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우리들의 계절
화들짝 놀란 수희는 언제 몸이 안 좋았나 싶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준이 오기 전에 빨리 약국부터 갖다 와야 했다.
지금 가장 급선무는 사후 피임약을 먹어서 임신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준이 오기전에 약국을 다녀와야 하는 이유는 아직 제대로 생각이 정리조차 되지 않았는데, 지금 강준과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강준의 얼굴을 보게 되면 강준은 분명 수희 자신과 이야기를 하자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강준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안 들어봐도 뻔했다.
어제 강준이 자신의 옆에 누워있었던것을 생각해 보면 어떻게든 자신을 설득해 계속 관계를 이어가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강준이 집요하게 설득한다면 자신의 약한 의지력으로는 거부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다시는 절대로 강준과 섹스를 하면 안 됐다.
아까 꿈에서처럼 사회적으로 강준을 비난받게 할 수는 없었다.
임신에 대한 공포는 자신이 빨리 약국 가서 사후피임약을 사 먹고, 며칠 뒤 임신테스트를 해 보고 임신 시 산부인과에 가서 조용히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아침에는 그렇게 몸이 아파 죽을 것만 같더니 잠을 꽤 많이 잔데다 그런 무서운 꿈까지 꿔서 그런지 수희는 힘차게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화장실로 달려간 수희는 허겁지겁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약국을 가기 위해 지갑을 챙겨 든 수희가 거실로 나왔다.
거실은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작은 테이블 위에는 와인병과 잔들, 안주 그릇 등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고, 특히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브래지어와 팬티, 강준의 반바지와 팬티를 보는 순간 눈앞이 하얘지는 것만 같았다.
기억을 하고 있는 것과 이렇게 현장을 눈으로 보는 것 하고는 느낌이 천지 차이였다.
수희는 후다닥 달려가 자신의 속옷부터 빠르게 주워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검은색 가죽 소파에 덕지덕지 뭐가 잔뜩 묻어 허옇게 굳어 있는 게 아닌가?
그것은 자신의 애액과 강준의 정액이 말라버린 것이었다.
또다시 어젯밤에 아들과 섹스를 했다는 끔찍한 일이 생각나면서 수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게 너무나 공포스럽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아랫배가욱씬거리는 자신의 몸이 저주스럽기도 했다.
수희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 버리고는 얼른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화장실로 가 걸레를 빨아 와 소파와 바닥에 묻은 그 더러운 잔재들을 박박 닦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또 한 번 생각해 봐도 이건 전부 자신이 미쳐서 일으킨 잘못이었다.
자신이 강준을 거부만 했더라도, 아니 처음부터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런 짓을 벌여 놓고도 아들 탓만 하고, 아침에는 제대로 깨워주지도 않아 지각이나 시키고, 밥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
수희는 도저히 자신을 용서할 수도, 강준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강준과 얼굴을 마주치는 것이 무서웠다.
수희는 다시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 눌러 참으며 빠르게 거실을 치워 나갔다.
소파와 바닥 구석구석 땀을 뻘뻘 흘리며 닦아내고, 티테이블 위를 치웠다.
이미 약국에 가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린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엄마.”
갑자기 뒤에서 강준이 수희를 부르는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수희는 복잡한 심경으로 거실을 치우고 있다 보니 강준이 들어오는 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있었다.
“헉.. 강. 강준아.”
화들짝 놀란 수희가 급하게 몸을 돌려 강준을 바라보았다.
“까아아앗.. 안 돼.”
수희가 갑자기 강준을 보고는 소리를 지르고는 후다닥 안방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도저히 자신을 바라보는 강준의 애달픈 시선을 받아낼 수가 없었다.
그 시선에 담긴 뜻이 너무나 애절했다.
안도와 그리움, 그리고 뜨겁게 타오르는 열망.
수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확실하게 와 닿았고, 절대로 자신은 저런 강준을 거부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결국 답은 피하는 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엄마. 엄마.”
강준은 그런 수희를 보며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굳게 잠겨 있던 안방에서 나와 다시 집안일을 하고 있는 수희의 모습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왜 저렇게 자신을 피하려고만 하는지 미칠 것만 같았다.
강준도 빠르게 뛰어가 안방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쾅. 쾅. 쾅.
“엄마. 제발 이 문 좀 열어 봐.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이렇게 피하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돼? 응? 엄마. 문 좀 열어 봐.”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말을 걸어보아도 안방에서는 어떠한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강준은 눈물이 나왔다.
수희가 저러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지만, 이대로 관계가 완전히 끝나버릴 것만 같아 죽을 것처럼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한 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강준은 처음으로 엉엉, 대성통곡을 했다.
그래도 수희의 방문은 열리지를 않았다.
수희는 수희 나름대로 가슴이 미어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신의 소리를 강준이 듣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손에 핏줄이 설정도로 입을 꾹 눌러 막고 있었다.
수희 자신도 당장 강준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하고 싶은 얘기도 많았고, 해 줘야 할 얘기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아들과 선을 한 번 넘어버렸다.
아무리 자신이 말린다고 해도 강준이 강하게 요구를 해오면 자신이 그것을 끝까지 막을 수 있을까?
강준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는 자신은 절대로 막을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이미 강준이 줄 수 있는 그 무시무시한 쾌감을 몸이 알아버렸다.
강준의 손이 자신의 몸에 닿으면 자신은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져 내릴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강준을 볼 수가 없었다.
강준이 지금은 괴롭겠지만,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수희는절대 저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저 문을 여는 순간 강준과 자신의 앞날은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더 이상 강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수희는 또다시 지쳐버린 몸을 침대에 눕혔다.
늦게까지 잠을 자서 그런지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은 것이었다.
수희는 강준에게 저녁을 해 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와중에도 여전히 아들 걱정뿐인 수희였다.
하지만 역시 저 문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수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런저런 생각과 강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무리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을 거 아냐. 내가 식탁에 밥 차려 놨으니까 나와서 같이 밥 먹자.”
수희는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고는 강준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방문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강준을 마주 대하는 것이 두려운 수희는 다시 침대에 앉아버렸다.
그래도 자신을 위해 식탁까지 차려 준 강준을 위해 이번에는 대답을 안 해 줄 수가 없었다.
“아니. 밥 생각 없어. 너 혼자 먼저 먹어.”
나름 차갑게 말을 한다고 했지만, 수희의 목소리는 강준에게 어쩔 수 없이 따뜻했다.
“엄마. 엄마. 대답한 거지? 문 좀 열어봐. 응? 제발.”
강준은 수희가 이제 기분이 어느 정도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가열차게 문을 두드리며 수희를 불렀다.
수희는 그런 강준의 목소리에 문을 열어버릴 뻔했다.
자신도 이렇게 마음이 답답한데, 강준은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하지만 절대로 강준의 앞날을 망칠 수는 없는 법.
수희는 이를 악물며 귀를 막아버렸다.
강준은 그 뒤로 몇 번이나 안방으로 다가와 문을 두드리며 수희를 불렀다.
그러나 수희는 더 이상 응답이 없었다.
강준은 문을 부숴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했지만, 어느 정도 수희의 마음이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참았다.
하루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름 많은 생각을 한 강준이었다.
아들과 섹스라니, 그걸 좋다고 받아들일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한 발짝 물러서서 수희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면 지금 수희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문 한 번 안 열어주고, 자신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도망까지 간단 말인가?
이해가 되는 것은 이해가 되는 것이었고, 화가 나는 것은 화가 나는 것이었다.
한 번만 제대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면 다 해결될 것 같은데, 저렇게 단단하게 철벽을 치고 있으니 강준은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늦게까지 수희를 어떻게 방에서 나오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새벽에 지쳐서 잠이 들어버렸다.
다행히 다음날은 토요일이라 늦잠을 자도 괜찮아 마음이 느긋해지기도 했고 말이다.
강준은 피곤했던지 점심때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거실과 부엌의 불은 전부 꺼져 있었고, 집안은 여전히 고요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지 한참인데 너무 조용한 것이 어제부터 수희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 강준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일어났어?”
대화는 둘째 치고 밥이라도 우선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강준은 다시 한 번 안방 문을 두드리며 조심스럽게 수희를 불러보았다.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강준은 혹시나 해서 방문을 열어보았다.
어? 그런데 손잡이가 돌아간다.
강준은 빠르게 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안방은 불이 꺼져 있었고, 침대는 아무도 잔 적이 없었던 것처럼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든 강준은 안방에 연결된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에도 불이 꺼져 있었고, 그저 조용하기만 할 뿐이었다.
다시 거실로 뛰어나온 강준은 집안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수희를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수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식탁 위에 종이 한 장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강준아. 미안해. 엄마는 잠깐 대전 이모네 갔다 올게. 생각 정리되면 그때 얘기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