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10 / 0060 (10/60)

0010 / 0060 ----------------------------------------------

그녀와의 불평등한 종속계약

                                                      

 “아서 조교님. 잠시 시간 좀 괜찮을까요?”

 아, 깜짝이야.

 [아직도 있었네?]

 “무슨 일이죠? 엘레인양.”

 이 아가씨랑은 더는 얽히고 싶지 않은데 말이지.

 대련이 끝난 이후 강의실에서 엘레인이 말을 걸려고 다가오는 걸 피했었다.

 설상가상 레온도 수업 끝나자마자, 뭔가 묻고 싶다는 표정으로 다가오길래, 도망가듯 강의실을 나갔다가 다음 수업 직전에 돌아왔는데.

 아직도 이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네?

 “시간 있으시죠?”

 “없는데요.”

 게다가 어제 일이 있었는데도 이렇게 염치없이 실실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건 뭘까.

 “잠시 따라와 주시겠어요?”

 “이제 곧 수업이 있어서요.”

 “조교님이 잠시 자리 비워도 교수님께서 상관 안하시잖아요. 한 수업만 쉬세요.”

 이상하게 끈덕졌다. 게다가 무슨 권한으로 나보고 쉬라 마라 하는 것인지.

 “무슨 일이죠?”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여기서 말 하는 게 어때요?”

 자기 말에 토를 달은 게 불만인지 입을 비죽이며 말을 이었다.

 “따라오시죠.”

 “여기서 말하라니까요?”

 “여기서 말할 이야기가 아니니까 오라는 거 아니겠어요? 그 쪽에게도 손해 보는 일 아닐 테니 그냥 오시죠.”

 “수업도 있고, 저도 나름 바빠서 안 되겠네요.”

 그 말에 엘레인의 웃는 얼굴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금니를 꽉 깨물며 웃는 게 웃는 거 같지 않았다.

 “하, 사람 모양 빠지게.”

 나만 들리도록 기가 차 다는 듯 헛웃음을 짓더니, 휙 뒤돌아선 강의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티팩트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장 먼저 널리 보급-.”

 “수업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교수님. 잠시 시간 괜찮을까요?”

 “아, 학생 여러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무슨 일이죠 엘레인양?”

 그러더니 레온 교수를 불러 대화를 하는 거 아닌가.

 설마 나 데려가겠다고 말 하는 건가.

 [저것 봐라.]

 “얼씨구.”

 엘레인이 그 짧은 대화를 하는데, 몸을 베베 꼬며, 얼굴에 홍조가 만연한 채로 머리카락을 연실 귀 뒤로 넘겨 내렸다. 저걸 보고도 호감 있다는걸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눈이 먼 거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엘레인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서 환희 웃으며 응수하는 레온이 상대적으로 차가운 놈처럼 보일 정도였다.

 호감이 어느 정도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정도 수준이 아니라 그냥 온몸으로 초록 불을 내뿜고 있었다. 

 [이런, 표정 보니 너 가야겠다.]

 대화를 끝낸 엘레인이 기분 좋은 얼굴로 뒤돌았다가 날 보자 초록불이 빨간불로 전환되었다. 얼굴을 팍 구겼다.

 그녀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교수님이 허락했으니 따라오시죠.”

 안돼.

 이 아가씨랑 얽히기 싫단 말이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레온 교수를 봤다. 그러자 레온이 환희 웃으며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대체 엘레인이 무슨 말을 했길래 저러는 거지?

 [레온은 대체 어떤 착각을 하길래 저러는 거야.]

 그러게. 나도 궁금했다.

****

 낯선 곳이다.

 어떻게 된 학교인지, 어제 그 많은 시간을 돌아다니고서도 아직 돌아보지 못한 곳이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애초에 여기 학교에 있는 곳은 맞는 걸까? [공간이동] 마법 같은 게 있어서 다른 곳에 온 건 아닐지 의심이 되었다. 

 의심할만한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복도에 이제까지 없던 붉은 융단이 길게 깔린 데다, 조각이니 장식품이니 척 봐도 값비싼 것들만 걸려 있었으니까.

 엘레인의 안내에 따라 몇 가지 문을 지나치다 보니 이런 장소로 오게 된 것이다.

 [이런 곳이 있었어?]

 아서 조차 모르는 곳이라니. 점점 내 의심이 커져만 갔다.

 갑자기 인적이 드물기 시작한 것도 그렇다.

 “여기가 어디죠?”

 “여기요? 후훗. 어디일 거 같아요?”

 물음에 물음으로 대답하다니, 별로 좋아하지 않는 화법이었다.

 “학교가 아닌 건가요?”

 “예?”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하는 거야? ]

 그런 건 아닌 건가 보구나. 의아해 하는 엘레인의 표정이나, 아서의 말을 들어보면 [공간이동] 마법이라는 게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런 고상한 공간이 학교 안에 있다고 상상해 본 적 없어서요.”

 “아아~. 하긴, 이곳을 아는 사람은 학교 안에서도 많지 않으니까요. 여긴 저와 같은 고위 계층을 위해 특별히 내주는 개인 공간이에요.”

 [아, 여기가 고위층 자녀들에게 지급된다는 개인 공간이었구나. 이야기는 들은 적 있었어.]

 “제가 아닌 사람은 환각 마법으로 인해 입구조차 찾을 수가 없죠. 아마 조교님이 이 융단에 발을 맞추는 사람 중 유일한 평민일걸요? 영광스러워 해도 좋아요.”

 “굉장한 곳이네요.”

 거들먹거리는 게 거슬렸지만, 대단한 곳은 맞았다.

 그런데, 이곳에 왜 날 데려온 거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데, 엘레인이 앞서 걷느라 뒷모습만 보여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보다 의외인 건, 이렇게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는 금세 가면을 벗고, 하대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는다는 거다.

 내게도 손해 보지 않을 일이라 말한 게 위장이 아니라 정말인 건가. 

 “그런데, 이런 곳까지 데려와서 할 이야기란 게 어떤 거죠?”

 “이곳은 어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에 대한 제 성의라고 생각해주세요.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할까요?” 

 첫 단추라. 오늘 있던 일을 생각해보면 두 번째 단추도 좋게 끼워진 거 같지 않은데 말이지. 

 엘레인이 용의 얼굴이 양각된 손잡이를 잡아 열고 들어가자, 고풍스러운 응접실이 나왔다.

 소파에 자리 잡아 앉자, 그녀도 상석으로 보이는 곳에 다소곳이 앉았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가지 물을 게 있어요. 혹시, 어제 일을. 레온 교수님에게 말했나요?”

 갑자기, 그녀가 날 쏘아보며 말했다.

 “아뇨.”

 “정말요?”

 “거짓말할 이유가 없죠.”

 애초에 레온에게 말할 생각도 없었을뿐더러 인사팀도 수업 끝나고 가려 했으니까.

 내 대답에 엘레인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위에 지팡이를 잡고 까딱거렸다.

 그러자 정육각형의 작은 흰색 덩어리와 고급스러운 찻잔이 눈앞에서 둥둥 떠다녔다.

 “우리 영지의 특산품인 히포그리프 치즈와 밀크 티에요. 한번 드셔 보시죠.”

 [오오, 이렇게 귀한걸.]

 귀한 거다. 아서가 말해줘서 알았던 게 아니라, 이 치즈 위에 금가루가 뿌려져 있어서 알아챘다.

 이 아가씨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내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제 꿈에서 욕을 막 내지르던 사람과 동일인물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무슨 생각입니까?”

 “네?”

 “어제의 태도와-. 아니, 아까 전 수업 때만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지금 이 대우가 이해가 안 되는군요.” 

 “조교님을 인정했다..... 라고 하면 대답이 될까요?”

 “예?”

 자기 앞에 밀크티를 하나 더 가져온 엘레인이 찻잔을 홀짝였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까, 조교님이 막은 그 마법, 제가 진심을 다해 쓴 거에요.”

 [미친년......]

 “죽이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아시다시피 레온 교수님이 있었기에 죽지도 않았을 거고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아아, 제 말에 감정이 격해지는 건 이해해요. 그래도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죠. 어차피, 그 마법을 막지 않았습니까? 그 때문에 여기에 계신 거고요.” 

 어차피 막았다니, 그 덕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포인트를 낭비했는데 말이다.

 불편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레인이 찻잔에 티스푼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교수분들 중에서도 그 마법은 생채기 안 나고 막을 수 있는 분은 손에 꼽을 거라 자신하는데 말이죠. 대체 무슨 연유로 힘을 숨기고 있으셨죠?”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걸로 착각하는 건가?

 “하아, 그게 이 대우랑 무슨 상관인 겁니까?”

 “상관있죠. 전 능력 여하에 따라 대우가 천차만별 달라지니까요.” 

 “계급도겠죠.”

 “호호. 부정하지 않을게요. 전 속물이죠. 그래도 알아뒀으면 좋겠어요. 능력 없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야박하지만, 그 반면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후하다는 걸요. 그래서 말인데, 조교님께 일을 하나 제안할게요.”

 “일이요?”

 “네, 제가 레온 교수님께 사업을 하나 제의하려 하는데, 그걸 조교님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보상으로 조교님도 저희 가문에서 일하게 해드릴게요. 능력 있으신 분께서 조교 월급 같은 푼돈으로 일하시면 안 되죠.”

 “흐음......”

 요지는 레온인건가.

 들을수록 정말 나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표현대로 성의를 다해 끝까지 정중하게 대해 주니 솔직히 기분이 나쁠 수 없었다. 어제의 일도 있었지만, 나도 그녀의 꿈에서 복수한 탓인지 감정이 크게 남은것도 아니니까.

 그보다, 이 제안을 하는 엘레인이 진짜 어제 꿈에서 온갖 상스러운 욕을 내뱉던 그 엘레인과 동일인물이 맞단 말인가.

 한번 건드려 볼까.

 “좀 더 생각해볼게요. 그런데 오늘 수업에서 저한테 왜 그러신 거죠?”

 “네?”

 “이유가 없잖아요. 이유가. 어제 당한 건 그쪽이 아니라 저일 텐데요?”

 “그건 당신이!......”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 물은 엘레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뻘게졌다.

 내 말에 어제 꿈의 일이라도 떠오른 걸까? 수치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더니, 입이 살짝 벌어졌다. 입을 다시 다물고는 어쩔 줄 모르며 우물쭈물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엘레인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그보다, 치즈랑 밀크티는 안 드실 건가요?”

 이내 말을 돌렸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엽다고 생각되어 내 굳은 얼굴도 풀리고 미소가 지어졌다.

 “잘 먹을게요.”

 눈 앞에 있는 치즈에 손을 대는 순간 창이 하나 떴다.

「미습득 혈통 마법 – [티타우라노의 권능]을 감지합니다.」

 “혈통마법?”

 [오오오오! 이거 뭐야, 혈통 마법의 ‘진명’ 마저 알아낼 수 있던 거였어? 맙소사.]

 “맞아요. 저희 가문의 가전마법으로 띄운 거죠.” 

 내가 무심결에 한 말을 자기한테 하는 줄 알았는지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엘레인이 대답했다. 그보다 다른 마법과 달리 명칭이 왜 이런 거지.

 “티타우라노라는게 뭘 뜻하는 거죠?”

 “네?”

 [꺄악!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아서가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경악했다. 어라,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쨍강-.

 내 앞에 떠 있던 고급스러운 찻잔이 갑자기 바닥에 떨어졌다.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메아리치며 들렸다.

 단숨에, 응접실이 싸늘한 공기로 가득 찼다.

 “지금 뭐라고 하신거죠?”

 내 말에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던 엘레인의 표정이 급격하게 얼어붙어선,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되묻었다. 

 [혈통 마법의 진명은 비밀이라고!]

 “제 말 안 들려요? 지금 뭐라고 했냐고요.”

 실수했구나. 난 빠르게 변명거리를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바로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날 노려보았다.

 “뭐라고 했냐니까!”

「 마법을 감지합니다. 」

 순간 고간이 간질거릴 정도로 아찔한 느낌과 함께 시야가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하늘을 날고 있다. 비명도 내지르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붕 떠 날아간 것이다!

 “으아아아아!”

 쿵-.

 촤아아악-.

 닫혀있던 응접실 옆문이 열리며, 그곳으로 던져졌다. 방 깊숙이 쭉 미끄러지며 들어갔다. 방바닥을 쓸어내는 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어라? 엘레인?”

 “오늘 이 돼지한테 일 제안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기로 했어떠여.”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별로 반갑지 않은 목소리. 엘레인의 병풍들이다.

 응접실하고 연결된 방 안에서 있던 건가. 바닥에 나뒹구는 채로 그녀들을 얼빠지게 올려다봤는데, 구도가 구도다 보니 매끈한 다리랑 치마 속이 눈에 들어왔다.

 퉤-.

 뺨에 액체가 팍 튄다.

 “변태 새끼야, 어딜 보는 거야.”

 [으 더러워.]

 내가 보고 싶어 보는 거냐? 난 뺨에 맞은 침을 닦아 내렸다.

 “어라. 엘레인?”

 “뭐야, 화났어?”

 “무슨 일이에여? 왜 화났어여?”

 엘레인이 씩씩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오자 병풍들의 이목이 쏠린다.

 “샤브리나 구속해. 안나, 넌 알지?”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알겠어.”

 “으... 싫은데. 알겠떠여~.”

 엘레인의 부름에 샤브리나와 그 옆에 있는 빨간 긴 머리의 멍해 보이는 여자애가 대답했다. 

 샤브리나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빛이 뿜어져 나와 내 다리를 감쌌다.

「미습득 기본 마법 – [구속]을 감지합니다.」

 “잠만, 뭐 하려는 거야?”

 “가만히 있어여.”

 그와 함께, 멍한 인상에 혀 짧은 여자애가 내게 다가 왔다.

 [옷을 벗겨?]

 안나라고 불린 가슴 위까지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여자는 능숙하게 내 로브를 벗기고는, 상의 셔츠의 단추를 일일이 풀려 하고 있었다.

 너무 경우 없는 일이라 멍하니 보고만 있었는데, 정신이 확 돌아왔다.

 “대체 뭐 하려는 거야?”

 “가만히 좀 있어여!”

 내 옷을 벗기는 손을 막으며 저항했는데, 도리어 멍한 여자애가 성을 내며 내 손을 탁! 치곤 윽박 질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난 어쩔 수 없이 셔츠까지 그녀에게 벗겨 졌다.

「시스템에 [안나 페테르니]가 등록되었습니다.」

 “으 냄시. 좀 씻어여-.”

 투덜대는 안나가 속 티셔츠 마저 벗기면서 과한 부피를 자랑하는 나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풉-. 가슴 크기 좀 봐. 아트리샤 너보다 더 크겠는데?”

 “야. 뒤질래?”

 “사브리나~. 이젠 아래여-.”

 “알겠으.”

 침쟁이가 이번엔 내 팔을 구속하더니 안나가 바지도 벗기기 시작했다.

 “아니, 정말 뭐 하는 거야.”

 “이제 곧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여어.”

 [이야. 제대로 좆 됐는데? 엘레인 옆에 있는 금발머리 로브 안 좀 봐봐.]

 시발.

 저거 채찍이야?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레온의 성적 취향에 대해서는...... 나중에 극 안에서 언급하도록 하는걸로 ㅋㅋㅋ 

오늘 오후에 2편 더 올리겠습니다. 

첫 H는 내일 올라가겠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