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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건드리는 녀석은
깜짝 놀랄 정도로 털털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그녀 입에서 튀어나왔다.
당황해서 바라보니, 그 목소리와 어울리는 시원스러운 인상의 미인이 있었다. 콧대도 높고 말상에 가까운 자그마한 얼굴. 분명 여성스러운 얼굴인데도 인상이 부드럽다기보다 시원스럽고 거칠었다. 자그마한 얼굴과 달리 운동선수마냥 듬직해 보이는 어깨가 그런 인상을 주는데 한몫했다.
불만을 토로한 여자는 세 남자를 보며 입술을 툭 내밀고 있다가, 날 한번 흘깃 쳐다보더니 대놓고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걸 본 옆에 세 놈은 뭐가 좋은지 연실 실실거렸다.
“아서, 마리 조교는 왜 괴롭히고 그래. 불쌍하잖아.”
“안 그래도 같은 교수 밑이라 강제로 수업 때마다 네 얼굴 봐야 하는 것도 고역일 텐데, 밥 먹을 때까지 쫓아다녀야겠어?”
“잘 못 했네. 암. 우리 아서님이 큰 잘못을 했어.”
삼인조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지랄을 다하고 있다. 한번 그들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앞머리가 눈을 가릴 것마냥 덮고 있는 더벅머리, 삐쩍 마른 데다 장난 잘 칠 것 같은 까치 머리, 시원시원하게 잘생긴 올백 머리. 같잖아 보이는 놈들이다. 워낙 요새 높으신 분들만 상대해서 그런지, 별거 있을 거같이 느껴졌다.
“아서, 아주 요새 잘 나가더라. 오늘 학생이든, 교사든 네 이야기밖에 안 해안해.”
“이야. 스타 납셨지. 이렇게 조교 중에서 유명한 사람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냐.”
“하여튼, 이제 좀 일어나라. 타티아나가 너 때문에 불쾌하다 않아. 아, 누구 얼굴 보니 나도 밥이 안 넘어가게 생겼네.”
올백 머리가 비릿하게 웃어대며 말했다. 여자들은 혐오하고, 남자들한테는 장난치기 쉬운 호구취급인 건가.
“얘넨 또 뭐야.”
“뭐? 얘넨?”
내 말에 올백 머리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아니, 너희한테 물은 게 아니라.
[저기 네가 보는 왼쪽부터 더벅머리가 역사학 조교, 뻗은 직모가 마법 동물학 조교, 그 오른쪽 올백 머리가 마법학 조교,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여자애가 약초학 조교야.]
얘한테 물은 거지. 물론, 내 말에 너희가 기분 나쁘게 생각해주면 땡큐고.
그보다, 혹시 이 상황이 아서의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았을까 걱정되었는데, 아서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얼굴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딴사람 이야기마냥.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냐?”
“알. 여기에서 소란피우지 마.”
“내가 무슨 소란이야, 물을 거 묻겠다는데.”
맨 끝에 있는 역사학 조교인 더벅머리가 말렸다.
“에이 아루~. 그만해.”
이어지는 타티아나의 말에 순간 뿜을 뻔 했다.
이 간드러진 목소리는 또 뭐야. 아까 그 중저음 목소리는 어디로 간 건가. 게다가 아루라니. 지금 애교 부린 거야?
그러고 보니, 알이랑 타티아나의 외모 레벨이 다른 두 남자애에 비해 월등히 높아 보였다. 둘의 자리도 붙어있는 것도 그렇고, 타티아나가 올백 머리에게 끈적한 눈빛도 보내는 것 보니 사귀고 있는 건가.
“됐어. 벙어리마냥 입 꾹 다물고 있는 애한테 뭐하러 계속 말을 거냐. 아서, 미안한데 여기 말고 다른 곳 가서 먹어줘라.”
“야! 뭐가 미안해! 밥맛 훅 떨어져서 우리가 사과받아도 모자를 마당에.”
더벅머리의 말에 타티아나가 다시금 중저음 목소리로 버럭버럭했다. 이 아줌마는 목소리로 사람 계속 깜짝깜짝 놀라게 하네.
“어쩔래?”
“글쎄.”
어쩌기는.
더벅머리가 미안하다고 말하기에 일어나 주고 싶지만, 다른 애들이 눈꼴시어서 못 해주겠다. 내가 일어나느니 얘네들을 쫓아 내주는 게 더 나은 선택지 같아 보였다. 난 대답하지 않은 채, 앞에 놓인 물로 입을 행군 뒤, 앞에 준비된 냅킨을 무릎 위에 올려놓으려 했다.
배가 다리를 가려 무릎이 안 보였다.
아무리 봐도 음식물이 바지 쪽에 떨어질 거 같지가 않았기에 냅킨을 그냥 배 위에 올리고, 원형 테이블의 음식이 쌓여 있는 2번째 단을 힘있게 돌렸다. 그러자 음식들이 빠르게 뱅그르르 돌아갔다.
너무 오바해서 접시에 산처럼 쌓인 음식이 사방으로 튈까 싶었는데, 뭐 낙 마법이라도 걸려있는 것인지 음식이 접시 밖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난 크림 수프를 뜨고, 양념 된 닭고기를 집게로 옮긴 뒤, 수프를 수저로 떠 마셨다. 부드럽고 농후한 데다 적잖이 간이 되어있는 수프였다. 수프가 목 안에서 다 넘어가기 전에 양념 된 닭고기를 나이프로 잘라 입 안에 넣었다.
양념이 과하지도 않고 숯불 향기가 나며, 촉촉하다. 게다가 따뜻해서 입안 가득 온기가 퍼져 흘렀다. 좋다.
그렇게 먹고 있는데, 옆의 여자가 계속 빤히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그 느낌에 시선을 돌리니 남자 세 명도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날 줄 알았는데 말도 무시한 채 태연하게 밥을 먹으니 당황스러운 건가.
한번 건드려볼까.
이곳저곳 다니는 곳마다 문제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병신 취급을 하는데 그 꼬락서니를 내버려 두며 살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혐오 받을 원인이야 열심히 노력해가며 고쳐갈 거다. 그렇다면 앞으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는 지금보다 원활하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개 같은 짓거리를 하는 새끼들한테 꼬리 흔들며 알랑거릴 생각은 쥐뿔도 없었다.
“음음. 맛있어 맛있어.”
그들의 시선을 의식한 과장된 말을 한마디 내뱉고선. 다시금 닭 다리를 썰려 나이프 질을 했다. 문득 소리 내서 먹으면 쟤네 표정이 어떨까 싶어 식기를 내던지고 닭 다리를 손으로 집어 빨아 먹었다.
후르룹룹룹-. 쩝쩝!
“아, 진짜!”
팅.
옆에 있는 타티아나가 역하다는 표정으로 접시 위에 포크를 던졌다. 다른 남자들 세 명의 표정도 아까와 달리 빠르게 굳어갔다.
그걸 보니 더 신이나 어깨춤을 추며 먹기 시작했다. 더 요란하게 먹기 위해 입천장과 혀를 붙였다 빼는 힘을 이용하여, 과장되게 소리를 내었다.
쩝쩝-! 쫘압. 쫘압-. 쫘아압-짭-.
“하하, 미치겠네.”
“뭐하자는 거야 대체?”
“지금 이게 뭐야? 싸우자는 거야? 어? 그러는 거냐고. 야? 나 안 봐?”
“알, 그만! 이만 됐어. 어차피 식사도 할 만큼 했겠다 일어나자.”
가장 끝에 앉아있던 더벅머리가 애들을 진정시키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우리가 일어나는데.”
“타티아나. 그냥 가자.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무서워서 피하는 거 아니잖아.”
타티아나만 빼고 다들 자리에서 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너무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이겼다는 사실에 흥에 겨워 그들을 배웅한답시고, 닭 목을 잡아 하모니카를 불듯 좌우로 빨고 핥아댔다.
쭈루루룹. 쭈루루룹! 쩝쩝-.
“하......”
그 소리에 자리에 혼자 남은 타티아나가 두 눈에 경멸을 가득 담고 노려봤다. 난 그녀에게 손을 퍼덕이며 어서 저리 가라고 저어댔다.
그러자 타티아나가 “짜증 나는 새끼.” 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화풀이하듯 의자를 힘껏 뒤로 밀며 일어났다. 그리고 먼저 일어난 세 명을 따라가려고 튀어나가려는 순간.
그녀가 내 로브를 밟고 옆으로 미끄러졌다.
“으아아? 어! 어......?!”
쨍강.
타티아나가 바닥에 넘어지기 전,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내가 몸을 휙 트는 바람에 팔꿈치에 부딪힌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당기는 힘에 의해 그녀가 내 품에 넘어지듯 안겨 왔다.
내 뱃살 너머로 운동으로 다져진 탄력적인 몸이 느껴졌다.
「시스템에 [타티아나로이]가 등록되었습니다.」
짝-!
갑자기 볼 짝에 불똥이 튀며 시야가 확 틀어졌다. 뭐야 이거.
“뭐 하는 거야 이 변태 새끼야!”
앞 통수가 얼얼하다.
순간 어처구니가 뛰쳐나가서, 아무 말 없이 멍하니 타티아나의 얼굴만 쳐다만 보고 있었다. 워낙 볼기 때리던 소리가 요란한 탓인지, 주위 테이블에서 밥 먹던 사람들이 다 여기만 쳐다보고 있었다.
“음식 먹던 손으로 왜 만지는 거야. 대체.”
“괜찮아? 어디 다친 건 아니고?”
“아루. 있지-.”
알이 뛰어와서 주목을 다 받는 타티아나를 데리고 나갔다. 타티아나는 사라지면서까지 엿 같다느니, 일부러 넘어지게 했다느니 같은 말을 내가 들리도록 소리치며 나갔다.
[그냥 넘어지게 내버려 두지 그랬어.]
“그러게.”
솔직히 잡았던 손을 놓아버릴까 싶었는데, 인간으로서의 도리조차 함께 놓아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무자비해야 할 때 무자비하지 못 하다니. 나의 풋사과 같은 연약한 심성이 반성 되었다.
다음부터 날 존중 안 해주는 새끼들한테, 눈곱만큼의 호의도 자비도 보이지 않으리라. 날개처럼 본다면 개새끼처럼 물어뜯을 것이고, 진흙탕에 뒹구는 돼지처럼 취급한다면 내 몸에 묻은 구정물을 다 묻혀 줘버리겠다.
난 차가운 눈으로 타티아나의 이름이 떠오른 창을 쳐다봤다. 아주 좋은 포인트 공급원이 생겼다는 사실에 싸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
「 체력 회복 5배 부스트가 끝났습니다. 」
「남은 포인트는 1676 포인트입니다.」
“헉헉...... ”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난 드넓은 공터에 엎어져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학교 건물 후문 쪽에 이렇게 넓은 잔디밭이 있었을 줄이야.
학교의 클럽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그런지, 공터에는 생각보다 학생들도 많이 나와 있었다. 그 덕에 달릴까 말까? 잠시 고민되었지만, 남 눈치 보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생각에 일단 그냥 뛰고 봤다.
절로 욕이 나올 거 같았다. 아서의 몸이 원체 저질이라 그런지, 체력 회복 부스트를 썼는데도 계획만큼 달릴 수가 없었다. 또다시 다리가 후들거리는 기분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다리를 가리키며 [치유마법]을 걸었다.
솔직히 아서가 온갖 똥폼을 다잡으며, 마법은 다리로 쓰는 법이라 말해줬기에 다리 근력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쥐뿔도 없었다.
아까 체단실에서도 그렇다. 옆에 있는 사람 반의반만 한 무게로 근력운동을 하다 넘어질 뻔 하다 비웃음도 사기도 했다.
다행인 건 운동 재능 덕인지 죽기 전 내 몸으로 운동할 때보다 자세가 잘 잡히는 것 같고, 무슨 동작을 처음 해도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다.
[이야, 아주 징글징글하네.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시간은 다 채웠구나.]
“하아, 진짜 기절할 거 같아. 어서 방으로 돌아가야겠어.”
[들어가도 못 쉴 텐데.]
“뭔 소리야.”
[방 정리해야지.]
“아. 엘레인......”
생각을 하니 인상이 팍 찌푸려 졌다.
매점에서 구입한 짐을 방에 가져다 놓았을 때, 방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더러운 방이었는데, 어제 그녀가 난입해 난리굿판을 벌인 탓에 완전히 돼지우리가 되어 있던 거다.
어제 신세 졌던 임시숙소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치워야 했다. 아니, 어차피 잘되었다.
엘레인이 난장판 피우기 전에도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되었으니 손대려고 했었으니까. 난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걸어갔다.
**
‘[물]’
내 손끝에서 물이 졸졸 흘러나와 꽃을 적셨다. 방 정리를 끝내고 매점에 들려, 새 이불과 함께 구입해 온 꽃들이었다.
살 것 같다.
안 그래도 엘레인 꿈에 들어갔을 때부터 꽃을 들여놓아야 겠다 싶었기도 했고. 또 이불 판매대 옆에 놓인 꽃의 향긋하고 달달한 냄새에 이끌려 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친하게 맘 터놓고 지낼 사람 한 명도 없는 곳이라면, 원예나 애완동물 같은걸 기르는 것도, 내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야, 내 방이 이렇게 넓었나.]
“내가 말했잖아. 허튼짓 아니지?”
못 쓸 물건을 다 버리고 깔끔하게 꾸미겠다 할 때, 아서가 코를 후비며 어차피 쓰레기 같은 방인데, 적당히 치우면 되지 않냐고 밀어붙였었다. 적당히, 적당히 말하던 아서가 ‘이렇게 깨끗하게 변할 수도 있구나’ 라고 감탄했다.
그냥 그나마 쓸 수 있는 침대 하나와 책상, 옷걸이를 빼고 다 버린 뒤, 구입한 이불 하나 새로 깔고, 페인트칠한 뒤, 매점에서 산 마력조명을 설치했을 뿐인데 말이다. 여기의 페인트는 불쾌한 향도 없었다.
드디어 침대 위에 누울 수 있었다.
노곤하다. 하루의 힘든 일과가 떠오르며 눈이 절로 감길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꿀 같은 단잠을 잘 것만 같다.
“아니 이러면 안 되지.”
잠들면 안 된다.
이제 포인트를 수급해 해야 할 시간이니까.
‘마력’ 노가다나 운동을 내 계획대로 하려면, 일일당 1700포인트 이상 필요했다. 거기다가 새로운 마법이나, 다른 재능에도 투자해 빠르게 성장을 할 생각이면, 적어도 그 갑절만큼은 매일 벌어야 했다.
혹시 모를 일이 터질지도 모르니. 포인트 부여를 할 거 위한 1000 포인트를 남겨두는 것도 고려 해야 했다.
게을러 져선 안 된다. 포인트를 수급할 기회는 저녁뿐이니까. 미룰수록 시작할 기회 자체를 잃어버리는 장사인 것이다.
게다가 오늘은 방문할 사람도 있지 않은가. 난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어....어... 으어...]
“넌 또 왜 그래?”
아서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뿐만 아니라 안절부절 못 하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너, 꿈에 안 들어갈 거야?]
“이제 들어갈 참이었는...... 아이씨! 깜짝이야.”
깜짝 놀랄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아서가 눈을 획 돌리고서는 경련을 하기 시작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