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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머리
다음 날 아침.
난 교원식당 앞에서 타티아나를 만났다.
정확하게는 내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만.
내 얼굴을 본 타티아나는 흠칫 놀라더니,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섰다. 내가 먼저 식당에 들어가길 원하는지 눈치만 계속 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난 들어가지 않고, 타티아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계속 바라보고 있자. 그녀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하더니 뒷걸음치며 도망가려 했다.
난 빠르게 쫓아가 타티아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자 그녀가 놀라 붙잡은 손을 잠시 바라보더니.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하는거야?”
타티아나의 태도에 내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예전이었으면, 분명 손을 쳐냈을 텐데 자연스럽게 바라만 보고 있다니. 분명 그녀도 알지 못하는 새에 나와의 스킨쉽에 역치가 올라간 탓일 테다.
난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밥 안 먹을 거야?”
“...... 그걸 네가 왜 상관하는데.”
“왜 상관 하기는.”
그 말과 함께 타티아나의 꽁지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해서 실험해 본 것이다.
“......”
‘호오.’
이것만큼은 타티아나가 거부하리라 싶었는데, 내 생각과 달리 자신에게 뻗어지는 손을 굳은 얼굴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난 타티아나의 윤기 나는 꽁지머리를 맨 위에서부터 살며시 잡아 쓸어내렸다. 그녀는 내 뜬금없는 행동에 놀랐는지 폐를 부풀리고, 손의 움직임에 따라 동공을 움직였다.
난 새끼손가락을 새워 꽁지머리를 쓸어내리며, 그녀의 성감대인 목덜미도 함께 훑었다.
“흣......! 헛!”
그러자 타티아나가 얼굴을 찡그리며, 간드러진 신음이 내뱉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신음을 내뱉었다는 것에 깜짝 놀라 머리카락을 잡은 내 손을 쳐냈다.
“이거 놔!”
“아, 저기 자리 났네. 어서 가자.”
“놓으라니까! 야!”
난 타티아나를 끌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경하게 날 거부하지 않고,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들어가서 난 먼저 자리에 앉았다.
“여기 앉아.”
타티아나가 자리를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내 얼굴과 자리를 번갈아 보던 그녀가, 뭔가 결심한 것인지 의자의 등을 손으로 잡았을 때.
“타티아나!”
“...... 알.”
알이 왔던 것이었다.
****
“어이 알~. 좋은 아침이지?”
기분 좋은 미소를 환하게 지으며, 알에게 인사해주었다. 하지만, 그는 대답 없이 햐얗게 질린 얼굴로 날 바라만 보았다.
내 옆에서 일어나있던 타티아나도 알을 보곤 굳어서 가만히 멈춰있었다. 난 그들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밥 안 먹을 거야? 아, 맞다 자리. 빈자리가 하나밖에 없구나. 잠시만 기다려봐.”
난 아차 했다는 표정으로, 테이블에 놓인 견과류를 한 줌 쥔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면 딱 두 자리가 나네? 이곳에서 앉아서 먹으라고. 난 오늘은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아서 말이야.”
알과 타티아나는 내 태도에 혼란이 큰지, 어떻게 반응할 줄 모르고 가만히 있었다. 난 땅콩을 하나 집어 입 안에 넣으며, 타티아나 옆으로가 귓가에 속삭였다.
“다음에 또 보자고.”
“다음......?”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타티아나를 지나, 굳어있는 알의 어깨를 툭툭 치며 씨익 웃어주었다.
“아침부터 왜 그래? 여자친구 만났는데 좀 웃으라고.”
“......너.”
알이 뭔가 말을 하려 이었지만, 성큼성큼 지나쳐 식당 밖으로 나갔다.
개운하구만.
오늘 타티아나와 알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꿈에 개입의 여파가 더 크다는 것을.
“하하.”
빠른 진전에 기쁜 나머지 참았던 웃음을 밖으로 나가며 터트렸다.
****
“흐응. 운동은 저녁에 한다고 하지 않았음? 앗! 설마, 날 이렇게 빨리 보고 싶었던 거임?”
난 교원식당에서 나와 안나를 만나러 왔다.
오늘을 [인챈트]를 배울 거라 일정을 바꿔, 안나에게 아티팩트를 먼저 받으러 온 것이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자 반가워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아니고. 아티팩-.”
“헐 아니라녀. 어떻게 그딴 말이 주둥이에서 튀어나올 수 있음? 이 여자의 마음도 모르는 돼지! 돼지!”
순식간에 얼굴을 찌푸리며, 내 턱살을 찔러왔다.
“야야, 잠시만. 미안해. 미안하니까, 여기서 이러면......”
“나랑 같이 있는게 눈치 보이는 거임? 이얏! 얏! 얏!”
눈치 겁나 보였다.
기숙사 광장에 나와 있던 학생들이 우리를 보며, 끊임없이 수군거리고 있었으니까.
이 여자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안 쓴다는 듯. 천연스럽게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잠만, 잠만. 잠-.”
“흐응. 하여튼, 이것 받으세여.”
“어라? 응. 고마워.”
턱을 손가락으로 격렬하게 쳐대던, 안나가 갑자기 멈춰선 차분해지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이 차고 있던 [체력회복 아티팩트]를 내게 건넸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태도 변화에 얼떨떨했지만, 일단 그녀가 건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근데 뭐에여? 이제 운동하러 가는 거? 따라가도 되는 거임?”
“아니, 운동은 나중에 할 거야. 오늘은 할 게 있거든.”
“흐응.”
내 말에 안나가 가자미 눈을 뜨고, 얼굴을 코앞까지 들이대었다. 난 당황해서 뒷걸음치며 말했다.
“뭐야.”
“날 따돌리려는 수작이 아닌가 보는 거임.”
“그런 거 아니야.”
“흐으으으음.”
“아니라니까. 정말 할 일이 바빠서 그래.”
“호홋. 우리 돼지. 저도 그말 믿어여~.”
안나가 내 변명이 귀엽다는듯 웃으며 입을 가렸다. 난 그 모습에 미간을 긁적였다. 내가 왜 변명을 한 거지? 이거 길들여지는 기분이구만.
“전서구 써보니 어때여어? 편하져?”
“아, 놀랐어. 좋더라고.”
간단하게 쪽지를 써서 우편함에 넣었을 때는 이게 어떻게 가는 건가 싶었는데.
그녀의 답장이 내 눈앞에서 생겨나는 걸 보고 알았다.
“흐응~. 그러니 저한테 많이 보내시라구여~.”
콧소리로 유혹하듯 말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서는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유혹하듯 훑었다.
갑작스러운 야릇한 분위기에 내가 어찌할 줄 모르고 가만히 있자. 그녀가 입을 막고 꺄르륵 웃어대더니.
“저가용~. 돼지, 다음번에 봥~.”
“......”
작별인사를 하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는 뒤돌아 기숙사로 걸어 들어갔다. 난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이 짧은 시간 만났을 뿐인데, 홀리는 기분이었다.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구만.
그녀가 사라지는걸 끝까지 보고, 뒤를 돌았을 때였다.
“그거 들었어? 어젯밤에 유령이 나왔다던데?”
“헐. 어디서?”
가만히 있자 신경 쓰이는 말이 들려 귀를 기울여 보았다. 혹시, 아서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어서였다.
“그건 모르겠는데, 덩치 커다란 게 이곳저곳 날아다녔데.”
난 그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아서를 바라보았다.
[난 절대 안 보인다니까? 학교에 유령 나온다 뭐다 하는 괴담은 내가 학생이었을 때부터 있었어.]
아서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선, 묻지도 않았는데 선수 쳐서 말을 했다.
“아니, 그냥 그런가 싶었던 거지. 그보다 어제 말한 강사한테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
[그 강사 사무실이 이곳하고 가깝긴 해. 지금 갈 거야?]
“응.”
[이리로 와.]
난 날아가는 아서를 따라가며, 상태창을 열람해보았다.
「남은 포인트는 5615 포인트입니다.」
어제 엘레인, 타티아나, 그리고 알의 꿈에 들어가서 습득한 총 포인트는 4195 였다. 아쉽게도 도전과제를 깬 게 없어서 더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법’ 재능에 투자할까 싶었지만. 오늘 [인챈트]를 하기로 했으니 포인트를 사용할 일이 생길까 싶어 아직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고 있었다.
‘역시 꿈에서 얻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다른 사람에게 비해서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더 풍족하게 포인트를 벌어들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혹시, 한 사람의 꿈에서 오랫동안 포인트를 습득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틀 전 엘레인의 꿈에서 오랫동안 성교를 이어갔음에도, 공양을 제외한 2600포인트밖에 습득하지 못 했을 때 깨달았다.
하루에 꿈으로만 얻는 거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일정 포인트 이상부터는, 습득 조건이 올라가는지 포인트가 영 쌓이지 않았다.
‘굳이 마법서 때문이 아니더라도 도서관에 한 번 들려봐야겠군.’
고대종의 마력에 대한 기록을 찾아,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지 알아봐야 했었다. 더욱 많은 포인트를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연구를 해보리라.
그렇게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강사 전용 사무실에 도착했다.
[인챈트 마법 강사 카립]
문패를 보며 아서에게 물어봤다. 혹시나 생길 문제에 대해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혹시, 어떤 사람인지 알아?”
[아니, 나도 인챈트 강사가 있었다는 것만 들었지 어떤 사람인지 한 번도 본적은 없어. 딱히 누구한테 이야기를 들었던 적도 없고. 학생시절에도 인챈트에는 관심이 없어서 말이지.]
“한 번도? 그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는 거야?”
영체가 된 아서는 죽기 이전의 일들이 빠짐없이 기억난다고 했으니. 정말로 한 번도 안 들어봤다는 말이 되었다.
[인챈트 마법 강사는 그 정도 라는 거지.]
뭐, 마법을 배우러 온 것이니 딱히 부딪칠 일은 없겠지.
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열린 틈새로 술 냄새가 물씬 느껴졌다.
‘이게 대체......’
난 냄새를 날리기 위해 손을 저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술병이 이곳저곳 널려있다. 마치 대학교 남자 새내기들 자취방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학교 강사 사무실인데, 이렇게 관리해도 되는 것인가.
“드르릉- 드르릉-. 끄응-.”
책상 위에 늘어져 기가 막힌 코골이를 하는 저 사람이 강사인 것 같았다.
“저기요.”
“드르릉-. 드르릉-.”
꿈쩍도 안 하네. 이런 상태에서 괜히 깨우면 별로 좋은 반응 나오지 않을것 같았다. 어쩔 수 없군. 그냥 도서관이나 가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뒤를 돌았는데.
“드르릉-. 끄헉! 흐어엉?! 누구 있어요?”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가 일어나서는 날 쳐다보았다.
후덕해 보이는 중년 아저씨였다. 침이 턱을 따라 질질 흘리는지도 모르고, 방안에 들어온 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난 어찌할 줄 모르고 가만히 있다가, 그에게 인사한답시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가 정신을 차린 듯. 후다닥 책상에서 내려와 입가의 침을 닦고, 부스스한 갈색 파마머리를 만지며 인사했다.
“아아, 평소에는 사무실이 이렇지 않은데...... 반갑습니다. 인챈트 마법을 가르치는 카립 페퍼입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변명하려 그가 입을 열자 더욱 심한 술 냄새가 내 얼굴에 몰아쳤다. 그 탓에 그냥 나갈까 싶었지만, 어차피 들어온 거 그냥 일을 다 보고 나가자고 생각했다.
“저는 조교인, 아서 페르시입니다. 들어온 건 다름이 아니라-.”
“아, 잠시만요.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그가 검지를 들어 말을 막더니, 떠올리려 노력하는 듯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기억났는지 자신의 손바닥을 주먹으로 때리며 말했다.
“아! 하급 마법사에다 평민 출신인데, 낙하산으로 조교가 된 그!”
“......”
아니,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지.
“그러면 굳이, 술을 숨길 필요가 없겠네요. 그런데,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왜 절 찾아오셨나요?”
그렇게 말하고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술을 들어 한잔 들이켰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는 듯 내게 술을 내밀며 말했다.
“한 잔?”
“...... 아뇨.”
하는 말만 보면 비꼬는 것 같은데, 말의 억양이라든지 행동을 보면 그런 건 아니었다. 이 기묘한 태도는 뭐지. 딱히, 날 싫어하는 건 아닌 건가. 아니면 술 취해서 그러거나.
그가 병에 얼마 남지 않은 술을 입에 탈탈 털어 넣고는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좋아요. 왜 왔는지 말해봐요-. 아니다, 아니지. 평민 출신이 여기 찾아왔으면 뻔하지. 하하. 그러지 마요 아서 조교.”
“네?”
“그레스덴 가문에서 일하는 거 어떨지 상담하러 온 거잖아요. 그런 사람들 한둘이 아니었어. 하지만, 매번 내가 하는 말이 있지. 절대. 가지. 마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거기는 아주 똥덩어리야. 블랙 기업 중에서도 가장 검을 거라고. 제 말 믿어요. 인생을 똥과 함께 저 바닥 밑으로 내던지고 싶은 게 아니라면.”
술에 취해서 내 말도 끝까지 안 듣고,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었다. 역시 도서관에 가아 했나.
“그게 아니라 [인챈트] 마법의 시범을 보고 싶어서 왔어요.”
“으응? 네? 그걸 왜요?”
“혹시 보여줄 수 있나요?”
“흠...... 정말 일하려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그냥 학술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에요.”
“하하. 빽으로 조교 한다고 해서 마냥 빈둥댈 줄 알았는데 노력을 많이 하는군요. 좋아요 이리 와봐요.”
“하하.”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데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첫인상은 최악이었는데, 말을 나눠보니 상당히 호감이 가는 사람이랄까.
그가 일어나서 서재에 있는 보석함을 열더니. 빛이 나는 돌을 하나 들어 주머니에 넣은 뒤, 옆에 자제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가 반질반질한 돌을 하나 고르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주머니에서 돋보기 같은 것을 꺼내서 빛이 나는 돌을 비추었다. 그러자 돋보기에 옅은 보라색이 떠올랐다.
“이것 보여요? 아서 조교는 이걸 보시는 방법을 모르실 테니까,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면. 이 옅은 보라색이 돌이 마력을 회복력을 늘려주는 E급 아티팩트라는걸 뜻해요.”
“호오.”
마력 회복력을 높여주는 아티팩트를 찾고 있었는데 벌써 볼 줄이야. 난 손을 가져다 대어보았다.
「 마력회복용 아티팩트 - 랭크 E
- 마력 회복을 5% 향상시킵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