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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머리
“클럽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봐요?”
“동물이 사라졌어요. 그것도 실버 그리폰이.”
“아......”
“경위파악을 하기 위해, 어제 방문했다는 클럽원들은 죄다 찾아서 동선 파악하고 [룬]에 담긴 마력을 감지했는데. 나중에 찾아온 파비앙교수가 조교님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아서 조교님이 어제 마지막으로 우리 밖으로 꺼냈다고 하던데. 맞나요?”
마지막이라.
그걸 알면서도 경비팀장이 한 명 따라왔다는 건, 딱히 훔쳤다고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니구나.
“아마 제가 마지막이 맞을 거예요. 어제 오후 늦게 파비앙 교수랑 우리에 가서 실버 그리폰을 타고 난 뒤. 우리에 집어넣었으니까요.”
“흠...... 그 실버 그리폰이 [조련 인장]이 새겨지지 않은 동물이었다면서요?”
“그렇지만, 묘하게 사람을 잘 따랐죠.”
내 말에 경비팀장이 이마를 긁적였다.
“하아...... 그렇다 하여도 [조련 인장]이 새겨지지 않은 동물을 밖으로 내보낼 생각을 하다니. 파비앙 교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여튼, 경비팀 쪽에서는 어제 누군가 우리의 결계를 거는 것에 실수가 있어서. 우리가 닫히지 않고 열렸고, 그 탓에 실버 그리폰이 도망치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비팀장이 곤란하다는 듯 말을 했다.
그의 얼굴을 보니 이런 일이 생길 줄 전혀 몰랐다는 당황스러움과 성가신 일이 발생한 것에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던 그가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에고. 얼마 전에 그런 일이 있는지도 며칠 안 지났는데, 또 이런 일에는 왜 엮이신 거에요. 곤란하게 되었네요. 그래도 잔재마력 감지에서 문제가 없으면, 아무 탈 없을 테니 일단 가보시죠.”
“하하, 그러게요.”
잔재마력 감지라.
내 예상대로라면, 문제가 있을 거 같은데.
****
클럽 우리에 도착하니, 한 30명쯤 되는 사람들이 보였다.
로브에 칼 모양 브로치를 달고 있는 경비팀원들과 파비앙 교수, 그리고 몇몇 학생들이었다. 혹시 애니가 있나 찾아봤는데,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파비앙 교수가 얼굴이 파리하게 질린 채로, 엄지를 입에 물고는 멍하니 땅만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아직 가지 않고 다 남아 계시네요? 여기에 사람들 많이 모여있으면, 저희가 일하는 데 방해되니까. 만약 기다리실 거면 클럽실로 가셔서 기다려 주세요.”
그 말에 경비팀원들이 학생들을 우리 밖으로 내보냈다.
줄줄이 나가는 학생들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다들 좋은 시선으로 날 보지 않았다. 분명, 내가 마지막에 우리를 이용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겠지.
우리 안에는 경비팀장과 경비팀원 두 명, 그리고 나와 파비앙 교수만 있었다.
파비앙 교수는 울타리에 걸쳐 앉아 있었는데, 초조해 보이는 데다가. 혈색이 아주 나빠 보였다.
뭐지. 연기인 건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교수의 상태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제 그건, 까치머리에게 파비앙 교수가 연구실로 가져다 놓으라고 시킨 것 아니었나?
난 잘못 생각했나 싶어서, 실버 그리폰 위치 지도를 열어보았다.
아직 연구실에 있다.
대체 뭐지.
어제 그게 까치머리의 단독 행동이었단 말인가.
아니, 파비앙 교수가 시킨 것이든. 까치머리가 혼자 한 짓이든. 왜 이런 촌극을 벌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교 연구실에 있는 실버 그리폰 때문에 경비팀까지 출동하게 만들다니. 대체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런 짓을 하는 거지?
훔치려고?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이상했다.
만약 훔쳐서 데리고 나가려 했으면, 이목이 쏠리기 전 밖으로 빼돌리는 게 더욱 확실했을 거다. 이제는 실버 그리폰이 사라진 것에 대해 집중할 테니. 자리를 비우는 사람을 의심할 게 분명했으니까.
정말 뭐지?
그렇다고 누명을 씌우려는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금방 들킬 거짓말이었으니.
그냥 충동적인 행동인가.
“아서 조교님? 이리로.”
경비팀장이 실버그리폰 우리 옆에 있는 [룬]에다 손을 대고 나를 불렀다.
그 말에 땅만 보던 파비앙 교수가 눈만 올려 나를 노려봤다.
경비팀장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가자, 그가 나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 마법을 감지합니다. 」
창이 뜨더니, 이내 경비팀장의 표정이 구겨졌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오른쪽 눈썹을 검지로 긁적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서 조교님이 마지막으로 사용한 게 맞군요.”
“그런가요?”
“뭐? 그런가요!?”
뒤에 서서 초조하게 있던 파비앙 교수가 어이없다는 듯 소리를 쳤다.
“실버 그리폰이 없어진 꼴을 보고서도, 뚫린 입이라고 그런 말이 나오는가?”
파비앙 교수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가 분을 못 참겠다는 듯. 창백했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 뭣도 없는 널 극진히 대우해줬는데. [룬]으로 울타리를 제대로 닫지도 못해서 날 엿먹여?”
“파비앙 교수님 진정 좀-.”
“애초에 실버 그리폰이 도망친 거 보니까, 길들인 것도 아니었구만. 어떻게 하려고 길들인 척하며, 내게 요수나 부렸던 건가? 지금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란해졌는지 알기나 해?”
“교수님, 그만하시죠. 아직 결과 다 나온 거 아닙니다.”
경비팀장이 말리는데도 화를 참지 못하고 계속 씩씩거리며 뭔가 닥치는 대로 소리치고 있었다.
난 그것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비웃음을 흘렸다.
참, 얕은 사람이다.
언제 내가 길들였다고 말을 했던가.
게다가 어제 알랑방귀 뀌던 그가 이렇게 쉽사리 태도를 전환하다니.
역시나.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었다.
“경비팀장님. 일단 볼일은 다 끝난 거죠?”
“아, 네. 일단은 그런데요-.”
“너! 지금 내 말 무시해?”
“끝났다면, 전 일단 일과가 있어서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만약 제가 필요한일이 있으면, 찾으러 돌아다니시지 마시고 전서구 보내세요. 최대한 협조 할 테니까요. 그리고 조사 좀 잘 부탁드리고요.”
어디 있는지 알기에 당장에라도 해결을 볼 수 있지만.
그런다고 딱히 얻을 이득이 하나도 없었기에 잠시 상황을 보기로 했다.
애초에, 실버 그리폰이 나에게 묶여 있는 이상.
사건 자체가 내 통제 안에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초조할 필요도 없었다.
그보다 까치머리.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그 생각을 역으로 이용해서, 내가 얻을 게 뭐가 있는지 한번 알아보고 싶었다.
“아, 예. 아서 조교님, 알겠습니다만.”
경비팀장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학교의 기물이 일정 금액 넘어서는 것을 분실했을 때, 불이익뿐만 아니라 소송이라든지. 해고라든지. 문제가 커질 수 있어요. 이거 괜찮으시겠어요?”
그 말에 조금 놀랐다.
해고당한다는 말에 놀란 게 아니다. 경비팀장이 진심으로 날 걱정해주는 기색이라 놀랐던 거다.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짙은 갈색의 스포츠머리, 거칠고 투박한 얼굴에다 덩치도 큰 사람이었다. 그렇게 정도 있어보이지 않은 인상인데. 이름도 모르는 이 사람이 대체 날 왜 걱정을 해주는 거지?
“경비팀장님.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예? 그건 왜..... 루트 입니다.”
“루트님이시군요. 꼭 기억하겠습니다. 수사 잘 부탁드려요.”
“네? 예. 뭐, 일단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야! 아서 조교!”
“교수님. 진정하세요.”
난 요란스럽게 난리를 피우는 파비앙 교수를 뒤로하고 우리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밖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다 내게 쏠렸다.
루트 경비팀장이 클럽 실에서 기다리라고 하며 내보냈던 학생들이 아직 돌아가지 않았는지 죄다 여기 있었다.
주목하는 그들의 시선에는 고운 감정들이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문제아를 보는듯했다.
이해는 간다. 안 그래도 축제 준비로 한창이었을 텐데 이들도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겠지. 게다가 정황만 보면 내가 잘못한 것처럼 보일 테니까.
난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그곳을 벗어났다.
****
「 2배 부스트가 끝났습니다. ( 8번 중첩, 숙련도 256 배) 」
「 마력 회복 5배 부스트가 끝났습니다. 」
「남은 포인트는 3465 포인트입니다.」
‘생각보다 빨리 C 랭크에 도달하겠는데?’
노가다를 끝내고 난 뒤, 개인 마법 연습실을 나서며 생각했다.
기대보다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게 노가다에 도움이 되었다. 하긴, 수치상으로도 100%의 향상이니 도움이 안 될 리가 없었으니까.
같은 시간에 한 마법을 5번 쓸걸, 6번 쓰는 꼴이 되었으니. D+ 랭크 때보다 더욱 숙련도가 빠르게 올랐다.
그 덕에.
「[마력] C- 랭크 (59%)」
생각보다 랭크 숙련도를 많이 올려, 이대로라면 내일 C랭크에 돌입할 것 같았다.
난 로브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B랭크의 마력회복 아티팩트를 꺼내 바라보았다.
‘이 돌이 300골드 정도라.’
보라색 빛깔이 영롱하게 도는 돌의 겉면을 쓰다듬는데, 문득 안나가 준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이 돌이 300골드라면, 안나가 빌려준 팔찌는 가격이 얼마나 된다는 걸까.
500 골드?
아니, 성능이 오를수록 가격이 폭등하는 걸 생각하면 600에서 700 골드까지 갈 수도 있을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돌이 아니라 보석으로 만들어진 아티팩트였으니 더 비쌀 수도 있었다.
‘정말, 이 아가씨는 대체 뭘 보고 나한테 이런걸 빌려주는 거지.’
만약 그 정도 가격이고. 내가 평범한 조교였다면, 이걸 들고 도망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수습으로 60실버 받는 사람의 손에 이런걸 쥐여주다니.
수습이 끝나도 월급이 5골드에다. 능력이 없어서 승진이든, 월급의 변동이 없으면 단순히 계산해도 10년 이상은 안 쓰고 벌어야 했다.
그런 걸 빌려줬다고?
게다가 턱살이 목적이라면서, 오늘 만났을 때 딱히 상관도 안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모를 여자란 말이지.
이렇게 왜 빌려줬는지 의문을 표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단순히 그녀가 내게 호감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손목에 찬 팔찌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있을 때.
“이야. 정말 여기 있었네?”
까치머리의 거들먹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잘못 들었나 싶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는데, 정말 까치머리가 서 있었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이다.
“요새, 네가 마법연습을 하러 다닌다고 말들이 많았는데. 와 정말 하고 있을 줄 몰랐다. 다른 조교들도 무슨 헛소리냐고 믿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보다. 푸핫. 초급 연습실이라니. 너 정말......”
까치머리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비웃었다.
개인 마법 연습실을 사용한다는 소문이 퍼진 건가? 예전에도 엘레인과 사고 친 게 학교에 소문이 다 퍼졌지.
이 학교는 사람이 참 많은데도, 규모보다 더 작은 사회처럼 느껴졌다.
뭐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안 그래도 내가 용건 있던 사람이 알맞게 찾아 와주었으니.
“왜 온 거야?”
“글쎄? 잠시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
“네가 나랑?”
“클럽에 있는 학생들한테 이야기 들었어. 너,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며?”
까치머리가 아주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아, 그거? 별로 안 곤란한데?”
“푸흐. 그 나이 돼서도 세상 물정 이렇게 몰라서 쓰나. 지금 얼마나 곤란한 처지에 처했는지 모르니까.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거야.”
“글쎄. 그건 나중에 보면 알겠지. 정말 안 곤란하다니까? 그보다 그거 이야기하러 여기 온 거야?”
내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까치머리가 잠시 당황하더니.
얘가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하나 싶은지. 관자놀이를 긁으며, 날 바라보았다가 바닥을 내려보기를 반복했다.
이내 이게 아닌데? 라는 표정을 짓더니. 까치머리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야. 잠만, 네가 상황의 심각함을 모르나 본데. 학교에서 소송 들어가면. 너도 전액은 아니지만, 실버 그리폰의 피해금 일부를 내야 해. 어쩌면, 해고될 수도 있고 말이야. 그런데도 괜찮다고?”
그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올뻔했다.
아아. 이 새끼.
내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거구나.
어떻게 반응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래, 어차피 조교가 뭘 하려는 건지 알아보려 했으니, 그의 얕은 수작에 발을 담가 보기로 했다.
“아니, 그랬단 말이야?”
“어? 아아-. 하하하. 그래, 그래. 몰랐었구나? 말 그대로 아주 위험한 상황이야.”
내가 놀란 척 눈을 크게 크게 뜨고 말을 하자. 까치머리가 얼떨떨한 표정을 풀며, 다시 약을 팔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평민 출신이라 가문의 뒷배가 없는 너로서는 아주 곤란하게 된 거지. 실버 그리폰의 가격은 상당하니까.”
“아아...... 어쩌면 좋지?”
내가 처량한 표정을 지어내며, 까치머리를 바라보자.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
“뭐? 어떤?”
내 물음에 까치머리가 의기양양하게 다가오더니.
두 손으로 내 양어깨를 힘있게 잡았다.
「시스템에 [고일 크레덴스]가 등록되었습니다.」
“네겐 아주 다행히도 내가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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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코 감사합니다.
01.
김장교님 후원 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illya님과 hunz님도 쿠폰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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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불금 즐겁게 보내시길.
내일은 두편으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