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3 회: 의붓딸 앞에서 실습 -- >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깊숙한 곳에 알약을 숨겨놓았다.
그래도 불안했다. 꼼꼼한 완희가 내 방을 청소하다가 호기심에 찾아낼 수도 있었다.
다시 알약 병을 들고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완희가 내 방으로 왔다.
나는 완희의 눈을 피했다. 추악한 아빠의 모습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빠, 진실을 말씀해주세요. 방금 그것과 아진이 실종하고 관계가 있는 거예요? 그렇잖아도 요즘 갑자기 큰돈 이 생기고 나서 아빠가 많이 이상해지셨어요. 절 피하는 것 같기도 하구....... 제가 무슨 잘못한 게 있어요? 절 엄마한테 보내실 거예요? 그것도 말씀해주세요.”
소심한 완희는 요즘 나의 이상한 태도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완희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그건 아니다 완희야. 난 네가 좋은 남자를 만나서 시집을 갈 때까지 널 끝까지 데리고 살 거다. 그리고 조금만 더 아진이를 기다려보자.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진전이 없으면 내가 너에게 모든 걸 털어놓으마. 지금은 때가 아니야! 아무튼 초콜릿처럼 생긴 건 절대로 먹지를 말아라.”
완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베란다로 나가 완희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도균씨! 전화를 정말 기다렸는데.......”
“잔말 말고 당신 남편과 연애를 하고 있는 계집애의 전화번호를 몰래 알아 와서 내게 가르쳐줘. 그다음에 내가 당신을 만나줄 거야. 그리고 당신 남편한테는 계속 긴장상태를 유지해. 바로 오늘이라도 우리가 그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여자애의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었다. 머릿속에다 미리 외우고 있다고 했다.
“고마워. 빠른 시간 안에 당신 남편이 보는데서 우리 멋지게 섹스를 벌이자구!”
“네 도균씨!”
나는 가능성이 있는 모든 짓을 다 동원해서라도 아진이를 꼭 찾을 생각이었다. 나는 그녀가 가르쳐준 전화번호를 눌러보았다.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흠, 난 말야 널 아주 잘 아는 아저씨인데 좀 만날 수 있니?”
“예? 누구신데요?”
의외로 목소리가 또랑또랑해서 당황스러웠다. 나는 아이를 떠보기로 했다.
“너 지금 누굴 가장 보고 싶니?”
“아저씨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아 짱나!”
전화는 단번에 끊어졌다. 어쩌면 이 아이도 알약을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해봤는데 헛다리를 짚은 것 같았다.
하긴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나는 알약을 아이들에게 먹인 후부터 꼭 그것과 관련된 상상만 했다.
어쨌든 방금 통화한 아이랑은 만나기가 쉬울 것 같지가 않았다.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
문득 이 아파트에 큰딸 완희와 나만 있다는 사실이 몸서리처지도록 이상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침에 완희와 함께 겪었던 만원 전동차 안에서의 몹쓸 시추에이션 때문인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정말 아찔했다.
완희의 얼굴과 목이 몹시도 붉게 달아있던 까지 떠올랐다. 나는 머릴 흔들어버렸다.
나는 다시 아진이가 알약을 먹었을 경우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만약에 아진이가 알약을 먹었다면 나 같은 아저씨를 만나 키스알바형태로 먹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평생 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설혹 우리가 찢어지게 가난한들 아진이는 절대로 그럴 아이가 아니었다.
만약에 아진이가 알약을 먹었다면 어떤 사악한 자식이 노리개 삼으려고 아진이 에게 먹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진이는 진즉부터 남자친구를 몰래 사귀고 있었던 것일까? 그 자식이 아진이 에게 알약을?
하지만 그 추리도 무리가 있었다. 왜냐면 아진이의 남자친구라고 해봐야 고삐리거나 대학교에 다닐 텐데 그런 녀석이 알약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내게 알약을 준 놈은 날 처음 만날 때 그런 말을 했었다.
“한사람의 가장으로서 절실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이 약을 줍니다.”
아진이가 약을 먹지 않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제발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내가 생각한 최상의 시나리오는 담임의 말처럼, 아진이가 그간 묵혀두었던 나에 대한 불만을 충동적으로 표출해보고자 며칠간 가출을 한 것뿐이다. 나는 눈을 감고 억지 잠을 청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나는 아진이의 담임과 친구들에게 죄다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진이에겐 전화 한 통화 받은 애들이 없었다.
가슴속이 먹구름으로 꽉 들어찼다. 완희는 학교엘 가지 않았다. 토요일인데다가 동생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 오늘만 수업을 빠진다는 말을 담임에게 했다고 한다. 우리부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인쇄소부터 갔다. 만장이나 되는 묵직한 전단지를 찾아서 전철입구로 갔다. 완희가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동안 나는 벼룩시장을 펼쳐, 전단지 살포할 사람들을 구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각자 맡은 구역을 정해주었다. 완희에게 전단지 일을 맡겨놓고 신문사로 갔다.
완희의 사진을 건네주고 사람 찾는 광고를 냈다.
신문사를 나와 다시 완희에게 오긴 했지만 정말 막막했다. 전단지를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일이 아니라며 대충 구겨버리거나, 어떤 이는 아예 던져버렸다. 그렇게 버려진 아진이의 얼굴에 수많은 발자국들이 찍혔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린 철수를 했다.
근처 식당에서 완희와 밥을 대충 먹고 집으로 들어왔다. 소파에 그대로 축 늘어져있는데 별안간 완희가 비명을 지르면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꺅! 아빠! 아진이가, 아진이가!”
나는 완희를 따라 방으로 급하게 가보았다. 완희는 컴퓨터를 가리켰다. 이메일이 와있었는데 발신자가 아진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붙잡았다.
‘아빠, 그리고 언니 미안해!’
라는 제목으로 시작하여 꽤 장문으로 작성된 이메일이었다.
성질이 급해진 나는 차근차근 읽어볼 틈이 없었다. 휠을 내려가며 일단은 대략 훑어보았다.
요약을 하자면 아진이는 어떤 놈과 사랑에 빠졌는데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정말 머리가 아팠다.
그 남자의 정체에 대해선 눈곱만큼의 언급도 없었다. 다만 자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수없이 되풀이 했다.
내가 걱정할까봐 이틀에 한번 꼴로 동영상을 첨부파일로 보내준다고 했다.
정말 허탈했다. 아진이와 함께 있는 놈의 정체만 확실히 알아도 나는 마음을 어느 정도는 놓을 것 같았다.
그 놈이 아진이 에게 약을 먹였을 가능성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무던히도 약에 대해 집착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어떻게 아진이가 한 달 넘게 집에 안 들어오겠다며 내게 못을 박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나는 큰딸에게 물었다.
“완희야, 너 같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생겼다고 학교 수업도 빼먹고 집에 한 달간 안 들어올 수가 있겠니?”
완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조용히 완희의 방을 나왔다.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사람 찾는 광고를 취소시켰다. 전단지 뿌리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아진이 담임에게도 대충 설명으로 걱정 말라고 했다.
다만 심부름센터의 직원은 계속 움직일 필요가 있어서 연락하지 않았다.
경찰에겐 방금 사실을 알려주면서 아이피 추적을 통해 딸아이를 찾아달라는 말을 했다.
어쨌든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진이가 완전히 실종이 된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파트를 나오면서 완희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라도 그녀의 남편이 있으면 오늘 밤에 일을 치러버리고 싶었다. 아진이에게 이멜을 받은 순간, 아무한테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미치도록 들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