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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건드리는 녀석은
“어디 아픈 거야? 아니, 그럴 리 없는데.”
[헉......헉...... 이제 괜찮아졌어.]
“방금 그건 뭐야?”
[모르겠어. 아직 완벽한 앙겔로스가 아니라 이런 건가? 으으...... 허기. 허기가 느껴져.]
짧은 경련이 끝난 후에도 아서의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까지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력이 필요해.]
욕망으로 첨철된 눈빛.
뭔가를 갈망하며, 여유 없는 태도.
“혹시 마력에 중독된 거 아냐?”
매번 마력 공양 때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엄청난 쾌락을 느끼는 것 같더니, 모습만 그런 게 아니라 이 마력 자체가 ‘앙겔로스’에게 중독 효과를 유발하는 성분이 있는 게 아닐까.
게다가 아서는 모페로스에 의해 연성된 하위 영체고, 계약자에게 붙어 [앙겔로스의 마력]이라는 걸로 마력 수급을 채찍질하는 역할로 보였다. 이 마력이 ‘앙겔로스’에게 중독 효과를 유발하는 성분이 있다는 건, 마력을 갈구하며 더 적극적으로 마력 수급을 짜내도록 노력하게 만든다는 거니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어. 난 단지 이 허기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야. 아, 혹시 꿈에 들어가면 뭐 할 거야?]
“당연히 섹......”
섹스지. 라고 대답하려다 멈칫했다.
당연히 꿈에 들어가면 섹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방법 중에 포인트 수급이 가장 많이 되는 데다, 복수까지 가능하고 나조차도 질펀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인가?
꿈에서 벌어지는 일을 현실의 윤리의식으로 비비는 건 무의미하다만. 꿈 안에서 강간하는걸 당연하게 생각하다니. 도덕군자인 척 위선을 떠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생각해볼 만 한 거다.
아서가 마력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모페로스의 마력을 사용한 영향으로 내게도 이런 변화가 생긴 게 아닐까.
[혹시 망설여져? 내가 또 도와줄까?]
아서가 내게 손을 대려고 했다. 순간, 그 모습에 화가 나 말했다.
“아냐, 내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 알아뒀으면 좋겠는데, 앙겔로스의 마력 같은 건 다시 받지 않을 거야. 난 이성을 잃고 싶지 않아. 내가 망설인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고, 죄책감을 느낀다면 잘못한 게 있는 거니, 스스로 감수하겠어.”
[이런, 꺼림칙할 수도 있었을 텐데 밀어붙여서 미안해.]
아서는 진심으로 미안해 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내 마음도 조금 풀어졌다.
“미안은 무슨. 괜찮아. 난 이만 들어간다.”
[잠만.]
“왜?”
[한 가지 더 말할게 있어. 아서, 꿈의 개입은 네가 연출하기 좋은 무대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이제껏 꿔왔던 꿈들을 한번 생각해봐. 갑자기 장소가 바뀔 때도 있고, 사람과 대화를 하기도 하며, 모든 감각이 생생하잖아. 꿈의 개입으로 들어갈 때 그 모든 걸 네가 통제할 수 있어. 게다가 모두 일일이 조종할 필요가 없어. 네가 만약 어떤 사람을 나오게 했을 때, 네가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는다면 꿈을 꾼 사람의 기억하는 모습으로 저절로 행동할 거야.]
“헛? 감각마저도?”
[모두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꿈을 모두다 통제할 수 있으니, 좀 더 허무맹랑하고 뻔뻔하게 행동하라는 거야.]
“아.”
주변의 사물뿐만 아니라. 장소, 꿈에 나오는 사람, 그리고 감각마저 조종할 수 있다니......
“흐흐.”
꽤 재밌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꿈에 나왔다고 타인에게 말조차 못 꺼낼 정도로 수치스러운 꼴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조언 고마워.”
그럼.
「 스킬을 발동합니다.
대상자를 선택하십시오.
- 엘레인 아이네스. (O)
- 안나 페테르니. (O)
- 타티아나 로이 (O)
」
오늘은 아까 말한 대로
타티아나 바로 너다.
그녀의 이름을 선택하자 시야가 반전되었다.
****
학교 강당에 수많은 학생들이 도열해 있다. 그들 앞 단상에는 비올렛 교장과 안톤 교감을 비롯한 학교의 중요 직위를 가진 인사들이 다 올라와 서 있었다. 그들은 연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누군가를 위해 손뼉을 쳤다.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축하를 받는 주인공이 있다.
그건 바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서 있는 타티아나로이.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녀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주위 사람들에게 연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고맙긴요. 타티아나 조교의 노력이 이제 결실을 보는 것 뿐인데요. 아니, 타티아나 교수님이라고 불러야겠지요? 호호”
비올렛 교장으로부터 시작된 웃음은 단상 위에 있는 인사들에게도 번지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들 타티아나에게 덕담 한마디씩 돌아가며, 축하의 악수를 하고 있었다.
난 혼란스러웠다.
이게 꾸고 있는 꿈 안으로 들어온 거구나.
그보다.
참 기가 막힌 꿈이었다. 교수 부임 따위에 콧대 높은 학생들 전부가 늘어서고 있다니. 내가 아무리 이 세계를 잘 모른다 해도 이게 허무맹랑한 꿈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타티아나 교수야 능력이 있으니, 앞으로도 잘하겠죠. 앞으로 기대가 커요.”
게다가 단상 위에 덕담은 끝날 줄 몰랐다. 타티아나의 얼굴에 가볍게 금칠하며 시작했던 칭찬은, 어느새 금물을 쏟아붓는 것마냥 과도한 아부와 근거 없는 칭찬들로 변질하기 시작했다.
남의 망상을 읽는 다는 게 이렇게 낯부끄러운 일이었던가.
난 단상 위에 군상들을 지켜보다, 불현듯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훈훈한 꿈을 단숨에 깨부숴버릴 수 있는 그런 생각 말이다.
“흐흐.”
입에서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난 인파를 파고 들어가 단상 가까이 다가갔다.
“다 교수님 덕이죠.”
“하하. 타티아나는 참 겸손하단 말이지. 나중에 내 연구실로 와. 이런 날을 위해 아끼던 술이 있으니까.”
“에이, 그보다 제가 첫 월급 받으면, 블랙펄 주 하나 사서 들고 갈게요. 그게 더 좋겠죠?”
“그거 비쌀 텐데? 하긴, 이제 타티아나도 이제 교수니 그 정도는 먹으며 살아야지. 가져올 날을 기대할게. 하핫 헉-!”
대화를 주고받던 노교수가 놀라 입을 떡 벌리고 그대로 굳었다. 타티아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얼굴에 의아함이 번졌다.
“교수님 왜 그러세요?”
“에구머니나.”
“타티아나. 이게 무슨......”
“네? 예?”
주위에 있는 교수들이 입을 떡 벌린 채 타티아나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크게 일어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는 타티아나는 주위 교수들의 놀란 표정을 돌아보며 살폈다.
교수들의 놀란 표정이 이내 낯부끄러운 것을 본다는 얼굴로 서서히 바뀌었다. 타티아나는 그제야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경악에 사로잡혔다.
속옷 바람이다.
옷은 어디로 갔는지, 속옷만 입고 헐벗은 채 단상에 서 있었다.
타티아나의 탄력 있는 구릿빛 몸매가 여기에 있는 모두에게 드러났다. 운동할 때 입는 용도의 검은색 스포츠 속옷이 그녀의 몸 윤곽을 더욱 야릇하게 만들었다.
“꺄아아악!”
타티아나는 양손으로 몸을 가리며 주저앉았다. 그러면서도 사태 파악이 안 되었는지 연실 자신의 몸을 보았다, 주위 사람을 보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왜 옷을 벗은 거죠? 아이고, 망측해라.”
“타티아나 조교가 이런 취향이 있었을 줄이야......”
“아니에요. 뭔가, 잘못 된 게 분명해요. 교수님 옷 좀.”
숙인 타티아나의 목소리가 서서히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설 생각 안 하고 그녀를 망측한 듯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타티아나는 못 참겠다는 듯 일어나려 했다.
이때다.
난 타티아나의 뒤쪽으로 순간 이동 했다. 그리고 로브를 벗어 그녀의 몸을 덮어줬다. 그러자 타티아나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바라보기 위해 어벙한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날 보자 그녀의 겁에 질린 얼굴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아루!”
“흐흐.”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기쁨에 찬 고성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렇다. 단상 위에 올라가기 전 ‘알’로 변신을 한 것이다. 난 그런 타티아나의 말에 음흉한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내게 이런 일이 생겼는데 왜 웃어! 어디 있던 거야, 무서웠단 말이야.”
타티아나는 살짝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투정부리더니, 이내 애교를 부리며 내 몸에 안겨 왔다. 그녀의 날씬하고도 근육으로 가득 찬 탄력 있는 몸이 내 몸에 닿는 순간, 내 존재가 그녀에게 인식되며 내 몸이 다시 아서의 뚱뚱한 몸으로 변했다.
애교라니. 비록 진짜 여자친구는 아니지만, 날 남자친구로 착각하며 하는 애교에 흥분이 잔뜩 되었다. 난 그녀를 으스러트릴 것 마냥 힘껏 안았다. 그녀는 안 아픈지, 오히려 날 꽉 안으며 응수했다.
“어? 어라?”
안겨있는 타티아나가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손을 움직여 내 등을 더듬었다. 그러다 옆구리의 풍만한 살을 크게 움켜쥐고서는 말을 이었다.
“아루? 헉!”
타티아나가 고개를 올려 날 바라보고 깜짝 놀라 굳었다. 난 어느 때보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타티아나 왜 그래?”
“너, 넌......! 아서?!”
“아서라니? 어디? 아무대도 없는데? 타티아나 괜찮아?”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놔! 이거 놓지 못해? ”
타티아나가 손으로 날 밀어내려 했지만, 꿈에서 근력을 강화시킨 날 그녀가 힘으로 이길 수 없었다. 난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꼭 감싸 안았다.
“왜 그래 갑자기? 어디 아픈 거 아냐?”
“으..... 떨어져! 떨어지라니까!”
“이제까지 사귀는 동안, 이랬던 적 없었잖아.”
“뭐?”
타티아나가 내 말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다정해라.”
“교원 커플을 별로 좋게 보지 않는데, 저 커플은 언제 봐도 훈훈하다니까요.”
옆에서 쐐기를 박아준다. 그 말에 그녀가 한 대 맞은 표정으로 변했다. 정신 나간 것처럼 멍하니 굳어있던 타티아나가 갑자기 기겁하더니 고개를 도리질 치며 소리쳤다.
“뭐야, 뭐야 이거!”
타티아나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보니 다음 작전으로 넘어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손에 힘을 빼자, 타티아나가 날 격하게 뿌리치고는 단상 아래로 도망가듯 뛰었다.
이제 두 번째 장이다
타티아나가 발을 딛는 순간, 땅을 움푹 파이게 하였다. 그녀가 오늘 식당에서 넘어졌던 것처럼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다.
“어? 어어!? 으악!”
그러자 타티아나의 발이 디딜 곳을 잃고 넘어지기 시작했다. 난 다시 그녀가 넘어지는 곳 앞으로 순간 이동해, 온몸으로 받아 감싸 안았다.
그와 동시에 단상 위에서, 교원 식당으로 장소를 바꿨다.
쨍강.
접시가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낸다. 내 품에 안겨진 타티아나는 주위를 돌아보며 의아해하다, 내 가슴팍을 치며 소리쳤다.
“놔! 놓으라고!”
“도와줬으면, 먼저 고맙다고 말해야지.”
“으으으으! 어서 놓. 으. 라. 니. 까!”
“흐흐.”
타티아나가 소리를 지르며 내 얼굴을 마구 때렸다. 몸을 강화한 덕분에 아프지가 않아 그녀가 하는 행동이 귀여워 보여 웃음이 나왔다.
갱생 여지가 없는 여자구먼, 덕분에 즐거워지겠어.
“꺄~ 아예 방을 잡아라!”
“휘이이이-휙~! 저 녀석들은 시도 때도 없구먼.”
“키스해! 키스해!”
거센 환호 소리가 식당 안을 가득 메웠다. 박수나 휘파람과 같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키스하라고 소리쳤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은 물론, 타티아나와 함께 있던 더벅머리와 까치 머리도 손뼉을 치고 있었다.
“너희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야! 이 돼지 새끼 좀 떼어내 봐!”
“키스해라 타티아나!”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어서 키스해! 키스해!”
더벅머리와 까치 머리마저 도와주지 않고 키스하라고 소리치는 걸 본 타티아나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연실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누군가를 발견했는지 얼굴에 혈색을 띄우고 소리를 질렀다!
“아...아루! 여기야, 여기! 아루! 나 좀 도와달라고!”
타티아나는 둘러싸고 있는 군중들 옆 테이블에 쭈구리처럼 혼자 앉아있는 알을 보고 소리쳤던 거다. 난 그녀의 말에 비릿하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타티아나 무슨 소리야. 아루는 나잖아.”
“이 돼지 새끼가 뭔 개소리야! 아루는 저기 있단 말이야!”
“알이 저기 있다고? 어라, 저거 아서잖아?”
“뭐......? 헛소리 하지마!”
“진짜라니까? 야 까치 머리! 저기 있는 아서 좀 발로 차고와라!”
그 말에 까치 머리가 “야호!”라고 소리 지르며 달려가 알의 옆구리에 드롭킥을 꽂았다.
“끄억!”
“아루!!!!”
타티아나가 울부짖는 것마냥 소리를 질렀다. 난 그런 그녀를 꼬옥 안으며 말했다.
“타티아나! 이렇게 나와 아서를 착각하는 거 보니, 저 남학생이나 강간하는 새끼가 네게 무슨 짓을 한 게 분명해!”
“뭐......? 너 진짜 아루야?”
“내가 아루야! 자! 저기 봐봐!”
타티아나가 내가 가리키는 손을 따라 알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아서...... 부랄 좋다....... 아서...... 남자 강간한다......”
바닥에 넘어진 알이 탁한 동공으로 허공을 쳐다보며 나사 풀린 것 마냥 말을 반복했다.
“그....그런..... 말도 안 돼!”
“그래, 저 음탕하고 저질스러운 새끼가 네게 말도 안 된 일을 한 거야! 이걸 해결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그게 뭔데?”
난 대답 없이 입술을 쭈욱 내밀고는 타티아나의 얼굴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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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코 감사합니다.
네레스 // 혐오의 대상이라는 기믹이 비슷하긴 하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