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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머리
「 체력 회복 5배 부스트가 끝났습니다. 」
「남은 포인트는 1720 포인트입니다.」
1시간 남은 체력회복 부스트가 끝날때 까지 운동한 뒤. 한 번 더 부스트를 쓰고 3시간 더 운동했다.
확실히 체력이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는 데다, 아티팩트 덕에 5배의 체력회복에서 6.5배로 늘어나니. 운동량을 늘리는데 더 수월했던 거다.
‘이거라면 굳이 3시간 할 필요가 없겠는데.’
체력 부스트가 있어도, 운동하는 도중에는 과도하게 힘들어서 3시간만 하자 생각했던 거였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을 더 늘려도 피로하거나, 과도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더 오랫동안 운동을 해도 소화할 수 있으리라.
난 안나와 헤어지고, 몸을 씻은 뒤, 골든 그리폰 클럽으로 가는 중이었다.
안나는 어느 정도 자리 지키다 들어가겠지 싶었는데. 그녀는 늘어지게 잠까지 자며 자리를 지켜줬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간간히 바라본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마치, 재밌다는 것마냥.
아무리 봐도 지루할 수밖에 없을 텐데 말이지.
[흐음. 시간이 애매한데.]
“사람 꽤 있을 시간 아닌가?”
[오히려, 지금 같은 시간대가 수업이 몰리는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
확실히. 클럽 복도로 왔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다.
[문이 열려있는데?]
클럽의 문은 열려있었다. 아니, 열리는 중이었다. 밖으로 나가려던 중이었는지, 누군가 안에서 클럽문을 잡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교수님 저도 열심히-.”
“그러게, 열심히 하건 말건, 그건 상관없다니까? 아직도 모르겠나? 결과가 중요한 거라고 결과가.”
두 남자의 목소리가 열린 문 사이로 들려왔다. 그런데, 묘하게도 둘 중 한 목소리는 낯이 익은 목소리였다.
[아, 저 양반이네. 저기 문 잡고 있는 양반이 파비앙이야.]
열린 틈새로 파비앙 교수라는 작자의 옆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다 보이지 않았지만, 생각한 것보다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
‘어라, 빨간 머리?’
오늘따라 무슨 날이나 되는 걸까. 만나서 부대낀 사람들 머리가 다 빨간색이다. 안나도. 샤브리나도. 이 클럽장이라는 파비앙 교수의 머리도 말이다.
“전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 최선? 그건 성과를 낸 사람들이나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사람들이 헤프게 하는 변명거리일 뿐이지.”
“교수님......”
“일단, 난 나가보겠네.”
그러면서 파비앙 교수가 밖으로 나오자, 방 안에서 익숙한 얼굴이 같이 뛰쳐나왔다.
까치머리. 교원 식당에서 만난 알 패거리 중 한 명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서가 저 까치머리 보고 동물학 조교라고 했었지.
둘 다 클럽 앞에 기웃거리는 날 알아보았지만, 온도 차가 극명했다.
“아, 자네가 바로 그.”
날 알아보자마자 반기는 파비앙 교수와
“쳇.”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피하는 까치머리.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관련이 있었던 걸까.
“반갑네, 난 동물학 교수이자 골든 그리폰 클럽의 클럽장인 파비앙 교수네.”
파비앙 교수는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악수를 청했다. 솔직히 의외였다.
아서가 부정적으로만 파비앙교수를 말해서 그랬을까. 자신의 연구를 뺏어 한순간에 물거품 만들었기에 앞뒤 보지 않고 악의를 표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호의적으로 나오다니.
아서도 파비앙교수의 태도가 의외였는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반갑습니다. 조교인 아서입니다.”
파비앙 교수의 손을 잡자. 그걸 바라보는 까치머리의 눈빛이 더욱 사나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비앙 교수는 내게 말을 이었다.
“그래, 애니한테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꼭 만나보고 싶었다네. 지금 클럽에 들어가 봤자 학생은 없을 테니, 나와 함께 우리에 가보는 게 어떤가? 안 그래도 보고 싶었던 것도 있고 말이야.”
어쩐다.
그리폰에 흥미가 없는 건 아니다. 단순히 비행만 하러 왔다가, 유려한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야성에 나도 반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런거고. 클럽 안에서 애니 이외에 누군가와 사교활동을 할 생각이 크게 없었다. 애초에 학교에서의 평판을 생각해보면, 내게 접근해 오는 사람들을 좋게만 바라볼 수는 없는 상황이라.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생각이 많아져 긴장되고 지쳤다.
게다가, 워낙 파비앙에 대한 안 좋은 뉘앙스를 아서에게 많이 들었던 만큼. 우리에 가는 게 그렇게 끌리지 않았다.
‘그런데......’
파비앙 교수의 붉은 머리.
안나의 그 귀여운 요행이 내 머릿속에 미신처럼 박힌 걸까. 그러고 싶지 않아도, 계속 의식하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이 진짜인지, 아닌지 궁금한 것처럼. 그녀의 요행마저 정말인지 아닌지. 알아 보고 싶었다.
“좋습니다. 같이 가시죠.”
내가 수락하자, 옆에 있는 까치머리가 못 참겠다는 듯 끼어들었다.
“교수님. 분명 뭔가 잘못된 걸 겁니다. 저 아서가 뭘 할 줄 안다고 실버 그리핀을-.”
“자네, 아직도 여기에 있었나?”
“네?”
“쓸모도 없는 주제에 이렇게 빈둥거리기까지 하면 되나? 일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일이라도! 연구실에 계속 남고 싶으면, 빨리 가보도록 하지?”
단숨에 사람 좋던 미소를 지우고, 눈을 부라리며 악담을 내뱉는 무뢰배로 바뀌었다.
사람에 따른 극명한 온도 차.
그것을 보고 왜 아서가 파비앙 교수를 싫어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친절을 다하고, 안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거만하고 무례한 사람.
누군가는 이런 사람이 자신을 좋게 대해준다고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불쾌한 속물. 딱 그렇게 보였다.
“아, 알겠습니다.”
까치머리가 상처받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섰다. 좀 안타깝다 생각이 든 그때.
“쳇.”
날 노려보며, 혀를 차는 바람에 그 마음이 쏙 들어갔다. 아, 안나를 상대하다 보니 마음이 풀어져서 그랬던 건가. 나에게 호의를 보이지 않은 상대에게 동정을 품다니.
난 관자놀이를 쓰다듬으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고 다시금 마음에 새겨놓았다.
파비앙 교수는 우리로 가는 내내 나에게 극진히 잘해주었다. 그런데, 오히려 기분이 좋다기보다. 대놓고 네게 뭔가 얻을게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웃으며 상대했지만, 불편한 아서의 표정처럼 내 마음 역시도 편치 않았다.
[어? 그 까치머리. 우리 계속 따라오는데?]
“어?”
그 말에 뒤를 돌아봤지만, 공터에는 사람이 많아 어디에 있는지 단번에 알아볼 수 없었다.
“무슨 일인가?”
“아닙니다. 그냥 아는 사람 목소리가 들려서요.”
[내가 계속 지켜볼 테니 가봐. 애초에 사람들 많은 곳에 다니는 게 아니라 숨어다니고 있어.]
왜 우리를 쫓아오는 거지. 아니 그럴 수는 있는데, 왜 숨어 다니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난 파비앙 교수와 우리 앞으로 걸어갔다.
“흐음? 문이 열려있군.”
열려있는 문.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아무도 없었다.
“에고, 학생들이 간혹 [룬]으로 문을 잠그는걸 잊고 나간다네. 요새는 동물들 변 냄새를 가두는 마법도 계속 풀고 가지 않나. 한번 클럽원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다시 해야겠어.”
그렇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동물들이 날 보자마자 요란법석을 떨었다.
히이잉- 히이잉-
까악-. 까아악-.
크릉. 크르릉-.
“하하. 정말이군. 얘네들이 이렇게 난리를 치는 건 처음 보았네.”
파비안 교수가 난리 치는 비행생물들을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난 대답 없이 뺨을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연구하려 하면 어떡하지. 저번에 애니의 그리폰과 함께 있었던 기억을 돌이켜보면, 이 마력에 오래 노출되면 얌전해지긴 했었지만, 누군가 의심하기 딱 좋은 이상현상이었다.
휴가가 끝나고 나면, 동물에게 영향이 안 끼치도록 마력을 숨기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그 반면, 실버 그리폰은 얌전하군. 아니 오히려 오랫동안 같이 지낸 것처럼 친숙하게 대하는구만.”
실버 그리폰의 우리 앞에 가자. 울타리 쪽으로 몸을 내밀어 날 반기었다. 내가 손을 뻗자, 거기에 머리를 비비며 기분 좋은 듯 갸륵-하며 울어댔다.
“정말 신기하네. 대체 어떻게 한 것인가.”
바로 본론으로 나오는 건가.
“처음부터 절 좋아하더군요.”
“하아. 단순히 아무것도 안 했는데 호감을 느꼈을 리 없네. 게다가 자네 덕에 얌전해지자마자, 다른 학생들도 이 실버그리폰을 쉽게 탈 수 있다니. 학생들은 모를 테지만, 실버 그리폰은 [조련 인장]이 있더라도 쉽게 탈 수 있는 종이 아니네. 숙련된 전문가만이 가능하지. 말해보게 대체 어떤 마법을 부린 건가.”
들어가자마자 바로 집요하게 물어왔다.
[조련 인장]이 있다고 다들 쉽게 타는 건 아니었구나.
“특이종이 아닐까요? 저번에 보니까. 그 [조련 인장]도 새겨지지 않던데 말이죠.”
“묘한 일이지 않나? 아무리 문헌을 찾아보아도 [조련 인장]이 새겨지지 않은 그리폰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어서, 안 그래도 학회에 보고하여 공론화시키려 했네. 자네를 부른 건 그 전에 혹시 무슨 마법을 부린 건 아닐까 궁금했기 때문이고.”
“딱히 제가 한 것은 없습니다. 애초에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는지도 몰랐어요. 유일하게 호의를 보이는 그리폰이라 제가 우리 안에 들어가서 같이 놀아주고 있던 거고요.”
“아아...... 그런가.”
내 거짓말에 파비앙 교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로서는 우연히 ‘특이종’을 발견했다는 것보다. ‘자신이’ [조련 인장]보다 강력한 마법을 발견하여, 동물을 길들였다고 학회에 밝히는 게 더 큰 성과였을 테니까.
“잠시, 기다려보게.”
그러더니 파비앙 교수가 굴레를 들고 와 실버 그리폰의 얼굴에 끼워 넣고 고삐를 연결했다. 그리고 안장까지 가지고 와 몸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애니가 탈 때는 이런 것 없이 타던데, 원래 고삐와 안장을 착용 시키는 거였던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터프한 아가씨야.
“아서 조교, 우리 문 좀 열어줄 수 있겠나.”
“아, 네.”
난 [룬]에 마력을 부여하여, 실버 그리폰의 우리 문을 열어주었다.
파비앙 교수는 아예 클럽 우리 밖으로 실버 그리폰을 데리고 나왔다.
“한번 고삐를 잡아보겠나?”
“예?”
“그리폰을 타고 싶어서 클럽에 온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오늘 한번 타봐야지. 일단 고삐부터 잡고 여기까지 데려 와보게.”
무슨 생각인가 싶었는데, 옆에 아서가 거들었다.
[파비앙 교수가 얼마나 지식이 있는지, 간단하게 시험해 보려는 거네.]
시험이라.
이걸 옅은 수작이라고 봐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참 애매했다. 어차피 지식도 없고 초보자이니, 그 티를 팍팍 내며. ‘실버 그리폰은 그저 우연인 데다 특이종이였기 때문이다’라고 확실하게 새겨놓을까.
‘아니야.’
어차피 난 처음부터 일관적으로 실버 그리폰이 날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말해왔는데, 저쪽이 내가 뭔가 있다고 생각해서 잘 대해주고 있는 거라면.
굳이, 벌써 초보자라고 티 내서 무시당하며 살 필요는 없었다.
지금 좋은 모습을 보여, 교수가 계속 뭔가 있다 착각하며 잘해주더라도. 끝까지 일관적으로 실버 그리폰이 날 좋아했을 뿐이라고 말하면 될 뿐이었다.
나중에 날 무시하며 막 대하더라도. 벌써 지금부터 굳이 나쁜 대우를 받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일단은 호의를 받는 쪽에 있어야겠다 싶었다.
문득, 이 사람이 뭐라고. 내 처우를 어떻게 결정할지 재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과 함께, 오히려 내가 이 사람에게 얻을 게 뭐가 있나 고민을 해보고, 처우를 결정하겠고 결심이 들었다.
속물에게는 속물처럼.
그렇게 대하기로.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제한을 걸어둬서 cctv같은건 없지만,
녹화가 가능한 마법 영상구는 나중에 나올겁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