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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의 불평등한 종속계약
‘모페로스’, 꿈과 욕망을 관장하는 고대종.
아서가 계약했다는 상위종의 이름이었다.
모페로스와 같은 고대종들은 현재 코르넬 제국와 여러 유수 국가들이 있는 ‘아르’ 대륙에선 잊혀진 이단신들이 된 지 오래였다.
그 이유는 모페로스와 같이 허락되지 않은 상위존재와의 접촉을 교회에서 허락하지 않을뿐더러.
고대종들 대부분 적극적으로 현세 개입하는 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서가 모페로스와 접촉하게 된 건 약 이십년 후, 학교 직원들과 단체로 소풍 가게 된 유적지에서였다.
노후된 유적의 바닥이 붕괴하여 바닥으로 떨어졌고, 아서는 유적지 깊숙한 곳으로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그곳에서 모페로스의 마력이 깃들여져있는 유물과 우연히 접촉하였다.
그 마력은 아서 몸에 들어와 잠재되어 있다가, 이후 아서가 불의의 사고로 죽는 순간 발현되어 모페로스와 접촉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계약을 하게 된거다.
이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고대종의 마력을 우연하게 흡수하여, 계약이 가능하게 된 사람은 얼마가지 않아 교회의 ‘감시’에 걸려 힘을 봉인당했다.
예외는 없었다. 아무리 깊숙이 숨어도 48시간 안에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건 마법사들 사이에서 이미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교회의 ‘감시’는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아서는 달랐다. 고대종 중에서도 가장 먼저 잊혀진 ‘모페로스’의 마력이었기 때문이다.
모페로스의 계약자들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몽마, 타인의 꿈에 들어가서 욕망을 이뤄주거나,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 마력을 얻는 존재들.
그들은 꿈에 들어가 마력을 얻고 나면 계약의 내용에 따라 꿈에서 얻은 일정량의 마력을 모페로스에게 공양했다.
하지만, 모페로스의 계약자들은 마력을 모으는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악명이든 명성이든 이름이 널리 알려진 마법사가 없었다.
왜냐면 얻어내는 마력 대부분 인간들이 운용하기 힘든 ‘고대종의 마력’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모페로스가 가장 빠르게 잊혀진 고대종이 되게 하는 데 일조했다.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기에 계약자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성욕 같은 원초적인 욕망을 채우는 데 썼지만,
정제하지 못한 고대종의 마력이 인성을 망가트리는 데다, 교회가 금지하는데 목숨을 걸면서까지 몰래 쓸 정도로 메리트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 마법 감지 – 유니크 패시브 스킬을 개방하시겠습니까?
- 첫 스킬 개방 보너스가 적용합니다. 원래 포인트의 10%로 개방 가능.
스킬을 개방할 경우 5970 (597)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현재 포인트 899)
lv.0 -> lv.1 」
( Y / N )
Y를 선택했다.
그러자 오른손의 문양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 마법 감지 – 유니크 패시브 lv.1 」
- 플레이어의 마력과 육체에 닿는 새로운 마법을 감지합니다.
- 감지한 마법을 포인트로 개방할 수 있습니다.
- 플레이어의 위험을 감지합니다.
「남은 포인트는 302 포인트입니다.」
[맙소사, 맙소사, 맙소사! 고대종의 마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고유능력이라니! 이거라면 네가 용사가 아니더라도, 전당에 이름 올리는 게 무리가 아니겠어!]
아서가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면서 소리쳤다. 어제까지만 해도 딱히 쓸모없어 보였던 고유능력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얼마나 대단한지 체감은 아직 안 되었지만, 옆에서 대단하다고 띄워주니 기분은 좋았다.
게다가 이 게임창.
포인트를 투자해 내 육체적인 능력치를 조절할 수 있었다. 재능뿐만 아니라 키와 같은 것도 말이다.
아, 예외는 있었다.
살과 같이 유동적으로 변하는 스탯은 포인트로 단번에 조절이 가능한게 아니라. 부스트라는걸 통해 더욱 빠르게 뺄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래도 ‘마법 감지’라는 마법은 처음 듣는데 좋은 거 맞아? 네가 유니크니 뭐니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꼭 찍어야 한다 하길래 그러려니 했다만.]
날 믿어.
유니크 스킬이라는 단어에서 사기의 냄새가 나니까.
“좋은지 안 좋은지는 나중 보면 알겠지. 그보다 이거 문양 큰일이네, 안 그래도 눈에 띄는데 가끔 빛까지 나니.”
교회의 ‘감지’ 같은 마력 탐지에야 안 걸리겠지만, 혹여나 기록에 남아있지도 모르니 걱정해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물론, 그렇다 해도 오,육백년 전에 자취를 감춘 존재의 상징을 누가 알아보리라 생각되지 않았지만 말이지.
[걱정되면 장갑이라도 끼고 다닐래?]
“나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긴 한데? 장갑 끼고 다닌다고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그렇진 않을 거야. 안 그래도 이때쯤 지팡이 대신 장갑으로 마법을 쓸 수 있는 아티팩트가 나와서 장갑이 유행했거든.]
“오!”
마법 지팡이 대신 장갑이라.
장갑을 끼고 손을 뻗어 마법을 쓰는 날 상상해 보았다. 별로 멋없다. 추하다. 아, 이 모습으로는 멋져 보이기는 무리겠구나.
“그런 장갑은 어디서 구할 수 있어?”
[매점에서도 팔아. 물론, 더 좋은거 구하려면 백화점에 가야 하지만 말야. 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지금은 돈이 없으니까 일반 장갑을 껴야 할 거야.]
“백화점?”
여기에도 있구나.
[아, 백화점을 모르나? 백화점이란 수많은 상점들이 한 건물에-.]
“아니아니, 뭔지는 아는데. 어디에 있어?”
[우리가 학교 전경 구경하러 나갈 때 학교 정문 앞, 큰 건물 있었지? 그게 백화점이야.]
아니 학교 앞에 있던 그 건물이 백화점이라고? 내 의아한 표정을 보고 아서가 말을 이었다.
[전국에 있는 부자들의 자제가 모이는 곳이 마법 학교니까. 간혹 나 같은 거렁뱅이가 끼어있긴 하지만, 마법사라는 건 대부분 혈통으로 이어지는 거거든. 게다가 학생들뿐만 아니라 면회오는 가족들도 많이 이용하고. 또 탑 때문에 학교 부지는 관광 명소라고, 그러니 장사가 안될 수가 없지.]
“아아. 이해됬어.”
백화점이라 궁금한데? 한번 꼭 가봐야겠다.
[뭐 장갑이고 자시고 수업부터 끝내고 생각해 보자고.]
“근데, 내가 수업에 가도 정말 괜찮은 거야? 거기서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괜찮아. 벌써 일곱, 여덟, 그래 아홉 번. 아홉 번이나 똑같은 질문에 대답해줬잖아. 괜찮다니까.]
아무리 괜찮다고 들어도 이상하니까 그렇지.
[레온이 수업 진행 하고 있으면, 넌 그냥 뒤에서 기둥처럼 서서 구경만 하면 돼. 애초에 네가 수업을 빠지거나 구석에서 잠을 자고있어도 상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그게 가장 이상하다는 거야......”
몇 번이나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하는데, 의구심이 안 생길수가 없다. 심지어 잠을 자도 괜찮다고?
[이제까지 내가 그렇게 해왔다니까? 그래도 돼. 물론, 교수가 되기 위해선 땡땡이나 잠을 자면 안 되겠지만 말이야. 내 말은 부담 가지지 말라는 거야. 오늘은 한번 가만히 지켜보면서 대충 수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나 봐.]
“그렇다면...... 알겠어.”
부담 가지지 말라라......
그게 말처럼 쉽게 되려나.
이른 아침. 난 방어마법학 수업을 준비하러 강의실로 가고 있었다. 엉덩이 마냥 매끈한 턱을 가지고 말이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했던 행동은 수염을 깔끔하게 미는 것이었다. 이렇게 풍성한 수염 숱은 처음 갖는지라 마음 같아서는 살짝 수염을 남기고 싶었지만,
더러워 보일 확률이 높을 거 같아 청결하게 보이도록 다 밀었다. 살이 쪘으니 인상이라도 깔끔하게 보여야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머리도 가위로 길이만 다듬었지만, 머리를 정리할 기름이나 포마드를 가지고 있지 않아 부스스하게 뜬 채로 다소 어수선한 행색이었다.
다행인 건 곱슬 지고 얇은 모발에다 숱이 많아서 대충 잘랐는데도, 그럴싸하게 보였다는 거다.
학교 상점 내에 미용 상품이 구비되어있다는데, 장갑 사러 갈 때 함께 사야겠다.
어느덧 강의실 앞으로 왔다.
조교는 당일 첫 수업에 학생들보다 한 시간 가량 일찍 오는 게 규칙이라 인기척이 안 느껴졌다. 사람이 없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문을 열기 힘들었다.
뭐랄까.
고등학교를 처음 입학한 그 날의 기분이 생각났다. 배정된 반을 찾아 들어갈 때의 설렘 말이다. 혹은 두려움이거나.
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여자가 있었다.
검정색의 올림머리를 한 여자.
그녀는 얼굴이 도자기만큼 창백했고, 볼은 심하게 야위었었다. 각진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멀리서도 그 아래 있는 다크서클이 보였다.
그녀가 입은 감색 로브 안쪽으로 흰 자켓과 검정 치마를 입은 게 보였다. 그 치마 아래로 그녀의 가녀린 다리가 커피색 스타킹에 윤기를 띄웠다.
뭔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느낌이 아니다.
[아, 맞다. 마리 조교. 이때 레온 밑으로 나 말고 조교가 한 명 더 있었어. 그녀도 아주 뛰어난 엘리트였어. 아마 나보다 나이가 두 살 정도 어렸던가?]
마리 조교는 드넓은 강의실에 자재로 보이는 짐들을 옮기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녀가 직접 옮기는 게 아니라, 탁자가 살아있는 것마냥 걸어 다니며 짐을 알아서 옮기고 있고, 그녀가 관리 감독을 하고 있었다.
상당히 기괴한 광경이었다.
실습을 위한 강의실답게 넓고 확 트여있다. 강의실 벽 쪽에는 학생들을 앉으라고 준비한 것인지 의자들이 잔뜩 있었다.
“아서, 저 마리 조교와는 어떤 사이였어?”
속삭이듯 말했다.
그때, 마리 조교가 고개를 돌려날 봤다. 그녀는 순간, 재수 없는 걸 봤다는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획 돌렸다.
[이런 관계였어.]
그렇겠지.
벌써부터 피곤해진다. 그래도 부딪쳐 봐야겠지. 난 억지로 환하게 웃음 지으며 마리 조교에게 다가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
마리 조교가 흠칫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깜짝이야. 그녀의 반응에 오히려 내가 더 놀랐다.
대답 없이 날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하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기 할 일을 계속했다. 대놓고 이런 취급 하다니.
“혹시 도와드릴 일 있나요?”
“아뇨.”
“제가 해야 할 일이라도?”
“없어요.”
마리 조교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탁자가 옮기는 짐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오기가 생기는 구나.
“그래도 같은 조교인데, 도우면서 해야죠.”
“같은?”
그녀의 아미에 균열이 생겼다. 무표정했던 얼굴이 매섭게 돌변하여 날 째려봤다. 눈빛만으로 얼굴이 으깨지는 기분이었다.
“어어......”
어버버가 절로 나온다. 마리 조교가 아차 했는지 표정을 지우고는 입을 열었다.
“도울 일은 없습니다.”
“아. 네.”
그렇겠지요. 무안해서 뒤로 물러났다. 영혼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있으니, 영혼이 찾아와 말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 오늘은 친절한 편이였는데 뭘.]
.......
참 사기가 오르는군.
마리 조교는 내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시하고 혼자 계속 일을 했다. 난 강의실을 빙빙 돌며 구경하는 척, 뭔가 하는 척 시간 보내며 빈둥대었는데, 편해서 좋다기보다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아서는 매번 이런 생활을 했던 걸까.
[으응? 히힛.]
내가 아서를 바라보며 딴생각하고 있자. 아서가 내 시선을 느끼고는 뭔가 좋은지 배시시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뭐 이런...
그렇게 빈둥대다 보니 점점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수업을 들어오는 학생들의 뱃지가 동색, 은색, 금색 가지각색이다. 이거 공용 수업이었던가?
생각해보니 수업 자체가 과정별로 나뉘는 게 아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중에 아서에게 한번 확인해봐야지.
학생들은 오자마자 서로 그룹을 지어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라 훈훈했다.
“쟤 왜 저렇게 쳐다봐?”
“네게 반했나 봐.”
“아 미친. 사람 기분 잡치게 헛소리할래?”
......
입 더러운 것도 그 시절과 닮았구나. 난 잘못한 기분이 들어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이 남녀비율은 뭐지.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너무 많다. 부담스러울 정도인데?
그때였다.
“왔다, 왔어.”
“꺄아.”
“어쩜 좋아.”
이 호들갑은 또 뭐지. 학생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는데, 순간 내 입에서도 탄성이 절로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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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에 2화 더 올리겠습니다.
좋은 아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