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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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머리

                                                      

 너무나도 미미한 수치에 입이 떡 벌려졌다. 

 5배를 해도 25%.

 부스트로 500%를 향상시키고 있는 나로서는 심각하게 낮아 보이는 수치였기 때문이다.

 “이 아티팩트에 새겨진 주문을 베껴, 옆에 있는 돌에다 [인챈트]를 하면 아티팩트가 만들어지죠. 자 보세요.”

 그가 돋보기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지팡이를 꺼내 들어 옆에 있는 반질반질한 돌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돌에서 빛이 맹렬히 뿜어져 나오더니, 표면에 마법 문양 같은 게 잠시 나타났다가, 불이 꺼지듯 사그라졌다.

 내가 문양이 사라지기 전 손을 뻗어 만지니 창이 떴다.

팟-.

「미습득 기본 마법 – [인챈트]을 감지합니다.」

 ‘되었다.’

 감지했다는 창을 보며, 기뻐하는 순간.

 탁-. 쨍강-.

 “어이쿠야-.”

 [인챈트]를 끝낸 카립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책상 위로 엎어졌다. 그 덕에 책상 위에 있던 술병들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하하. 이정도야 뭐. 그냥, [인챈트]의 마력소모가 너무 심해서 그래요.”

 아티팩트 하나 만들었는데,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마력소모가 심했다고? 혹시 엄청난 걸 만들었나 싶어 확인을 해봤다.

 「 마력회복용 아티팩트 - 랭크 E

- 마력 회복을 5% 향상시킵니다.」 

 똑같이 E잖아.

 이걸 만드는데 그렇게 힘들었단 말인가?

 “하도 이러니, 이제는 익숙합니다. 그보다 옆에 있는 술 좀 잡아 주겠어요?”

 “아...... 이거요?”

 뚜껑이 열린 채로 반쯤 비어 있는 술병을 잡아 그에게 줬더니, 그대로 받아 입으로 털어 넣었다.

 지친 그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아티팩트의 주문을 베껴 인챈트를 새기는 게 마력 효율이 심각하게 좋지 않은 건가.

 그렇다면, 왜 쓸모도 없어 보이는 낮은 등급의 아티팩트의 가격이 그렇게 비싼 것인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캬. 이게 또 내 마력 피로를 잊게 하거든요. 그보다 어때? 시범을 보고나니, 뭔가 될 것 같아요?”

 “될 거 같-.”

 “그렇죠. 될 거 같지가 않죠. 아티팩트 고유의 주문을 인지하고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 얼마나 섬세하고 사람의 정신력을 갉아먹는데 될 리가 없죠.”

 역시 이번에도 내 말을 끝까지 안 듣고 끼어들었다.

 “옆에서 마력 반응을 지켜본다고 따라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는 인재라면, 그레스덴의 창부. 보라돌이가 가랭이를 촉촉이 적시면서 자신의 가문으로 데려가려 안달을 낼걸요? 하, 언젠가 그 탐욕스러운 안주인 안을 격렬하게 휘젓고 싶었는데. 쩝. 아, 이것도 E랭크 아티팩트네. 하루 술값도 안 되겠군.”

 그는 돋보기에 뜬 옅은 보라색을 보고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더니, [인챈트]한 돌을 손등으로 쳐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다시 술병을 잡고 한 입 들이켰다.

 “E등급 아티팩트라도 가격이 상당하지 않나요? 매점을 보니 그런 것 같던데.”

 “꿀꺽-. 꺽~. 흠. 낮은 등급의 아트팩트 가격이 비싼 건, 유통업자들의 장난이지 실제 가치는 낮아요. 그쪽도 이걸 살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 가격을 비싸게 해서 내놓는 겁니다. 애초에 기술자가 아닌 사람도 만들 수도 있는 거니. 이건 가져가도 2실버도 안 줄걸요? ”

 “2실버도 안 줄거라니......”

 “시장에서 팔리는 건 D 랭크 부터에요. 문제는 내가 [인챈트]만 30년 경력인데도, D랭크마저 잘 만들 수가 없다는 거지. 한창 잘나갈 때에도 주에 세네 개. 잘 만들면 다섯 개를 만들었습니다.”

 어차피 팔리지 않을 것을 비싸게 책정한 이유가 뭐지? 아티팩트에 대한 가치를 전반적으로 높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거나.

 게다가 D 등급의 제작 성공률이 생각보다 훨씬 저조한 거 보니. 아서가 전에 말한대로 생각보다 쓸만한 아티팩트를 만드는 건 힘든 일인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생각에 빠져 멍하니 있자, 날 바라보던 카립이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더니. 비틀비틀 걸어가 돌을 하나 들고 왔다.

 “어디 한번 대단하신 아서조교님의 실력 좀 한번 보죠?”

 “[인챈트]를 해보란 말인가요?”

 “제가 생판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성의를 보였으니. 조교님도 웃긴 꼴 좀 한번...... 아니, 아니. [인챈트]하는 모습 좀 보여주셔야죠.”

 “......”

 코가 빨개져서 상기된 얼굴로 실실거리며 말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아무 관계도 없는 나를 위해 힘을 뺀 것은 맞는 말이라 동조 해주기로 했다.

 난 상태창을 열어 감지된 인챈트 스킬을 개방했다.

「 인챈트 – 베이직 스킬을 개방하시겠습니까?

스킬을 개방할 경우 600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현재 포인트 5615)

lv. 강화불가 」

 ( Y / N )

 [용의 불길]과 마찬가지로 600포인트였다. 난 Y를 눌렀다.

「 [ 인챈트 – 베이직 스킬 lv. 강화불가 ] 」

 - 마력을 이용하여, 시스템에 등록되어있는 ‘효과’를 특정 물건에 부여합니다.

- 스킬 시전의 대상에 따라, 최고 랭크가 변합니다.

- 금속, 보석 종류에 스킬 시전이 불가합니다.

- 이미 제작되어있는 아티팩트에다 손을 대고, [인챈트] 스킬을 사용하면. 시스템에 효과를 영구적으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 

 「남은 포인트는 5015 포인트입니다.」

 설명을 보는데, 한 항목이 눈에 걸렸다.

 시스템에 효과를 등록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안나가 준 팔찌에 대고 [인챈트] 스킬을 써보았다.

팟-.

「[인챈트] 효과 - ‘체력 회복’이 추가되었습니다. 」 

 뭐야? 이게 끝이야?

 이렇게 하면 영구적으로 등록된다고?

 난 떠오른 창을 보고, 경악하며 입을 떡 벌렸다. 한참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바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인지돼서 곁눈질해 카립을 보았는데. 

 그는 신경 쓰지 않고, 술만 계속 마시고 있었다.

 난 정신을 다잡고, E랭크 마력회복 아티팩트에 손을 대었다.

 ‘그렇다면 이것도.’

「[인챈트] 효과 - ‘마력 회복’이 추가되었습니다. 」 

 ‘좋았어.’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효과를 영구 등록이라니.

 이거라면 나중에 희귀한 능력을 가진 아티팩트를 보았을 때, 놓치지 않고 복사할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티팩트 효과가 중복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여러 개를 만들어서 한꺼번에 사용할 경우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E급 아티팩트의 가치가 낮을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보석류는 혈통 마법으로 아티팩트를 만든 거니, 혹시 [인챈트]로 만들어진 거랑 중복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생각이 되자. 난 돌에다 손을 대고 ‘체력 회복’을 먼저 [인챈트] 하기 시작했다.

 [인챈트] - 체력회복.

 돌에서 광활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마법 문양으로 보이는 것이 불처럼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반질반질했던 돌 표면이 푸른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챈트] 이팩트가 생각보다 요란해서, 혹시 높은 등급인가 싶었는데.

 팟-.

 「체력회복용 아티팩트 - 랭크 D 가 인챈트 되었습니다.」

「체력회복용 아티팩트 - 랭크 D

- 체력 회복을 10% 향상시킵니다.」

 겨우 D 등급의 아티팩트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인챈트]도 ‘마법’ 재능에 연동이 되는 것이었나. 실망했을 그때.

 “뭐?”

 그러자 옆에서 실실 웃고 있던 카립이 [인챈트]가 성공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했다.

 그가 얼떨떨한 얼굴로 날 바라보며 걸어오더니. 돋보기를 대보곤 깜짝 놀랐다.

 “D랭크 체력회복 아티팩트라고? 뭐야 이거. 아니, 아서 조교. 인챈트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허 참. 내가 결과를 잘못 보았나. 아니네, 맞네.”

 그가 돋보기에 떠오른 하늘색을 보고서, 계속 횡설수설했다.

 “처음 한 거 맞습니다.”

 “이야. 이게 초심자의 행운인 건가.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왜 안 쓰러져요?”

 “네?”

 “[인챈트] 처음 한 사람들이 마력 소모에 익숙하지 않아서 보통은 바닥에 엎어지고 시작하는데 이상하네? 몸 괜찮아요?”

 카립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계속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오히려 의아한 건 나였다.

 전혀 피로하지 않다.

 아니, 애초에 마력 자체를 크게 소모하지 않았다. 마치 공장처럼 하루종일 찍어내도 괜찮을 기분일 정도로.

 ‘그보다. 중복이 안 되는군.’

 상태창을 확인해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더 랭크가 높은 안나의 아티팩트만 적용이 되었다. 아쉬움에 입맛이 다셔졌지만, 그래도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도 힘겨워하는 [인챈트]를 연달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정말 괜찮은가 보네.”

 그는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재밌는걸 못 봐서 못 내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는 이내 관심을 끊고 술을 홀짝였다.

 이제 나가볼까.

 마법도 배웠겠다. 강사에게 배울 수 있는 게 더 없어 보였으니.

 ‘인챈트 할 돌이나 구입하고 나가볼까?’

 그렇게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보다. 이거, 체력 회복 아티팩트에 D랭크이니 적어도 5골드는 건질 수 있겠는데요?”

 그 말에 멈춰섰다.

 “5골드요?”

 지금 난 조교 수습으로 60실버씩 받고 있었다. 그런데 5골드라고? 3년 뒤 수습이 끝나고 받는 내 월급이랑 똑같지 않은가.

 “못 먹어도 5골드라는 거죠. 회복 아티팩트는 비싸게 팔리는 편이거든요. D랭크 정도면 시중에서 35에서 40정도로 팔리는데. 그레스덴 가문의 것이 아니라 몰래 팔아야 하는지라 납품가격을 제대로 못 받아요. 최대로 받는다면...... 7골드? 어떻게 관심 있으면, 제가 팔아 드려요?”

 아티팩트가 비싸다는 것을 이제까지 까먹고 있다가. 그의 말에 불현듯 생각났다.

 이거. 돈벌이가 되겠구나.

 중간 유통에서 떼어가는 게 어마어마했지만, 애초에 궁핍한 상태인 나로서는 괜찮은 조건이었다.

 요새 체형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는지라, 옷을 거의 매일 바꿔입는지라 잔고가 점점 말라가고 있었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 공짜로 해주실 리는 없으실 테고. 얼마를 원하시죠?”

 “이야. 아서 조교. 귀족 빽으로 조교 했다길래 귀족인 척 거들먹거리며 다니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말을 나누면 나눌수록, 평민 출신의 냄새가 풀풀 나네요. 대화가 빨라. 아주 시원해. 그렇죠, 세상에 대가 없는 게 어디 있겠어요. 세 손가락 중 하나를 가져갈게요.”

 3분에 1을?

 그 말에 날강도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카립을 바라보자. 그가 허공에 손을 내저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니, 너무 많이 가져간다고 생각하지 마요. 애초에 저도 그레스덴 가문에서 근속하지 않았으면 팔 사람도 못 찾았으니까. 게다가 제가 총대 매는 것도 포함된 가격인 거에요. 여기에서 함부로 인챈트하고 팔려고 보면, 그레스덴 가문에 블랙리스트 올라가는 거 순식간이니까. 대신 손장난 없이 투명하게 팔게요. 저야 술 먹을 돈만 있으면 뭐.”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술에 파묻혀 사는 절제 없는 사람이 투명하게 판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지만.

 카립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확인은 해보겠지만, 그의 말이 맞다면 애초에 그가 없을경우, 내가 이걸 많이 만들어봤자 팔 길이 없을 테니까.

 거기다가 다른 사람과 달리 난 인챈트를 하는 게 쉽다. 애초에 돈도 별로 없는 상황이니 한 푼이 급한 심정 아닌가.

 “알겠어요. 정당하다고 생각할 만큼 돈이 돌아온다면 문제 삼지 않겠어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건 한 번에 몇 개까지 팔 수 있겠어요?”

 “예? 그게 무슨?”

 “D랭크 아티팩트요. 한 번에 몇 개까지 팔 수 있으실 것 같냐고요.”

 “그걸 물어보는 이유가 뭡니까? 어차피 쉽게 못 만들어요.”

 “흠..... 좋아요. 아티팩트 하나 더 만들어도 괜찮을까요?”

 “푸핫.”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카립이 한번 웃더니 풋내기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내게 말을 이었다.

 “아서 조교. 욕심내는 건 알겠는데, [인챈트]를 한번 더하겠다고요? 이렇게 빨리 연달아 하면 피똥 싸요. 거기다가 D 랭크 나오는 거 쉽지 않다니까.”

 “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난 이참에 ‘마력 회복’ 아티팩트도 하나 만들려고 했다. 거기다 포인트 부여로.

 D등급뿐만 아니라 더 높은 등급이 나왔을 때는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보고 싶어서였다.

 “흠...... 아 모르겠네. 뭐, 내 몸도 아니니. 기다려봐요.”

 그러더니 다시 반질반질한 돌을 가지고 왔다. 난 그 돌을 잡아 표면을 엄지로 쓰다듬었다.

 “이 돌이 사무실에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건가요?”

 “좋거나 말거나 가장 기본적인 거죠. 보석으로 세공된 아티팩트를 만들 거 아니면, 그레스덴에서도 이걸 써요.”

 “아,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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