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8 / 0060 ----------------------------------------------
브론즈
사고라.
처음 운을 띄우는 말부터 아주 거슬렸다. 대체 파비앙 교수가 안톤 교감에게 어떻게 이야기했길래 이렇게 말하는 걸까.
잠시 눈을 돌려 파비앙을 흘겨보았다.
내가 나락에 빠질 거라 생각하는 것인지, 벌써부터 으스대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왜 검증되지도 않은 마법으로 학교의 귀중한 자산인 실버 그리폰을 길들인 건가. 게다가 완벽하게 길들였다고 자만해선 우리 문까지 열고 가다니. 하참-.”
아, 이런 식인가.
안톤 교감의 말 중 무척 거슬리는 단어가 있었다.
‘검증.’
그것을 듣자 파비앙 교수가 어떤 말로 안톤 교감을 구슬렸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이렇게 판을 벌였는지도.
그렇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게 몇 가지 있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창을 띄워 확인해 본 바로는 아직도 실버 그리폰은 연구실에 있었다.
내가 실버 그리폰의 위치를 안다고 파비앙 교수에게 말하기까지 했는데, 일을 벌일 거면 위치라도 옮겨놓고 하는 게 낫지 않았었나?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파비앙이 까치머리 고일과 협력하고 있는 가였다.
분명 연구실에 있는 실버 그리폰을 확인한 파비앙 교수는 고일이 내게 와서 자신을 음해했다는 말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충돌이든, 협상이든 있었을 것이었다.
그것을 알아봐야겠다.
애초에 파비앙을 잡으려고 벌린 판이 아니라, 고일을 위한 판이었으니까.
내가 대답 없이 가만히 있자, 찔려서 말을 못하는 거라 생각했는지, 안톤 교감이 고개를 절래 흔들며 말을 이었다.
“쯧. 하여간, 평민 출신은...... 정말 무슨 정신머리로 그런 일을 벌인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구만. 혹시, 잘못되었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은 없나?”
“검증이 되지 않은 마법은 아닙-.”
“어허! 아서 조교, 또 그런 돼먹지 않는 변명으로 사람의 시간이나 빼앗고 있는가. 교감선생님이 질문한 대로, 왜 검증도 안 된 마법으로 길들일 생각을 했느냐. 이것만 대답하면 되지 않은가? 어디서 사족을 붙이는가, 사족을!”
파비앙 교수가 호통을 치며 말을 끊어왔다.
어이가 없어 내가 입을 다물자, 안톤 교감이 호탕한 척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허허. 파비앙 교수, 너무 힘 빼지 말게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변명을 늘어놓기 급급한 사람의 수준이야 뻔한데, 뭘 가르치겠다고 목 아프게 소리를 지르나?”
말 속에서 느껴지는 명백한 악의.
이전부터 날 싫어했던 티를 팍팍 냈던 분답게 이런 공적인 장소에서 너무나도 공정한 대우를 해주고 있었다.
한참 신나서 웃던 안톤 교감이 얼굴에 웃음을 지우고 다시 날카롭게 물어왔다.
“그래. 어제 변명한답시고 파비앙 교수를 데리고 가서 다른 그리폰까지 길들였다면서?”
“파비앙 교수가 제가 쓴 마법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그래서-.”
“하아, 자네, 어떻게 그런 변명을 할 수 있나. 내가 궁금해 했다니. 자네가 내게 보여주고 싶다고 찾아온 것 아닌가.”
파비앙 교수가 헛소리로 내 말을 끊고선, 이내 고개를 한번 젓더니 내게 손가락질하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실버 그리폰을 길들인 것부터 생각해보세. 검증되지 않은 마법으로 이슈 몰이 해서 학회에 보고하려 욕심을 부린 거 아닌가? 그러다가 이 사달이 난 건데, 내가 자네가 쓴 마법을 궁금해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누가 믿겠는가.”
파비앙 교수가 얼토당토않은 말로 날 밀어붙였다. 반박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날 구석까지 몰아붙이려 마련된 판이었으니까.
그러자 안톤 교감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내게 물어왔다.
“허어, 이거 참. 이제는 변명도 안 하는가?”
아까는 변명해서 핀잔을 주더니?
“하급 마법사다 보니. 어쩌다 얕은 요행을 알게 되니까 흥분을 주체하지 못 했나보군. 그래서 학교 재산을 이렇게 들쑤시고 다녔어? 하아. 쯧-. 레온, 자네는 대체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 동안 뭘 한건 가.”
이제 난 정리했다고 생각했는지, 안톤 교감이 타깃을 바꿔 레온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상할 일도 아니다. 안톤 교감은 실버 그리폰이 어떻게 되던 상관 없었을 거다. 그저 날 빌미로 비올렛 교장과 레온교수를 공격하려던 거였겠지.
하지만 레온은 얼굴색 하나 변하는 것 없었다.
아니, 오히려 웃으며 응수했다.
“하하. 저야 열심히 교육과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마치 칭찬을 받은 것마냥 레온이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 했다. 순간,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파비앙 교수와 안톤 교감뿐만 아니라 나까지 당황했다.
안톤 교감의 머리에 핏줄이 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니, 레온 교수. 지금 뭐하자는 건가?”
“교감 선생님께서 질문하신 것에 대해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인가? 자네, 내가 칭찬한 것으로 들렸나?”
“네? 칭찬이라뇨. 제가 뭐 했는지 궁금했던 거 아닙니까?”
“내가 궁금할 리 없지 않나! 게다가 칭찬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면, 왜 기분 좋아하나.”
“하하. 사람 말이라는 게,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 아닙니까.”
안톤 교감이 그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옆에 있는 파비앙 교수는 고개를 절래 흔들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씁-. 자네는 정말...... 왜 이렇게 항상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건가? 자네가 담당하는 조교가 지금 사고를 쳐서 이렇게 모였는데, 내가 한 말을 다른 의도로 받아들일 여지가 어디 있는가?”
바보라도 모를 수 없게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질을 하며 엄포를 놓는 안톤 교감.
그런데도 레온은 환하게 웃으며 응수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으으으-.”
그제야 안톤 교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였다. 어금니를 꽉 깨문듯, 그의 얄팍한 얼굴에 턱 근육이 불쑥 올라왔다.
“지금 장난하는 겐가!”
아 젠장.
안톤 교감의 호통과 동시에 침이 튀었다. 마치 분무기로 허공에 뿌린 것마냥 말이다.
얼굴에 부딪히는 촉촉한 수분에 눈이 질끈 감아졌다.
인품만큼이나 하는 짓도 더러웠다.
안톤 교감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려 하자, 보다 못한 파비앙 교수가 나섰다.
“레온 자네! 태도가 그게 뭔가? 자리가 자리인 만큼 좀 더 진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안톤 교감님 화를 가라앉히시죠.”
“전 언제나 진지합니다. 단지, 긍정적일 뿐이죠.”
“아니, 어떻게 한 마디를 지려 하지 않나! 꼭 그렇게 말대꾸를 해야겠나?”
“아, 말 대꾸로 들렸습니까? 이제보니 아까 이야기들은 그냥 저보고 가만히 들으라고 하신거군요. 죄송합니다. 전 또 물어보신건줄 알고.”
“하아-. 참.”
기가 막힌다는 듯이 안톤과 파비앙이 고개를 절래거렸다.
하지만 내 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지금 레온의 행동이 자신과 정치적으로 척을 지고 있는 안톤 교감과 파비앙 교수를 의도적으로 도발하는 것이었다면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몸짓, 말투, 표정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봐도 도발하는 것 같지 않았다.
지금 방금 대화도 마찬가지다. 비꼬는 게 아니었다.
정말 물어봤다고 생각해서 대답했다고 하는 것 같았다.
의도적으로 도발한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기보다, 상황을 못 읽고 있는 대로 대답하는 것 같았다. 의도도 꾸밈도 없는 그야말로 천연적인 반응 말이다.
자기 입으로 긍정적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보다는 뭔가가 결여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낯선 기분이었다.
“그 교수에 그 조교네. 정말 가관이다. 가관이야. 이런 것들을 데리고 온 교장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안톤 교감이 은근슬쩍 비올렛 교장을 흠잡았다. 그 순간, 레온의 눈에 뭔가가 감돌았다 사라졌다.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건 분명 살기였다.
“비올렛 교장님이야 워낙 생각이 깊으신 분이니, 그분의 생각을 범인이 알 수 있을 리 없죠.”
“아, 대답하라고 말한 거 아니라니까?”
“하하. 알겠습니다.”
레온 교수가 시원하게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쓸었다. 안톤 교감은 눈을 찡그리며 그를 바라보다, 다시 날 바라보곤 말했다.
“어찌. 자네는 잘못한 걸 인정하겠는가?”
“아뇨.”
“자네-!”
파비앙 교수가 소리를 지르려다가, 안톤 교감의 손짓에 멈췄다.
“아서 조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네. 내일모레 열리는 징계 위원회에 참석해서 배상과 책임에 대해 논해보던가. 아니면, 자네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그 마법을 교수진들에게 공개해 연구하게 해주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노골적인 제의.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란 말인가.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교수진이라는 건, 파비앙 교수님한테 말입니까?”
“그 분야에서 가장 전문가 아닌가?”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학교에서 말고, 학회나 다른 전문가한테-.”
“아서 조교! 자네가 지금 우리에게 제의할 입장인가? 자네는 학교의 자산에다 검증받지 않은 마법을 사용한 거란 말이야! 내가 간신히 교감선생님을 설득해 마지막 기회를 주려했건만!”
어차피, 학회든, 다른 단체에서 온다 하여도 마법을 공개할 수 없었다.
이건 마법이 아니니까.
그냥 어떻게 나올지 한번 간을 본 것이었다. 역시나, 그러지도 못하게 날 조여올 생각이었군.
“그렇다면, 세 번째 선택지는 어떤가요? 지금 당장 실버 그리폰을 보러 가는 것이요.”
“응?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실버 그리폰이 어디 있는지 안다는 건가?”
내 말에 안톤 교감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귀를 기울였다.
파비앙 교수가 자기 연구실에 실버 그리폰을 숨겨두었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았구나.
하긴, 안톤 교감이 아무리 사람 자체가 가벼워 보여도 교감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렇게까지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겠지.
“어디로 갔는지 봤었습니다. 또 파비앙 교수님에게 말하기까지 했고요.”
“그게 사실인가?”
안톤 교감의 물음에 파비앙 교수가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보고 우리 연구실에 있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뭐지?
왜 이렇게 당당하지.
“......? 아서 조교, 파비앙 교수의 말이 사실인가? 정말 연구실에 있다고 한 건가?”
“예.”
“..... 하하...... 푸하하핫-.”
안톤 교감이 내 말에 폭소하기 시작했다.
파비앙 교수도 입을 막고 웃을 뿐이었다. 그에게 불안한 기색도 전혀 없었다.
한참 웃던 안톤 교감이 그런 어이가 없는 말은 처음 들었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을 했다.
“아니, 자네 농담하나? 실버 그리폰이 어떻게 파비앙 교수의 연구실로 들어갔단 말인가.”
“글쎄요. 방법이야 있죠.”
“호오? 그래? 실버 그리폰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연구실 벽에 매달았나 보지? 히히.”
역시나 내 말을 진지하게 듣지않고, 실실거리며 조롱하고 앉아있었다.
“그 방법도 괜찮아 보이지만, 성공률은 낮아 보이는군요. 아주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흠?”
“실버그리폰을 직접 데려다 놓는 거죠.”
말을 하며 파비앙 교수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타고서 말입니다.”
“뭐?”
내 노골적인 제스처에 안톤 교감이 파비앙 교수을 바라보았다. 파비앙 교수는 표정의 변화 없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안톤 교감은 다시 날 바라보며,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건가?”
“알고 있습니다. 파비앙 교수가 도둑질을 했다고 말하는 거지요.”
물론, 어제만 해도 틀린 이야기였겠지만, 오늘 이렇게 파비앙이 일을 벌이고, 내 입으로 문제를 제기했으니, 이제 도둑질을 한 거로 될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파비앙이 교수실에 있다고 말을 한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겠지만, 그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었다.
물론, 나도 오늘 실버 그리폰을 찾아서 상황을 소화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야 일이 커질수록 좋으니까.
그저 지금 실버 그리폰의 위치를 언급한 것은 파비앙 교수가 어떻게 대비했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서였다.
날 보는 안톤 교감의 눈이 찡그려졌다.
잠시 생각에 잠겨 조용히 있던 그가 입을 열려 하자, 파비앙이 먼저 선수를 치고 말을 건넸다.
“교감 선생님,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떨까요?”
“응?”
“솔직히 얼토당토 않는 소리지만, 제가 봐주겠습니다. 지금 당장 제 연구실로 가보는 겁니다.”
****
그렇게 해서 파비앙 교수의 인도하에 연구실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은 과장스럽다 싶을 정도로 경쾌했다.
혹시나 해서 창을 확인해 보니, 실버 그리폰은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그럼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얕은수로 속이려는 거겠지.
“여기입니다.”
안톤 교감는 나에게 미심쩍다는 눈빛을,
파비앙 교수는 비웃는듯한 표정을 짓는다.
레온은 딱히 뭔가 생각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한번 열어보게.”
안톤 교감의 지시에 파비앙 교수가 문을 열었다.
역시나 없다.
실버 그리폰이 보이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01.
다음 편이 어제 올라올 줄 알고 기다리셨던 독자분들한테,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
원래 계획은 낮에 한편 올리고,
12시에 한편 더 올릴 계획이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글이 안 써지는 바람에 계획이 엎어졌네요.
다음 주부터 13일까지 업무상 바쁜지라 연참을 기약할 수 없어서
오늘은 꼭 연참을 하려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할 뿐입니다.
다 핫산이 부족한 탓입니다. ㅠㅠ
02.
LaylaPrismriver 님 이하로 님 후원 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무념무상 0님도 원고료 쿠폰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독자님들께서 주신 쿠폰의 맛,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