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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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이기

                                                      

 클럽이 관리하는 우리 밖.

 나와 애니는 실버 그리폰과, 그녀가 특별히 아낀다는 그리폰 한마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한 거에요!”

 “글쎄. 그냥 얘가 나 좋아하는지 가만히 있던데?”

 애니는 실버그리폰 대가리 앞에다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는 걸 보았지만, 그것으로 얌전해졌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뭐, 나로선 좋은 일이지. 이게 가치 있는 기술이라면, 비싸게 팔아넘겨야 했다. 겨우 환심을 사겠다고 알려주기에는 아까우니까.

 애니는 아까부터 계속 어떤 마법을 썼는지, 무슨 아티팩트를 낀 건 아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심지어 향수까지 쓰지 않았나, 내 목에다 코를 대고 들이마시기도 했다.

 그 덕에.

「시스템에 [애니 앨리슨]가 등록되었습니다.」

 이름까지 등록되었다. 

 이 아가씨, 심리적 거리 같은걸 고려 안 하고, 울타리를 확확 넘어왔다. 천연인 건가. 이런 것에 면역이 없는 남자들은 금새 마음을 주기도 하는데.

 불현듯 아서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 아저씨도 그래서 애니에게 마음이 있었겠지. 솔직히 이제까지 행동을 보면, 연정이 있다는걸 모를 수가 없었다.

 처음에 애니 봤을 때 피어오르던 이상한 감정도 그렇고, 자기는 모른척 했지만 식당 길 안내한답시고 애니 괴롭힘 당하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도 그렇다. 애니가 있던 그리폰 클럽마저 나중에 가보라고 하려 했다는 것도, 결국에는 한 가지를 가리키지 않는가.

 그럴 텐데, 지금 애니를 바라보는 아서의 표정이 아주 미묘했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냥 무덤덤한.

 “엄청나요! 으으, 실버 그리폰 뒤에 올라타는 날이 올 줄이야.”

 꽤나 거친 털 위인데도, 애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누워선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로브로 몸을 돌돌 말고있어도 쓸릴 것 같은데. 저게 덕심이란건가?

 “파비앙 교수님이 이걸 보면 아주 좋아할걸요? 아서 조교님이 어떻게 하셨을지 엄청 궁금해 할거에요.”

 [아니, 분개할 텐데? 흐흐.]

 “좋아할까?”

 내가 생각해도 분개할 거라 생각하는데 말이지.

 “당연하죠. 분명, 아서 조교님 잡고 놓아주지 않을 거에요.”

 애니가 확신한다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놓아 주지야 않겠지. 애니의 말과 다른 의미로 말이다. 아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말을 이었다.

 [애니는 꽃밭에 사는 애야. 교수들은 자신의 능력과 지식에 대한 프라이드가 어마어마해. 내가 아는 파비앙 교수는 듣자마자, 겉으로는 내색 안 해도 아주 이를 갈걸? ‘엘리트인 자신이 못 하는걸, 열등과 무능의 아이콘인 아서가 하다니 믿을 수 없어!’ 이렇게 말이야.]

 본인 입에서 열등과 무능의 아이콘이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알긴 알았구나.

 “그런데, [조련 인장]이 없는데도 마력으로 조종할 수 있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죠?  이런건 처음 봐요.”

 “실버 그리폰은 원래 그런거 아냐?”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이것도 클럽장님께 말씀드려야 겠네요! 저 잠시, 이곳만 한 바퀴 돌고 와볼게요.”

 그 말과 함께 실버 그리폰을 타고, 클럽 우리 옆쪽으로 사라졌다.

 [조련 인장]이 없어도 마력을 부여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내가 타인들도 실버 그리폰을 조종할 수 있도록 설정을 바꿔둔 탓이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론 내 소유가 되어 탑승하지 못하게 된 실버 그리폰을, 학교에서 어떻게 처우할지 모르기 때문이고.

 두 번째론 도둑이 이 실버 그리폰을 훔쳐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 고유능력으로 소유가 묶여있었으니, 최대한 내 입지를 다지는 데 쓰면 좋으니까.

 깍-.

 내 옆에 있는 그리폰이 날개를 활짝 펴고 기지개를 켰다. 애니가 데리고 나온 그리폰이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쁘다. 이 그리폰 관리가 참 잘되어있다. 우리 안에 있는 일반 그리폰중에서 털이 가장 관리가 잘 되고, 형태도 날렵했다.

 눈을 감고 우는 모습이 귀여워서 쓰다듬으려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팟-.

「 [그리폰] (일반 동물)을 길들이겠습니까.

해당 동물을 길들일 경우 3000 (1000 + 2000)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 [조련 인장]이 있어, 플레이어의 소유로 만드려면, 기본 포인트 보다 2000 포인트가 더 필요합니다.

 」

 ( Y / N )

 “맙소사.”

 [이런 것도 가능하단 말이야?]

 “놀랄 노자군.” 

 남의 동물까지 힘이 작용한다는 건가. 하긴, 애초에 인장이 새겨지는 것 자체를 무마시키는 힘이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이거라면 태초마을 그분도 부럽지 않을 동물 수집가가 될수있겟군.

 후다닥-.

 거친 그리폰의 날개 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클럽 전용 우리를 한바뀌 돌고 온 애니가 보였다.

 “그 그리폰 어때 보여요?”

 기대가 담긴 눈빛을 빛내며, 내게 물어왔다.

 “이 그리폰이 애니가 담당하는 거야?”

 “네.”

 “솔직히 말해줘? 우리 안에 있는 다른 그리폰들보다 가장 멋있어. 날렵해 보이고, 털도 잘 관리되어있고.”

 “히힛. 그렇죠? 제가 이래봬도 꽤나 실력 있는 사육사거든요. 또 그리폰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뽐내는 표정으로 웃음 짓더니, 실버 그리폰의 등에서 내려와 자신의 그리폰에 작은 손을 내밀었다.

 크릉-.

 그리폰이 얕게 울더니, 눈을 감고서는 애니의 손에 자신의 뺨을 연실 비벼댔다.

 “이름은 없어?”

 “이름요? 으으~. 들으시면 웃으실 텐데......”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말 꼬리를 흐렸다.

 “뭐길래?”

 “으으으으. 그게~~. 꺅! 그 이름이!”

 혼자 호들갑을 떨며, 양손으로 커튼을 치듯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운데로 모아 얼굴을 가렸다. 뭐지, 이 풋풋한 냄새는. 대학 새내기들이 떠올랐다. 소녀 냄새가 나는구나. 

 고개를 숙여 부끄러워하던 애니가 기어가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레온요..... 꺄아아악!”

 자기가 말하고서도 어찌할 줄 모르며 주저앉아 소리를 꽥꽥 질렀다.

 “레온이라니?”

 애니는 혼자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고개를 도리도리 치더니, 이내 내 어깨를 탁 치고는 상기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다 들었으면서. 어떻게 또 말하게 해요!”

 “레온 교수의 레온?”

 확인 사살을 가해본다.

 “꺄악! 어쩜 좋아. 부끄러워!”

 맞구나. 아, 첫날 엘레인 입에서 레온 교수 이름 나왔던 게 그런 연유였나.

 애니는 말하고선 머리카락을 돌돌 마는 손을 가만히 있지 못했다. 한참 그러다, 내게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절대! 교수님한테는 말씀하시면 안 돼요!”

 “안 말해. 입 무거우니 그건 걱정하지 마.”

 “말로는 안돼요!”

 그러고는 입을 잠그는 손짓을 했다.

 “응?”

 “읍읍! 으으읍!”

 “뭐라고?”

 “따라 하시라고요!”

 “아하!”

 나도 따라 입을 잠갔다. 그제야 애니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한다.

 “좋아요. 절대 말하지 않기.”

 그렇게 말하며 또다시 자기 입도 잠근다. 거참 풋내가 풀풀 나는구만. 귀엽다. 

 한참 흥분하던 애니가 심호흡하며 진정하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조교님이 엘레인과 무슨 일이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아아.”

 “그날 절 위해 나섰다가 단단히 찍히신 거 아니에요? 그 이후에 괴롭힘이라도 당하신 게 아닐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근신도 당하신 거 같고.”

 미안함과 걱정이 뒤섞인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근신이라니. 역시 소문이 그렇게 도나.

 “근신은 아니고 휴가야, 휴가. 돈도 나와. 그리고 괜찮아, 일이 몇 가지 있었긴 했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어. 오히려 지금 엘레인이 급할껄?”

 “급해요?”

 애니가 작은 얼굴을 갸우뚱거렸다.

 “그런 게 있어.”

 “이해는 안 되지만, 괜찮다고 하면 다행이네요. 아, 참. 조교님은 클럽 가입할 생각 없으세요?”

 “가입?”

 가입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는데. 하지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유일하게 호의를 보이는 이유가 확실한 사람이 옆에 있지 않은가.

 “클럽이라.”

 “가입해요. 재밌을 거에요. 안 그래도 이제 우리 클럽에서 벌이는 축제가 한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때도 참여하실 수 있고요.”

 “축제?”

 “이름만 거창하지, 별거는 아닌데요. 동물에 각자 꾸민 옷을 입히고 공터로 나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퍼포먼스 한 뒤, 인도자 인도하에 학교 밖으로 날아가는 거예요.”

 할로윈 같이 말인가.

 “이번에 제가 준비한 건 바나나 옷이에요. 귀엽겠죠?”

 바나나 그리폰이라.

 앙증맞군.

 “게다가 들면, 담당하는 동물 말고도 다른 종류도 탈수 있고요. 저도 며칠 전에는 페가수스도 탔다고요.”

 끌리는 것 반. 

 귀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반.

 “한번 생각해 볼게.”

 “그래요. 아! 어차피 이번에 그리폰 타보는 거, 그냥 탐방으로 며칠간 임시 클럽원으로 활동하면서 하시는 건 어때요? 제가 클럽장님한테는 말해둘게요.”

 그건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누군가 내게 뭘 하자고 끈덕지게 제의하는 건 오랜만이었니 성의를 봐서라도 그래 줘 볼까.

 “그건 괜찮을 거 같아.”

 “좋아요! 전 대부분 점심시간 직후에 오니 그때 봬요.”

 애니가 쌍 엄지를 흔들며 좋아라 한다. 이 아가씨 정말 푼수구만.

 “조교님은 제 비밀을 알고 계시니, 그 참에 레온 교수님에 대해 이것저것 여쭤봐야겠어요.”

 “응? 그거 비밀이었어?”

 본인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고서?

 “어허! 입 잠그셨잖아요.”

 나에게 경고하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애니가 다시 자신의 입을 잠갔다. 귀엽구만. 나도 응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잠갔다. 그러자 애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뭔가 웃겨 웃음이 터져 나와 마주 보며 웃었다. 오랜만에 마음 붙일 곳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따뜻했다.

****

 난 실버 그리폰을 우리에 돌려놓고, 일정에 따라 운동을 한 뒤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와서 침대에 누울 때면, 부스트가 참 신기한 힘이라는 걸 새삼 느껴졌다. 그렇게 과격하게 운동했는데도 부스트 시간이 끝날때쯤이면, 근육통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난 누워서 잠시 쉬다가, 침대 바로 옆에 있는 꽃에 코를 박고, 깊게 들이마쉬었다.

 쓰읍-.

 하아. 살 것 같다. 이게 나의 마약이야.

 [아주 고풍적이셔.]

 눈꼴시리 다는 듯 비죽이며 아서가 말했다.

 “향기가 끝내줘. 너도 마실 수 있으면 마셔보라고. 아, 그러고 보니 묻고 싶었던 것 있는데.”

 [내게? 뭔데.]

 “애니한테 마음 있었지?”

 [있었었지. 그런데?]

 당황할 줄 알았는데, 아서가 무척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이러니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운데.

 “지금은 어떤데?”

 [너라면 어떻겠어. 젊었을 때 짝사랑만 하던 상대가 떠나고 약 20년이 지났다면. 그리고 사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면 쉽게 좋아하게 된다고 알게 되었다면 말야.]

 “어......”

 질문을 꺼내기 전에는, 내가 이걸 물어보면 아서가 답을 못하고 쑥스러워 하며, 쩔쩔맬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와버리니 오히려 내가 쩔쩔매는 꼴이 되었다. 난 대답 못 하고 멍청한 표정으로 아서 얼굴만 계속 바라보았다.

 [푸핫.]

 “어?”

 [표정 보니 빵 터졌네. 하여튼, 애니에 대한 미련은 없어. 흠. 뭐라고 해야 하나. 오히려, 그때의 나에 대한 미련은 있을 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건가.

 난 또다시 꽃에 코를 가져다 대고 들이마셨다. 미련이라. 단어를 들었을 뿐인데, 뭔가 아련한 생각이 든다. 내게도 있었지.

 이 향긋한 꽃과 같이 달달한 체취를 가진 여자가 생각났다. 안겨질 때의 옷의 촉감. 갑작스럽게 지독히 났던 술 냄새. 윤기나는 금발. 옅은 발냄새. 검은 팬티. 뽀얀 허벅지.

  어라?

 갑자기 아랫도리에 뻣뻣함이 감돌았다. 이때다 싶어 튀어나온 성기가 내게 말했다.

 ‘주인님 지금이에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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