치광이들 사이에서 푹 한숨을 쉬었다. 정상인이 나밖에 없으니 이렇게 지친다.

사악, 사악─.

디안과 나는 베로니카가 쓴 기술(記述)대로 그 영혼이 들어간 관짝 주변에 재료를 깔았다. 여기 없는 재료는 디안이 창세의 권능으로 만들었다.

다행히 디안이 만든 제조 시간 10년 짜리 몸이 재료가 워낙 좋은 것들이라서 시약 등을 거의 다 대신할 수 있었다.

“끙…… 힘들구먼. 자네가 만들어줄 수는 없나?”

“자격증 없는 놈이 약 만드는 거 아님.”

“쯧…… 그러나 아무래도 야만스럽군. 거 누가 마녀를 주신으로 삼는 대륙 아니랄까 봐……”

“삐까?”

“어아아아아아악!!!! 끄르르르르르르르륵……!!!!”

불우한 사고로 감전당한 디안은 그렇게 한 마리 공벌레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덜덜 떨었다.

신들도 전기쥐의 꿈을 꿀까? 그거야말로 신만이 알리라.

“틀딱쉑 정신 10분 압수.”

이 마법을 준비한 게 누군데 씹놈이 마녀래?

우리 여신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어엿한 성노예 무녀다. 나는 콧김을 뿜고 정전기가 일어난 손을 털었다.

“흐음, 어디 보자……. 물 35ℓ, 탄소 20㎏, 암모니아 4ℓ, 석회 1.5㎏, 인 800g, 염분 250g……”

대충 그런 느낌의 기타 등등 이것저것. 세팅은 깔끔하게 끝났다.

“로키. 창세의 권능으로 네 혼을 안착할 육체를 처음부터 만들 거야. 단, 재료는 현실에 존재하는 걸 쓸 거고. 룬 마법이나 같은 창세의 권능에 지워지는 일이 없도록.”

─난 뭘 하면 되는데? 포도 찌꺼기 치우기?

“포도의 신이 되고 싶다면 마법진 위에 냅두는 것도 괜찮겠지. 피가 포도주가 된다면 신도들에게 더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

로키는 허겁지겁 포도의 영혼을 치웠고, 마법진 안에 들어간 내가 포도의 실체도 치웠다.

이렇게 보면 죽은 사람이 와서 제사상에 차려둔 걸 먹고 간다는 것도 미신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디안아. 일어나라. 의사가 수술하다 말고 자게 돼 있냐?”

“허억! 지, 지금 가겠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디안은 다만 하나의 시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의사가 되었다.

문과로 갈 걸 그랬군. 나는 뒤로 물러났고, 미친 의사 디안은 아직도 못 미덥다는 듯 레시피…… 가 아니고, 치료법을 적은 책자를 힐끔거렸다.

“의식의 주체는 자네일세, 로키. 울프헤딘이 불어넣은 창세의 권능을 마법진이 걸러서 자네에게로 흘려보낼 것이야.”

─나는 나한테 맞는 새 몸을 상상하고? 괜찮네. 자기 몸은 자기가 가장 잘 아니까.

“의사로서 동의하기는 힘든 말이네만, 그렇다네. 원래의 육체를 상상하는 게 제일 나을 걸세. 사리사욕이나 흑심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시게나.”

─……흐음. 뭐, 알겠어.

준비가 끝났다는 듯 디안이 비켜서자, 나는 브류나크를 마법진에 꼽고 권능을 불어넣었다. 토르의 신좌에서 뿜어진 힘이 로키에게 흘러갔다.

─끄엑?! 뭐야 이거! 권능에서 땀내나!!

“적당한 땀 냄새는 페로몬의 향수지.”

─나는 남자든 여자든 근육질보다 작고 귀엽고 여리여리한 애가 좋…… 이거 설마 토르 신좌니?! 권능에서 멍청한 티가 나서 속이 막 뒤집히는데?!

“집중해라. 니가 쓸 몸이야. 토사물의 여신으로 불리고 싶진 않지?”

─히이이이이이!

불만은 듣지 않았다. 마법진에 배치한 그릇에서 시약들이 치솟으며 몽환적인 오로라처럼 로키에게 흘러 들어갔다.

처음에는 신음을 흘려대던 로키도 점차 의식이 가라앉은 듯 조용해졌다. 시약이 움직이며 빛으로 바뀌고, 권능으로 조립되었다.

나는 문득 로키가 끌어안은 듯한 중심에 뭔가가 떠오른 걸 보았다.

태아 같던 그것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성장하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갓난아기처럼 커졌다. 그리고 조금 더 성장해서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소녀로 보일 만큼 성장했다.

“음.”

외간 여자의 알몸을 구경하는 취미는 없다. 난 전문 의사도 아니고.

눈을 돌리고 보자 디안이 책자를 마구 넘겨대고 있었다.

“끙…… 이게 성공했다고? 경악스럽군.”

“치료에 문제는 없어 보이냐?”

“가슴의 상처는 내가 고쳤다네. 육체만 있으면 인간 계집의 몸에 혼을 의탁했을 때처럼 별 지장 없을 것이야.”

만약 결과가 좋지 않으면 외박 직행인데, 뭐라 변명하지.

“그렇게 걱정되나? 로키를 퍽 좋아하나 보구먼.”

“로키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 로키가 나은 뒤에 오는 걸 좋아하는 거지.”

“자네만한 영웅호걸도 아내들의 등쌀은 무섭나.”

“넹.”

초조하게 다리를 떨며 기다리는 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디안의 말대로였다.

한 가지 오산이 있다면, 반나절 정도 걸리리란 예상이 틀렸다는 것이다.

로키의 새 육체가 완성되기까지는 고작 9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게 뭐야!! 내 손이 왜 이렇게 작아?!”

왜냐하면 로키는 크라운 크라운 시절보다도 더 쬐끄만 꼬마가 됐기 때문이었다. 영혼의 원래 모습이 10대 후반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초딩이다.

“오, 반로환동.”

나는 일단 판초 같은 옷을 머리부터 씌워주고서 박수를 쳤다.

역시 할망구 여고수야. 여고생에서 여중생으로 회춘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초딩이 됐군. 로두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야, 이 돌팔이야!!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로키는 내 멱살은 차마 못 잡고, 날다람쥐처럼 날아서 디안의 멱살을 잡고 매달렸다. 대체 얼마나 가벼우면 저 쭉정이한테 클라이밍 하듯 매달리냐.

디안은 눈 하나 꿈쩍 않고 코웃음을 쳤다.

“슥 보니까 알겠군. 내 경고하지 않았나? 원래 몸을 떠올리라고.”

“떠올렸어! 섹시하고 요염하고 쭉쭉빵빵한 로키 님의 몸을 떠올렸다고!”

“신장을 키우고 군살을 더 붙이려고 했겠지.”

“……………….”

“이미지가 역으로 작용했군. 자기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이 남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조금 더 심하게 키우려 했으면 거의 갓난쟁이가 됐겠어.”

“티, 티 나지 않게 조금만, 조금만 고치려고 한 거야! 맨날 변신하고 다니는 게 힘들어서…… 이 몸 다시 못 만들어?! 한 번 더, 한 번만 더 하자!”

“될 리가 있나. 애초에 신이면서 육신과 혼백을 분리됐던 건 옛 지배자에게 이름을 빼앗겼을 때의 특수성과, 자네가 잃은 권능 덕분이었다네.”

디안은 아주 상쾌하게 웃었다. 인성이 터진 미치광이에게는 지 혼자 자업자득으로 엿 먹은 로키가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는가 보다.

“욕심은 파멸을 부르지. 아직도 배움이 부족한 모양이오, 로키=로두르.”

“아아아아아아아악!!”

떼쓰는 잼민이처럼 하이 톤을 내지르며 로키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됐으니까 나 좀 집에 보내 줘. 통금 있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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