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 81 회: 다시 약에 중독된 큰 딸 -- > (81/272)

< -- 81 회: 다시 약에 중독된 큰 딸 -- >

‘하지누님에게 한 번 더 도움을 요청할까?’

하지누님이 도와준다면 괜찮은 기획사정도는 인수할 수가 있을 것이다. 뭐, 망할 일은 없으니 손해는 보지 않겠지. 나는 우선 편의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 말고는 딱히 갈 곳이 없었다. 하늘은 곧 비가 올 것처럼 어두웠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알바 녀석이 날 보고 인사를 하더니 부지런을 떨었다. 자주 가게를 오지 않으니 어수선하면서도 엉망이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미스 조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사 제쳐놓고 그년에게 복수를 하고픈 마음뿐이었다. 

“어머나 최과장니임!”

전화를 받는 그녀의 목소리가 늘어졌다.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화를 억누르곤 말했다.

“좀 만나지!”

“글쎄, 난 볼일이 없는 걸요!”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그녀의 회사로 쳐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잠시 앉아 열을 식혔다. 어떡하든 그년한테 약을 먹여야 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집이었다. 전화를 받기가 겁이 났지만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빠?” 

큰딸의 목소리였다. 반갑기도 하면서 미안했다.  

“완희니?”

큰딸은 별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내게 할 말은 많이 있을 것이다. 큰딸이 보고 싶었다. 큰딸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큰딸에게 가장 잘못을 빌고 싶었다.

“완희야. 아빠 얼굴 한번 볼래?”

“네.......!”

힘겹게 대답한 큰딸은 한 시간 뒤 편의점으로 나타났다. 표정이 밝질 않았다. 무척 피곤해보였는데 나 때문에 잠 한숨 자지 못한 것 같았다.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우리 부녀는 편의점 밖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나는 용서부터 구했다. 

“미안하다! 아빠가 많이 밉지?”

“.......”

“그럴 거야, 한 번도 내 딸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갑자기 큰돈이 생기고 나서부터 난 타락해버렸어.”

큰딸은 잠자코 내 말을 들었다. 나는 과거, 회사에 다니던 시절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미스 조에게 이 모든 죄를 덮어씌우려면 어쩔 수없이 과거를 들먹여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꺼낸 지 불과 몇 분 만에 큰딸은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너무나 서럽게 울어서 심장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흑흑흑!”

 나는 큰딸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수건을 꺼냈다. 큰딸은 수건을 받지 않았다. 큰딸의 입에서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빠의 과거가 어쨌든 전 다 이해해요. 그런데 왜 저를, 아빠의 노리개로....... 흑흑흑, 노리개로 삼으셨나요?”

“와, 완희야!” 

“어어어엉!”

완희는 엎드려 통곡을 했다. 대체 어떻게 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을까? 나는 두려워 차마 완희의 어깨도 두드려주지 못했다. 큰딸은 다시 고개를 들곤 내게 따지듯이 물었다. 눈이 퉁퉁 부어있는 모습을 보니 더 미칠 지경이었다.

“아빠, 내가 정말로 아빠의 친자식이었다면 아빠는 날 그렇게까지 가지고 놀지 않으셨을 거예요. 흐흐흑!”

완희의 말은 칼이 되어 내 심장을 몇 번이고 저미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 완희야!” 

나는 완희 널 처음부터 아끼고 사랑했다. 오로지 부모가 자식에게 향하는 순수한 사랑이었다. 문제는 그 약이다. 날 악마로 만든 약! 만약에 약이라는 게 없었다면 나는 너와 살을 섞지 않았을 것이다. 내 입에서 그 말이 빙빙 돌았지만 나는 한마디도 뱉질 못했다. 사실 그건 핑계에 불과했다. 큰딸의 말처럼 나는 내가 낳은 친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컷 가지고 놀았는지도 모른다. 

“우르르르르, 콰쾅!”

 내내 컴컴하더니 기어이 하늘마저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바람까지 강하여 파라솔 따윈 도움이 안 되었다. 알바녀석이 문을 열고 소리쳤다. 

“사장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우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완희는 곧 비에 흠뻑 젖었다. 완희는 등짝에 비를 맞으면서도 계속 흐느꼈다. 큰 딸의 흐느낌은 빗소리에도 묻히지 않았고 날 끝까지 괴롭혔다. 

“완희야! 일어나거라!”

나는 딸아이의 어깨에 손을 넣곤 천천히 일으켰다. 딸아이가 내게 안겼다. 딸아이는 내게 체중을 기댄 채 축 늘어졌다. 의식이 없어 보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와, 완희야!”

나는 딸을 차에 태우고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의사에게 물어보니 쇼크와 탈진이었다. 딸아이는 곧 환자복으로 갈아입혀졌고 링거를 맞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큰 딸은 의식을 회복했다. 큰딸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며칠 전, 우연히 제가 기록해둔 컴퓨터 일기를 보게 되었어요. 저의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는 순간이었고 그토록 사랑하던 아빠에게 배신감을 느끼던 순간이기도 했어요.”

완희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에 전 아빠를 절대로 이해 못했어요. 어떻게 사랑하는 딸을 자신의 노리개로 삼을 수 있나, 나는 너무 슬퍼서 가출까지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아빠를 이해해보려고 노력을 했어요. 만약에 그 악마의 약이 없었다면 아빠는 절, 건들지 않았을 거예요. 전 아빠를 잘 알아요.”

무겁게 가라앉았던 내 양심의 무게가 그나마 가벼워졌다. 날 이해해주려고 애를 쓰는 딸아이가 너무나 고마웠다. 딸아이의 입이 다시 열렸다.

“겨우 그렇게 아빠를 이해했는데....... 그런데 그 이상한 여자한테 전화가 와가지고 결코 봐선 안 될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된 거예요. 흐흐흑!”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미스조만 아니었어도, 그 미친년만 아니었어도....... 나는 조심스레 완희의 손을 잡았다. 완희가 내 손을 거부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마치 십년동안 함께 살아온 마누라에게 차인 기분이 들었다.

“완희야! 날 용서해주지 않을 거니?”

“죄송해요 아빠! 아줌마와 아빠가 벌인 그 일이 아직도 잊히질 않아요. 울 엄마하고 아빠하고의 일도 영원히 제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흑흑흑!” 

나는 무식한 코뿔소처럼 벽에 머릴 쾅, 박아버리고만 싶었다. 완희는 날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완희는 날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호주머니 속에 있는 약을 더듬었다. 손이 떨렸다. 내 사랑하는 딸 완희를 다시 찾으려면 이 약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예쁜 내 딸 완희에게 미움보다는 사랑을 받고 싶을 뿐이었다. 용서해라 완희야. 용서해라. 

“번쩍, 콰과광!”

순간 내 양심을 꾸짖기라도 하듯 싯누런 번개가 바로 앞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완희와 알몸으로 껴안고 알몸으로 섹스를 나눈 뒤 알몸으로 잠을 자는 상상을 한다. 완희와 섹스를 하면 마치 내 마누라와 섹스를 한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 그저 가만히 안고만 있어도 엔돌핀이 팍팍 솟구치는 내 딸 완희를 내가 어떻게 잊을까.

약을 쥔 내 손엔 진땀이 흘렀다. 나는 창가로 갔다. 완희는 여전히 훌쩍였다. 나는 쪼그려 앉았다. 마치 무릎을 꿇듯 쪼그려 앉아 나는 다시 한 번 용서를 빌기로 했다. 여기서 날 용서해준다면 나는 굳이 약을 먹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완희와 알몸으로 살을 섞고 싶은 마음 때문에 항상 괴롭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날 용서해준다면 난 다신 약을 먹이지 않을 것이다. 

“완희야! 내 딸아....... 아빠를 한번만 용서해줄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