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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부탁이 있어요.”

집에 들어가자마자 장미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다. 나는 장미의 말이라면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용을 듣고 보니 정말 난처했다.

“그러니까 지언이라는 여자 때문에 더 이상 우리 집에 있지 못하겠다는 거지?”

“죄송해요!”

지언이는 그날 백합 방에 있었던, 장미와 깊은 관계에 있던 또 한명의 레즈였다. 하지만 장미가 다른 여자를 안고 있을 때 지언이는 옆에서 또 다른 여자를 안고 있었다. 말하자면 레즈들끼리 파트너를 바꾼 것인데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같은 여자들끼린 파트너까지 바꿔가며 즐기면서 나와 함께 산다니깐 그녀가 극렬하게 반대를 하는 것이다.

“내가 남자라는 이유로?”

“그런 것도 있지만, 문제는 제가 오빠를 간절하게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전 제 마음을 지언이에게 고백했거든요.”

나는 여전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쁜 건 다른 파트너와 섹스를 나눈 것이 아닌가?”

“저희들을 일반적인 레즈로 생각하면 안돼요. 그날 오빠가 백합 방에서 보셨던 레즈들중 양성애자들은 하나도 없었어요. 전부 순수레즈들이었어요! 남자만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린 우리끼리, 아무하고나 어울릴 수가 있어요! 우리들만의 어떤 공동체 의식 같은 것이에요.” 

장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지언이는 요즘에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밤엔 잠도 자지 못한데요.”  

“심각하네! 정말....... 지언이도....... 남자를 완벽하게 싫어하는 순수 레즈비언이라는 거지?”

“제가 오빠의 집에서 생활하고 오빠를 사랑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지언이에겐 치명적이에요. 우리 같은 순수레즈비언들이 가장 증오하는 대상은 바로 양성애자들이라고요.” 

나는 문득 몇 년 전에 보았던, 레즈비언을 다룬 영화 ‘고 피쉬’ 가 떠올랐다.

그 영화에서도 순수레즈비언들이 나오는데 그녀들은 양성애자를 같은 레즈비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인정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가장 증오했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건 양성애자야!” 

그게 바로 영화의 대사 중 한마디였다. 사실 영화에선 장미의 말처럼 진짜 그랬다. 순수레즈비언을 자처하면서도 몰래 남자와 관계를 맺었던 소녀는 그 사실이 들통 나자마자 같은 레즈비언들에게 혼쭐이 났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나는 장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지언이도 우리 집으로 들어오게 하는 건 어때?”

“아마 오지 않을 거예요! 이곳은 충분히 넓긴 하지만 지언이는 저보다 남자를 더 싫어해요.”

나는 은근히 오기 같은 것이 올라왔다. 대관절 왜 순수 레즈비언이라는 것들은 남자를 혐오한단 말인가. 나는 장미를 더욱 놔주고 싶지가 않았다.

“지언이에게 전화해! 여기서 같이 살든가, 아님 장미와 영원히 헤어지든가!”

장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전화기를 들고는 베란다로 나갔다. 그 사이 나는 지언이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장미의 분위기완 확연히 달랐다. 어떻게 보면 요녀처럼 생겼다고 할 수 있을까? 웃을 때 인상을 찡그린 듯 한 표정이 무척 표독스럽고도 섹시해 보이는데 어쩌면 그 때문에 요녀처럼 보인 건지도 모른다. 사실 요즘엔 잘 보지 않지만 레즈비언들이 나오는 야동을 보면 그 중에서도 유난히 여자를 독점하듯, 사랑하는 레즈가 있다. 그저 연출이 아닌, 카메라든 뭐든 전혀 개의치 않고 시종일관 상대에게 푹 빠져서 연기를 하는....... 그런 여자들 중에서 지언이와 같은 이미지를 많이 본 것도 같았다. 

“오빠.......”

잠시 후 전화를 끊은 장미가 다가와 힘들게 말을 이었다.

“오빠 집에서 신세를 지겠대요. 오빠가 무지 점잖은데다가 오빠 말고 특별히 다른 남자들의 출입이 없다고 하니 온다고 할 거예요. 죄송하지만 앞으로도 쭈욱 남자들의 출입은 자제해줬으면 좋겠어요. 죄송해요. 저희들 집도 아닌데.......”

나는 장미를 살짝 안아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렇게 할게, 내가 장미를 안고 자지 않은 날이면, 두 사람이 새벽에 마음껏 사랑을 나눠도 좋아!”

장미는 큰마음을 먹은 걸까. 내게 입술뽀뽀를 했다. 전기가 찌릿찌릿 흘렀다.

“고마워요!”

밤이 깊어 모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장미는 자기 방에 들어갔다가 한참 뒤에 내방으로 왔다. 장미는 조금 주저했지만 날 힘껏 껴안았다. 그리곤 볼에 뽀뽀를 했다. 어떡하든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장미는 내 품에 안기면서도 여전히 조금씩 떨고 있었다. 나는 장미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남자를 무서워 한다는 건 아마도 남자의 폭력성을 무서워 한다는 것일 거야. 자기 맘대로 발기하고 자기 맘대로 쑤셔 박고.......”

장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다시 말했다.

“장미!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무리하게 삽입하지 않을 거야.”

나는 장미를 더 깊숙하게 안았다. 장미는 향기로운 냄새와 물컹거리는 기분 좋은 촉감을 내게 안겨주었다. 편안한 밤이었다. 그 누구든 장미와 이렇게 안고 있기만 하면 저절로 좋은 꿈을 꾸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약을 먹고 새로운 나의 딸이 된 보연이도 생각이 났고 내일 우리 집으로 들어올 지언이도 떠올랐다. 

그렇게 싱숭생숭한 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장미가 부스스, 일어나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는 것일까.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장미는 짐작대로 화장실에 갔다.

“쉬이이이이!”

새벽이라 오줌 누는 소리가 다 들렸다. 나는 어제 맛본 적이 있던 장미의 보지를 떠올렸다. 건강하고 예뻤다. 바로 거기에서 오줌이 나오는 것이다. 은근히 자지가 발기되었다. 화장실의 물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쿠르르르르!”

이제 장미가 내 품으로 다시 오겠지. 그렇다면 모르는 척, 잠꼬대인 척, 여기저기를 다 만져야지! 한참 들떠있는데 장미는 내 방에 오질 않았다. 혼자 자고 싶어서 제방으로 들어간 것일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나는 장미 방으로 살살 가보았다. 심장이 쾅 하고 떨어질 뻔했다.

 장미의 방엔 큰딸이 알몸으로 누워있었고 장미 또한 어느새 옷을 다 벗어 큰딸을 꼭 안아주고 있었다. 장미는 큰딸에게 키스를 했다. 큰딸은 자다가 깼지만 하나도 귀찮아하지 않았고 입술을 벌려 장미의 목을 껴안았다. 내 목구멍만 까맣게 탔다.  

“언니! 기다렸다구요!”

큰딸의 말은, 날 더욱 이상한 기분과 함께 질투를 느끼게 했다. 나만 사랑해야할 큰딸이....... 큰딸에게도 레즈비언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소홀하게 지나치는 부분을, 장미는 섬세하게 어루만지듯 애무를 해주는 것일까? 나는 뛰는 심장을 가다듬고 둘을 지켜보았다. 큰딸의 몸에 올라탄 장미의 애무는 짐작대로 섬세했다. 그저 여자를 어서 따먹고 싶어서 급하게 여기저기를 핥아대는 저속한 남자의 혀와는 근본적으로 틀렸다.

장미는 큰딸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나는 여자의 몸을 잘 알아, 넌 절대로 남자에게선 이런 애무를 못 받을 거야. 바로 여기가 짜릿할 거야. 내말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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