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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의 시작
아, 설마.
난 엘레인을 허공으로 들어 올린다고 상상해보았다. 이미지를 최대한 생생하게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어. 어?”
됐다!
그녀가 손발을 바둥거리며 허공에 둥둥 뜨기 시작한 거다. 역시, 아까 엘레인이 넘어진 건 내가 엘레인을 바닥으로 내던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때문이었구나.
“뭐, 뭐야 이거!”
엘레인은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는지 파악 못 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긴 뭐야. 네가 계속 써왔던 마법이잖아.”
“거짓말 마, 네가 이 마법을 쓸 수 있을 리 없어!”
그러니까 혈통 마법이라고 했나? 염력 같은 이 마법이 아무나 쓸 수 있는 마법이 아니라니.
“이거 정말 꿈인가? 너, 진짜 나야?”
엘레인은 눈을 크게 뜨고 내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놀란 표정도 잠시.
“그러면, 뭘 보고만 있는 거야! 당장 내리지 못해?”
갑자기 날 향해 목청껏 소리를 내질렀다. 얘 진짜 뭐지? 내가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더욱더 성을 내며 소리쳤다.
“귀먹었어? 니가 나라며, 알겠으니 어서 내리라고!”
아, 짜증 나네.
내 능력에 감흥 좀 얻겠다는데, 이 짧은 순간을 방해하다니.
“내려달라면, 소원대로 내려줘야겠네.”
안 그래도 아까 화가 다 가시지 않은 상태였거든. 엘레인이 애니에게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준 난.
프로레슬러가 엘레인의 목을 잡고 들어 올려 바닥에 힘껏 내려찍는 모습을 상상했다.
“힉-!”
엘레인이 허공에서 역동적이게 꺾여 돌며, 바닥에 내리 찍혔다.
쾅-!
“꺄아아학-! 흐압. 큽. 쿨럭-.”
띠링 -.
「+4 (9)」
이런 식이군.
아직도 막연한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포인트 얻는 법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 같았다.
“큭. 켁. 쿨럭. 쿨럭 이. 이런 개같은 새꺄!!”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쓰러진 채로 그녀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생각보다 바닥에 부딪힌 충격이 컸는지 짧은 말 한마디를 내뱉고 연실 기침을 내뱉는다. 그 덕에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제 내 말을 들을-.”
“크흑.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날 내던져?”
그렇지. 들을 리가 없지.
“꺅!”
손발을 버둥거리면서 천천히 하늘로 띄워지는 그녀의 표정엔 공포가 만연했다. 이상하게 그녀의 그런 얼굴을 보니 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쿨럭. 크으.... 뭘 쳐 웃고 있는 거야. 내리지 못해? 샤브리나! 안나! 너 여기서 내가 내려가기만 해봐. 가만 안 둘 테니까!”
“그래서 못 내려주겠는데?”
“으으으으! 내려! 내리라고!”
“알겠어.”
쾅-!
띠링 -.
「+4 (13)」
“크억! 흐으. 으아. 아프잖아!”
“소리 좀 그만 지르지?”
“내가 왜!”
“지금 네가 무슨 입장인지 모르는 거야?”
“내가 알게 뭐야!”
왜 이렇게 기세등등한 거지? 난 다시 그녀를 바닥으로 힘차게 떨어트렸다.
“꺄아아아악!”
쾅-!
띠링 -.
「+4 (17)」
“크헙. 하지 말라고!”
“내 마음인데?”
“이 개새끼야! @#!$!!! @#!!!”
갑자기 그녀가 방언이 터진 것마냥 알아들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욕을 쏟아냈다. 당하면서도 계속 소리 지를 마음이 어디서 생기는 걸까. 기분이 유쾌하고 아니고를 떠나, 그녀의 기세등등한 태도에 솔직히 감탄이 나왔다.
어떻게 한다.
일단, 엎어져 욕이란 욕은 목청껏 다 하는 엘레인 등 뒤에 올라타 몸으로 그녀가 일어나는 걸 막고 손으로 그녀의 팔을 구속했다.
“뭐하려는 거야!”
“얌전히 있으면 심하게 안 할게.”
거짓말이지만.
그런데 통한 것인지 그녀가 얌전해졌다. 너무 순순히 들어줘서 의외라 나도 놀라고 있었는데, 단순히 내 말을 들은 거라고 하기에는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너, 너!”
파랗게 질리다 못해 핏기가 가시고 있다. 뭐지?
뭔가 잘못된 걸 느꼈다. 뭐가 문제 있나 싶어 거울을 쳐다보았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울에 수염 덥수룩한 뚱뚱한 남자가 여자를 깔고 뭉개고 있는게 비치고 있었으니까.
맙소사. 변신이 풀린 거다.
“그.... 조교?”
이거 괜찮은 건가? 갑작스레 정체가 들켜버렸다는 사실에 숨이 잘 안 쉬어질 정도로 힘들었다. 설마, 스킬 설명에 신체를 접촉하면 상대방이 날 인지한다고 했던 게, 이걸 말했던 건가.
“푸핫. 하여간 이래서 천박한 새끼들은.”
뭐지.
갑자기 엘레인의 비소에 놓칠뻔한 정신이 확 돌아왔다. 그녀를 바라봤더니 놀라 하던 표정이 어느새 같잖은 것을 본다는 얼굴로 확 바뀌어 있었다.
“진짜 발상하고는. 어디서 그딴 잔재주를 배운 거야? 흑마법이라도 배운 건가?”
“아니, 뭔가 오해를 하고 있-.”
”고작 아까 있던 그 일 때문에 이러는 거야? 진짜 기가 찬다. 고위 귀족 숙소를 몰래 들어온 데다 혈통 마법을 사칭하다니. 이런 일을 벌이고도 네가 무사 할 거 같아? 넌 내가 죽는 것도 편하게 죽지 못하게 해주겠어. 빨리 안 내려와 돼지새꺄?”
그녀의 악담에 깜짝 놀랐던 심장이 급속도로 싸늘해진다. 뭐 한 것도 없지만, 괜스레 내가 심했나 싶었던 죄악감조차 사라졌다.
오히려 지금이라면 피를 봐도 죄책감 하나 없을 기분이다.
“빨리 내려오라고-. 꺄악!”
찰싹-!
「+6 (23)」
아주 찰진 소리가 그녀의 엉덩이에서 퍼져나갔다. 덩달아 내 손바닥도 찌릿하다. 분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궁디짝을 때려버린 거다.
엘레인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느라 벙한 표정을 짓다, 이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뭐, 뭐, 뭐, 뭐하는 짓이야!”
효과는 굉장했다. 그래. 남자가 몸을 만지는 걸 싫어 한다고 했지? 이 오만방자한 년의 아킬레스건을 찾은 거 같았다.
“뭐 하는지 모르겠어??”
“어디를 만지는 거야!! 네 손을 꼭 잘라버리고 말- 악-!”
찰싹-. 「+6 (29)」
때린 부위가 파르르르 부드럽게 떨렸다. 손바닥에 실크의 감촉과 부드러운 엉덩이의 감촉이 전해진다.
“모르겠으면, 알 때까지 해줘야지.”
찰싹-. 「+6 (35)」
“악-! 아파!”
점점 힘이 실린다.
사람을 때린다는 거에 은연중에 거부감이 있었나 보다. 처음에는 화가 났는데도 힘이 잘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대. 한대. 거듭될수록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덩달아 처맞고 있는 볼기짝은 짝짝 소리가 날 때마다 더 거칠게 반항하며 흔들어 재꼈다.
찰싹-. 「+6 (41)」
“흡! 야! 아프다니까!”
“그래 아프지? 나도 아팠다고! 다른 사람도 아프단 말이야!”
“알게 뭐야! 당장 놓지 못해 이 변태 새끼야! 악-!”
찰싹-. 「+6 (47)」
“아프다고...... 흐윽.”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도 맺혔다. 덩달아 갑자기 내 마음도 약해진다.
아까 마음 같아서는 다리 몽둥이를 부러트려 설설 기게 만들고 싶었는데, 눈물 하나 만으로 넉다운이라니. 내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사과해.”
“흑...뭐?”
“진심을 담아서 사과하면 어느 정도 고려해 줄게.”
“내가 그런 걸 할 거 같아?”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잠만, 잠만!”
날 올려다보던 엘레인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잠만이라고 하더니 왜 말이 없어.”
“기다려봐!”
그렇게 소리를 빽 지르더니, 이내 들릴락 말락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뭐라고?”
“들었잖아!”
“아니, 그렇게 크게 소리 지를 줄 알면서 사과는 왜 기어가게 하는거야. 안 들렸어. 진심도 안 느껴져. 그렇게 대충대충 해가지고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 거 같아?”
“아 됐어! 그냥 때려, 때리라고!”
그러면서 엉덩이를 살짝 흔들흔들 거렸다. 이것이?
찰싹-.「+6 (53)」
“악-! 왜 때려!”
때리라며?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지금 내게 사과하고 내일 애니에게도 사과해.”
“뭐? 애니? 걔는 왜? 아. 알았어 알았다고!”
들고 있는 손을 흔들자 알아서 꼬리를 내렸다.
“미안해.”
“존댓말.”
“죄송합니다.”
“좀 더 진심을 담아서.”
“흐읍-.”
내 말에 엘레인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날 노려봤다.
“아프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서.조.교.님.”
미안함이 쥐뿔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뒤돌아 억지로 웃으며, 어금니를 꽉 문 채로 꾸역꾸역 사과하니 무서웠다.
찰싹-. 「+6 (59)」
“아, 왜!”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지?”
“내가 뭘!”
뭐 이제 되었다. 어차피 이 오만불손한 아가씨한테 이 이상의 사과를 받기도 무리 일 거 같으니까. 게다가 슬슬 내 손도 얼얼하고,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가 밀려오기도 한다.
“약속 꼭 지켜.”
“알겠으니까 내려오기나 하라고!”
띠링-.
「+60 (119)」
오. 상당히 높은 점수가 올랐다.
단순히 때리는 것처럼 행위보다, 뭔가를 성취하면 점수를 많이 주는 건가. 100점을 넘으며, 두 번째 퀘스트 완료했다. 이제 되었다.
갑자기 긴장이 확 풀렸다.
말랑-.
문득, 그녀의 엉덩이 닿고 있는 손에 엘레인 부드러운 살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이거......
“야! 지금 어디를 계속 만지는 거야!”
몰랐는데, 지금 상당히 위험한 포즈다. 마치 등짝 좀 보자는 듯이. 여기서 까딱하면 그녀를......
“뭐, 뭐야! 뭐야! 꺅!”
엘레인이 비명을 질렀다. 이런 안돼.
‘그게’ 일어서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등허리와 닿은 채로 말이다.
난 엘레인이 구속에 풀리건 말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그것’이 기지개를 피듯 내 바지 천을 밀어내며 텐트를 쳤다.
“꺄아아악! 으아아아악! 싫어!”
구속이 풀린 그녀가 소스라치듯 놀라며 도망쳤다. 난 엘레인이 지팡이를 또다시 들고 덤빌까봐 경계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양손으로 몸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으니까.
“흑, 흐윽, 죽여버릴 거야, 흐엉, 개새끼, 흐윽.”
“어어...저기......”
“잘라버려. 흑흑. 개새끼, 돼지 새끼, 흐아아앙-.”
흐느낌이 거세지더니, 댐이 터진 것 마냥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대성통곡을 하는 그녀를 보며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안절부절못하며 어버버만 거렸다.
이거 어쩐다.
엉망이 된 꼴을 보고 싶었지만, 막상 이런 꼴을 보고 나니. 내 마음속 무언가도 함께 부서진 느낌이 들었다.
띠링-.
「+22 (141)」
맙소사, 이것도? 여자를 성추행해서 울렸는데도 포인트가 올라간다고? 이게 내 욕망이란 말인가? 아니면 단순히 이 꿈의 스킬에 대한 문제일까. 불현듯 아서가 계약했다는 존재가 어떤 존재일지 의문이 생겼다.
“흐어어엉. 흐어엉.”
엎어져 울고 있는 그녀는 어쩐다. 그러고 보니 어차피 내가 악몽을 꾼다고 해도 꿈에서 깨고 나서 좀 지나면 다시 기분이 나아졌던 게 떠올랐다.
어차피 퀘스트도 완료했겠다. 꿈부터 나가야겠구나.
꿈에서는 어떻게 나가야 한다? 이제까지와 같은 방법으로 해야 하나? 눈을 감고 그녀의 꿈에서 나가는 것을 상상했다.
그러자 바로 익숙하고 쾌쾌한 냄새가 내 코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계약 이행하러 안가?]
익숙한 코맹맹이 소리도 들려왔다.
돌아왔다.
「 튜토리얼 퀘스트 : 꿈의 개입 2. 완료!
대상자의 꿈 내에서 포인트를 100 이상 얻어내세요. (141/100)
보상 : 500 포인트
현재 총 포인트 941 」
「 총 습득 포인트는 141 입니다.
- 모페로스의 계약으로 인해 42 포인트를 공양합니다.
- 현재 총 포인트 99 + 800 (899)」
높은 점수와 함께 말이다.
****
꿈 안에서 아무리 시간을 보내도, 현실의 시간은 흐르지 않나 보다.
그래서 아서의 눈에는 내가 조울증 환자마냥 미친 듯이 호들갑을 떨더니, 바로 언제 그랬냐는 듯 급 얌전해진 걸로 보였다 한다.
하지만, 습득한 포인트 일부가 공양 되자. 아서의 얼굴에 의아함과 환희가 빠르게 교차하더니. 뭐가 그리 기분 좋은 지 한참 동안 고양된 표정으로 허공에서 뒹굴거려 날 불쾌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아서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물어보니. 포인트가 공양 되는 순간 아서에게도 일부가 흘러가는지. 내가 꿈에서 무엇을 했는지 다 알게 되며. 형용할 수 없는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는 거다.
이때 알게 된 것은 아서도 자신의 능력과 내 능력에 관해 모두다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는 거였다.
꿈에서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게 된 아서는 사용법이 잘 못 되었다고 지적하면서도, 아무 조언 안듣고 들어간것 치고는 잘 해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엘레인의 엉덩이를 때린 것을 몇 번이나 언급해 하며 흡족해했다.
꿈에서 고대종의 마력을 얻은 탓일까? 다소 피곤했던 것이 싹 사라졌다. 그 참에 난 아서와 내 능력이 무엇인지. 또 계약한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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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사과마냥 마음이 여렸던, 이 아서가 얼마 뒤에는......
선추코 감사합니다.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