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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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머리

                                                      

 내가 두리번두리번거리자, 파비앙 교수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당황한 표정이 무심코 얼굴에 떠올랐던 건가. 난 빠르게 표정을 지우고 파비앙 교수에게 대답했다.

 “저야, 영광이죠. 축제 때 타겠습니다.”

 “오오. 좋네, 좋아. 하하. 그런데 자네. 지금 괜찮은 건가?”

 “괜찮습니다. 날이 어두워져서 길 잃어버리지 않고 어떻게 돌아가야 하나 한번 돌아봤던 겁니다.”

 “그건 걱정 말게, 클럽 우리부터 학교 후문까지, 조명을 잘 설치해놨으니 말이야. 아, 혹시 자네 지금 시간 되면 나와 함께 돌아가서 술 한잔 하는 게 어떤가?”

 [아주 노골적이네.]

 그러게 말이야. 술은 끌렸지만. 난 마시지 않아도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사람하고만, 술을 같이 마시자는 주의라 거절하기로 했다.

 “지금은 바빠서 사양하겠습니다. 아직 일과가 남아서요.”

 “그런가? 휴가를 받은 걸로 알고 있는데?”

 파비앙 교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어왔다.

 “오히려 휴가 이전보다 더욱 바쁜 느낌입니다. 휴가가 끝날 때를 대비하는지라. 준비할 게 많거든요.”

 “흠...... 뭐, 자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다음번에 꼭 시간 내서 같이 한잔 마시도록 하세.”

 “시간이 날지 확실하지가 않으니 확답은 못 하겠네요.”

 “하하. 거 친구 참. 그냥 나중에 시간 한번 내면 되지 않은가!?” 

 “하하.”

 “정말...... 여하튼, 난 먼저 한잔하러 가볼 테니, 실버 그리폰을 우리에 넣어주고 가주시게! 내일 보자고.”

 눈치가 없을 사람도 아닌데. 상당히 끈덕지게 굴었다. 

 파비앙 교수는 내가 빈말이라도 술 마시겠다고 하지 않자, 자존심이 상했는지. 내게 소리치며 지시를 하고선, 성큼성큼 걸어가 사라졌다.

 난 그러거나 말거나, 아서에게 말을 걸었다.

 “아서, 까치 머리 아직도 있지?”

 [응. 계속 있어.]

 역시, 날 쫓아다닌 거였나. 

 “혹시, 지팡이를 들고 있거나 날 공격할 낌새가 보여?”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네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있어. 어디 있는지 알려줄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교수를 따라간 게 아니라는 것만 확인했으면 돼. 위치는 네가 알고 있다 내가 필요할 때 말해줘.”

 위치보다. 그 까치머리가 이제 뭘 하려고 내 주위에 맴도는 건가 이게 중요했다. 

 나한테 불만이라도 가지고 있어서 습격이라도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고?

 ‘혹시.’

 난 게임창을 열어 실버 그리폰의 ‘보안 등급’ 설정을 들어갔다.

 「[실버 그리폰] (레어 동물)의 현재 보안 등급은 [공개] 입니다.

-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탑승할 수 있습니다.」

 보안 등급 창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솔직히 까치머리가 따라온다는 것만으로 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에 대해 더욱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건 이 실버 그리폰이 도둑맞았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까 파비앙 교수가 까치머리에 대해 뭐라고 했지?

 어렸을때부터 그리폰 라이더 교육을 받았다고 했었지. 그게 어떤 교육인지 모르겠지만 그리폰에 대해 잘 알 것이라 생각했다. 지식이 있는 만큼. 변을 채취해서 모으는 것도 까치머리 일수도 있었다.

 「[실버 그리폰] (레어 동물)의 현재 보안 등급이 [공개]에서 [경계]로 변경되었습니다.」

 「[실버 그리폰] (레어 동물)의 현재 보안 등급은 [경계] 입니다.

-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탑승할 수 있습니다.

 - 다른 사람이 플레이어의 애완동물에 접근할 경우 경고창이 뜹니다.」

  설마 지금일까 싶었지만, 혹시 모르니 경계등급을 변경했다.

 아서가 말한 시기는 이때쯤이 아니었지만, 애초에 도둑이 내년에 훔쳐가기를 원했던 게 아니라. 길들여지길 원했던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하아, 피곤하니. 나도 실버 그리폰을 우리 안에 넣고 방으로 돌아가야겠다.”

 난 굳이 할 필요도 없는 말을 까치머리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쳤다.

 [뭐 하는지 안 보고 돌아가게?]

 그래 볼까 싶었지만. 만약, 그가 진짜 도둑이라면 내가 자연스럽게 사라져주는 게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난 아서에게 고개를 저으며 실버 그리폰의 고삐를 잡고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서 늘어졌다. 하루마다 사건이 끊이지 않으니, 체력회복 부스트를 썼다 해도 이 시간만 되면 피곤해졌다.

 “하아, 역시 방이 최고란 말이지.”

 [그렇다고 잠들지는 말고.]

 “알고 있어. 나도 포인트 수급 빼먹으면, 계획에 차질이 크거든. 그보다, 그 까치머리......”

 [걔가 왜?]

 “흠, 아니다.”

 내가 사라지면 바로 실버 그리폰에 접근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아직까지도 접근하지 않았다.

 클럽 우리에서부터 학교 건물 후문까지의 거리도 상당하고, 거기에서 내 방으로 오는 데까지도 꽤나 멀었다. 그런데도 아직 뜨지 않다니.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까?

 하긴, 학교 우리의 동물 관리가 허술하다 해도, 이렇게 대놓고 훔쳐가는 건 이상했다.

 그럼 대체 왜 나를 따라 오는 것이었을까. 오늘의 이상행동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까 까치머리가 무엇을 하는지, 추적해봤어야 했나.

 아니다, 굳이 까치머리를 쫓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그를 내버려둔 나름의 이유도 있지 않았는가. 

 ‘계속 생각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확실한 것부터 하나하나 처리하자’

 “아서, 아티팩트를 제작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거야? 혹시 학교에서 배울 수 있나?”

 [인챈트 말하는 거야? 배우는 거야 쉽긴 한데, 쓸만한걸 만드는 게 힘들어.]

 “배우는 게 쉽다니 다행이네, 성능이야 해봐야 아는거고. [인챈트]는 어디서 배우면 돼?”

 [아, 생각해보니, 성능은 네 고유능력이 있으니 어떨지 모르겠구나. [인챈트]라면 학교 도서관에 마법서가 있을거야.]

 “도서관? 마법서라는 것도 있었구나.”

 마법서라. 고유능력이 마법을 감지해서, 포인트로 익히게 해주는 것처럼. 마법서 역시 손을 대는 것만으로 마법을 감지해서 포인트를 투자해 익힐 수 있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아니면,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 마법을 감지하고 익히면 되는거니까. [인챈트] 강사를 찾아가 보는 것도 괜찮겠다.]

 “강사? 교수가 아니고?”

 [아, 아티팩트 제작쪽은 성장이 잘 안 되는 사업이라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아니거든. 학생들도 별로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 데다가, 관심이 적다보니,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과목이라 교수가 아니라 강사를 쓰지.]

 “의외네. 왜 성장이 안된다는 거야? 아까 말한 대로 쓸만한 것을 만들기 힘들어서?”

 [그렇기도 한데. 아티팩트 사업은 한 가문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사업이라, 깊이 파고들어 가서 배우는 사람은 없어. 아마, [인챈트] 강사도 돈이 없어서, 그 가문에 일하면서 배웠던 걸걸?]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고? 가문 규모가 어마어마하겠네. 그럼 이런 마법장갑도 거기에서 만든 거야?”

 내가 놀라서 입을 크게 벌리고 말하자, 아서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아아, 내가 말한 건 호신용 악세사리나. 아까 안나라는 여자애가 끼고있던 건강 보조용 아티팩트를 말한 거야. 마법장갑이나, 보온 마법이 걸려있는 옷 같은 건 해당하는 게 아냐. 뭐, 그렇다 쳐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가문인 건 맞긴 하지.]

 “그렇다 해도 규모가 엄청날 것 같은데.”

 학교 매점에서 봤던, 쓸모 있을 거 같지 않은 아티팩트의 가격도 기본이 5골드부터 시작했다.

 그걸 독점하고 있다니.

 크로넬 제국에서 가장 큰 가문이 아닌 걸까?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그 정도로 독점해서 사업을 벌이려면 다른 가문들이 허가를 해줘야 해. 애초에 독점하게 된 이유도 보석에 [인챈트]를 할 수 있는 혈통 마법 덕이었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가문에 비해 무력이 약한지라, 다른 가문들에게 로비하는데 돈을 많이 쓰는 편이거든. 그렇기에 생각보다 규모가 큰 가문은 아니야. 오히려 안나의 페테르니 가문이 더욱 클걸? 게다가 가격 대비 성능이 안 나오는 아티팩트를 찾는 사람들도 많이 없고 말이야.]

 “아, 보석으로 만들어진 아티팩트가 혈통 마법으로 만들어진 거였어?”

 그럼 내가 [인챈트]를 배워도 안나가 가진 것과 같은 아티팩트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까?

 아직 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일이었지만, 실망이 조금 되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이 생길 때였다.

 팟-.

 「경고

- [실버 그리폰] (레어 동물) 에 누군가 접근했습니다.」

 “헛!”

 [뭐야? 이 시간에 탄 거야?]

 까치머리가 이제야 움직인 걸까?

 생각보다 야심한 시각이니, 누가되었던 분명 평범한 목적으로 탄 것이 아닐 거라 생각되었다.

 난 황급히 상태창을 열어 실버 그리폰의 메뉴로 들어가, 위치 추적을 눌렀다.

 그러자 눈앞에 학교의 구조가 그려진 지도 같은 창이 뜨면서, 실버 그리폰으로 보이는 빛나는 점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오 이거 지도야? 이런 것도 되네?]

 나도 놀랐다. 상태창에 들어가 지도를 찾아보려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지도를 볼 수 있었다니.

 정말 훔쳐가는 걸까 싶어 지도를 계속 바라보는데, 점은 학교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공터 옆에 있는 숲을 따라 학교를 크게 빙빙 돌고 있었다.

 [그냥 비행하는 걸까? 한참 돌아다니네.]

 “그런 건가...... 헛!”

 괜히, 기대했다 생각하는 순간.

 계속 같은 곳을 빙빙 돌던 빛나는 점이, 궤도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척 봐도 클럽 우리쪽이 아닌 전혀 다른곳이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장소였다.

 “탑?”

 학교 교수들의 연구실이 있는 곳.

 실버 그리폰이 그 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거다. 

 [왜 저기로 가는거지?]

 그러게 말이야. 

 “대체 왜지. 설마, 까치머리가 아닌 건가?”

 난 한번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친밀도 레벨1의 기능인 시야공유를 하기로 했다.

 “아서, 나 잠시만 보고 올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300포인트를 사용하여 [실버 그리폰] (레어 동물)의 시야를 공유하겠습니까?」

( Y / N )

 Y를 누르자 시야가 급변하였다. 

*

 처음 보는 방이었다. 실버 그리폰은 벌써 탑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생생하게 주위 풍경들이 보였다. 그런데, 시야에 약간 문제가 있었다. 눈가 주위에 이질적인 물체가 시야 일부를 가리고 있던 거다.

 난 고개를 흔들어 벗겨보려 했지만, 실버그리폰은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조종은 하지 못하는구나. 마치, VR 영상을 구경하듯 지켜만 보고 있었다. 좀 답답하다고 생각이 들던 그때.

 펄럭-.

 시야가 천에 쌓여 완전히 가려지더니, 이내 벗겨지며 완벽하게 돌아왔다. 천에 둘러 쌓인 게 맞았구나. 실버 그리폰이 해방감을 느끼는지 몸을 떨자,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로 파르르 떨려왔다.

 ‘이거 많이 하면 안 되겠군.’

 그리폰이 조류의 머리를 가졌는지라, 대가리를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고개를 획획 돌려대었다. 그 덕에 시야가 계속 변해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어지러웠다.

 “착하지.”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사람의 손이 시야를 향해 가깝게 뻗어오는 게 보였다. 그러자 실버 그리폰이 고개를 돌리며 그 손의 주인까지 다 보이기 시작했다.

 흰색 실크천을 들고 있는 까치머리.

 역시나였다.

*

 「남은 포인트는 1420 포인트입니다.」

  “파비앙 교수의 연구실이었어. 까치머리가 데려간 게 맞아.”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책상 위에 놓인 파비앙 교수의 명패가 보였기에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있었다.

 [학교 연구실에?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러게 말이야. 그냥 파비앙 교수 지시대로 데리고 간 거 아닐까?”

 그 말에 아서가 잠시 턱을 긁적이며 생각에 빠지더니 말했다.

 [아닐 수도 있어. 파비앙 교수는 연구실 안 쓰고 클럽에서 연구하고 생활하기로 유명한 교수거든.]

 “그렇다 쳐도 연구실에 데려다 놓는다는 게 훔치는 거랑 거리는 멀긴 한데말야.”

 [내 생각도 그래.]

 잠시 생각에 빠졌다.

 훔치기 전에 실버 그리폰을 연구실에 가져다 놓는 걸까?

 마법으로 냄새랑 소음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막을 수야 있을 테니 문제가 없을 수 있겠지만.

 실버 그리폰이 사라지면,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 소란이 날 텐데, 연구실에 데려다 놓는다고?

 아무리 봐도 훔치는 것 같지 않은데.

 이전과 계획이 틀어진 건가?

 난 머리가 복잡해져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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