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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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7 회: 들통난 비밀 -- >

“사장님, 전 이 바닥에서 이십년을 넘게 굴렀어요. 사장님이 회사를 인수하자마자 ‘H기획’으로 바꾼 것부터가 뭔가 심상치 않았어요. ‘H’는 향이의 이니셜이죠?” 

“흠, 궁지에 몰린 기분이군요!”

“제가 사장님 편이라 이런 말씀을 드린 거예요.”

“하지만 향이에 대한 비밀은 특별히 없어요.”

 나는 계속 시치미를 뗐다. 뭔가 팽팽한 신경전 같은 것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실장이 다시 말했다.

“사장님은 이 곳 생리를 아직도 모르고 계세요. 저에게 모든 걸 가르쳐주지 않으시면 나중에 탈이 날수도 있어요. 언론은 우리의 아군이기보다는 적에 가까워요. 그들은 항상 우리의 처지는 생각도 안 해주고 노예계약이니 감금이니, 성상납이니 하는 표현을 써가며 우릴 사회악처럼 이미지를 만들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이유는 저희가 본격적으로 향이를 만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장님과 향이의 주변을 단단히 다져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궁지에 몰린 기분이었지만 숨이 오히려 트였다. 말을 들어보니 정실장은 진심으로 날 도우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까놓고 이야기 할게요, 갠 내 딸이에요. 하나밖에 없는 내 친딸!” 

정실장은 짐짓 놀라워했다.

“그러셨군요! 짐작은 했었는데!”

“부탁합니다만 오주선 부장은 자기 의붓딸이 내가 낳은 딸인지 아직 모릅니다. 비밀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진짜 모릅니까?....... 아무튼 비밀은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녀에게 내 비밀을 들통 나고 나니 말을 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근데 말입니다. 정실장님! 기획사 사장이 자기 딸을 성공시키는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됩니까? 솔직히 다른 연예기획사에 내 딸을 맡긴다고 쳐도 향이 정도면 투자가치가 있는 것 아닙니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연예기획사 사장이란 명함의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무척 좋질 않습니다. 여자연예인들 여덟 명중의 한명 꼴은, 기획사 사장에게 성상납을 해서 올라온 애들이니까요. 아마도 조금 있으면 사장님에게 몸을 바치려는 미모의 연예인 지망생들은 부지기수로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은 잠깐입니다. 단속을 철저히 하시지 못하면 나중에 무척 곤란해지게 됩니다. 나중에 향이가 크게 성공을 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날을 위해서라도 주변을 잘 간수하시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음....... 솔직히 정실장님의 말씀을 이해하겠는데 좀 거슬리군요. 내가 뭘 어쨌다고!”

막말로 자기야말로 영계를 다 따먹고 다니지 않은가 말이다. 정실장은 날 보더니 거침없이 말했다.

“그저껜가 우연히 사장님의 방에 상의를 할 게 있어서 들어가려다가 오 부장과 함께 있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또 어저께도 봤구요!” 

나는 순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내게 직격탄을 날린 게 미안한지 물을 한 컵 권하곤 다시 말을 이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향이를 성장 시키려면 주변의 이미지를 좀 깨끗하게 다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나 사장님은 규모가 큰 연예기획사를 소유하고 계시니까요. 제가 사장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용서바랍니다.”  

 그녀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내 얼굴의 뜨끈뜨끈한 열기는 전혀 내려가질 않았다.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정실장은 날 생각하고 나아가 회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정실장 또한 소문이 깨끗하진 않다.

 홀몸인데다가, 그래서 집으로 젊은 남자 지망생들을 끌어들여 그들과 몸을 섞기도 한다. 하지만 정실장은 기획사의 직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속칭 키워준다는 명목으로 남자애들과 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남자 지망생들이 봤을 땐 자기 엄마뻘이나 되는 정실장이지만 그만큼 그녀에게선 강렬한 성적인 매력이 풍긴다. 즉 아무 조건 없이 상호 합의하에 섹스를 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정실장은 앞으로 내게 잘하라는 쓴 충고를 함과 동시에 오주선을 막기 위해 이런 어려운 자릴 마련한 것이었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정실장이 애써 웃으며 물었다.

“근데 오 부장은 자기 의붓딸이 왜 사장님의 딸인 걸 모르고 있죠?”

“원래 오랫동안 데리고 있으면 오히려 둔할 수가 있어요! 그렇잖아도 오부장은 둔한 여자예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말 나온 김에, 오부장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사장실에 출입을 제한했으면 합니다.”

정실장은 오 부장에게 질투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어차피 오주선의 도발적인 음탕한 행위 때문에, 이대로 가다가는 꼭 다른 직원들에게 들킬 날이 있을 거라는 불안감은 있었다. 

식당을 나섰다. 정실장은 회사와 자기 집이 가까우니 날 한번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조만간 그녀의 집을 가기로 했다. 회사로 돌아와 정실장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하나도 틀린 건 없었다. 정실장에게 약을 먹여볼까도 생각해보았다. 완벽하게 내 여자가 된다면 내게 득이 될까 손해가 될까 저울질을 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약을 먹이는 게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약을 먹고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한다면 내겐 즐거운 일이겠지만, 만약에 그놈의 약에 취해서, 욕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회사 일을 소홀하게 된다면 더 큰일이었다. 그녀가 없으면 회사는 휘청 거린다. 

나는 오주선을 불렀다. 사장실로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는 내 사타구니를 보더니 음탕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주선에게 못을 박았다. 

“앞으로 회사에선 절대로 내게 이상한 짓은 하지 마. 이건 주인으로서의 명령이야. 그리고 특별한 용무가 아니면 이 방 출입도 삼가도록 해!” 

오주선은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자기야!”

힘없이 돌아서는 그녀가 조금 안쓰러웠다. 그때 급하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기다려봐! 오늘 보연이 개통식을 좀 준비해줘, 자기한테도 잘 해줄게. 질질 싸게 해줄게.”

오주선은 그 소리에 후다닥 다가와 내게 입술을 맞추었다. 나는 그녀의 입술을 얼른 떼넸다.

“어허! 누가 본다니깐!”

오주선은 입을 헤 벌리며 얼른 나갔다. 어차피 보연이를 저대로 놔둬선 안 될 것이다. 내 친딸을 닮은 죄로 한 없이 달아오른 몸을 내버려둘 순 없었다. 

내 딸을 닮은 건 일단 무시하자. 향이는 향이이고 보연이는 보연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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