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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의 불평등한 종속계약
무서운 속도로 밀려들어 온 [마법화살]은 결국, 내 얼굴을 강타했다.
쾅-!
“으아아악!”
철퍼덕-.
그 충격에 뒤로 넘어가, 대자로 엎어져 누웠다. 순간, 강의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그것도 잠시.
“푸하하핫.”
“풋. 야, 방금 봤어?”
“크크큭. 아, 미친 조교가 되어서 저거 하나 못 막냐. [마력방패] 실습시간 아냐?”
[아이고......]
대 폭소가 시작되었다. 웃음보가 터진 강의실이 진정될 기미가 안 보였다.
이것들은 사람이 마법에 맞았는데 웃고 있어? 난 혹시나 얼굴이 뜯겨 나갔을까 손으로 더듬더듬더듬 거리는데, 말짱했다. 그냥 쓰라릴 뿐이다.
난 엉거주춤 상체를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웃어 재끼는 학생들 사이로 눈이 마주친 마리 조교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엘레인이 날 쳐다보지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보며 도도한 표정으로 입꼬리만 올리고 있었다.
저년이 꾸민 일이구나. 촉이 왔다.
“아서, 괜찮나?”
“괜찮아.”
레온 교수가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난 대답하고는 누워있는 몸을 일으켰다.
“조교님~. 죄송해요. 저희가 너무 열심히 한 탓에 이런 사고가......”
진심이 코빼기도 안 느껴지는 말을 사브리나가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듯 몸을 비비 꼬며 했다. 저 놀란 얼굴 봐라. 누가 보면 진심인 줄 알겠네.
“괜찮으신 거죠?”
“괜찮습니다. 걱정 마시죠.”
내 대답에 그녀가 정말 안심이라는 듯 얼굴을 폈다. 명연기자 납셨네. 대놓고 약 올리는 것보다 더 속이 끓는다.
“샤브리나양. 아트리샤양의 대련은 여기서 그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려오도록 하시고요. 다음 대련하고 싶은 학생 있는가요?”
그 말과 함께 손을 번쩍 드는 학생이 하나 있었다.
엘레인.
웃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뭔가 흉계를 꾸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교수님. 대련은 꼭 학생과 하지 않아도 괜찮죠?”
“오, 저랑 하시려고요? 전 학생이라고 봐주는 거 없다는 거 알죠?”
레온 교수의 호쾌한 대답에 학생들이 웃음 지었다.
“호홋. 아뇨, 교수님과는 다음 기회를 기약할게요. 이번에는.”
엘레인이 잠시 말을 멈추고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그러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날 바라보며 말했다.
“아서 조교님과 하고 싶습니다.”
[호오, 무슨 수작이지.]
“아서랑요?”
“뭐?”
얼빠진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어리둥절한 건 주위 학생들도 마찬가지인지 어떻게 된 일인지 서로 영문을 묻고 있었다.
레온 교수도 의아한 표정으로 엘레인에게 다가가 대화를 한다. 왜 날 선택했는지에 대해 묻는건지, 둘 다 때때로 말을 나누며 날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 애초에 레온은 너랑 학생이랑 무대 위에 안 올리니까.]
“그래?”
하지만, 수긍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온 레온이 내뱉는 말은 내 기대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아서, 하는 게 좋겠어.”
[오잉?]
어떻게 된 거지. 내게 헛된 바람만 불어넣은 놈팽이도 놀란 표정으로 레온을 바라보았다.
“아까 자기 친구가 널 망신 준 것에 대해 엘레인이 신경이 쓰이나 봐. 간단한 대련을 하면서 조교로서의 위신을 세워주고 싶다네?”
“엘레인이?”
“응. 다들 건방지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사려 깊은 애라니까.”
레온 교수는 엘레인과 사적으로 아는 사이인가? 그보다 사려 깊기는 개뿔. 엘레인의 표정을 보니 속에 구렁이 한 마리를 품고 있구만.
그래도 거절하면, 그것 나름대로 내 위신이 깎일 거다. 게다가 이제까지 지켜본 바로는 말만 대련일 뿐이지, 무대 위에 올라갈 뿐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일단 알았어.”
“좋아. 잘해보라고.”
씨익 웃으며, 마리 조교에게 가는 레온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아서가 말을 이었다.
[제대로 치고받는 대련이 아니라 허락했나 보네. 장난치려고 날 지목하는 애들은 레온이 다 쳐냈는데.]
“그래? 그보다 학생끼리 하는 거 아냐? 왜 교원들과 대련을 허용 하는거야.”
[뭐, 그럴 수도 있지. 애초에 조교랑 하는 걸 선호하는 학생들이 꽤 있어.]
“왜?”
[계급이 높은 학생들의 자존심 때문인 거지. 같은 과정을 이수하는 다른 학생들과 대련하여 질경우 자신의 실력이 재단 당할까 봐 걱정하는 학생이 꽤 있거든. 그럴 바에 차라리 급을 확 높이는 거야.]
“아, 그렇군.”
[그렇지만, 그건 엘레인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지. 그녀는 마력과 센스가 아주 뛰어나거든. 아이네스 공작가의 가장 열등한 막내라며 깎아내리는 사람이 있다지만. 학생들 중에는 탑클래스나 다를 바 없으니까.]
“얼굴을 보니 뭔가 생각하는 꿍꿍이가 있는 거 같긴 한데......”
[망신 주기에도 힘든 겉핥기식 대련인데 무슨 생각이려나.]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대련 내용은 수업 참관은 계속했으니 대충 알겠지? 먼저 2점을 득점하면 끝이야. 상대방의 [마력방패]를 깨고 타격을 입히거나, [마력방패] 세 번이 먼저 깨지면 득점하는 거고.]
“응.”
[같은 마력 양이면, [마력방패]가 두 번은 막을 수 있으니까. 먼저 사용하고 합을 맞추듯 너도 공격마법을 쓰면 돼. 어차피 내가 배운 공격마법은 [마력화살]밖에 없으니 다른 거 쓸 일도 없어.]
“[마력화살]이라...... 알겠어.”
“아서 조교. 어서 오세요!”
“아. 네!”
마리 조교가 목소리를 높여 날 부른다. 표정을 보니 좀 화가 나 있는 거 같기도 했다. 내가 무대 위로 올라가게 돼서 불만인가.
그녀는 무대 올라가는 계단 옆에 서 있다가 내가 무대를 오르려 하자, 장갑을 하나 내게 건넸다.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뭐지. 그러고 보니 학생들도 다 이 장갑을 끼고 있네. 얼떨결에 받아놓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붙잡고만 있자, 아서가 말했다.
[그건 마력 조절 장갑이야. 대련 시 상대방이 마법에 다치지 않도록 마법에 부여되는 마력 양을 동일하게 조절해줘.]
아, 그래서 얼굴에 직통으로 [마력화살]을 맞았는데도 멀쩡했던 건가. 모양새보다 영 위력이 별로다 했었다.
내가 장갑을 끼고 무대 위로 올라가자, 엘레인이 긴 생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엘레인은 머리를 다 다듬은 뒤, 날 보자 자신의 로브를 잡고 공주님 인사를 했다. 속에 구렁이 하나는 품고 있지만, 이쁘긴 이쁘구나. 정중한 인사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시작하겠습니다.”
말과 동시에 마리 조교의 지팡이에서 빛나는 나비 하나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하늘로 올라갔다.
순간, 지팡이를 잡은 손이 약간 미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긴장 하고 있구나. 나비의 날갯짓마저 아주 천천히 한 번, 두 번, 펄럭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날아오르던 나비가
펑-.
하늘에서 터졌다.
화르르륵-!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불길이 허공을 태우며 내 얼굴까지 쇄도해 왔다.
“히익. 으. 마.[마력방패]”
펑-.
「미습득 기본 마법 – [용의불길]을 감지합니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의 위압감에 깜짝 놀라 무영창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겨우 말을 더듬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불길은 허공을 태우는 소리와 함께 연실 내 [마력방패]에 붙어 있었다.
화르르륵-.!
휘이잉-.
콰-쾅-.
“[마나방-]. 으악!”
[아이고!]
거대한 불길이 또 하나 날라와 내 마력방패를 깨버리고, 그 불길 뒤에 따라오던 흰색 빛줄기가 내 얼굴을 강타했다.
그 충격에 몸이 붕 떠 공중에서 뒤로 한 바퀴 돌아 엎어졌다.
“풉-. 푸하하핫.”
“크큭-. 가지가지 한다 정말. 작정하고 웃기려는 건가?”
“푸핫. 어떻게 조교인데도 기초 마법을 영창하고 앉아있냐.”
[괜찮냐?]
안 괜찮아. 이런 꼬락서니로 엎어져 있는 것도 내 마음에 스크레치를 주는데, 저 어린 악마들이 뱀과 같은 혓바닥으로 내 여린 멘탈에 연달아 크리티컬을 터트렸다.
도저히 부끄러워 엎어진 채로 일어날 수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웃음보가 터진 강의실이 진정될 기미가 안 보였다.
내가 있으면 이렇게 다들 행복해지는데 날 왜 미워하는 거냐. 이러다 행복 전도사가 될 기세구만.
“엘레인 선 득점”
마리 조교의 말에 엘레인이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저년이......
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흠. 재개하겠습니다.”
또다시 마리 조교의 지팡이에서 빛나는 나비가 튀어나왔다.
펑-.
‘[마력화살], [마력방패]’
휘잉-.
휘이잉-.
콰앙!
시작과 동시에 나와 엘레인의 지팡이 끝에서 마법이 쏟아져 나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녀의 불꽃 마법이 허공에서 폭발하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연기가 뿜어져 나와 강의실을 가렸다.
시야가 가렸다. 그래도 엘레인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지 않은가. 난 다시 마력 화살을 영창 하려 했었다.
[아서, 잠깐! 뭔가 이상해. 엄청난 마력이 느껴져.]
“뭐?”
[이런, 조심해!]
그때였다. 난 경악했다. 연기를 찢고 용의 형상을 한 거대한 불덩이가 공기를 맹렬하게 태우며 내게 쏟아지고 있던 거다! 아까의 것과 크기도 위압감도 다르다. 날 집어삼킬 듯이 들이닥쳤다.
“꺄악!”
“조심해!”
무대 밖에서 여학생들의 비명과 함께 레온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익-!
「플레이어의 위협을 감지합니다.
포인트 부여 – [마력방패]를 쓰겠습니까?
(현재 포인트 302)」
큰 경고 부저와 함께, 창이 다급하게 튀어나왔다.
“쓸게!! 쓴다고!!!”
「3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남은 포인트는 2 포인트입니다.」
내 몸을 두르고 있는 마력방패가 보랏빛으로 변했다고 생각한 순간, 거대한 불덩이가 휘감아 치며 폭발했다.
콰앙-! 콰아앙-쾅쾅!.
[오, 끝내줘.]
어지러울 정도로 요란한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불덩이가 요동치며 끈덕지게 마력방패를 쳐댔지만, 견고하게 버텨냈고 이내 불길은 사그라졌다.
“아서! 괜찮은가!”
“어떻해. 죽은 거 아냐?”
“나 사람 죽는 거 처음 봐.”
멍멍한 귓구녘으로 요란스러운 주위 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연기를 날릴 테니 소지품 날라가는 거 없도록 꼭 잡으세요. [바람]”
쩌렁 쩌렁한 레온의 영창과 함께 거센 바람이 밀려와 시야를 가리던 연기가 다 날려 보냈다.
내 모습이 드러나자 강의실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주위를 돌아보는데 다들 입을 떡 벌리고 놀란 표정을 짓고있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레온 교수와 마리 조교마저 말이다. 특히 엘레인은 경악에 찬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서 자네.... 멀짱하군?”
난 딱히 대답 할 말이 없어, 엄지를 치켜들어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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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엘레인의 대련 장갑은 어느 순간 고장 나 있었고, 마력의 제어가 안 되어 재능이 출중한 학생의 거대한 마력이 그대로 쏟아진. 어쩔 수 없는 작은 사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에 한 표를 주고 싶다만 어쩌겠나. 엘레인 그녀도 대배우의 기질을 가지고 있어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 뺨칠 정도로 명연기를 펼치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호들갑을 떠는데.
레온 교수도 조교가 무대 위로 올라가는 상황이라 방심했는지 대비를 소홀히 했다고 학생들에게 진솔하게 이야기하며, 만에 하나 학생들이 다치는 일이 생길 만큼 큰 사고가 될뻔했다고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그리고 레온은 꽤나 인상적인 [마력방패] 시범을 보여준 내게 박수를 쳐 달라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다. 의외의 모습이었다며 말해주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진심이 아니었더라도 엘레인이 결국 내 위신을 세워주겠다고 한 말이 사실로 된 것이다.
비록 그녀가 지금 누가 보더라도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