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1003화 (1,002/1,009)

***

이 싸움의 종지부는 내 손으로 찍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베풀고 받았던 모든 사랑이 내 등을 떠밀어준다는 걸 눈치챈 순간, 즉시 앞을 향해서 질주했다. 내가 아닌 베로니카에게 증오를 보내는 ‘심해의 군주’에게.

‘심해의 군주’는 발작하는 것처럼 마법을 쏘고, 물리적인 살해 수단을 베로니카에게 향했다. 지금 샘솟는 감정 중에 어떤 걸 우선시하는지는 그걸로 뻔했다.

그래서, 저 괴물의 패인을 찾자면 그게 전부다.

증오와 분노는 사랑을 이길 수 없으니까.

“너만을 봐 달라며! 니 짝사랑께서 낯짝을 보러 오셨다, 문어 대가리!”

싸움을 시작하고 셀 수 없이 펼친 공격이었지만 지금 이때가 가장 빠르고 날카로웠다.

푸슉─! 창날이 몸을 날린 ‘심해의 군주’의 팔을 핥고 지나갔다.

“왜, 왜, 왜, 왜, 어째서……!!!”

베인 상처는 낫지 않는다. 다나의 빛이 나에게 싸울 힘을 주었다. 그녀의 사랑이 내 분신과 같은 창에 깃들었다.

“사랑이건 분노건 한쪽에만 집중하거라. 비원만 추구하기에도 인생은 짧으니, 사랑하는 이를 얻는 건 일족을 구해줄 이를 찾는 것보다 어려우니라.”

【천변신의 고삐】를 발동한 베로니카는 마법을 속속들이 파훼하면서, 내 다리에 더 속도를 실어주었다. 한 달음 남은 거리가 반 달음으로 줄었다.

캉캉캉캉캉캉…!!!! 촉수와 창이 자웅을 겨뤘다.

“으으으으으……!!!”

압도하는 건 나였다. 증오로 검게 물든 여인은 부서진 별이 산란한 우주에서 뒷걸음질을 쳐댔다. 감정의 동요에 맞춰서 소우주는 점차 어두워졌다.

“……너희만 없었으면.”

내게 베이는 아픔도 기쁘게 받아들이던 ‘심해의 군주’는 고통스럽게 눈물을 흘렸다.

자기를 베는 창이 내 반신이 아니라, 불순물로 빛나는 것이었기에.

“너희만, 너희들만 없었더라면!!!!”

내가 가했던 어떤 공격보다 큰 정신적인 타격을 받은 ‘심해의 군주’는 베로니카에게 응축한 블랙홀들을 던졌다. 창세의 권능이 없는 그녀로선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개의치 말거라. 발목을 잡으러 온 게 아니니.”

나는 들려오는 말을 믿었다. 배로니카가 약하게 만든 촉수가 내 창에 싹 다 베여서 하늘을 춤췄다.

“신들께서 만들고 피조물은 구가하리니.”

베로니카는 수인을 맺으면서 맹렬하게 접근하는 블랙홀로 뻗었다.

“창세의 권능이란 본디 베푸는 힘. 고맙게 사용하마.”

그녀가 수인을 비틀자, 날아가던 블랙홀은 마치 네트에 튕겨나간 것처럼 ‘심해의 군주’에게로 다시 날아갔다. 나는 그 중력의 압박에 ‘심해의 군주’를 차서 날렸다.

“전부 다 없어져 버려!!”

자신이 만든 재앙에 휘말린 ‘심해의 군주’가 그 주변의 공간을 후려쳤다.

혼신을 다해서 창조한 공격이었기에 그년도 내 발에 차여서 날아가는 도중에 전부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블랙홀에 걸레 쥐어짜듯 팔이 뒤틀렸다.

하지만 그때는 소우주에 다시 금이 벌어지면서 베로니카를 휩쓸었다.

“투정을 부린다 한들 없어질쏘냐. 우리 중 누구 하나, 너와 비교하여 마음의 크기에 부족함이 없느니라.”

베로니카는 눈도 끔쩍하지 않고 나에게 버프를 걸어주고서, 기꺼이 축객령에 몸을 던졌다.

우주의 바깥으로 그녀를 쫓아내는 것에 성공한 ‘심해의 군주’는 기뻐하지도 않고 화들짝 놀라서는 내 쪽으로 공격을 날렸다. 나는 투창 자세를 잡고 허리를 틀었다.

“어딜 노려야 할지는 알지?”

“아핫♡! 그야 물론이에요!”

귀염성 있는 대답은 지시에 충실했다. 번갯불을 추가한 오러 창은 공간을 도약했다.

“그런 뻔한 수작에 당해줄, 리가……?!”

이를 간 ‘심해의 군주’는 공간 조작을 감지하고 소우주를 지배하는 창세의 권능으로 상쇄하려 한 듯 했다. 하지만 생각했을 뿐, 실천할 순 없었다.

슈슈슈슈슈슈슈슈슈슈슝─!!!!

던진 나조차도 따라잡지 못하는 속도로 19개의 워프 게이트를 관통하는 오러 창!

그물망과 같은 궤적을 그리는 창은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별의 바다에 길쭉한 잔상을 남겼다.

“이 권능은, 【성간우주의 바람】!!”

예상 밖의 시간 조작에 ‘심해의 군주’는 주위를 두리번대며 창의 궤적에 정신이 팔렸다. 지나치게 가속한 창이 어디로 날아들지 예측할 수 없어서다.

그래도 내가 전한 이심전심의 한 마디를 권능의 발현자는 알아들었다.

“앗, 지금 그 자세 좋아요! 치~ 즈♡!”

─찰칵.

방심한 적에게 막대한 권능의 힘이 작용했다. 딱 한순간, 찰나지간의 시간 감속. 정지하듯 우뚝 선 ‘심해의 군주’의 왼쪽 옆구리에 창이 꽂혔다.

시간의 흐름이 되돌아온 ‘심해의 군주’는 투창에 맞고 몸이 직각으로 꺾였다.

“캬흐, 악……!!”

“베로니카 언니가 입힌 상처가 심했군요! 왼쪽 팔의 반응이 바짝 마른 문어처럼 굼뜨시네요♡!”

튕겨낸 블랙홀에 비틀린 팔과 뜯겨나간 옆구리. 거기에 내 투창을 적중시킨 라리루라는 손가락을 카메라처럼 접었다.

“로키님 가라사대, 어떤 사람도 가족과 행복을 추구할 자격은 있다셨죠! 그러니까 선배에게 찝쩍대는 괴물에겐 제가 있는 힘껏 예끼 이놈 해 드릴 거랍니다!”

라리루라의 권능이 실린 오러 창은 내가 가하는 상처를 받아들였던 ‘심해의 군주’도 용납하기 힘든 것이었던 듯 하다.

─푸확! 낫지 않는 상처에서 창을 뽑은 ‘심해의 군주’는 이제 무언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방해하는 이들이 있건 없건 나한테서 그녀들의 기억을 소멸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증오를 완전하게 없애진 못했고, 그 의식의 일부는 라리루라를 노려봤다.

이제는 완전히 숙달했는지, 휘저은 팔이 분사한 항성 가스의 대폭발이 라리루라를 후려쳤다. 쫓아내봤자 다른 아내들이 들어오리라는 걸 이해한 듯 했다.

하지만 라리루라는 스스로 시공간을 주무를 수 있다.

그렇기에 다음 순간, ‘심해의 군주’는 재생시킨 마나 촉수를 거의 성벽처럼 늘어트렸다가 뿌리째 뽑혀버렸다. 촉수가 얼어붙은 탓에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휘두르려던 원심력에 날아간 것이었다.

“잘라도 잘라도 계속 자라나는군요. 괴사시켜도 그럴까요?”

나에게만 집중한 건 잘못이었다. 자기를 보지도 않는 적을 놓칠 만큼 그녀들은 녹록하지 않았다. 하물며 적을 추적하는 우신의 눈으로 완드를 만든 그녀는 더 그랬다.

쩌어엉…!! 등판에서부터 몸 깊숙이까지 한기를 쑤셔 넣은 티르시는 측면에서 가한 무게에 바닥을 튕기는 ‘심해의 군주’에게 완드를 겨눴다.

“지난날을 마무리 짓지 않고 미래를 살아갈 순 없죠. 당신이 봐야 하는 건 저희 서방님이 아니라, 오늘까지 벌인 악행의 추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마나가 얼었지만 ‘심해의 군주’는 나를 노렸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눈빛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내게서 더 많은 걸 앗아가면 다시 조금 전처럼 행복한 살육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처럼.

쩌저저정!! 쩌저저정!! 쩌저저저저정─!!

그러자 티르시는 아예 포대처럼 하늘에 위치를 잡고 대마법을 쉴새없이 발사했다. 자신의 육체를 통하지 않고 마법을 펼치는 〈탄빙옥궤〉의 연속 사용이었다.

“그럴 거라 생각했죠. 저도 생각보다 속이 좁고 계산적이어서, 싫은 소리를 하면 거들떠도 안 볼 줄 알았어요.”

내게만 공격을 퍼붓던 ‘심해의 군주’는 오만하게 굴다가 산봉우리에 깔린 손오공처럼 빙산에 몸을 짓눌렸다.

어떤 대마법사도 감히 따라할 수 없는 무한하기 짝이 없는 대마법 연타!

─콰직!!!! 가녀린 주먹이 빙산을 부쉈다.

얼굴에 서리가 낀 ‘심해의 군주’는 아예 창세의 권능으로 차원을 분단했다. 그리고 폭탄을 남기듯 티르시가 있는 차원에 융합 직전의 질량체를 내버렸다.

창세의 권능이나 룬 마법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인간 출신의 마스터 클래스는 속절없이 은하 탄생 급의 대폭발을 현실로써 몸에 쬐어야 할 것이었다.

─츠즈즈즈즈즛!!

거기에 그치지 않고 창세의 권능으로 차원벽을 겹겹이 세우는 ‘심해의 군주’. 집요할 정도로 벽을 세운 것이었다.

빈틈을 보고 찌른 창날이 손가락을 베어내면서 붙잡혔다. 다나의 빛이 날붙이에서 벗겨졌다.

“저만큼 중첩하면 창세의 권능을 수억 년 써온 태초신도 쉽게는 못 뚫어, 노르. 저 여자들이 고생하는 동안 내 기억만 남겨줄게.”

이제 안심한 것처럼 ‘심해의 군주’는 내 창술을 받아들였다.

─푹푹푹푹푹!! 무방비하게 팔을 벌리며 공격이 꽂히는 걸 허용한다.

그러면서 ‘심해의 군주’는 나를 상처입힐 공격을 준비했다.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공격해도 애정표현으로 여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응, 빈틈투성이.”

바로 그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심해의 군주’는 수십 겹의 차원벽과 은하의 자멸을 한 방에 전부 때려부순 채찍에 등을 맞고 피를 토했다.

─휘릭!

꿈결 속의 환상을 채찍질로 없앤 네페르티티가 우아하게 내려왔다.

“……이런 따분한 세상에서 노르드와 만나는 게 네 소원?”

그녀는 내 너덜너덜한 장비를 보고 내가 입었던 상처를 짐작한 것처럼 분노했다. 그러면서도 또랑또랑한 목소리는 한겨울의 옥구슬처럼 차가웠다.

“꿈을 이루고 난 후에 바라는 게 없어. 죽기를 바라면서 죽음까지의 시간을 늘릴 따름. 그래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도 없어. 지금 이 순간은 영원할 수 없는걸.”

“……입 다물어.”

의식하지도 못했던 심중을 찔린 것처럼 ‘심해의 군주’는 일어났다.

“수억 년 동안 몸을 뒤틀며 만남을 기다리면서 알았어. 이게 운명을 비트는 힘이라는 걸. 외신의 혈통도, 우둔한 거신의 종말도! 전부 쓰레기처럼 느끼게 하는 이 감정이! 인간들을 신에 버금가게 만드는 원천이라는걸!!”

쿠화악─!! 이제는 제대로 형태도 갖추지 않은 권능의 힘이 네페르티티를 날려버렸다.

“나한테는 노르뿐이야! 노르밖에 없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어! 그러니까 너희들에겐 주지 않아! 운명 따위에겐 넘겨주지 않겠어!”

얼마나 상처 입어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심해의 군주’는 보이지 않는, 관심을 가지지 않던 모든 것들을 향해서 외치듯이 소리쳤다.

“나의 노르야!! 나의── 나만의 그이야!! 너희 같은 것보다 내가 훨씬 더, 훨씬 훨씬 더 노르를 사랑해줄 수 있어!!”

“……그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도 사랑해줄 수는 없었구나.”

귀에 낯선 목소리다. 하지만, 잊을 수조차 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무심코 그쪽으로 얼굴을 향했다. 검은 머리카락이 내 앞을 채웠다.

“사랑해서, 좋아해서…… 그걸 잃어버리면 너무 슬프고 화나서, 그래서 세상 모든 게 원망스럽고 용서할 수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바에야 죽거나 죽이는 게 낫다고 생각해도.”

〈백토인형〉 무장을 두르지 않은 프랑은 맨몸 상태로 걸어 나왔다.

“그래도 네가 노르를 사랑하는 만큼, 네가 해친 사람들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을 거야. 우리가 네 의지에 지지 않고 널 무릎 꿇린 것처럼──”

광기에 가깝도록 사랑에 몸을 불사르는 여인의 눈을 프랑이 들여다봤다.

그녀의 눈은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닮은꼴을 보는 것만 같았다.

“네가 품은 사랑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면 모두 가지는 감정인걸.”

그래서 그녀들은 ‘심해의 군주’에게 지지 않는다.

신과 인간, 인간과 신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니까.

방향과 표출하는 방법은 달라도, 목숨을 버려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의 사랑. 그 애정의 총량만은 그녀들 모두가 ‘심해의 군주’와 동등했기에.

깊게 사랑에 빠지면 누구든 그런 걸지도 몰랐다.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로맨스 같은 건, 세상을 불문하고 흔한 얘기다.

“……………….”

“……………….”

마주 보는 프랑과 ‘심해의 군주’는 무척 닮았다.

혈통을 되짚으면 이미르로 이어지기 때문인가? 아니다.

‘심해의 군주’가 프랑의 모습을 흉내내서? 그것 역시 아니다.

지금까지 ‘심해의 군주’가 관측했던 미래선에서, 오직 내가 프랑과 사랑에 빠지는 미래만이 지구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이곳에 도달하게 될 운명이어서?

미래예지가 ‘심해의 군주’에게 보여줬을, 나에게 가장 먼저 사랑받는 인물의 모습이 프랑이어서?

사랑하는 이에게는 헌신적이지만, 적으로 여긴 극소수의 상대에게는 냉정해지는 프랑.

‘심해의 군주’가 그걸 자신이라고 믿고, 수억 년 이상의 미래를 보는 동안 프란체스카 에이트리넨의 존재 방식을 자신의 미래라고 여기며 녹아들어서?

‘심해의 군주’가 한평생을 노르드 울프헤딘에게 사랑받는 첫 번째 여인이, 프랑이 되기를 바라서?

그것도 아니면 프랑이 수십억 분의 1의 확률로 태어난, 본디 내 운명의 상대였던 ‘심해의 군주’와 닮은 존재여서?

전부 틀렸다. 그런 이유가 아니다.

같은 남자를 사랑하고, 같은 운명을 갈구했다.

살아갈 가치를 찾아내지 못한 세상에서, 사랑을 이유로 흘려보내듯 낭비하던 삶에 의미를 얻었다.

그래서 둘은 이토록 닮았다.

운명이 점지한 듯한 나의 짝.

프랑의 어둠은 ‘심해의 군주’가 될 수 있었다.

‘심해의 군주’의 빛은 프랑처럼 빛났을지 모른다.

아주 약간의 우연과 마음가짐의 차이는 그들의 서 있는 위치를 정반대로 바꿨을지도 몰랐다.

스릉─.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옛 지배자가 된 인간은.

사랑을 성취하고자 인간이 된 옛 지배자는.

다른 미래에서 온 자신 같은 타인을 마주 보며 무기를 들었다.

“……노르는 주지 않아, 프란체스카 에이트리넨.”

“줄 필요 없어, ‘심해의 군주’. 이미 내가 노르의 것이니까.”

애정과 집착으로 일그러진 자그마한 우주의 한 끝자락에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던 타인에게 다시 없을 영멸을 선사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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