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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이기
[오, 맙소사. 이거 ‘실버 그리폰’이잖아? 이 귀한 게 우리 학교에 있었나?]
“비싸 보이긴 하네.”
[비싸 보이는 정도가 아니야. 다른 그리폰하고 비행 속도나, 다리 힘이 비교를 불허하니까. 와, 빛나는 것 좀 봐. 저 털의 가치도 어마어마하다고.]
“그보다, 네가 왔을 땐 없었어? 왜 처음 보는 것 처럼 말해?”
[처음 보는 거야. 그리폰 클럽 처음 왔을 때가 조교에서 관리인으로 보직변경 되었을 때였는데, 그땐 실버 그리폰이 없었어. 아, 맞아. 왜 없었는지 생각났다. 그 사건이 내년이었나?]
“무슨?”
[실버 그리폰이 도둑질당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어. 그 당시에는 그리폰에 관심이 없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파비앙 교수가 아주 눈이 돌아가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알 수밖에 없었지.]
파비앙 교수라니.
그건 또 누구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서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내 얼굴을 보곤 눈썹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골든 그리폰 클립장이자, 마법 동물학 교수인 파비앙이라는 작자가 있어. 학교에서 그 작자보고 연구하라고 [조련 인장]을 안 새겨놓은 이 실버 그리폰을 준거거든.]
클럽장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았나.
이름이 언급될 때 표정도 그렇고, 작자라는 억양도 마냥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다른 그리폰들의 털들과 달리, 실버 그리폰들의 털은 마법 저항이 있어서 화염 마법 빼고 잘 안 통해. 그래서 [조련 인장]을 새길 때 참 사람들이 많이 애먹지. 많은 인력이 달라붙을 필요가 있는데, 파비앙 교수가 이 그리폰을 많은 인력 없이 얌전하게 시킬 마법을 연구했어. 그러다 문제가 발생한 거지. 그리폰이 갑자기 사라졌거든. 흠...... 다음 여름이던가?]
반년 정도 뒤인가.
사라진 다라.
문득, 그리폰 우리 주변에 결계가 해제되어 변 냄새가 풍겼던 게 떠올랐다.
이거......
“아까 우리에 들어올 때 변 냄새 났던거말야. 누가 그리폰을 훔쳐가는 거랑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아? 아서, 네가 봤을 때는 어때? ”
아서가 턱을 긁적였다.
[냄새를 통제하는 결계 해제야, 평소에도 실수하고 다니는 클럽원들이 많긴 했었거든. 그런데, 이 실버 그리폰이 사라진다는 걸 아는 이상,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네. 그리폰의 변을 누군가 빼돌린 뒤, 들키지 않기 위해 결계를 해제하는 걸지도 몰라. 그리폰 변을 이용해 용액을 만들면, [룬] 같은 곳에 남을 수 있는 잔재 마력을 없앨 수도 있거든.]
“아서, 마력 잔재 같은 게 있어? 함부로 마법을 쓰고 다니는걸 주의해야 하나.”
[마법을 쓴다고 다 남는 건 아니고. 이렇게 [룬]을 사용할 때처럼, 마력을 영창으로 변환해서 쓰는 게 아니라, 마력 자체를 부여 하는 거면, 며칠 정도는 누가 사용했는지 알 수 있어.]
그렇구나.
변을 빼돌리더라도 동물 변 냄새를 풍기며 학교 안까지 들고 왔을 리 없고, 냄새가 풍기는 우리 주변에 어딘가에 모아놓고 있는 건가.
변 용도까지 확실한데다, 사건이 발생하기 몇 개월 전부터 반복되는 일이라.
“오랫동안 계획된 범죄네...... 그럼 실버 그리폰을 길들였다가 괜한 일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건가.”
내 말에 아서가 놀라서 고개를 획 돌렸다.
[뭐? 길들이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길들일 수 있는 동물이라고 창이 하나 떴거든.”
[설마, 고유능력으로 길들이는 게 가능하단 말야? 어떻게? 혹시, 접근하지 않고서도 가능한 거야?]
“잠시만.”
「주위에 포인트를 이용하여, 길들일 수 있는 생명체가 있습니다. - [실버 그리폰]
(길들이기 위해서는 해당 동물과 접촉을 해야 합니다.)
- 길들일 경우 플레이어 소유의 동물이 됩니다.
-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소유 동물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 300 포인트를 사용하여, 소유 동물의 시야를 공유합니다.
(+) (친밀도 레벨이 높아지면, 추가 기능 열람 가능.)
해당 동물을 길들이려면 400 (4000)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 첫 번째 동물 길들이기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원래 포인트의 10%로 적용.
」
“접촉해야 하는 거구만.”
[헛, 그런데 그 아래 항목들을 봐봐!]
실망해서 창을 끄려는데, 아서가 갑자기 흥분해서 소리를 쳤다.
“이게 왜? 시야 공유는 있어 봤자 별로 일것 같은 데다. 소유동물 위치 아는 거는 [조련 인장]인가로도 가능한 거 아냐?”
[조련 인장은 세 가지를 위해 하는 거야. 보금자리를 정해주고, 성격을 온화하게 하며, 탑승자가 [조련 인장]에 마력을 부어넣어 비행할 때 원하는 곳으로 가도록 조종하게 해줘. 위치를 알 수 있다, 뭐 이런 건 상식 밖에 일이지.]
아, 그렇다면.
도둑이 위치 추적을 무마시키고 훔쳐간 게 아닐 것이고,
나중에 실버 그리폰이 훔쳐졌을때, 위치를 알 수 있는 내가 큰 활약을 할 수 있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길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그런데.
저걸?
꺄아아악-!
내가 바라보자 실버 그리폰이 날개를 활짝 펴 몸집을 불리고는 격렬하게 울부짖었다. 아주 위협적이다. 저 울부짖음은 뭐길래 계속 심장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지.
하지만, 멋졌다. 계속 보고 싶을 정도로. 반들반들 빛을 발하는 실버 그리폰의 털이 내 눈에 와서 박혔다.
[눈빛을 보니까, 길들이고 싶나 보네?]
“어차피 접근할 방법도 없잖아.”
[방법이 있다면?]
“뭐?”
돌아보니 아서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폰 우리 관리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건데, 얌전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어. 그리폰하고 히포그리프한테는 통하더라고.]
“전문 연구원인 교수도 모르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대부분 연구가 군사적인 목적이나, 어떤 마법이 통하는가가 주이니 그렇지. 내 방법은...... 원초적이라고 해야하나?]
잠시, 의심이 생겨 아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내놓으라 하는 연구원들이 멸종위기 동물 번식을 번번이 실패했는데, 밀수꾼이 성공해서 이슈가 된 적이 있었지. 없는 경우는 아니겠구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저기 있는 의자 있지?]
“이거?”
평범한 의자처럼 보이는데.
[어 그거. 그걸, 뒤로 돌려서 다리 4개인 곳 사이로 빠르게 들이밀어서, 그리폰 대가리 앞에 놓고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면 돼.]
아니, 그렇게 간단한 건가.
그보다. 이거, 우연이가 아니라 괴롭히다가 알게 된 거 아냐?
생각해보니 예전에 티비에서 동물들의 감각이 아주 뛰어나게 발달한 만큼, 의외의 곳에서 약점으로 이용된다고 했지.
그걸 이용해서 아주 간단한 원리로 조련하고, 얌전하 게 만드는걸 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리폰의 시각에서 이 다리 4개가 들이 밀어졌을 때, 그리폰의 뇌에 뭔가 작용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위험한 거 아냐?”
[걱정마, 그리폰 특성상 즉사하게 하지는 않아. 우리에게는 애니가 있잖아. 뭔 일 있으면 치료 마법을 걸어 주겠지.]
“......”
안심하라고 하는 말인 건가.
[파비앙이 못 하던 걸 네가 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참 궁금한데? 흐흐. 어서 들어가서 해봐.]
“애니가 나와서 보면 어떡하라고?”
[상관없어, 만약 우리 안에 들어가 있는걸 보면 호들갑 떨기야 하겠지만, 그녀 특성상 얌전해진 실버 그리폰을 보면 좋아할 거야. 내가 장담하지.]
“아.”
오늘 본 모습을 생각하면, 그럴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장담이라니. 친하지 않았다고 했으면서 왜 잘 아는 것마냥 이야기하는 걸까. 뭐...... 안 짚어지는 건 아니지만.
갸르르릉-!
실버 그리폰이 거칠게 우리바닥을 긁어대었다. 발톱의 날을 보니 소름이 돋는다. 내가 할 수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육체 능력 5배 부스트를 사용 하겠습니까? (300 포인트 사용. 3분 적용.)」
( Y / N )
정 걱정되면, 이거라도 써볼까.
포인트도 3760 남았고, 오늘부터는 2명의 꿈에 들어가 수급할 예정이니 써도 아까 울 일은 없을 거다.
괜찮다는 생각에, 난 Y를 클릭하였다.
「육체 능력 5배 부스트를 적용되었습니다. ( 적용 중 0:02;59 )」
「남은 포인트는 3460 포인트입니다.」
근육에 탄력이 감돌며, 미세하게 꿈틀대었다. 좋아, 할 수 있다. 난 의자를 들고 아서를 바라봤다.
[문 옆에 있는 [룬]을 이용해서 우리를 열어.]
「 룬에 마력을 부여하여 문을 여시겠습니까?
( Y / N ) 」
Y를 누르자 ‘딸깍-’ 거리는 소리와 함께 우리가 열렸다. 긴장하지말자. 일단, 심호흡하고 한걸음 내디뎠다.
치익! 까아악-!
그러자, 실버 그리폰이 위협하듯 갈기를 곤두세우고 크게 울부짖었다.
[의자 놓지 않게 조심하고!]
그 말에 의자를 쥔 손에 힘을 꽉 줬다. 바로 공격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실버 그리폰은 경계를 하며 뒤로 물러났다.
뒤로 물러나면서도 주눅 든 모습이 아니라, 더욱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연실 바닥을 긁어대는 발톱과 심장을 쥐어 짜는듯한 울음소리에 긴장이 되어 의자를 잡은 손이 미끌미끌거리는게 느껴졌다.
한 발.
두 발.
내디딜 때마다 발끝이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날 노려보는 실버그리폰의 눈빛에서 날이 서려 있었으니까. 그 안광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계속 접근했다. 그러자, 짧고 반복적으로 꺄악! 꺄악! 꺄악! 울어대더니.
거대한 위압감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걸 감지했다.
그 찰나.
휘익-.
그리폰의 앞발이 나에게로 쏟아졌다. 재빨리 옆으로 구르듯 피해, 다시 의자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실버 그리폰이 기겁하며 다시 뒤로 밀려났다. 이 다리의 형태를 무서워하는지, 어느새 뒤로 점점 밀려나 우리 구석에 몰렸다.
벽 쪽에 붙어 이리저리 방황하기 시작했다. 지금인가? 지금 의자를 밀어붙이면 되는 건가?
[지금이야!]
난 재빠르게 실버 그리폰 대가리에 들이밀고는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자, 갈기가 곤두스더니, 거짓말처럼 순해져서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눈을 보니 초점 마저 풀렸다. 됐다. 통하는구나.
“하하.”
긴장이 풀려 웃음이 나왔다. 옆에서 그런 날 지켜보던 아서가 코끝을 긁으며 미소를 지었다.
“조교님, 클럽장님께 말씀드려야 할 거 같아요. 아무리 찾아봐도 문제가..... 꺅! 뭐, 뭐 하는 거예요!”
“아니, 그게......”
실버 그리폰 대가리 앞에다가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는 날 보고 애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필, 과정을 다 본 것도 아니고, 그리폰 얼굴 앞에다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는 걸 보다니. 난 의자를 바로 내려놓았다.
“어서 나와요 조교님! 실버 그리폰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서 위험...... 할 텐데?”
애니가 내 옆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실버 그리폰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보란 듯이 갈기 좀 쓰다듬어 줘.]
손을 뻗어 실버 그리폰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생각보다 거칠고 굵었다. 윤기 나는 털이 내 손결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 말도 안 돼.”
애니는 내 손길에도 가만히 있는 그리폰을 보고 경악하더니, 이내 신들린 것마냥 넋 빠진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들어왔다.
팟-.
「 [실버 그리폰] (레어 동물)을 길들이겠습니까.
해당 동물을 길들이려면 400 (4000)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 첫 번째 동물 길들이기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원래 포인트의 10%로 적용.
」
( Y / N )
난 애니가 다가오기 전 재빨리 Y를 클릭했다.
「[실버 그리폰] (레어 동물)을 길들였습니다.」
「남은 포인트는 3060 포인트입니다.」
그러자, 실버 그리폰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더니, 내 손에 대가리를 비볐다. 털은 거칠었지만, 느낌은 좋았다.
“히익! 어....... 어떻게 그런! 실버 그리폰이 얌전히 사람 손에 머리를 비비다니!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잠시, 잠시만요! 거기 그러고 있어 봐요.”
한참 소리지르며, 경악하던 애니가 후다닥 우리밖으로 뛰쳐나가더니, 인두처럼 생긴 지팡이를 가져왔다.
불로 달궈 문양이라도 지지는 건가 싶었는데, 애니는 그냥 들 고온 그대로 실버 그리폰의 목덜미에 확 찍었다. 아름다운 은빛 털 사이 피부에 검정빛이 일렁이더니, 이상한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팟-.
“뭐지? 이럴 리 없는데.”
새겨지던 문양이 흰색 불꽃을 내며 사라졌다. 애니는 당황하며 다시 한 번 내리찍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어라?”
몇 번이고 내려찍어도 [조련 인장]이 찍히는 일은 없었다.
실버 그리폰은 완벽하게 내 소유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