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들의 계절 (40)화 (40/256)



〈 40화 〉우리들의 계절

다음날.
밤새 제대로 잠을 못 잔 강준은 아침에 등교하기가 너무 싫었다.
김미주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어째 더 피곤한 것 같고, 몸이 으슬으슬 몸살기까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침부터 자신을 깨우고, 식사 준비한다고 분주한 아름다운 수희의 모습에 이유도 없이 학교를 빠질 수가 없었던 강준은 어쩔 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끌고 학교로 갔다.

교실 앞에 도착한 강준은 문에 붙은 작은 창문으로 교실 안에 김미주가 있나 살펴보았다.
당연히 김미주가 있었다.
그런데 김미주는 왠지 검은 오오라를 뿜어내고 있는 것처럼 친구들과 대화도 안 하고, 자신의 자리에 바르게 앉아서 노트에 고개를 숙이고 뭔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강준은 도저히 저런 분위기의 김미주와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진짜 김미주를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안녕’하고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시하고 모른 척해야 하는 것인지 강준은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야. 너 안 들어가고 뭐하냐?”

그때 마침 등교한 것인지 김진수가 강준의 어깨를 치면서 말을 걸어왔다.

“헉. 아이고 놀래라. 넌 새끼야 기척이나 내면서 다가오던가..”

“미친놈. 교실  막고 서 있는 놈이 누군데.. 그런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혹시. 미주 일이냐?”

강준은 속으로 깜짝 놀라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확실히 눈치 빠르고, 오지랖 넓은 김진수라 금방 강준의 일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다고 김미주와 어제 있었던 일을 절대로 김진수에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딱 봐도 김진수가 김미주를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무리 자신이 제일 친한 친구라도 해도 자신이 김미주랑 섹스했다는 것을 김진수에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어? 어. 그. 그게.. 진수야 잠깐 이리와 봐.”

계속 교실 문을 막고 있을  없던 강준은 김진수를 복도 끝으로 데리고 갔다.

“왜? 무슨 일인데? 미주가 또 뭔가 일 저질렀냐?”

“야. 미주가 우리 엄마를 찾아왔더라. 그것도 나 없을 때 우리 집으로.”

“뭐? 진짜? 와. 김미주. 진짜. 소름이다. 그래서?”

김진수가 무섭다는 듯 손으로 자신의 팔을 쓸며 다급하게 물었다.

“우리 엄마 찾아와서 이은주 얘기 다하고, 우리 엄마랑 무슨 협정까지 맺은 거 같아.”

“그럼 어제 너는 미주랑 무슨 얘기 했는데..”

“응? 크흠.. 미주한테 우리 엄마 만나지 말라고 했지.”

강준은 차마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래서 미주가 그렇게 한다디? 와. 김미주.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너희 엄마한테 찾아가서 얘기를 할 생각을 했지?”

“응.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잘 얘기 끝냈다.”

“얘기  끝냈다니 다행이네. 미주는 괜찮고?”

“응? 으. 응. 괜찮. 아. 괜찮을. 걸?”

강준도 솔직히 김미주가 지금 어떤 상탠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뭔 말이 그래? 얘기잘 했다며.. 괜히 우리 친구 사이 어색해지는 거 아니지?”

“응. 아마. 그러지 않을까?”

“야. 솔직히 말해. 너 미주랑 싸웠냐?”

“그게. 나도 솔직히 싸운 건지, 안 싸운 건지 잘 모르겠다. 미주가 지금 기분이 어떤지도  모르겠고..”

“아. 씨.어제 무슨 얘기했는데 그래? 괜히 친구 사이에 분위기 이상해지는 거 아냐?”

강준은 더 이상 김진수에게 얘기를 해  수 없었다.
김진수도 강준의 얘기보다는 김미주와 사이가 어색해지는 것이  신경 쓰이는 모양새였다.

“야.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서 미주 분위기 어떤지 확인해 보자.”

김진수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하고는 교실 쪽으로 걸어갔다.

강준은 왠지 김진수에게 미안했다.
자신에게 둘도 없는 친구기는 하지만, 저렇게 김미주에게도 바짝 신경을 쓰는 것을 보니 어쩌면 오늘 이후 김미주의 분위기에 따라 김진수와의 관계도 어색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진수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김미주에게 인사를 건넸다.

“미주야. 굿모닝.”

“응. 진수야. 좋은 아침.”

의외로 김미주의 얼굴이 밝은 것 같았다.
강준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김진수를 따라서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미. 미주야. 안녕.”

그런데 김미주가 그런 강준의 인사는 받아주지는 않고 잠시 강준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분위기는 어색해졌고, 김진수는 그런 김미주의 모습에 강준을 바라보며 ‘뭐야?’하고 입 모양으로 질문을 했고, 강준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후, 담임인 조여정이 들어와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출석을 다 부른 후 전달 사항을 전달하는데 이상하게 조여정이 자꾸 강준을 쳐다보았고,  번이나 강준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강준은 김미주 하나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담임인 조여정까지  저러는지 신경이 무지하게 쓰였고, 혹시 지난번 이은주 일 때문에 그러는가 싶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조여정이 조회를 마치고 다시 한  강준을 쳐다보고는 교실을 나갔다.
그러자 갑자기 김미주가 고개를 돌려 강준을 노려보았고, 김미주와 눈이 마주쳐 깜짝 놀란 강준은 도대체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라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야. 담탱이는 또 왜 저러냐? 너 또 무슨 잘못한  있냐?”

김진수도 조여정의 시선을 느낀 모양이다.
조여정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달려와서 질문을 해대는 것을 보니 말이다.

“아. 몰라. 씨발. 머리 아파 죽겠다.”

강준은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고, 진짜 몸살기가 오려고 하는지 몸이 욱신거려 그대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 버렸다.

그렇게 하루 종일 김미주는 강준에게  한마디 걸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웃긴 것은,  점심시간에는 평소처럼 김진수와 강준과 같이 아무  없었다는 듯 웃으며 점심을 먹었다는 것이다.
물론 강준에게는 말 한마디 안 걸었지만..

종례시간에도 조여정은 강준을 아련하게 쳐다보았다.
강준은 차라리 조여정이 자신을 불러 뭐라고 화라도 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답답했다.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강준은 학교를 나섰다.
오늘 태권도장에 가는 날이라 김진수는 먼저 집으로 갔고, 강준은 축 늘어진 상태로 터덜터덜 지하철 역 쪽으로 걸어갔다.
몸 컨디션도 안 좋고, 만사가 귀찮아진 상태라 그냥 집에 가고 싶었지만, 이미 약속을  것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강준아 같이 가.”

한참 골목을 지나 큰길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뒤에서 강준을 불렀다.

“어? 미. 미주야.”

강준이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김미주가 생글거리는 얼굴로 강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너. 오늘 태권도장 가는 날이지?”

“어? 어. 그. 래. 그런데 미주 너네 집은 이쪽 아니잖아.”

“응. 강준이  지하철역까지 가는 동안만 같이 가려고..”

하루 종일 강준을 대하던 태도와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이는 김미주였다.

강준은 김미주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걸지 않고, 그냥 무뚝뚝하게 쳐다만 보더니 왜 갑자기 지금은 저렇게 생글거리면서 자신에게 친근하게 구는지 도저히 김미주라는 여자에 대해 파악할 수가 없었다.

지하철역 쪽으로 걸어가면서 강준은 힐끔힐끔 김미주의 눈치를 살폈다.
김미주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편안한 얼굴로 강준의 옆에 나란히 서서 길을 걷고만 있었다.

이제 저 모퉁이만 돌아 조금만 가면 지하철역이다.
그때까지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걷기만 했다.

“먹버.”

그런데 그때 갑자기 김미주가 강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한마디 툭 했다.

“뭐?”

“너. 이강준. 먹버라고..”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어제 나 먹고 그냥 갔잖아. 그래서 먹버라고..”

갑자기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강준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걷는 것도 잊어버린 채 멍하니 김미주를 바라보았다.

“왜? 내 말이 틀려? 여자가 가란다고 진짜 그냥 가 버리냐? 그러다 나 잘못됐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응?”

김미주는 강준의 어벙한 반응이 재밌었는지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했다.

“그. 그게. 네가. 먼저 가라고. 했잖아.”

강준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너무나도 떨리는 심장을 달래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여자 혼자,  무서운 과학실에 버려 놓고 갈 수 있는 거야? 흑흑..”

갑자기 김미주가 우는 시늉을 하면서 강준을 놀리기 시작했다.
강준은 도대체 지금 김미주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머리가 하얘지고 말았다.
이제는 김미주가 무섭기까지 했다.

“여자가 우는데 달래주지도 않고.. 강준인 완전 나쁜 남자야.”

강준이 멍하니 김미주만 바라보고  있자 김미주가 이번에는 새침데기처럼 토라진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강준에게 눈을 흘겼다.
그러더니 갑자기 얼굴 표정을 풀고 다시 웃으며 강준의 팔에 팔짱을 껴왔다.

“강준아. 얼른 가자. 태권도장 가는 거 늦겠다.”

“어? 어.”

강준은 마치 여우에 홀린 것만 같았다.
지난 5년간  김미주가 맞는 건지, 지금 김미주는 자신이 알던 그 김미주가 아닌 것만 같았다.

강준은 그렇게 김미주의 팔에 이끌려 넋이 나간 것처럼 끌려갔고, 김미주는 강준의 팔을 자신의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그 와중에도 강준은 자신의 팔에 뭉클하니 느껴지는 김미주의 가슴을 느끼며 왠지 싫지는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준아. 어제도 말했지만, 난 너한테 매달릴 생각도 없고, 나를 책임져 달랄 생각도 없어. 내 뱃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다고 해도 말이야.”

“야. 김. 김미주. 너. 진짜야?”

강준은 김미주가 혹시 임신이라도  것인가 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농담인데.. 히히..”

“휴우.. 야. 넌 무슨 농담을..”

강준이 뭐라고 큰소리를 내려고 하는데 김미주가 말을 툭 자르고 들어왔다.

“왜 아직 모르는 거지. 임신 사실은 최소 3주 이상 지나야 아는 거거든. 네가 어제 그렇게 많이, 내 안에 쌌는데..”

김미주의 마지막 말은 강준의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이며 한 말이었다.
강준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입만 벙긋거리며 김미주를 바라볼 뿐이었다.
완전히 강준을 들었다 놨다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김미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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