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 회: 아 뿔 싸! -- >
내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치는 아저씨라는 그 한마디! 무언가 날카로운 예감이 내 머릿속을 관통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 쳤다.
“얼른 뱉어! 초콜릿 빨리 뱉어!”
아이는 퉤퉤 거리며 알약을 뱉었다. 나는 차안의 조명을 켜면서 동시에 아이의 모자를 벗겨보았다.
“너, 넌 혜린이가 아니냐?”
아진이의 친구 혜린이가 틀림없었다. 나는 한층 더 언성을 높였다.
“혜린아! 얼른 뱉어버려 얼른!”
“안돼요. 벌써 조금 먹어버렸어요. 아저씨!”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말 이런 날벼락은 내게 빨리도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차 밖으로 혜린이를 끌고 나왔다.
“손가락을 넣고 토해봐, 응?”
혜린이는 손가락을 넣고 웩웩 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봐야 맑은 침 몇 방울만 나올 뿐이었다. 한참을 더 쑤셔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놈에게 해독제를 얻는 길 뿐.
참담함이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영문도 모르는 혜린이는 펑펑 울었다. 키스를 팔러 나왔는데 가장 친한 친구의 아빠가 나올 줄은 혜린이로선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더 용서받지 못할 놈이었다. 혜린이의 집안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더 가슴이 아팠다.
아진이의 친구 중 유일하게 청소년가장으로 있는 애가 바로 혜린이었다.
어린 두 동생들을 몽땅 책임져야하는 청소년가장 말이다.
언젠가, 아진이의 부탁으로 혜린이의 아픈 동생을 병원까지 데려다 준적이 있었다.
그때 혜린이의 집안 사정을 다 알게 된 것이다.
학교수업이 없는 전후로 틈틈이 알바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런 수입으로 동생의 병원비를 대기엔 턱없이 모자를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녁 알바는 그만 뒀니?”
“몸이, 요즘 몸이 아파서.......”
콧날이 다 시큰거렸다. 그래, 오죽했으면 키스를 다 팔려고 했겠니.
우린 식당으로 들어갔다. 혜린이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밥을 잘 먹었다.
밥을 많이 굶고 다녔을 거라는 생각에 또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혜린이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과 함께 알약도 같이 소화가 되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조금 삼켜버린 알약이었지만 어떤 작용을 할 것인지 정말 불안했다.
당연히 놈에게는 혜린이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식당을 나오면서 나는 혜린이의 가방에 몇 십만 원 정도를 찔러주었다.
“아, 안돼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혜린이는 펄쩍뛰며 돈을 다시 주려고 했다. 나는 화까지 버럭 내며 받으라고 했다.
마지못해 돈을 받게 된 혜린이는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혜린이에게 몸에 약간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내게 즉각 전화를 하라고 했다.
나는 근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다. 불안해서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술을 기울인지 얼마나 되었을까?
누가 아리랑치기를 해도 모를 정도로 취해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혜린이었다.
“아저씨, 아까부터 머리가 아프고 좀 이상해요.”
불길한 예감이 날 사로잡았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다.
“아저씨 말 잘 들어라. 그 누구의 말도 들으면 안 된다. 아저씨 말만 들어야 해. 알았지? 누구한테 전화가 와서 헛소리를 하면 바로 끊어버려라. 아저씨가 곧 가마.”
포장마차를 휘적거리며 빠져나온 나는 차를 두고 택시를 탔다.
젠장, 술김이었지만 그제야 생각이 났다. 여긴 혜린이의 집과 가까운 곳이었다.
멍청한 것 같으니라고. 키스알바를 하려면 멀리 가서 할 일이지.
택시에서 내린 나는 욕지기가 치미는 걸 느꼈다.
“꾸에엑!”
나는 혜린이의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골목길 초입에서 그만 걸쭉한 걸 토하고 말았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한 계단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발 한발 올라가기가 정말 힘이 들었다. 호주머니의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받지 않았다.
“탕탕탕!”
이윽고 나는 양철로 만들어진 대문을 두들겼다. 혜린이가 마당을 나와 대문을 열어주었다.
혜린이의 모습에 술이 확 깼다.
“동생들은 자니?”
“예!”
나는 혜린이의 얼굴을 보았다. 약간 눈에 힘이 없어진 것 같았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런 맥없는 혜린이의 모습에 내 가슴이 마구 뛰었다. 혜린이를 마구 껴안고 입맞춤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 것이다.
나는 가까스로 마음을 억눌렀다. 나는 혜린이를 똑바로 쏘아보며 말했다.
“혜린아, 자, 날 제대로 한번 봐! 눈에 힘을 주고서!”
하지만 혜린이의 눈동자는 인형의 눈동자처럼 힘이 없었다. 안타깝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이 씨발!”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그 놈에게 전화를 걸었다. 놈이 먼저 내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전화를 받지 않았소? 최도균씨!”
나는 도리어 소릴 질렀다.
“잔말 말고 해독제나 주시오. 알약 해독제 말이오!”
“무슨 말이오?”
“알약을 잘못 먹였소. 내 딸아이 친구에게 먹여버렸소.”
“.......”
놈은 아무 말도 없었다. 내가 다시 다그쳤다.
“해독제를 주라니까! 걔는 내 딸이나 다름없는 아이요!”
“당신과는 거래 끝났소.”
순간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전화를 다시 걸어보았다. 받질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혜린이에게 말했다.
“아직도 머리 아파?”
“머리는 이제 안 아파요!”
두통이 사라졌다는 소리가 그나마 날 안도케 했다.
어쩌면 약을 덜 먹어서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 왔나 싶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아저씨에게 전화해! 알았지?”
“네!”
“자 들어가거라.”
나는 혜린이를 꼭 안았다. 그러한 행동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는데 혜린이도 내게 편안하게 안겼다.
혜린이가 방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오는 택시를 타면서 혜린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또 말하지만 혹 모르는 아저씨에게 전화가 온다든지 하면 얼른 끊어버려라!”
“네!”
혜린이는 짧게 대답을 했다.
집에 도착하니 시간은 이미 새벽으로 넘어가 있었다. 아진 이는 자고 있었고 완희가 날 맞아주었다.
늘 이렇다. 완희는 어느 시간이고 날 맞아준다.
“그냥 자고 있지 왜 일어나? 네가 이러니 내가 밖에서 맘대로 못 놀지!”
완희가 곁눈질로 웃으면서 말했다.
“아빠, 이거 드시고 주무세요.”
완희는 드링크를 건넸다.
나는 완희가 건네준 걸 마시고는 씻지도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일어나보니 아이들은 다 학교엘 갔다. 식탁엔 꿀물이 있었다.
나는 알약부터 확인해보았다.
꽤 많았다. 50알은 족히 넘게 보였다. 그 놈에게 전화가 올 것 같다.
알약을 주라는.......
전화!
문득 한 가지 끔찍한 가정이 떠올랐다.
알약을 먹인 뒤 혹시 사람마음을 전화로 조종할 수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