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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 회: 향이의 담임도 예외는 아니다 -- > (87/272)

< -- 87 회: 향이의 담임도 예외는 아니다  -- >

정신없이 늦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심부름센터 직원이었다. 나는 집안에 누가 있나 싶어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딸아이들은 한명도 보이질 않았다. 

“사장님이세요?”

심부름센터직원의 목소리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 사이 뭔가 캐낸 건가? 

“어제말씀하신 그 여자 분을 조사하려고 회사에 가봤는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나는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뭔가요?”

“아침에 출근하고 약 한시간정도 있다가 남자직원하고 같이 회사에서 나와 모텔에 들어간 걸 제가 봤습니다.”

“허! 사진이라도 찍었나요?” 

“오늘은 조사 첫날이라 미처 준비 못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그림을 쥐게 될 것입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긴 내 짐작대로 미스 조는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여자였다. 하다못해 평직원시절 때도, 내게 은밀한 유혹을 던지던 년이었다.

 나는 일단 딸들의 행방이 궁금했다. 완희에게 전화를 해보니 모두 찜질방에 있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향이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오주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향이는 알바를 하러가고 없었다. 알바라는 두 글자를 듣는 순간 가슴이 아팠다. 

“알바 가서 언제 돌아오지?” 

“저녁때쯤 들어올 거야!”

한 시간쯤 뒤 오주선을 나는 그녀의 아파트 앞에서 만났다. 반바지와 티를 입고서 쌩얼로 나왔는데 기분이 여러 가지로 이상했다. 

“후훗, 이 시간에 웬일? 나 보고 싶었어?”

내게 애교를 떠는 그녀에게 나는 주위를 주었다. 아파트주민들이 수군거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섭섭한 표정으로 살짝 떨어져 앉았다. 나는 본론을 이야기했다.

“난 자기 딸 향이에게 무지 관심이 많아, 물론 보통 남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더러운 목적 때문이 아냐, 나는 어떡하든 향이를 돕고 싶어. 우선 향이의 알바를 그만 두게 해!”

“알바를 그만 둬도 내가 충분히 뒷바라지는 할 수 있어, 다만 걔가 벌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말려?”

“이봐, 예술고에 다니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향이는 아마 그런 마음의 짐 때문에 벌려고 한걸 거야. 어떡하든 그만두게 해.”

오주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오주선에게 향이의 친구나 담임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했다. 오주선은 수첩에 있다면서 자기 아파트로 올라가자고 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향이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들어갔다. 14층이었다.

“철컥!”

여자들만 사는 곳인지 꽤나 깔끔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 하지만 아파트는 작았고 방은 세 개였다. 나는 그녀가 쓰는 방보다도 향이가 쓰는 방부터 구경했다. 

“아!”

나는 순간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액자에 걸린 사진들....... 그 안에 들어있는 여러 명의 내 딸 향이. 어린 시절의 향이부터 초등학생, 중학생,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다. 내 딸이었지만 정말 예뻤다. 오주선이 뒤에서 푸념 섞인 말을 꺼냈다.

“향이 저게 조금만 열린 사고를 가져도 금방 성공할 텐데.......”

나는 그녀의 말이 거슬렸다. 나는 오랫동안 향이의 방을 구경했다. 완희나 아진이에 비해서 부족한 게 참 많았다. 뭐든지 사주고 싶었다. 문득 뒤에서 그녀가 날 껴안았다. 

“한번 하면 안 돼?”

나는 혹시라도 향이가 우리들의 섹스흔적을 발견하면 어쩔까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안 돼!” 

“흠, 그럼 나, 향이가 올 때까지 수금이나 하러 갈래!”

수금을 하러 간다는 소린 남자와 한판 뜨고 온다는 말과도 같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말릴 수가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약으로 주문을 걸었을 때 내가 박아주지 못한 날은 자기 스스로 욕정을 해결하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녀와 나는 아파트를 함께 나섰다. 내 손엔 그녀가 건네준 향이의 담임과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들려있었다. 

“저녁때 향이와 식사약속 잡아놔!”

“그전에 내가 가게에 출근해야 하는데?”

“그럼 낼 점심 잡아놔! 절대 알바는 못하게 해!”

“알았어!”

그녀가 먼저 차를 타고 빠져나갔다. 나는 향이의 담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고운 목소리였다.

“저, 최 수 선생님이시죠?”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나는 향이의 아빠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놀랬다.

“어머나!”

담임은 오주선과 이혼한 남편으로 생각한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시간을 내달라 간청했고 담임선생은 기꺼이 만나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그녀의 집근처 제과점에서 만났다. 이윽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발머리에 뿔테안경을 썼는데, 좀 수수한 분위기였다. 예술고 선생이면 화려하게 다닐 줄 알았는데 좀 의외였다. 

“향이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별 다른 어려움은 없는지, 장래성은 있는지, 제가 도울 일은 없는지요.......”

담임은 향이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오주선의 막연한 이야기만 듣다가 담임을 만나니 속이 확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성적은 어느 정도며 친구관계는 어느 정도며 등등.......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성적도 꽤나 상위권이었고 친구관계도 좋았다. 하지만 담임도 한계는 있었다.

 최근 향이가 겪고 있는 고민이 만만찮게 있는 걸로 알고 있으나 짐작만 할 뿐, 자세한건 모른다고 했다. 아니 어쩌면 아는데 모른다고 할 수도 있었다. 눈치가 꼭 그런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입에서 모든 진실을 듣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호주머니에 있는 약을 만져보았다. 

“선생님....... 혹시 결혼 하셨나요?”

“네? 아, 작년에 했어요!”

그녀가 유부녀라는 사실에 나는 약 먹일 것을 포기할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딸 향이를 위해서 그녀를 나의 포로로 만들어버려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거기에다가 그녀의 수수한 분위기까지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녀가 안보는 틈을 타서 재빨리 절반으로 쪼개져있는 약에 침을 묻혔다. 이윽고 나는 본론을 꺼냈다.

“저 선생님,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제가 이번에 개발한 초콜릿 좀 드셔보시겠습니까?”

“네?”

그녀는 정말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전 초콜릿 회사에 다닙니다. 근데 이번에 좀 특이한 초콜릿을 만들었는데.......”

나는 그녀의 커피 잔이 놓여있는 접시위에 조그만 약을 올려놓았다. 그녀가 집어 들었다.

“드셔보세요, 맛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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