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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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의 시작

                                                      

 머리위에서 들려오는 풋풋한 목소리.  

 눈을 돌려 보니 작고 동글동글한 얼굴의 소녀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그럴 리 없는데 낯익다. 얼굴만 봤을 뿐인데 가슴에서 따뜻한 기운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덕에 뭔가 홀린 듯 멍하니 소녀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어깨에 걸쳐있는 갈색 곱슬머리. 앞 머리카락을 핀으로 올려 드러난 둥그렇고 넓은 이마. 작은 얼굴에 비해 크고 동글동글한 눈망울. 실핏줄이 비칠 정도로 흰 얼굴엔 분홍 홍조와 풋풋한 주근깨가 깨알처럼 박혀있었다. 

 열려있는 남색 로브 사이로는 흰 블라우스가 보였다. 깃에 남색 리본이 묶여있다. 로브 왼쪽 가슴에는 방패 모양의 은색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소녀가 입은 블라우스는 핏이 루즈한 편이였는데도 가슴 윤각이 살짝 드러나, 볼륨이 느껴졌다. 그 덕에 옷 안에 담겨져 있는 포텐셜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아서 조교님?”

 고개를 갸웃거리며 또 다시 물어온다. 난 이 소녀에게 아서가 보이는 건가 싶어, 아서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서, 널 말하는 거잖아.]

 아, 맞아.

 내가 아서였지.

 얼굴이 풀린 게 느껴져 빠르게 표정을 가다듬고 튕기듯 벌떡 일어났다.

 “아. 괜찮아요.”

 “아프지 않으세요? 소리가 엄청나서 크게 다치셨는지 알았어요.”

 “하하...”

 정말 괜찮았다. 정신이 돌아오니 갑자기 민망함이 몰려와 통증이건 뭐건 안 느껴졌으니까.

 “정말 괜찮아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그러니까....”

 이렇게 날 피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먼저 말 걸어 준 걸 보니 분명 아서랑 아는 관계인 것 같은데, 이름조차 모른다면 서운하지 않을까. 아서에게 눈을 옆으로 흘기며, 이름을 알려달라고 눈치를 줬다.

 [애니 학생.]

 “애니 학생. 하하.”

 “어? 제 이름을 아시네요?”

 어라. 오히려 이름을 아니 놀라는 눈치다. 아니 당혹스러워 하는 건가?

 “아... 그게......”

 [레온의 수업은 다 듣고 있는 학생이라, 이름을 외우고 있다고 말해. 그리고 애니한테는 존댓말 쓰지 마.]

 “레온의 수업을 듣고 있지? 그런 학생들은 이름을 외우고 있거든.”

 “아.... 이런 민망하네요.”

 그제야 애니가 표정을 풀었다. 말만 걸어줬다뿐이지, 다른 학생들처럼 경계하는 건 다를 바 없는 건가?

 그보다, 애니랑 대화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잠시 말을 나눴을 뿐인데, 주위 학생들의 눈빛이 묘하게 변한다. 게다가 수군거리기 까지.

 아, 성가시다.

 “안 그래도 지금 레온 교수님이랑...... 헉. 이럴 때가 아니지. 조교님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앞으로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그래, 잘가.”

 안 그래도 보내려 했는데, 애니가 갑자기 호들갑을 떨더니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고 다급하게 사라졌다.

 총총 걸음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난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만 봤다.

 묘하다. 어딘가 간질간질한 느낌. 반한건가 싶었는데, 그런 거 같지 않았다.

 오래되고 낯선 감정이다. 내 것 같지 않은.

 [저 학생은 애니 엘리슨이라는 학생이야.]

 뒤에서 내 어깨 위로 불쑥 얼굴을 들이 밀은 아서가 말했다.

 [안 좋은 소문이 흉흉하게 돌았는데도 날 살갑게 대해주던 소수의 학생들 중 한명이었지, 물론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 나서 우리 연구실로도 와서 함께 잘 지냈고.]

 “친했던 사이었어?”

 [글쎄, 조금? 아니...... 생각해보니 그 다지 안 친했다.]

 본인도 긴가 민가 한 듯 고개를 갸우뚱 하며 말하더니, 이내 말을 바꿨다.

 [아, 아까 존대 말인데. 평민 출신 조교는 백작가 이상의 귀족 자제들한테 존대를 써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야. 뭐, 하지만, 귀족이면 계급을 불문하고 존대를 해줘. 괜히 남작, 자작 자제들한테 반말 썼다가는 하나하나 따져가며 하대하려 벼르고 있는 놈으로 교원들에게 낙인찍히거든.]

 아까 존댓말 쓰지 말라고 했던 거랑 상반된 이야기 아닌가? 별안간 드는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 그럼 애니는 평민 출신이겠군.”

 [눈치가 빠른데? 평민 출신 학생에게 존대를 쓰면 그것 나름대로 안 좋은 소리를 듣거든. 난 여기 학생으로 다니면서 교원들끼리 그러고 다니는지 몰랐어. 학생 시절에도 자신의 계급을 뽐내는 몇몇 질 나쁜 부류가 있었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 격 없이 잘 지내거든. 그런데 교원들은 계급에 대한 인식이 참 고루하더라.]

 “흠......”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교원 사회에 녹아나기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관계라는 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섬에 있는 사람들 사이로 헤엄쳐 들어가 비집기 시작하는 거라면.

 이건 대해양을 건너 가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다시 애니 이야기로 돌아가면.]

 “응?”

 [그녀는 평민 출신임에도 학생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냈어. 능력 있었기에 많은 연구실에서 졸업 한참 전인데도 탐을 냈지. 게다가 햄스터가 생각날 정도로 귀엽게 생기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내가 부임했을 때부터 중급과정을 이수하고 있었군.]

 아서가 멈춰서 말을 하다 다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난 그를 뒤 따라 걸으며 물었다.

 “중급과정?”

 [응. 아, 이것도 설명해줘야겠군. 우리학교에는 세 가지 과정이 있어. 초급으로 분류되는 튤립 클래스. 중급으로 분류되는 쉴드 클래스. 고급으로 분류되는 드래곤 클래스. 각기 코르넬 제국의 상징에서 따온 거야. 좋아, 이것 좀 봐볼래?]

 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학생의 브로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동색 튤립 브로치가 보여? 초급을 이수하고 있다는 거야. 중급은 은색의 방패, 고급은 금색의 드래곤 브로치를 달고 다니지. 아까 애니의 로브에 있는 은색 방패 브로치가 보였지?]

 그 말을 듣고 나니 학생들 가슴에 달린 브로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랬지. 그럼 과정은 어떻게 분류되는 거야? 나이별로 나눠지나?”

 [아냐, 애초에 학교 입학하는데 나이제한이 없어. 대부분 귀족들이 자신들의 가문 내에서 교육받고 성인이 되어서나 학교로 오거든. 게다가 예외 없이 초급부터 시작하고. 그러니, 단계별로 수료를 해서 올라가는 거야.]

 “그럼 졸업은? 그것도 기간 제한이 없는 거야?”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고.]

 그게 뭔 소리야.

 [대부분 26살 이전에 학교에서 나가지만, 졸업에 기간 제한이라고 할 것은 없어. 물론, 돈만 있다면 말이지. 그래서 늦게까지 학교에 붙어있는 귀족들이 많아. 이수할 능력이 되던, 안 되던 가문에서 떨어져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니까.]

 “아. 하지만, 평민들은 다르다는 거군.”

 [그래, 대부분 마력이 발견된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 붙어서 공부를 시작해. 보통 평민은 학교에서 공짜로 지원해주는 23살까지 공부하다 나가서 바로 직장을 잡지.]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연령이 학교 안에 공존하는 거구만.

 “고급을 이수 못하는 경우도 있어?”

 [대부분 이수하지만, 재능이 없으면 이수 못 하지. 나 같은 경우에는 중급을 이수하지 못 하고 돈 없어서 쫓겨났어.]

 “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주위 학생들도 놀랐는지 어깨를 들썩이고 쳐다봤다. 난 민망해서 아서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중급과정 이수도 못했는데, 조교를 할 수 있는 거야?”

 [하하, 인맥이지.]

 “......”

 그 말을 하며, 자부심 느끼는 아서의 표정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결국 낙하산이란 거 아닌가.

 “설마, 교원들이 숙소 안 받아 준 게 그거 때문이야?”

 [히히. 빙고.]

 맙소사, 대해양 저 멀리 운운할게 아니잖아. 교원들과의 관계를 비유하자면, 지구와 달이다. 달!

 무능한데다 낙하산이라니.

 교원 사회에 부대끼려면 우주선타고 들어가는 기적이 필요하다 말해도 모자라리라.

 하아.

 “그 인맥이 누구야?”

 하지만, 내심 기대가 되었다.

 [레온 교수라고, 네 상관이 되는 사람이야. 학생 시절에 같이 수업받으면서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인데, 재능이 엄청났어. 귀족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18살의 이른 나이에 졸업했지. 심지어 고급 과정 수료 후 3년간 연구소에서 일했는데도 말이야. 그 이후 이곳저곳에서 공을 세웠는지, 이른 나이인 27살에 교수가 되었더라고. 유례없는 일이지.]

 “엄청난 사람이네, 근데 그런 사람이 널 왜 학교에 꽂아준 거야?”

 내 말에 아서는 자기도 의문이라는 듯 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르겠어. 애초에 이 친구가 중급과정 이수한 뒤부터 대화한 적이 없었거든. 그래서 갑자기 연락 와서 조교로 꼽아준다고 했을 때 내 귀를 의심했지.]

 “아무 이유 없이?”

 [응. 이상하지? 그래서 무슨 의도가 있는 건가 긴가민가 해서 의심도 했었는데, 결국은 조교직에서 쫓겨나고서도 이 친구가 힘써준 덕에 학교에 계속 붙어 꿀 빨면서 잘 살았어.]

 아...... 학교에 남은 게 요령이 좋아서가 아니었구나. 아니지, 인맥이 있다는 게 요령이 좋다고 해야 하는 건가.

 “근데, 조교 같은 거, 그냥 단순 임시 계약직 아냐?”

 [응? 무슨 소리야 정년 직인데.]

 내가 생각하는 교원 체계와 다르네.

 그보다 죽을 때까지 힘써줬다 하니 더 의문이 든다. 생명의 은인한테나 해주는 거 아닌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못 찾겠으니, 괜스레 찜찜하다.

 모든 일에 공짜는 없을 텐데.

 언젠가 TV에서 봤던 장애 유기견들을 모아 인공다리도 달아주고, 눈 없는 개한테 수술도 시켜주던 사람이 떠올랐다. 혹시, 레온이 그런 감수성을 가져서 아서를 보살펴 준건가.

 “정년 교원인데 교수가 추천한다고 무조건 조교가 될 수 있는 거야?”

 [무조건은 아니지. 추천권이 있어도 결정은 교장이 하는 걸로 알고 있어.]

 더 이해가 안 되는데. 

 워낙 납득이 안가는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계속 굴리다 보니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래, 일단 생각 말자. 

 차차 알 수 있겠지.

****

학교의 교원 체계는 내 생각과 아주 달랐다. 비정년 교원이자 단기직일 줄 알았던 조교가 정년 교원이고 호봉체계가 있었으니까. 

오히려 대학교의 인사체계보다, 장교와 부사관으로 나뉘는 군대가 떠올랐다. 실제로 년마다 2회씩 명목상의 군사 훈련도 한다고 하니 더 그렇다. 

 “으으으, 추워 죽겠네.”

 난 아서의 안내로 내일 수업할 강의실과 식당을 다 돌아본 뒤, 학교 밖에 잠시 나가 학교의 전경을 돌아보고 들어왔다.

“하. 이러다 감기 걸리겠는데.”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아서의 말대로라면, 치유마법의 발전으로 이 세계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무관한 세계가 된 지 오래라고 했다. 

 학교 밖은 추웠다. 정확하게는 정원을 지나 대문을 나가니 추위가 강렬하게 몰아쳤다. 이 온도 차에 의문을 가졌는데, 학교 부지는 마법으로 항상 적정 온도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마법부여]가 된 옷을 입어 추위나 더위에 자유롭다고 한다. 이때의 아서는 돈이 없었기에 그런 옷을 살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추위를 직통으로 맞으며 전경을 구경했다. 힘들었지만,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볼만큼 이 학교의 경관은 장관이었다.

 서양의 성을 연상케 하는 고딕풍의 건물이었는데, 규모가 엄청났다. 아까 한참을 돌아다녔음에도 학교를 전부 보지 못 한데다.

 돌아다닌 모든 곳이 한 건물로 이어져 있었으니 어느 정도 크겠지 싶었지만. 직접 보니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학교 한가운데 치솟아 올라있는 탑이었다. 창문을 통해서 보았던 형형색색의 기운이 바닥에서부터 쏟아져 끝없이 하늘로 뻗어있는 탑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기운은 ‘마력’으로 대부분의 마탑이나 마법학교들이 마력을 모으기 좋은 지대에 지어지는데, 학생들의 마력이 쉽게 회복하게 해주기 위하여 학교를 마력으로 뒤덮게 하고, 맨 위 꼭대기에서 마력을 모아 교수들의 연구를 위한 마력 석으로 정제된다고 했다.

 마력 지대를 만드는 건물은 굳이 탑이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모든 국가의 학교에 탑이 쌓아져 올려있는 건. 주위 국가에 우리 국가의 기량이 이 정도라고 으스대는 거라 한다

 확실히 으스댈만한 가치가 있는 건물이었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것 중에 가장 아름답고 환상적이라 할 수 있으니. 

 난 얼어 죽지 않을 만큼 감상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아까와 달리 상당히 한적해졌는데?”

 시간이 꽤 지난 탓일까? 교내로 들어서자 아까와 달리 사람들이 몇 보이지 않는다. 이 광경에 심리적인 안정이 취해지는 건 왜 일까?

 꼬륵-.

 “뭐야 이거.”

 적적한 복도를 보고 긴장이 풀린 것 때문일까? 갑자기 다른 곳에서 말썽을 일으켰다. 배가 격렬하게 고프다고 울었댄 거다.

 [내 귀염둥이가 밥 달라고 우는 소리잖아.]

 “뭐? 귀염둥이?”

 아서가 내 배를 쓰다듬으며, 아빠가 곧 밥을 줄게라고 속삭였다. 그 모습에 소름이 돋아 닭살이 주뼛 섰다. 뭐라 한마디 해주고 싶었는데, 또다시 배가 꼬르륵 울렸다.

 “며칠 굶은 것 마냥 배고픈데? 아무래도 이거 내 영혼을 불러왔을 때 문제가 생긴 거 아냐?”

 [그런 건 아니고, 이맘때쯤에는 하루에 한 끼 먹었는데 이 시간에 밥을 먹었거든. 아, 돌아다니느라 좀 늦긴 했다. 식당 쪽으로 가자. 뷔페가 24시간이니까 싸 들고 방으로 가면 돼.]

 “하루에 한 끼 먹었다고? 바빠서 그런 거야?”

 [그렇다기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피해다닌거지.]

 “그렇구만, 으아....”

꼬르르륵-

 피해 다닌 이유야 사정을 들었으니 대충 알겠다.

 왜 아까 식당을 들렸을 때는 허기가 안 졌는지 모르겠다. 긴장이 되어서 그랬던 걸가.

 “뭐라도 좋으니 밥 먹으러 가자.”

 [알겠어. 이번에는 이쪽으로 가보자.]

 난 앞서 날아가는 아서의 뒤를 쿵쾅대며 따라가기 시작했다.

 아서는 안 가본 길도 익혀야 한다며, 아까 왔던 길의 반대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까 왔던 길대로라면 지금쯤 식당에 도착 했을 텐데, 빙 돌아가는 탓에 아직도 도착 못 하고 있었다.

 아서에게 슬금슬금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보다. 

 참 낯선 곳이다. 

 물론, 학교의 모든 곳이 처음이지만. 여기처럼 사람이 하나 없고, 빛이 적어 어두침침한 구간은 처음이었다. 

 마치, 살인사건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꺄악!”

 쿠당탕-.

 난데없이 들려오는 여자의 비명. 

 그 요란한 소리에 내 숨이 턱 막혔다. 오줌을 지릴 뻔 했다.

 “헉, 뭐야.”

 심장이 격렬하게 우심쿵 좌심쿵 하기 시작했다. 살인사건이니 뭐니 하며 불안한 생각을 하고 있던지라 더 그렇다.

 “어, 어디서 난 소리야?”

 난데없는 소리에 놀라, 말을 더듬거리며 아서를 봤다.

 [모, 몰라 아씨. 깜짝놀랐네.] 

 아서도 깜짝 놀랐는지, 움츠린 얼굴로 벽에 바싹 붙어 경직된 채 소리 난 방향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유령인데 놀라기도 하는구나 싶어 신기해하는 중이었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여기 주변이면, 학생들이 잘 이용 안 하는 자율실습실이 하나 있긴 한데......]

 “자율 실습실?”

 아서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좋아, 가보자.]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왜! 굳이 내가 갈 필요가 있어? 이 학교도 나름 안전대책은 잘 세워져 있을 거 아냐.”

 낯선 세계에 떨어진 첫날이다. 

 안 그래도 놀라운 일 투성이라 심장이 못 버틸 지경인데, 이 야밤에 비명소리가 나는 곳까지 가라니.

 [그렇긴 하지. 특정 마법을 일정 마력 이상 사용하거나, 생체 신호가 죽음 직전에 처할 만큼 약해져 위급상황일 경우 구급팀 쪽으로 신호가 가거든.]

 “그럼, 굳이 내가 갈 필요가 없네. 그냥 식당이나 어서 가자.”

 다급하게 속삭였다.

 [그래도 가자.]

 “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만, 큰일은 아니겠지.]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었다만.

 [거기다 학생이 다쳤을 때 응급조치를 취하거나, 다툼이 있을 때 중재하면 인사점수도 받을 수 있거든. 네가 빙의된 첫날부터 잘된 거 아냐?]

 “그렇긴 한데.”

 듣고 나니 좋은 기회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되긴 했다. 

 [그리고 넌 어서 내 소원 들어줘야 않아? 이렇게 점수 딸 냄새가 나면 과감히 뛰어들자고. 힘내자 용사님!] 

 아서가 두 손가락으로 총질하며 윙크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주 꽉.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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