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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의 시작
“아냐... 이건...”
게임창.
인건가?
아서가 처음 보는걸 보니, 이 세계에서 흔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이건 대체 뭐지.
그러다 문득, 아까 들은 고유 능력이란 게 생각났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어쩌면 이게 나만의 특별한 능력일 수 있지 않을까?
난 한번 창을 건드려 보았다. 손가락 끝이 창을 닿자 마치, 터치스크린 마냥 손끝을 따라 창이 조작되었다. 난 무슨 내용이 있나 이것저것 훑어보았다.
키와 몸무게 같은 정보는 기본이고, (+)를 클릭하니 열거하기 민망한 세세한 부분의 정보까지 죄다 수치로 기록되어 있다.
가장 충격받은 건 BMI 지수였다.
51프로라니.
맙소사. 어떻게 이 정도로 찌울 수 있었지?
“처음 보는 거지만, 대충 뭔지 알 거 같아.”
[처음 본다고? 이계의 마법이 아닌 거야?]
“마법은 아니야. 하지만, 눈에 익어.”
아서가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 했다.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뭔데?]
“이 창을 네가 처음 보고, 다른 사람들은 열지 못하는 게 확실하다면. 아마,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얻게 된 능력이 아닐까싶어.”
[그 말인즉슨, 이게 너만의 고유능력이라는 거야? 맙소사. 아! 그래. 내 고유능력을 그냥 지울 수 없다고 말을 하긴 했었어. 그래서 다른 고유능력으로 대체된 거구나.]
살을 부들부들 떨면서 흥분된다는 얼굴로 말을 쏟아냈다. 이게 그렇게 흥분될 일인가? 감흥이 안 온다.
그보다 누구에게 말을 들었다고 하는 거지.
“잘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고유능력자가 희귀한 거야?”
[엄청나게 희귀하지. 내가 소속되어있는 크로넬제국에서도 열 명 남짓 되지 않을걸? 물론, 공식적인 고유능력자의 수만 따지면 말이야. 나처럼 죽기 전까지 능력이 뭔지 모르거나. 능력이 있다고 해도 쓸모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희귀하다는 건 마찬가지고.]
아서가 말한 크로넬제국이라는 곳의 인구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창이 뜬것 하나만으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특별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하니 기분은 좋았다.
[그래서, 이게 뭐야? 정확하게 무슨 능력이었어?]
“그러니까. 이 창. 아니 고유능력에는 너의 모든 게 수치화 되어 기록되어있어. 키나 몸무게에서부터, 재능의 한계까지 말이야.”
[흠...... 그게 끝?]
아서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으응? 글쎄, 지금까지는?”
생각지도 않은 반응에 갑자기 김이 팍 식었다. 생각해보니 인적사항이 나열된 것뿐이라면, 쓸모가 없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 뭐. 아직까지는 모르는 거니까. 어차피 고유능력 없더라도 이미 용사의 반열에 올라봤던 우수한 사람이었으니. 그런 요행, 있든 말든 상관없잖아?]
“쿨럭. 크. 크흠.”
[왜 그래, 갑자기? 괜찮아?]
“으...... 그게 말이지...... 아까 말한 용사 있잖아?”
사실대로 말 해야겠다 결심했다. 오히려 별일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용사 흉내 내느라 가슴 졸이고 사느니, 사실대로 말하고 도움을 청해야겠다 싶었다. 게다가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고유능력을 가진걸 알게 되었지 않은가.
아서가 찾던 용사에게는 비비지 못 하겠지만, 충분히 메리트가 있는 것 같으니. 아서가 해코지 하려 하면, 고유능력을 가지고 잘 타일러 봐야겠다 싶었다.
그래도 말하려 결심하니 떨렸다. 난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말을 이었다.
“난 용사가 아냐.”
[......?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말 그대로야. 넌 사람을 잘못 데려왔어. 난 마법이라던가 마력이라던가 전혀 몰라.”
그 말에 아서가 멍한 표정으로 한참 쳐다보았다. 불편한 침묵이 방에 감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마법을 못 써봤어?]
“전혀.”
[아까 마력도 그래서 몰랐던 거고?]
“몰랐지.”
[혹시, 검을 강화해서 사용하는 소드유저는 아니었고?]
“네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지도 모르겠어.”
[허.]
순간 아서의 표정에 허탈함이 감돌았다. 그것도 잠시.
[뭐 어쩔 수 있나? 네 삶인걸. 최대한 열심히 도와줄 테니 노력해보라고.]
가볍다. 생각보다 더 좋은 반응이었다. 낙천적으로 살아보려 했다는 건 빈말이 아니었나 보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용사건 능력이건 운운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거나. 역시, 사실대로 말하는 게 맞았어.
“그래서 말인데, 네가 말하는 것들은 해낼 방법도 모를 뿐더러, 죄다 처음 듣는 건데. 내가 계약 이행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가 아니라. 무조건 해내야 하는 거야.]
“뭐?”
그게 무슨.
[계약이라고 했잖아. 해내지 못 하면 너의 영혼이 어떻게 될지 몰라.]
“내 영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
[아. 이런 실수. 방금 한 말은 잊어줘.]
잊을 수가 있나!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확실하게 이야기 좀 해봐.”
[아~. 곤란하게 되었네. 아까, 네 영혼을 부르면서 계약 했다고 했잖아? 그거와 관련된 건데.]
아서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상당히 복잡한 이야기라 나중에 말 해줄게. 어차피 지금 말해줘도 이해 못할 거야.]
“오늘 들은 이야기 중 이게 가장 중요한 것 같은데? 이 이야기면 설명이 하루 종일 걸린다 해도 들을 테니 말해봐!”
약 올리는 건지, 시위하는 건지 휘파람을 불며 노골적으로 딴청을 피운다. 난 영혼이 소멸되니 뭐니 하는 말에 머리 꼭대기 까지 겁에 질려 미칠 지경이었는데 말이다.
아서는 안달난 내 표정을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걱정 마. 할 수 있어. 내가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완벽한 ‘앙겔로스’가 된 게 아니지만, 영체가 된 이후로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진 덕에 의욕이 샘솟고 있거든. 나도 완벽한 ‘앙겔로스’가 되려면 네가 잘 해줘야 하니까 힘내보자고.]
“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거기다 네가 실패하면, 또다시 내 대신 힘써줄 영혼을 또 찾아야하니 일이 귀찮아 진다고. 한 번에 잘해서 끝내자.]
상쾌한 말투로 양 손을 주먹 쥐고 파이팅 포즈를 잡으며, 쓸데없는 사족을 덧붙였다. 그 모습에 덩달아 내 주먹에도 힘이 들어갔다. 저 뒤룩뒤룩한 얼굴을 쥐어 패고 싶어서 말이다.
[어차피 시간은 있으니 천천히 이야기하고, 지금은 구경하지 않을래?]
“구경?”
[그래, 이 곳. 크로넬 제국학교 말이야.]
*****
당황스럽다.
허름한 나무문을 가운데 두고, 이렇게 상반된 공간이 있었을 줄이야.
방을 나오는 순간. 갑작스러운 밝은 빛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처음에는 너무 밝아 밖으로 나왔나 싶었지만, 올려다보니 천장이 있었다. 그것도 아파트 5~6층은 될 것 같은 높이에 말이다.
천장에는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원형 구들이 떠돌아 다녔다. 척 봐도 마법으로 보였다. 내가 알던 물성을 한참 벗어난 빛이었기 때문이다.
한참 입을 벌리고 천장만 바라보는데, 갑자기 시끌벅적한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시선을 내려보니, 학교 운동장보다 넓은 공간이 있었다.
사람이 많다.
학교 교복처럼 보이는 감색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방 안에서 아무 이야기도 안 들렸기에 허허벌판에 무너지듯 서있는 건물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밖에서 많은 사람이 떠들고 있었을 줄이야.
방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려 상상도 못했다.
문득 뒤에 있는 문을 바라보게 된다. 이거 허름하게 생겼는데, 방음이 잘 되는 구나.
비싸 보이는 대리석 바닥. 벽에 빼곡히 걸려있는 수많은 그림들. 내 방과 너무나 격차가 느껴졌다.
심지어 가운데에는 커다란 3단 분수대가 있었는데, 고급스러운 튤립 조각상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꽃도 별로 없는데, 어디선가 기분 좋은 향기가 은은하게 이 공간을 채웠다. 이 고급스러운 공간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아서, 여긴 어디야?”
[학생 기숙사인 튤립관의 입구이자. 모임장소야.]
“학생 기숙사 입구? 왜 네 방을 나왔는데 여기가 나오는 거야?”
학교를 구경 가자고 하기에, 가까운 곳이겠거니 했건만. 학교 안에 있었을 줄이야.
게다가 아서의 방은 의아하게도, 학생들이 오르내리는 계단 옆쪽에 붙어 있었다. 문제는 그 위치가 딱 보기에도 사람이 살도록 만들어진 곳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위치가 이상하지? 저기는 원래는 학생 기숙사 예비 창고였는데, 방으로 쓰라고 개조해서 내게 내준 거야.]
“......?”
아니, 왜 거기에 살고 있는 건가.
[원래 교원 숙소가 있는데. 그쪽으로 들어가려 했더니, 내가 들어오길 원치 않은 사람들이 꽤 있었어. 그래서 못 들어가게 되어 난감해졌는데, 교장이 창고를 정리해서 방으로 내주더라고.]
“이해가 안 되는데?”
교원들 몇이 원치 않다고, 숙소가 아닌 이런 곳에서 살게 한다고? 이 쓰레기통 같은 곳에 서?
좋은 징조는 아니다. 무엇보다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대체 왜?”
[하하. 모종의 이유로? 그래도 여기 사는 게 좋은 점이 많아. 학생 기숙사 앞이라 그런지 무방비한 옷의 여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흐흐. 아 잠시만.]
그렇게 말하던 아서가 여 학생의 치마 밑으로 들어갔다. 다시 돌아오는 아서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자리 잡혔다.
“변태 자식.”
[부럽다고 솔직하게 말해.]
그보다 저렇게 날뛰어도 되나? 설마, 아서는 내게만 보이는 건가.
"어떻게 어린애들한테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어."
[무슨 소리야 어리다니. 죄다 결혼 적령기인 숙녀 분들인데. 이제 곧 너도 우리 학교 여학생들을 보면 내 심정을 이해할걸?]
“결혼 적령기?”
그러고 보니 학생들의 연력대가 가지각색이다. 저 앞에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학생 둘은. 한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삼촌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나이차가 나보였다.
처음에 학교라는 말을 듣고 초중고가 먼저 생각났는데. 오히려 대학교랑 비슷한 개념인건가?
[날 따라와 봐.]
아서가 거침없이 날아갔다.
"아까 치마 속으로 들어가는 거 보니까 안 보이는 거 같기도 하다만. 그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돼? 남한테 네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거 아냐?"
[난 너랑만 연결된 영체야. 너만 볼 수 있다고.]
“그래? 마법도 있으니 유령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나봐?"
[푸핫. 유령이야 있지. 하지만, 난 그런 저급한 존재가 아냐. 규격외의 존재가 계약을 통해 연성한 특별한 영체라고.]
아서는 분수대 앞에서 멈추더니 내가 나왔던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아, 네가 사는 곳이 학생 기숙사로 올라가는 계단 밑이라고 했지? 저 계단을 올라가면 학생들 숙소로 통하는 각각 5개의 문이 있어. 분수대에서 내 방을 보는 방향 기준으로 왼쪽 두 문은 여학생 숙소, 오른쪽 두 문은 남학생 숙소. 그리고 정 가운데 있는 곳은 고위 귀족들의 숙소야.]
고위 귀족들의 숙소는 무슨 궁전 입구처럼 생겼다. 문에 양각되어있는 조각조차 고급스럽다.
[네가 주의해야 하는 건. 저기. 혹시나 여학생 숙소와 고위 귀족 숙소는 들어가려 시도조차 하지 마. 마법으로 막혀 있어서 애초에 그 시도는 허무하게 끝나겠지만. 시도한 것 만으로 조교에서 잘리는 건 당연지사고 재판까지 갈 수 있거든.]
“내가 너도 아니고......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 것보다. 더 걱정해야 될 일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거 같은데?
아서가 가리키는 학생들 숙소를 두리번두리번 보고 있었더니, 주위에 있는 학생들이 날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얼핏 보이는 학생들의 표정에 혐오감이 띄는걸 보니, 좋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거 같지 않다.
“아서, 학생들이 왜 날 보며 수군대는 거야?”
[혼잣말하며 여학생들 숙소를 올려다보고 있으니까 그렇지]
“아니......”
그럼 애초에 안내해주는 사람이 여학생 숙소를 보지 말라고 귀띔을 해주던가.
아서에게 말했다 해도, 남에게는 혼잣말 한 것처럼 보였을 테니.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했을까.
[흠. 이건 안 되겠다.]
“내 생각도 그래.”
[창밖을 보니, 지금 저녁시간이네. 일과가 끝날 시간이라 오히려 다행이다. 오늘은 내일 수업할 장소를 미리 가보고, 밥 먹을 수 있는 식당 위치도 알려줄게. 아, 밖에서 학교 전경도 한번 구경하고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아서가 날아갔다. 난 그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
밤이라고 하지만, 복도에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았다. 학교에 통금 같은 게 없는 건가?
그보다. 아까 숙소 입구를 올려다보고 있었을 때만큼, 신경 쓰이는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도 안 잡힐 정도로 이상한 일.
걸어갈 때마다 홍해가 갈라진다. 말 그대로다. 내가 복도를 지나가자, 학생들이 복도 양옆으로 갈라져 자리를 비켜줬다.
단순히, 길을 막고 있어서 비켜주는 것이었다면 나도 신경 안 썼을 텐데, 아무리 봐도 더러운 것을 피해 도망치는 모양새라 문제였다.
이게 무슨 일 인가 싶어 아서를 쳐다보니, 주변 학생들이 날 피해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날아가고 있다.
마치 언제나 있는 일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과민한 건가? 그건 아닌 거 같은데.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너 혹시 이 학교에서 사고 친 적 있어?”
[응?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학생들이 왜 이렇게 널 피해? 아니, 이거 내가 오해하는 것 아니면, 피하는 거 맞지?”
교직원들이 숙소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것도 의아하단 말이지. 혹시, 범죄라도 일으켰나 싶었다.
[푸핫. 무슨 말 하나 싶었네. 몇 가지 이유야 있겠다만, 빠르게 납득하고 싶으면 거울이라도 다시 봐봐.]
아서는 코웃음을 치며, 갈길 계속 간다. 살 때문에? 단지 그 이유 때문이라는 건가? 납득 못 하고 있는데, 걸을 때 마다 학생들은 계속 비켜간다. 이게 앞으로의 내 일상......
멘탈이 버틸 수 있을까.
내가 망연자실 한 얼굴을 하고 있자. 아서가 말을 덧 붙였다.
[그게 주된 이유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긴 해.]
“뭔데?”
[학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여학생들한테 대량의 항의를 받은 적 있어. 학생들하고 잘 지내보자고 한 거였는데, 불순한 마음을 가지고 집적대는 걸로 생각했나 봐.]
“크흠......”
망했군. 그게 오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렇게 대량의 항의를 받은 순간, 사회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 없었을 테니.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는데, 학교에 소문이 퍼지면서 과장되기 시작했어. 학교에 남학생들도 내가 자신들에게 집적대었다고 말을 하고 다녔나봐.]
“쿨럭.”
[끝인 줄 알았는데. 소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커져 가더라. 성추행이 아니라 강간 미수였다. 아니다, 이미 강간했다더라. 강간뿐이냐, 남자애 엉덩이에 박으면서 부랄을 꼭 만지작거린다더라. 그 덕에 안 좋은 별명이 많아. 강간범이니 변태 같은 별명은 양호할 정도지. 부랄 슬레이어 아서니. 트강간이니. 진짜 온갖 별명이 이번 한해에 다 생겼어.]
“트강간?”
[트롤 강간범을 줄인 건데. 원래 내 별명이 트롤이었거든.]
“크흠......”
침통함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거 이미 재기 불가 아냐?
아까 말한 시기를 잘 못 와서 문제가 조금 있다고 한 게 이거였나? 조금이 아니잖아!
“설마 교원 숙소 들어가지 못한 것도 그거 때문이야?”
[아니 그건 아냐. 애초에 숙소 못 들어가게 된 건 조교도 들어오자 마자라고. 그건 다른 이유 때문이야.]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마음이 무거워져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한참동안 입을 다물고 아서의 설명만 들으며 따라 다녔다.
그보다. 이 학교에 학생은 얼마나 많은 건지. 어느 정도 걸은 것 같은데, 복도에 학생들이 줄을 생각을 안 한다. 가끔 붐비는 구간도 있다. 분명 밤일 텐데 왜 이렇게 많은 거지?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다만, 밤이 늦은 거 같은데 학생들이 많이 돌아다니네? 야간 수업이라도 있는 거야?”
[없는 건 아니지만, 야간 수업은 흔하지 않아.]
“그렇다면, 이 학생들은 다 뭐야?”
[학생들의 학교 외출은 저녁식사 이후로 제한되지만, 교직원 연구실이 있는 마탑같은 몇 군대를 제외하곤 학교 건물 안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 우리 학교는 수업만 제때 참여하면 된다는 식이거든. 그래서 수업에 따라 낮과 밤이 뒤바뀐 학생들도 많고, 밤에 클럽활동을 한다든가 체단활동, 마법연습 하는 학생들이 많지.]
“생각보다 열린 교풍의 학교네.”
고전적인 양식의 학교라, 고지식한 인상이었는데 말이다. 통금이 엄격한데다, 기숙사관이 규율로 학생들을 다 잡을 분위기였는데, 자기 할일만 잘하면 학생들을 건들지 않는다니.
아서는 날아다니며 식당이라던 지, 마법 교장이라던 지 여러 곳을 알려줬지만. 가장 인상 깊은 장소는 창문 밖에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기운. 오로라 같이 보이는 신비한 빛줄기가 땅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너무 인상적인 풍경이라 처음 봤을 때부터 입이 떡 벌어졌다. 시선이 떼어지지 않았다. 계속 창 밖에 눈을 때지 않은 채 걸어갔다.
그게 실수였다.
“어, 어어? 으앗!”
쾅-.
창밖에 정신이 팔렸던 탓인지, 발이 꼬여 넘어진 거다.
심지어, 사람이 바닥에 넘어졌을 때 이런 소리도 날 수 있구나 싶을 정도의 굉장한 소리도 함께 났다. 온몸에 통증이 엄습했다. 절로 신음이 나왔다.
단숨에 복도가 침묵에 휩싸였다.
내가 넘어진 탓에 왁자지껄 떠들던 학생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진 거다.
그것도 잠시.
“풉-”
“푸하핫. 방금 봤어?”
“와 이거, 땅 꺼진 거 아냐?”
학생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신 났다, 아주.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는데, 머리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서 조교님? 괜찮으세요?”
============================ 작품 후기 ============================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