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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즈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정말 이렇게 책에 손만 가져다 대는것으로 마법을 배울 수 있을 줄이야. 그 덕에 끓어 오르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마법 감지처럼. 상태 창에 영구히 등록되는 건 아니구나.’
유니크 스킬인 마법 감지와 달리, 상태 창에 등록이 되지 않아, 마법을 배우려면 포인트를 모아놓고 책을 만지러 와야 한다는 점은 아쉬웠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레어 스킬이 4000~5000 포인트를 소모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만 예비로 들고 다녀도 마법을 배우는 데 충분하리라.
물론, 학교 밖을 돌아다니기 전까지는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학교 안에 있는 마법서야, 언제든지 와서 배울 수 있으니까.
난 한번 쓸만한 마법서가 있는지 찾아봤다.
어차피, 언젠가는 다 배울 거라 해도,
지금 당장 포인트를 아껴야 하는 상황이니 간추려서 배워야 했다.
빠르게 훑은 거라, 놓친 마법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충이나마 끌리는 마법서 몇 가지를 골라보았다.
‘대충 이 정도인가?’
「 [연쇄번갯불] - 베이직 스킬
- 6 개체에 연쇄적인 전격 충격을 줍니다.
- 부여된 마력의 70% 데미지를 줍니다.
- B 랭크 수준까지 마력을 담아 발사 할수 있습니다. 」
「[얼음화살] - 베이직 스킬
- 냉기를 담은 마력 화살을 발사합니다.
- 얼음 화살이 물에 맞으면, 물이 급격하게 냉각됩니다.
(냉각되는 물의 양은, 부여된 마력양과 비례합니다.)
-B- 랭크 수준까지 마력을 담아 발사 할 수 있습니다. 」
「[독침] - 베이직 스킬
- 독기를 담은 마력 침을 발사합니다.
- 마력에 비례한 감염 데미지를 줍니다.
- 피사체에 부딪히자마자 독가스가 주위로 퍼져나갑니다.
(독가스의 범위는, 부여된 마력양과 비례합니다.)
- B 랭크 수준까지 마력을 담아 발사 할 수 있습니다.
<주의> 독가스에 불이 닿으면 폭발할 수 있습니다. 」
「[비행] - 베이직 스킬
- 마력을 이용하여 비행합니다.
<주의> 마력소모가 심하므로, 무작정 날 경우 위험한 상황에 부딪칠 수 있습니다. 」
각 속성별로 하나씩 골라본 것이다.
죄다 600포인트의 베이직 스킬.
불속성은 [용의 불길]이 있었기에 넘어가고,
바람속성은 그야말로 [바람] 마법이 있었기에 보조적인 마법을 선택했다.
속성마다 마법을 하나씩 고른 이유가 있었다.
속성간의 상성 때문에? 물론 그것도 있지만,
이것을 배워서 사용하는 것 만으로, 내 위상이 높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에게는 적성과 맞는 속성이라는 게 존재한다.
물론, 적성과 맞지 않는 속성의 마법을 아예 못 쓰는 건 아니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마법의 위력을 온전히 낼만큼 마력을 부여 넣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난 다르다.
익히는 순간부터 모든 마법을 숨 쉬듯이 완벽하게 쓸 수 있었다.
내가 이 마법들을 다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만으로, 마법사로서의 위명을 떨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었다.
저 마법들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선택한 게 있었다.
바로 처음 잡았던 마법서인 [전기채찍]. 그렇게 해서 총 5가지 마법이었다.
전격 마법을 두 개 배울 필요는 없었지만, [전기채찍]만큼은 배워야겠다 생각했다.
끌린 이유는 별거 없었다.
‘채찍’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채찍이 좋아서 배우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질색하는 편이었다.
아직도 저번에 채찍질을 당한 걸 떠올리면, 닭살이 올라오는 마당에 내가 채찍을 좋아할 리 없었다.
그런데도 이 마법을 배우려는 건, 오히려 내가 채찍을 무서워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서워하는걸 타인도 무서워 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
배트맨도 그런 생각에 박쥐 옷을 입고 다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역시 아쉬운 건.’
신체를 강화하는 마법이 없었다는 거다.
달리는 속도를 빠르게 하는 마법이나,
[마력 방패]가 아닌, 몸의 방어력 자체를 높이는 마법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간단한 마법조차 없었다.
아서에게 물어보니, 마력이 신체를 강화하는 마법 자체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라진 지 오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입맛을 다셨다.
마법사들이 격렬하게 운동하는 이유가 다 있었던 거다.
‘그보다, 대부분의 마법서들이 전투에 치중되어있네.’
어떤 분야든지 군사부문에서 먼저 발전되는 것은 그럴 수 있다만,
마법 학교에 있는 마법서들이 대부분 전투에 치중되어있는 마법들이라 조금 놀라웠다.
아서가 사고로 죽을 때까지 학교에서 잘 지냈다는 말과 며칠간 내가 생활해본 기억으로 무척 평화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런 마법을 써야 할 만큼 이 세계의 정세가 불안한 것인가?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도 년에 2번씩 군사훈련을 한다고 했었지.
아서의 말로는 명목상이라고 하긴 했지만, 딱히 이유도 없이 훈련을 할 리가 없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마법이 싸우는 용도이던데. 전투마법에 치중되어있는 이유는 뭐야?”
[뭐, 많이 쓰이는 것들이니 모아둔 것이지.]
“크로넬 제국은 평화로운 상태 아니었어? 귀족들이 늦은 나이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것도 그렇고, 아주 평화에 오랫동안 찌들어 살았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흠...... 네가 하는 말 듣고 나니 생각한 건데, 너 시간 있을 때 역사나 세계정세와 같은 기초적인 교육을 꼭 받아야 하긴 하겠다. 내가 하기는 무리고, 나중에 청강이라도 듣자.]
그 말에 난 턱을 눈썹을 긁적거렸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 저번에 엘레인에게 혈통마법의 진명을 말해서 낭패를 당한 것도, 이 세계에 대한 무지 때문 아니었는가.
[물론, 내가 죽기 전까지 크로넬 제국에서 전쟁이 터진 적은 없어. 주위 국가에게 안보의 위협은 받았어도 말야. 하지만, 그런 전투계열 마법들이 많이 쓰이게 되는 이유가 다 있지. 크로넬 제국은 평화롭지만, 이 제국을 벗어나는 순간. 야성에 맞부딪치게 되는 거거든.]
“위험하다는 소리야?”
[그렇다기보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켜야 한 다는 거지. 뭐,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전쟁하고 있는 국가들도 있고, 북쪽 마숲지대에 있는 마물들이 제국의 경계까지 밀려 들어오고 있거든. 제국의 중심부에 있는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말이야.]
“그렇군.”
그러니까 내가 평화롭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로마의 평화 같은 건가.
세계는 전란으로 가득 찼지만, 제국만은 평화로워서 내가 느낄 수 없다는 것.
아니, 그렇게 옛날을 돌이켜 보지 않고, 내가 이 세계로 오기 전만 해도.
허구한 날 뉴스에서 어디가 전쟁하는 중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평화롭게 살던 나로서는 이 세상에 전쟁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딱히 체감되지 않았었지.
심지어 휴전 국가인데도 전쟁이라는 건 나와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로 느껴졌었다.
[아아, 전에 말하지 않았는데, 군사훈련 때 마숲지대에 파견 신청을 할 수 있어.]
“북쪽으로 말이야?”
[응, 제국 경계로 보내지는 거야. 일당도 많이 주고, 인사점수 가산도 커. 그래서, 학교에 있는 평민 직원 중 많은 사람들이 파견을 신청해.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돈보다 군부의 인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야.]
“호오.”
관심이 확 갔다.
일당이나 인사점수 때문이 아니다.
마법사들의 전투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그게 보고 싶었다. 그리고 군대에 있는 전투 마법사들의 수준도 어떨지 궁금했다.
‘실전 경험이 없어서는 발전이 제한될 수밖에 없어.’
이전에 엘레인과의 대련 때를 떠올렸다.
무영창을 할 능력이 충분했음에도, 경험의 부족과 마법이 주는 위압감에 짓눌려 내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한 그때를.
수치상의 스펙이 얼마나 뛰어나던, 막상 싸움에 닥쳤을 때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거품을 늘리는 것뿐 아닌가.
물론, 타인과는 마법을 쓰는 방식 자체가 다르므로 아무리 경험이 없다 해도 1인분 이상은 가뿐하겠지만 말이다.
[혹시 관심 있어?]
“그건 그때가서 생각해 볼게.”
가야겠다고 마음이 많이 기울었지만, 아직 여유가 있으니 굳이 지금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시금 골라놨던 마법서들을 쳐다보았다. 총 5권. 다 배우려면 3000포인트가 필요했다.
지금 포인트가 많긴 하지만, 혹시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는 포인트이니, 몇 개씩 나눠서 배우기로 했다.
‘오늘은 두 개만 배워볼까?’
그렇게 결심한 난 배우고자 하는 책을 집었다.
[전기채찍]과 [비행] 말이다.
「남은 포인트는 6210 포인트입니다.」
마법을 습득한 뒤, 책들을 정리하고 위치를 외워 두었다.
나중을 기약한 채 그곳을 벗어났다.
그보다, 나비에게 어떻게 지시한다. 책 제목을 모르는데, 주제만 말해도 찾아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비에다 말을 붙어보았다.
“고대종 관련 도서.”
그러자 나비의 몸체가 파랗게 빛이 나더니, 날아가기 시작했다. 뒤따라 가자 의외의 곳에 도착했다.
“흑마법?”
왜 여기에 이 책이 있단 말인가. 고대종의 마력이 흑마법으로 분류되는 것이었나. 아니면 분류하다 보니 이곳에 오게 된건가.
흘깃 보니 아서도 의외라는 기색이었다.
한 30권 남짓한 고대종에 대한 서적들이 있었다. 난 몇 권을 챙겨서 독서를 할 수 있는 책상으로 갔다.
그렇게 책을 보려는데.
‘그러고 보니, 독서능력향상 부스트가 있었지.’
피식-.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이젠 반사적으로 뭐만 하면 부스트부터 떠오르는구나.
하긴, 나쁜 습관은 아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으니.
난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 [독서능력 향상] 부스트
- 책 읽는 속도 5배 향상.
- 이해력 2배 향상.
300 포인트를 사용하여, 3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속독 부스트를 사용 하겠습니까? (300포인트 사용)
( Y / 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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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브 스킬로 소유 가능한 부스트 입니다>
[속독] - 패시브 스킬
- 책 읽는 속도 5배 향상.
- 이해력 2배 향상.
- 액티브 부스트와 중복되지 않습니다.
2500 포인트를 사용하여, 부스트를 영구히 패시브 스킬화 합니다. (현재 포인트 6210)
lv.0 -> lv.1 」
( Y / N)
내용을 보고 잠시 흠칫했다.
이거 패시브 스킬화 가능한 부스트였구나.
게다가 다른 부스트와 달리, 읽는 속도와 이해력의 배율이 낮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 볼 것도 없었다.
스킬화하기로 했다.
「남은 포인트는 3710 포인트입니다.」
준비를 마친 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
‘호오, 저 책에 관심을?’
“흐흐......”
도서관의 음침한 사서, 판토는 오늘 무척 흥미가 당기는 사람이 있었다.
흑마법쪽 서적을 뒤적거리는 남자.
그것을 보고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역시 흑마법에 관심이 지대했기에.
흑마법에 관심이 있다는 것만으로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없었다.
위험하기에? 그런 게 아니다.
아무리 흑마법에 관심이 많다 하더라도, 진짜 흑마법서를 손에 쥐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얻으려 해도 쉽사리 얻을 수 없는 마법인 것이다.
게다가 발전이 멈춘 흑마법과 달리, 사람들에게 많이 사용되는 마법은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 대부분은 흑마법에 관심 잇는 부류를 위험하다고 생각하기보다. 중2병, 음침한놈, 별종으로만 여겼었다.
‘아니, 저 책을 보겠다고?’
그런데, 그런 흑마법 분류 도서 중에서도 인지도가 가장 낮은 고대종의 마력에 관한 책.
엄연히 말하면 흑마법은 아니지만, 애초에 어떻게 분류되든 상관 없는 도서라 저기에 있었던 거다.
그 책을 저 남자가 관심을 가졌다.
고대종에 관한 책을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을 쌓아 들고 가는 걸 보며, 판토는 냄새를 맡았다.
자신과 같은 별종의 냄새를..
그랬는데.
‘뭐야 그냥 책을 빠르게 넘기잖아?’
앉아있는 남자는 눈으로 훑고 빠르게 한장한장 넘길 뿐이었다.
그냥 무슨 내용인지 알아볼 생각이었나? 이런 부류를 읽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 알아보려고?
판토는 갑자기 든 배신감에 울화가 치밀었다. 불같은 피해의식. 혼자 북치고 장구 치는 것이었지만, 그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쳇-. 그러면 그렇지.’
쓴 입맛을 다시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는 남자에게 관심을 끊었다.
하지만, 판토는 몰랐다.
빠르게 눈으로만 훑고 있는 남자.
그 남자가 사실 정독을 하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