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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머리
“뭐하는가?”
파비앙 교수의 물음에 난, 아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알겠다는 듯, 내게 해야 할 것을 설명해줬다.
[고삐를 턱에 가깝게 잡은 뒤, 다른 손으로는 길게 늘어지도록 잡아 이끌어줘. 괜히, 힘줘서 그리폰이 경계하게 하지 말고. 아, 고유능력으로 길들여진 거라 괜찮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래도 일단 주의는 해봐.]
“알겠어.”
난 아서의 말대로 고삐를 가깝게 잡고 천천히 이끌었다. 그러자 실버 그리폰이 날개를 벌리며, 그르릉 거리고는, 사뿐한 발걸음으로 날 따라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파비앙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좋네, 이제 한번 타보겠는가?”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는 듯, 파비앙 교수는 그리폰의 대가리 옆으로 붙어 날 관찰했다.
[파비앙 이 자식......]
그 모습에 불만이 있는지, 아서가 눈을 찡그렸다.
[보통 타기 전에 그리폰이 앞 다리를 들어 올릴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말을 하거든. 너도 혹시 모르니 올라타자마자 고삐를 잡아. 파비앙, 이 양반은 사람이 떨어져 다쳐도 상관 없다는 건가?]
아서는 분개했지만, 난 나쁘지 않았다.
애니한테도 그리폰을 탑승한 경험이 없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그 말을 전해 받았을 파비앙이 믿지 않고, 날 멋대로 가늠하고 있는 거라면. 그만큼 속이기도 쉽다는 말이 되었으니까.
[일단, 넌 몸무게가 나가서 올라 타는 것도 힘들다는 거 알아주고. 자주 타줘서 네 몸무게가 익숙하여지도록 만들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그리폰들이 올라타자마자 떨어트리려고 몸을 뒤틀으니 조심해줘. 일단, 왼쪽 날개 뒤로 가서 목을 쓰다듬어주어 경계심을 풀게 해줘 봐.]
아서의 말을 듣자, 괜시레 내 몸에 체중이 느껴지는 기분이라 몸을 가볍게 털며, 그리폰 왼쪽으로 다가가 목을 쓰다듬었다.
애초에 고유능력으로 보조를 받고 있지만, 탑승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파비앙 교수에게 보여주는 게 목적이니. 아서가 말한 절차를 따르기로 했다.
손끝으로 굵고 튼실하며, 힘 있는 목이 느껴졌다. 쓰다듬는 궤적을 따라 실버 그리폰도 기분 좋은 듯 몸을 떨었다.
“착하지.”
[좋아, 그다음은. 날개 뒤에 저거 보여? 안장 밑에 길게 내려온 게 등자쇠인데, 저기에 먼저 왼발을 끼워. 그리고, 안장 앞을 왼손으로 잡고, 안장 뒤를 오른손으로 잡은 뒤, 몸에 반동을 주며 빠르게 올라타야 해. 혹시나 넘어져서 날개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고.]
아서의 말대로 먼저 등자쇠에 왼발을 끼워보았다. 안장과 잘 고정되어, 발이 좌우로 흔들리는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두 손으로 안장을 잡은 뒤, 오른발을 접었다 펴, 용수철처럼 튕겨 올라탔다. 그리고는 아서의 말대로 재빨리 고삐를 붙잡았다.
그러나 실버 그리폰은 앞발을 들어 올리는 행위나. 몸을 터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올라타는 것이 기분 좋다는 것마냥, 작은 소리로 갸릉-. 하며 울어대었다.
위에 올라타면, 실버 그리폰의 고동이라도 느껴질까 싶었는데, 안장 때문에 생각보다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까칠한 털이 정강이에 닿아 쓸리기만 했다. 클럽 한편에 가죽으로 된 정강이 보호대 같은 게 있었는데, 이래서 필요한 것이었나.
팟-.
「실버 그리폰이 자신의 주인을 알아봅니다. 」
「[실버 그리폰] (레어 동물) 을 처음 탑승함으로써, 친밀도 레벨이 2로 상승합니다.
- 플레이어는 마력을 부여하지 않고 생각만으로 실버 그리폰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 탑승한 주인을 떨어지지 않도록, 실버 그리폰이 기술적인 보조를 합니다.
- 아무리 험하게 다루어도 실버 그리폰은 주인을 태운 채로 날뛰지 않습니다.」
‘오오. 이런 보조까지 되는 건가?’
그 덕에 탑승이 처음인데도 오랫동안 타왔던 것처럼 기시감이 느껴졌다. 능숙한 기분이었다. 마치, 그리폰이 나와 한 몸이라도 되는 것마냥.
[오. 뭐야. 미동도 없네? 고유 능력으로 길들여져서 그런 건가?]
아서가 무척 놀란 얼굴로 그리폰 위에 올라탄 날 바라보았다. 파비앙 교수도 이렇게까지 능숙하게 탈 줄 몰랐다는 듯,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이 고유능력은 진짜......’
알면 알수록 내 고유능력이 영향을 끼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쓸모없는 능력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이것만 있어도 이 세계의 어떤 분야든 전문가. 아니,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인 것 아닌가.
불현듯, 다른 고유능력자들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또 나만큼 강력한 능력일지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아서도 ‘회귀’라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
예전에 크로넬 제국에서 고유능력자가 10명이 안 된다고 했을 때, 참 적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다.
그들의 능력은 대체 뭘까?
“하. 이 실버 그리폰이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지만, 이 정도로 능숙하게 탔던 사람은 없었다네. 아서 자네 대체 어떻게 한 건가? 아니 그리폰을 다루는 기술은 어디서 배운 건가? 조교 하기 전에 다른 귀족가문의 동물 관리인으로 일하기라도 한 것인가?”
이 정도도 대단해 보이는 건가.
애니는 안장하고 고삐도 없이 그냥 위에 올라타서 돌아다녔는데.
생각해보니, 애니를 태운 실버 그리폰의 움직임이 마냥 부드럽지는 않았었다.
“아뇨, 교수님. 전 그리폰 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어허! 고삐를 잡는 방법이나, 타는 방법까지. 경험자가 아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네. 자네는 어찌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건가. 혹시, 자네 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말하던 파비앙 교수가, 실수했다는 듯 입을 다물더니.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빠르게 말을 돌렸다.
“그보다 움직이는 건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요?”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겠다’ 생각을 하자, 실버 그리폰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걸 본 파비앙 교수는 ‘역시 그러면 그렇지’ 라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까 말했던 것 처럼 어디선가 그리폰을 다뤘다고 생각을 할 게 분명했다.
“하아. 가문에서 그리폰 라이더 교육을 받은 우리 조교보다 더 능숙하게 다루는구만. 한번 공터로 나가보는 건 어떤가?”
“나가봐도 괜찮은가요?”
“큰 상관이야 없네. 신경 써야 할 것은 다른 학생들이 다치는 일이 생기는 때인데. 자네가 제어만 잘 해주면 큰 문제가 안 생길거야. 아, 만약 자네 실수로 다른 학생을 공격한다면, 난 자네를 모른 척 할 테니 그렇게 알게. 하하.”
웃으라고 한 농담인 건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내 반응을 기대하는 걸 보아하니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학생들이 다치는 일이 생길 경우, 정말 모른 척 할 것 같은 데 말이지.
“허허......”
내가 웃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자, 파비앙 교수는 멋쩍은 듯 뒷목을 쓸어내렸다.
난 앞을 바라보며, 달릴 준비를 했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아서가 한마디 거들었다.
[기왕 실력 행사를 하기로 했으니 전력으로 달려봐. 아, 고삐는 놓치지 않게 꽉 붙잡고.]
그래 볼까.
난 고삐를 잡고 있는 양손에 힘을 가득 주었다.
그리고 달리라고 신호를 주자.
실버 그리폰이 장전하는 것 마냥, 몸을 살짝 숙이더니.
땅을 세차게 박차고 뛰어나갔다.
순간, 고간에 아찔한 느낌과 함께, 거센 바람에 시야가 흐릿해졌다.
허공을 가르며 꽤 오랜 시간 부양을 하더니, 앞발로 지면을 쿵! 소리 나게 딛으며, 네발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얼굴에 바람이 부딪치며, 몸이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실버 그리폰의 사지의 근육이 힘있게 떨리는 게, 안장을 통해 내 엉덩이에 그대로 느껴졌다.
“하하.”
알 수 없는 해방감에 웃음이 나왔다.
격렬하게 뻗어 지면을 박차는 실버 그리폰의 발이 내 발인것처럼 익숙했다. 그 덕일까? 처음 타가지고 이렇게 내 달리는 데도,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짜릿하기만 하다.
게다가 안장에 충격을 완화하는 마법이라도 걸려 있었던 건지, 엉덩이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더 빨리게 달릴 수 있으려나?’
휭-.
“헛!”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실버 그리폰의 다리를 더욱 빠르게 굴리며 탄력 있게 튀어나갔다.
끝내준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느새 학생들이 드믐드믐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서 가야겠군.’
그렇게 생각하자, 실버 그리폰이 빠르게 달리던 와중에 앞다리를 땅에 꽂은 뒤 뒷다리를 움직여 방향을 틀었다.
“으악-!”
순간, 갑작스럽게 방향이 틀어지는 바람에 엉덩이가 안장에서 벗어나 옆으로 미끄러졌다.
‘떨어진다.’
그러자, 그리폰이 몸을 틀더니. 내 엉덩이를 자신의 안장 위에 올려놓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난 놀라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아까 창에서 떴던, 기술적인 보조인가.’
“하하.”
하마터면 떨어질 뻔 했는데도, 웃음이 나왔다. 그 정도로 엉덩이가 떴는데도 떨어지지 않는다니. 고유능력의 보조가 생각보다 엄청나지 않은가.
‘더욱더 빨리.’
파비앙 교수가 있는 데까지 신명 나게 달려갔다. 어느새 클럽 우리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어어어?”
거리가 꽤 있는데도, 파비앙 교수는 자신 쪽으로 매섭게 달려드는 실버 그리폰을 보며 당황을 감추지 못하더니.
“으아악!”
이내,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뛰어 넘어져, 몸을 웅크렸다.
[푸하하핫!]
파비앙 교수가 혼자 나뒹굴은걸 보고 아서가 폭소를 했다. 나도 웃음을 참기 힘들어, 자연스럽게 입가를 올렸다.
내가 실버 그리폰에게 멈추자고 신호를 보내자, 네 발을 천천히 굴리더니 이내 파비앙 교수 앞에 섰다.
“교수님 괜찮습니까?”
“어......?”
위에서 내려보고 있자, 파비앙 교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자신이 무사한 것을 깨닫고 이내 고개를 한번 흔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깜짝 놀랐네, 자네! 난 실버 그리폰이 폭주한 줄 알았어! 이렇게 빨리 달릴 줄이야...... 역시 자네. 뛰어난 그리폰 라이더였군.”
“전 정말 처음 타는 겁니다.”
“그런 말 하지 말게. 지금까지 모습을 보고도 그런 말에 속을 만큼 내가 바보로 아는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왜 굳이 날 속이는 건가?”
파비앙 교수가 확신한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정말입니다.”
“하아, 됐네. 아직은 말하기 싫다면, 할 필요는 없다네.“
파비앙 교수는 내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고, 손을 내저으며 무시했다.
“그보다, 자네. 우리 축제에 대해 알고 있나?”
“아, 애니한테 들었습니다. 며칠 뒤에 그리폰들에게 옷을 입히고 학생들 앞에서 비행한다면서요.”
“그래, 그때 자네가 실버 그리폰을 타보는 게 어떤가?”
“예? 저 말입니까? 정식 클럽원도 아닌데요?”
“안 그래도, 자네가 실버 그리폰을 길들였다고 했을 때부터 이런 제안을 하고 싶었네.”
“원래 교수님이 타려고 했던 거 아닙니까?”
“하하. 난 타는 데는 크게 소질이 없네. 오히려, 동물학 조교가 가문에서 그리폰 라이더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받아서 실력이 있지. 안 그래도 그 친구한테 실버 그리폰을 자네가 태우도록 하겠다 했는데...... 아, 어차피 자네가 오늘 우리 대화를 들었으니 말을 하는거지만. 불만이 크더군.”
아, 까치머리의 태도는 그 때문이었나.
그런데 왜지?
아무리 봐도 축제에서 탄다고, 좋아 보이지 않는데.
교수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건가?
난 주위를 잠시 둘러봤다.
아까 숨어서 우리를 지켜봤다고 했지.
내가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 아서가 말을 했다.
[까치머리 찾는 거면, 아직도 여기 주변에 있어.]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